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법소녀물 야겜 속 최종보스가 되었다-52화 (52/471)

EP.52 두 영웅의 만남

“그래서... 1분도 안 돼서 쌌다고...?”

입을 벌린 나의 황당한 물음.

세화가 얼굴에 비웃음을 가득 담은 채 고개를 주억거렸다.

“응. 1분도 아니라 한... 30초?”

“뭔... 말이 돼?”

“나도 어이없었어.”

“재미는 있었고?”

“그냥... 그럭저럭.”

말은 저렇게 했지만 무척 재미있었던 것이 틀림없다.

표정만 봐도 답이 나온다.

신나게 즐겼네. 어색한 척, 순진한 척은 다 하더니.

입가에 희미한 미소를 띤 나에게, 세화가 노트북을 가져오며 말했다.

“이제 그만 얘기해. 생각만 해도 징그러.”

“알았어.”

“트윙클이나 할래.”

푹신한 고급 베개에 머리를 묻은 난, 아빠다리를 한 세화가 트윙클에 들어가 여러 일탈계 계정을 엿보는 걸 보았다.

#초대녀 #커플만남 #레즈플 #FFM

이딴 걸 대체 왜 보는 거야?

“너 설마 스와핑이라도 할 생각은 아니지?”

가벼운 내 말에 세화가 고개를 홱 돌리더니 눈을 흘긴다.

“장난해? 내가 왜 다른 년한테 널 줘야 되는데? 그리고 내가 다른 남자한테 다리를 벌리면 좋겠어?”

“아니, 커플만남 계정을 보고 있길래 해본 말이야.”

“심심해서 보는 거야. 다른 사람들은 어떤 식으로 올리나. 절대 그럴 생각 없어. 그딴 말은 하지도 마.”

“알았어. 근데 FFM은 괜찮아 보이는데...”

여자 둘, 남자 하나.

저 플레이를 싫어하는 남자가 있다면 그건 고자가 틀림없다.

비스트 슬레이어들이 모두 타락하면 FFFFFM 하렘 플레이가 되겠지.

황제가 따로 없는 생활을 누릴 때가 기대된다.

세화는 장난기 어린 내 얼굴을 보더니, 주먹을 들어 내 허벅지를 때리기 시작했다.

다른 여자에게 흥미를 보이니 화가 난 것이다.

꽤나 세게 때리는데 하나도 안 아프다.

난 세화의 팔을 잡아끌어 내 품으로 들어오도록 했다.

“이제 그만 자자. 그만 때리... 아아아-! 가슴 깨물지 말라고!”

내 가슴을 크게 베어 무는 세화의 이마를 찹! 소리가 나도록 때린 난, 팔다리로 그녀의 온몸을 꽁꽁 묶었다.

“애가 날이 지나면 지날수록 폭력적으로 변하네...”

그래서 기분 좋다.

“네가 열 받게 하잖아... 나 이마 아파.”

난 그녀의 이마에 내 입술을 대주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그러자 세화의 얼굴이 평온해지면서 입가가 애처럼 찢어진다.

입술로 그녀의 이마를 살살 문대주던 나는, 세화의 휴대폰에 진동이 울리자 손을 뻗었다.

그녀가 알려준 패턴대로 잠금을 풀고 문자를 보니 유승현의 메시지가 와있었다.

[세화야, 오늘 정말 고생 많았어. 그리고 고마워. 네가 그렇게까지 날 생각하고 있었는지 정말 몰랐어. 앞으로 내가 더 잘할 테니까 오래가자. 언제든 네 디바이스? 충전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도와줄게. 사랑해.]

“뭐야? 나도 볼래.”

세화가 낑낑거리며 내 품에서 빠져나오려고 한다.

난 화면을 세화의 눈에 가져다대주었다.

눈을 끔벅이는 상태로 문자를 읽어 내려가던 세화가 몽롱해진 표정을 짓는다.

“진짜 감동이다...”

가식적인 얼굴 좀 보소. 아니, 진심이 한 스푼 들어가 있긴 하다.

