소설리스트

마법소녀물 야겜 속 최종보스가 되었다-53화 (53/471)

EP.53 두 영웅의 만남 #2

세화는 유리아를 데리고 내가 있는 호텔방으로 왔다.

만난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부터 친해졌는지 참 웃기지도 않았다.

“유리아 엘레나르에요. 세화에게 오면서 이야기 들었어요. 아, 정찰기로 봤을 테니 저희 대화도 들으셨겠죠?”

내게 다가와 손을 내미는 유리아.

그러고 보니 송지혁인 상태로 유리아를 만나는 건 처음이로군.

표정관리하자... 표정관리. 난 지금 세화의 돌발행동에 황당하고 화가 난 사람을 연기해야 한다.

“송지혁입니다. 대화는 뭐... 본의 아니게 듣고 말았네요.”

그녀와 손을 맞잡고 대충 흔들어재낀 내가 세화를 향해 눈을 지그시 떴다.

유리아에게 정보를 나불거린 일에 대해 책망하는 것이다.

생각 없이 개입한 것에 대해서도.

그러자 세화가 우물쭈물해하며 사과한다.

“말 안 들어서 미안... 근데 나쁜 사람은 절대 아냐. 내가 장담할게. 보증도 설 수 있어.”

“보증은 무슨... 그게 입에서 나올 말이야?”

“미안해...”

“괜히 데리고 왔나 싶다. 우린 절대 드러나선 안 된다고. 그리고 내가 뭐라고 했어? 무턱대고 들어가지 말랬지? 변신은 또 왜 푸는 건데? 너 그렇게 경솔했어?”

딱히 세화에게 뭐라 하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요즘 풀어주니 자꾸 청개구리 짓을 하는 세화를 교육하기 위해서라도 필요한 일이었다.

“.....”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는 세화.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겠지.

유리아는 그런 세화와 내 얼굴을 번갈아 바라보더니 사과했다.

“죄송해요. 제의를 받았어도 오는 게 아니었는데. 실수한 듯싶네요. 하지만 이야기를 들어본다면 세화를 칭찬해주고 싶을 거에요.”

“무슨 이야기요?”

“게이트에 대한 이야기... 그들이 어디서 왔고, 무슨 목적을 가지고 있는지요.”

“제가 유리아 씨 이야기를 믿어야 합니까?”

“그건 아니에요. 하지만 꼭 들어주셨으면 해요. 믿고 안 믿고는 지혁 씨 마음이죠.”

“하... 머리가 아프네...”

엄지와 중지를 이마 양옆에 갖다 대고 꾹꾹 누르고 있자, 세화가 그런 나에게 다가와 조심스레 손을 잡아온다.

“미안... 진짜 미안해... 근데 진짜 어떻게든 도와줘야 했어... 아니, 도와주는 게 아니라 만나야 했어. 만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단 말이야...”

“다시는 돌발행동 같은 건 하지 마. 말 좀 잘 들어.”

“응! 무조건 들을게! 널 걸고...”

“뭐? 날 걸어? 장난 하냐 지금?”

“아니... 약속할게...”

나는 활기차졌다가 시무룩해졌다가 갈피를 잡지 못하는 세화를 침대에 앉혔다.

그리고는 어색하게 서있는 유리아를 커피 테이블 주변의 소파로 안내했다.

“앉을까요?”

“네.”

내 맞은편에 앉은 유리아가 입술에 침을 바른다.

너무나도 매혹적이다. 저 예쁜 입에서 아빠! 좋아! 사랑해! 라고 말하게 해주지.

내가 가만히 있으니 유리아가 입을 열었다.

“음... 절 도와주는 분이 계시는데... 그분이 비스트 슬레이어와 접촉해본다고 하셨거든요? 근데 제가 먼저 만나게 됐네요.”

“김태곤 씨요?”

유리가 화들짝 놀란다.

“그걸 어떻게...”

하지만 이내 우리의 기술력을 생각해서인지 수긍한다.

“그렇겠죠. 거의 집순이었던 절 찾아내 미행할 정도였으니...”

“사실 이건 기막힌 우연이라고 봐야 합니다. 김태곤 씨와 저는 사업 파트너거든요. 그분과 술자리에서 대화를 나누던 도중 게이트 얘기가 나왔습니다. 자세한 건 설명하지 않겠지만... 그 일로 제가 당신을 주시하게 된 거에요.”

“그... 래요...?”

유리아의 표정이 가라앉는다.

음... 김태곤으로 변장해서 만날 때 조심해야겠어.

내가 말을 이었다.