세화의 휴대폰을 베개 옆에 놓아둔 내가 말했다.

“제대로 길들여놔.”

“응...”

“그리고 당분간 바빠질 거야.”

“왜? 왜 그러는데? 회사야? 요즘 왜 그렇게 바빠?”

눈을 부릅뜨고 추궁하는 세화.

난 진중한 표정으로 그녀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

“회사 일은 아냐. 우리와 관련된 일이지.”

“우리...?”

“의심스러운 사람이 있어. 이블리언 게이트와 관련된 사람일지도 몰라. 조사를 좀 해보려고 해.”

상체를 일으킨 세화가 눈을 가라앉혔다.

“그럼 큰일 아니야? 그 정도로 위험한 일인데 나한테 얘기도 안 해줬어?”

“지금 얘기하고 있잖아. 그리고 위험한 일은 아니야.”

“나도 같이 갈래.”

음... 지금까지 내 일을 볼 땐 세화를 따로 떼어놓았었다.

이번에도 혼자 간다고 하면 상당히 삐칠 것 같은데, 달래주기 위해서라도 같이 가야겠다.

“그렇게 하자.”

“히히...”

“왜 웃어?”

“널 지켜줄 수 있어서.”

“그럴 일이 일어날까 모르겠다. 혹시 모르니까 디바이스는 충전시켜놔야지.”

“디바이스는 이미 백 퍼센... 꺄아!”

말을 하다 말고 꺄르르 거리는 세화.

내 얼굴이 그녀의 하반신으로 향했기 때문이었다.

**

나와 세화는 대전에서 유리아의 뒤를 캐고 있었다.

차 안에서 내 설명을 간단하게 전해들은 세화가 물었다.

“저 사람이 그 게이트를 여는 외계인을... 안다고...”

“아직 확실하지는 않아. 이름은 유리아 엘레나르고, 21살이야. 이민자로 등록돼있는데 수상해. 그래서 뒤를 캐보려고 해.”

“엄청 예쁘다... 모델 같아. 근데 가슴이 왜 이렇게 두근거리지?”

“미행은 처음이라 그런 거 아냐?”

“그런가...?”

난 세화의 가슴에 손을 얹어주며 그녀를 안심시켰다.

“지금부터 뭘 하는지 알아보자. 잠깐만...”

나는 뒷좌석에 손을 뻗어 노트북을 가져왔다.

그리고는 키보드를 따닥따닥 두드려 연구실에서 가져온 초소형 정찰기를 내보냈다.

위이잉-!

파리가 날갯짓하는 미세한 소리와 함께, 정찰기가 유리아의 위에서 선회하며 그녀를 비추기 시작했다.

모니터를 보던 세화가 감탄을 터뜨렸다.

“우와... 진짜 신기하다.”

“박사님과 내가 최근에 만들었어. 이제 호텔로 가자. 거기서 느긋하게 지켜보면 될 것 같아.”

“응. 엄청 두근거린다... 영화 주인공이 된 느낌... 뭔지 알지?”

나는 피식하고 말았다.

철없는 소리를 하는 세화가 너무 귀여웠기 때문.

그녀의 볼을 잡아당겨준 나는, 세화에게 노트북을 넘겨 감시를 맡기고는 예약해둔 호텔로 갔다.

거기서 우린 함께 유리아의 행동을 감시했다.

유리아는 집으로 들어가 밤이 될 때까지 나오지 않았는데, 정찰기가 집을 비춰주는 장면만을 바라보던 세화가 툴툴댔다.

“그냥 집 안으로 보내지...”

“하늘에 있어야 연결이 안 끊겨.”

“우리 기술력이 그것밖에 안 돼?”

아니, 도촬하려면 할 수 있지만... 내가 샤워를 하는 유리아를 보고 꼴리면 네가 화낼 거잖아.

“아직은 그래.”

대충 얼버무린 나는 심심할 땐 룸서비스로 음식을 시켜 먹거나, 세화의 몸을 만지작거리거나, 유승현에게 기대감을 줄 수 있는 문자를 보내도록 시키며 낄낄거리거나 했다.

그렇게 밤이 되었을 때, 유리아가 집에서 나와 플라잉 택시를 탔다.

정색하면서 모니터를 가까이 당긴 세화가 물을 들이켜고 내 옷으로 입가를 닦는다.

제대로 몰입했구나.

그녀의 옆에서 유리아를 지켜보던 내가 중얼거렸다.

“대전 중구로 가는 것 같은데?”

“중구? 거긴 괴물이 나와서 완전히 박살났잖아.”

“맞아. 그리고 낮엔 괜찮지만 밤엔 노숙자를 비롯한 범죄자들이 득시글거려. 저 사람은 대전에 살아서 그걸 아주 잘 알고 있을 텐데...”

“범죄자? 그럼 어떡해? 분명...”

그래, 범죄자들이 노리겠지.

하지만 유리아는 그런 범죄자를 때려잡기 시작할 거다.

쟤는 게이트가 터져 나오거나 큰일이 생기고 나면 쌓아두었던 힘을 분출해야 성이 풀리는 애거든.

“계속 보자.”

유리아는 초토화된 중구 중앙에 내렸다.

플라잉 택시 특유의 위이잉거리는 소리가 들려오자, 지하에 있던 범죄자들이 스멀스멀 기어 나와 유리아를 훑었다.

벌레 같은 놈들이었다. 쓸모라고는 하나도 없는.

걱정스런 얼굴을 하던 세화는, 심장에 손을 대고 내게 이런 말을 해왔다.

“도와줘야 돼...”

“저 사람이 착한 쪽인지 나쁜 쪽인지 아직 모르잖아.”

“지혁아... 나 도와주고 싶어...”

“안 돼.”

“도와주고 싶다니까!!”

버럭 소리치는 세화.

눈썹을 구긴 난 그녀를 빤히 바라보았다.

뭐지? 왜 오늘따라 고집을 부리는 거지?

예전엔 저런 상황에 처한 일반인들을 보면 무조건 도와줬겠지만, 인간에 대한 불신이 쌓인 지금은 아니다.

내 표정을 본 세화가 흠칫하며 사과한다.

“소리 질러서 미안해... 근데...”

“도와줘야 된다고? 그래야 하는 이유라도 있어?”

“몰라... 하지만 도와주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아... 가슴이...”

가슴이 시켰다는 소리라도 하려고?

잠깐만... 가슴이?

난 세화의 심장에 손을 가져다대보았다.

무척 빠르게 뛰고 있는 박동. 점심때 차 안에서와 똑같다.

긴장하고 있는 건 절대 아니겠지만... 설마...

내 예상이 맞다면 일이 잘 풀릴 것 같은데...

나는 다른 노트북을 조작해 우리 방의 여분 룸카드를 마스터키로 변경했고, 교란기를 켜 모든 카메라를 무력화, 위장시켰다.

그리고 그 카드를 세화에게 내밀었다.

“옥상에서 변신하고 중구로 날아가. 대신... 저 사람이 위기에 빠지지 않는다면 무조건 지켜봐. 알았어?”

카드를 덥석 받아든 세화가 정신없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녀가 신발을 챙겨 신고 있을 때, 내가 또 다시 당부했다.

“후광은 최소화시켜. 그럴 수 있지?”

생각 없이 파란 빛을 줄줄 내뿜지 말라는 얘기다.

세화가 굳은 얼굴로 대답했다.

“응. 고마워. 금방 돌아올게.”

세화는 곧 문을 박차고 나갔다.

나는 노트북으로 일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지켜보았다.

세화가 나감과 동시에, 유리아는 자신의 몸을 노리고 접근하는 범죄자들을 족치기 시작했다.

범인보다 훨씬 강한 그녀라 그런지 무기를 든 놈들도 상대가 되지 않았다.

그나저나 제법 잘 싸우네. 긴 다리로 하이킥을 날리는 모습이 아름답다.