“그리고 저희가 먼저 접촉하지 않는 한, 그분은 절대 저흴 찾을 수 없었을 겁니다.”

“.... 오늘 세화를 만난 게 정말 운명이라고 생각되네요. 긴 이야기가 될 것 같은데...”

유리아가 말을 하고 있을 때, 세화가 커피를 타와 테이블에 내려놓고 내 옆에 앉았다.

우리 둘의 약지에 껴진 반지를 바라보던 유리아가 흐뭇한 미소를 짓는다.

보기가 좋나보다.

“먼저, 게이트를 여는 놈의 정체는...”

**

약 세 시간에 걸쳐 에란델, 게이트, 그리고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유리아.

다 아는 내용이었기에 무척 지루했지만, 난 끝까지 그녀의 말을 경청했다.

“.... 여기까지에요. 타이라트는 분명히 지구 어딘가에서 암약하고 있을 거에요. 그를 찾아내 없애야 게이트가 열리지 않아요.”

난 여기서 대놓고 활보하는 중인데... 흐흐...

“그럼 비스트 슬레이어의 최종목적은 타이라트를 찾아내 그를 없애야 하는 것이로군요.”

“네. 그럼 다시 평화가 찾아올 거에요. 그리고 그건 제 목적이기도 하죠. 절 연구실에 넣어줘요. 큰 도움이 된다고 장담할게요. 육체적인 능력은 물론 그가 내보내는 마물들에 대한 정보까지 어느 정도 있어요.”

세화가 날 빤히 바라보며 눈으로 말했다.

얼른 승낙하라고.

당연히 승낙할 거다. 근데 쉽게 해줘선 안 되지.

“연구실은 제가 운영하는 게 아닙니다. 박사님이 한 분 계신데, 그분께 여쭤보고 답을 드릴게요.”

“.... 네. 꼭... 꼭 잘 말씀해주세요. 부탁드려요. 타이라트는...”

그래, 날 갈기갈기 찢어서 죽이고 싶겠지.

하지만 넌 이미 내 손아귀에 들어왔는데, 그럴 수는 없을 거다.

“알겠습니다.”

“제 연락처는 01...”

“이미 있습니다. 조사하면서 다 알아놨어요.”

“아, 네...”

“일단 유리아 씨의 현재 신분은 너무 위험합니다. 아직 국가에서 주시하고 있는 건 아니지만, 한 번 걸리면 의심을 피하기가 어려울 거에요. 지금까진 운이 좋았다고 할 수 있겠죠. 제가 따로 완전한 신분을 만들어드리겠습니다. 이름은 유지해드릴 테니 걱정 마시고요.”

유리아의 낯빛이 밝아졌다.

“이름만 유지하면 돼요. 호의에 감사드립니다.”

“돈은 충분히 있으신가요?”

“네, 태곤 아저씨가 많이 도와주고 계세요.”

“알겠습니다. 연락은 저희가 따로 합니다. 불만은 없으시죠?”

“물론이에요. 하지만 최대한 빨리 연락을 주신다면...”

“노력해보겠습니다.”

자리에서 일어난 내가 유리아에게 손을 내밀었다.

악수를 나눈 나는 침대로 돌아가 장비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때를 틈탄 세화가 유리아에게 말한다.

“언니... 꼭 좋은 소식이 있을 거에요. 제가 장담할게요.”

아무리 유대감이 생겼다고는 해도 그렇지... 언제 봤다고 친한 척이람.

“고마워, 세화야. 널 만나서 정말 다행이야. 송지혁 씨와 같은 반지를 꼈던데, 남자친구야?”

세화의 귀에 속삭이는 유리아.

다 들려 이년아. 집중상태에 들어간 내 청각은 그 어떤 생명체보다 좋다고.

“네... 남자친구에요.”

“잘 어울린다. 우리 꼭 다시 만나자.”

“네, 언니...”

두 사람은 그렇게 긴 포옹을 나눈 후 헤어졌다.

유리아가 나가고 난 후, 세화가 내게 총총걸음으로 달려와 묻는다.

“지혁아, 왜 승낙 안 했어? 이야기도 다 들어놓고... 박사님 때문이야?”

“아니. 그 이야기가 진실인지 거짓인지 모르잖아. 일단 괴물... 아니, 마물들의 이름을 나열한 걸 보면 그럴싸하긴 한데...”

“날 못 믿는 거야? 내가 말했잖아. 유리아 언니는 무조건 믿어도 된다구. 새 디바이스의 적합자가 분명해.”

가방에 노트북을 집어넣던 나는 세화에게 몸을 돌려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똘망똘망한 눈으로 날 올려다보던 세화는 이내 눈을 내리깔았다.