유리아가 그들을 쥐 잡듯 패기 시작하고 얼마 후,

쾅!

유리아로부터 꽤나 멀리 떨어진 곳에서 굉음이 들리더니 흙먼지가 피어올랐다.

거기서 저벅저벅 걸어나온 사람은 레오나였다.

내 말대로 후광을 최소화한 레오나는 유리아를 빤히 주시했다.

위기가 아니면 나서지 말라니까. 말 더럽게 안 듣네.

-넌...!

범죄자 한 놈의 목을 졸라 기절시키던 유리아의 눈이 크게 뜨인다.

주변에 있던 범죄자들은 처음엔 레오나의 미모에 혹해 멍하니 있다가, 이내 그녀의 정체를 파악했다.

-저... 저거 그거 아니냐? 비스트... 비스트...

콰직!

순식간에 다가간 레오나가 정체를 말하려는 놈의 머리통을 잡고 바닥으로 찧었다.

이후 몇 놈을 더 잡아 다소 과격하게 제압했다.

코뼈가 박살나 피를 줄줄 흘리고, 팔이 부러져 고통에 찬 비명을 내지르는 놈들.

그들을 본 다른 범죄자들이 순식간에 줄행랑을 치기 시작했다.

휑해진 중구엔 곧 레오나와 유리아, 두 사람밖에 남지 않게 되었다.

둘은 무슨 생각에서였는지 서로를 향해 걸어왔다.

마치 운명에 이끌리는 사람처럼.

그 모습을 지켜보던 나는 턱을 쓰다듬었다.

‘텔레파시 같은 건가?’

세화가 호텔에서 안절부절 못하고 있을 때 했던 예상이 맞아떨어진 것 같다.

영웅은 영웅을 알아본다고 했던가?

지금 두 사람의 모습은 그렇게밖에는 설명할 수가 없었다.

세화가 점심에 심장이 두근거렸던 건 긴장해서가 아니라, 운명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유리아를 보고 말이다.

레오나는 곧 변신을 풀고 세화로 돌아왔다.

이런 조심성 없는 기집애.

지하에서 범죄자들이 지켜보고 있을 수도 있단 말이야.

난 곧바로 마르셀라에게 연락했다.

-네, 마왕님.

“상황은 너도 보고 있겠지?”

-물론입니다. 놀라운 광경이에요.

“세화와 유리아가 떠나면, 중구에 있는 벌레들이 입을 열기 전에 모두 처리해놓아라. 목격자는 한 놈도 남겨둬선 아니 된다.”

-알겠습니다.

전화를 끊은 내가 모니터를 계속 주시했다.

유리아의 표정은 놀라움 그 자체였다.

젊고 여린 세화의 얼굴 때문인 것 같다.

-.... 당신은 누구죠?

유리아의 물음.

말투엔 따스한 감정이 깃들어 있다.

경계심 많은 유리아를 한 방에 무장 해제 시킬 정도로 서로를 향해 강한 이끌림을 느끼는 건가?

세화가 대답한다.

-이세화에요... 음...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만나서 정말... 정말 반가워요.

꾸벅 고개를 숙이는 세화.

동시에 유리아의 얼굴이 환해진다.

얼마간 세화를 빤히 바라보던 그녀의 입이 열린다.

-유리아 엘레나르라고 해요.

서로를 사이좋은 친남매 바라보듯 눈빛을 교환하는 두 사람.

나는 씨익 웃었다.

이래야 전대물 답지. 역시 마법소녀들이다.

세화를 데려온 건 그저 그녀가 삐칠 까봐 걱정해서였지만, 결과적으로 완벽한 한 수가 됐다.

이러면 자연스러운 느낌으로 유리아를 박사에게 소개할 수 있겠구나.

신중하게 접근하지 않았다고 한 소리 듣기는 하겠지만 좋은 결과를 이끌어냈으니 크게 뭐라고 하진 않을 것이다.

오히려 칭찬을 했으면 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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