울먹이려하는 모습이 또 응석을 부리려는 것 같다.

그녀와 눈을 맞춘 내가 말했다.

“이 일은 신중해야 해. 하지만 너무 걱정하지 마. 박사님한테 말하면 좋은 대답이 나올 것 같으니까.”

“응...”

“그리고 앞으론 이런 비슷한 일이 생기면 나 혼자만 움직여야겠어. 네가 유리아 씨에게 온갖 말을 해대서 머리가 아파. 디바이스에 대해 말하지 않은 건 잘했지만... 그걸 감안해도 그냥 넘어갈 순 없어.”

“안 돼... 난 너랑 같이 있는 게 좋단 말이야...”

네가 생각 없이 변신을 풀었기 때문에 중구 범죄자들은 다 뒈져 없어질 걸?

물론 넌 그 일을 모르겠지만.

아, 떨어지는 상태인 너는 알아차려도 별로 마음 아파하지 않겠네.

“결과적으로 잘 풀리긴 했지만 넌 너무 경솔해. 이런 일에 끼게 한 건 내 실수였어.”

“앞으로는... 진짜 잘할게... 내 마음대로 행동하지 않을게... 한 번만... 한 번만 봐줘...”

훌쩍이려는 세화.

난 한숨을 내쉬며 못 이기는 척 말했다.

“생각은 해보겠지만, 당분간은 나 혼자 움직일 거야. 알았어?”

“.....”

“알았냐고.”

“아, 알았어...”

“돌아가자. 서울로.”

세화는 침착하게 화를 내는 내가 무서운지 애꿎은 카펫만 바라보고 있었다.

난 그런 그녀의 손을 꼭 잡아주고 한손으로 정리를 마무리했다.

이른 체크아웃을 하고 차에 타기 직전까지도 세화는 시무룩한 상태였다.

내게 너무나도 미안한 모양. 하긴, 충동적으로 행동했으니 그럴 만도 하지.

트렁크에 장비를 가져다 놓은 내가 운전석에 타자, 세화가 내게 빨대를 내민다.

커피였다.

“오래 운전해야 되니까... 잠자면 안 되잖아...”

빨대에 입을 대고 커피를 크게 빨아들인 난 목젖을 꿀렁이고는 말했다.

“자율주행 설정해놓으면 그만인데.”

말투가 부드러워서인지 세화의 낯빛이 무척 밝아졌다.

“진짜 반성하고 있어. 용서해주라... 응?”

“용서는 이미 했어. 근데...”

“생각해본다고 했던 건 취소 안 한다구? 물론 잘 알아. 네가 됐다고 판단이 설 때까지 가만히 있을게...”

좋아, 이 정도면 당분간은 칭얼대지 않겠구나.

나는 내 볼을 손가락으로 툭툭 두드렸다.

그러자 세화가 어깨를 들썩이더니 볼에 뽀뽀를 해왔다.

소리까지 내는 것이 제대로 신난 것 같다.

난 쪽쪽 소리를 내며 여러 번 입을 맞추는 세화를 밀어냈다.

“디바이스 충전량은?”

“88퍼센트...”

“12퍼센트나 썼네. 가면서 채워놔야겠다.”

12퍼센트‘밖에’ 라고 해도 된다.

용량은 충분히 키워놨으니까.

유리아도 만나서 박사에게 소개할 타이밍을 잡았겠다...

박사가 유리아를 연구실에 들이기로 결정하고 디바이스를 내주면 A급 마물을 내보내봐야겠다.

후보는 무기력한 기운을 내뿜어대는 아스타로트가 좋겠다.

레오나 혼자서는 벅차겠지만, 나와 마르셀라가 약점을 만들어내고 레오나와 유리아가 합동으로 공격하면 잡아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A급 마물이니만큼 조금 다칠 가능성이 있을 텐데... 내가 잘 보살펴줘야겠군.

“지혁아, 출발 안 해?”

“아, 그렇지.”

“무슨 생각하고 있었어?”

“그냥. 오늘 일어난 일에 대한 생각. 그리고 앞으로의 계획.”

“지금 이런 말을 하기엔 조금 그렇지만... 난 유리아 언니를 만나서 정말 좋아. 분명 좋은 동료가 될 거야.”

암, 좋은 동료가 되고말고.

나는 세화의 목 뒤를 지그시 쓰다듬어주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고, 차를 출발시켰다.

자율주행모드를 켠 내가 바지를 무릎까지 내렸다.

그러자 세화가 자연스레 내 하반신으로 얼굴을 가져왔다.

소모한 12퍼센트는 돌아가면서 채워놔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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