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49 유리아 소개 계획 #2
현재 서울 마포구는 대혼란에 빠져있었다.
마르셀라가 아몬을 시켜 범죄조직 전체에 최면을 걸었고, 그들은 서울로 올라와 시민들에게 엄청난 피해를 줬다.
그들이 나타나고 얼마 뒤에 레오나가 튀어나와 진압을 하기 시작했지만, 그녀는 조직원들을 죽이지 않고 기절, 혹은 무력화를 시키도록 조절하는 중이라 조금 시간이 걸렸다.
쾅!
“끄억!”
조직원 하나가 벽에 얼굴을 처박고 단말마를 내뱉었다.
머리에서 피를 줄줄 흘리며 쓰러진 그.
레오나는 무심한 표정을 지으면서 간헐적으로 꿈틀거리고 있는 조직원을 내려다보았다.
연구실에서 박사와 함께 레오나를 주시하고 있던 내가 지시를 내렸다.
“200미터 전방으로 가다가 왼쪽 골목. 두 명이야. 처리하면 상암동은 클리어고.”
-알았어.
짧게 대답한 레오나가 무척 빠른 속도로 움직였다.
그리고...
콰직! 콰지직!
잔인한 소리와 함께 거기서 시민을 겁탈하려 하던 범죄자 두 명이 조용해졌다.
그녀는 피 묻은 장갑을 한 차례 닦아내더니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이내 이를 악 물고 다른 지역으로 가 범죄자들을 소탕하기 시작했다.
화면을 지켜보던 박사가 입술을 잘근잘근 씹는다.
“이러면 안 돼... 이러면 안 된다고... 레오나! 멈...”
툭.
박사가 레오나에게 오더를 내리려고 하자, 내가 버튼을 눌러 통신기 연결을 끊었다.
그러자 박사가 날 죽일 듯 바라본다.
“지금 뭐하는 짓이지?”
“시민들을 지키는 짓이요. 막지 마세요.”
“송지혁! 레오나의 정의는...”
“박사님, 뭔가 착각하시는 거 아니에요? 레오나의 정의는 ‘괴물들로부터 사람들을 지킨다.’ 에요. 괴물이란 곧 악이고요. 지금 저기서 시민들을 괴롭히고 있는 범죄자들이 악이 아니라면 뭐죠? 그런 사람들까지 생각하려다가 무고한 시민이 더 죽어버리면 레오나의 마음은 어떨 것 같아요?”
“너...”
“전 레오나가 차선을 선택하도록 할 겁니다. 지금 상황에서는 이게 맞다고 생각해요. 제가 지시를 내린 거니까, 책임도 제가 져요.”
“.....”
박사는 내 일그러진 얼굴을 보고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래, 나도 힘들다고. 레오나에게 이런 지시를 내려서 힘들단 말이야.
가 아니라, 이런 얼굴을 연기하느라 힘들어.
“앞으로 범죄 소탕은 국가에게 맡기는 게 좋겠습니다.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다 하나도 못 잡는다는 속담이 있어요. 저흰 그냥 괴물들만 잡자고요. 세상의 모든 범죄조직을 소탕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지금도 해외 곳곳에서 실시간으로 범죄가 벌어지고 있는데, 그들도 막을 건가요?”
“젠장...”
욕심내지 말고 괴물들만 상대해.
범죄자 같은 인간... 아니, 모든 인간들은 나와 타락한 비스트 슬레이어들이 처리할 테니까.
얼마 지나지 않아 소집된 경찰, 군대가 마포구에 도착했다.
그들은 레오나를 도와 범죄자들을 처리했고, 무자비한 사격을 가했기에 범죄자들이 죄다 뒈지면서 상황이 곧 종료되었다.
아무리 조직의 크기가 크다 해도, 밀수한 무기가 많다 해도 공권력과 군대를 상대로 버티기는 무리였다.
조용해진 마포구.
박사가 눈을 한 번 질끈 감았다 떴다.
“끝났네.”
“네.”
이를 악 문 나는 키보드 양옆에 팔꿈치를 올리고 머리를 쥐어뜯었다.
레오나에게 그런 지시를 내려 힘들어함을 연기하는 것이다.
박사가 내 어깨에 손을 올린다.
“미안해. 범죄조직은 네 말대로 국가에게 맡기자. 괴물들만 상대하는 것도 벅찬데... 평화에 집착하느라 내가 너무 욕심을 부렸어.”
“네...”
“먼저 들어갈래? 레오나가 도착하면 직접 돌려보낼게.”
난 고개를 주억거리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그녀를 부서져라 꽉 안았다.
“앗...!”
당황해하는 그녀.
하지만 이내 내 등을 두드려준다.
가슴 빵빵하네. 나중에 맛나게 빨아주지.
그녀와 힘찬 포옹을 나눈 난 곧바로 집에 돌아갔다.
**
[비스트 슬레이어 레오나가 한국인이라는 주장이 점점 신빙성을 얻어가고 있습니다. 금일 오후에 대구 지역의 범죄집단인……]
뉴스를 보던 내가 피식했다.
인간들은 왜 영웅이 자신의 나라 소속이길 좋아하는지 모르겠다.
국뽕에 취하고 싶은 마음은 이해하지만, 어차피 너네는 그 영웅한테 뒈질 건데.
뭐, 너흰 지금 그 사실을 모르고 있으니까 용서해주지.
마음껏 찬양하고 있어라.
삑! 덜컥!
현관문이 열리며 세화가 들어온다.
나는 TV를 끄고 환한 미소로 그녀를 맞이했다.
“왔어?”
세화가 고개를 갸웃한다.
박사에게 내가 힘들어한다고 전해들은 모양.
“왜 아무렇지도 않아?”
“내가 왜?”
“힘들어하고 있다고 박사님이 그러시던데...”
“전혀 안 힘든데? 왔으면 올라와야지 뭐하고 있어?”
어깨를 으쓱한 나는 내 무릎을 툭툭 두드렸다.
배시시 웃은 세화가 다가와 무릎에 앉자, 내가 그녀의 볼을 약하게 잡아당기며 물었다.
“너는 어때? 힘들어?”
“저들은 당해도 쌌잖아. 악한 사람들이야.”
곧바로 나오는 대답. 아주 좋다.
“그렇지. 당해도 쌌지.”
“근데... 아무리 악하다고 해도 사람들은 사람들이잖아...”
금세 눈을 내리까는 그녀.
도와줘야겠다.
“네게 그러라고 지시한 건 나야. 너는 힘들어하지 마.”
“힘들지 않아... 그냥 마음이 조금 복잡할 뿐이야. 근데 왜 넌 안 힘든데 박사님 앞에서 힘들어했어? 애써 감정을 숨기고 있는 거야?”
“아니. 거리를 두기 위해서... 그리고 좀 힘든 척을 하기 위해서 연기를 한 거야.”
“왜?”
“요즘 박사님의 욕심이 많아졌어. 이런 범죄조직도 잡으라고 한 건 너무 심했다고 생각해. 우릴 너무 부려먹으려는 것 같아. 너도 느끼고 있지?”
세화가 격하게 내 말에 동의했다.
“맞아. 솔직히 이해가 안 가.”
“내 연기가 먹혔는지는 모르겠는데, 이젠 우린 괴물들과 싸우는 데에만 집중하면 돼. 그리고... 오늘 뉴스는 절대 보지 마.”
살짝 장작을 넣으니 세화의 안에 봉인되어 있던 악의 불씨가 되살아난다.
그녀의 눈이 가라앉는다.
“이미 오면서 기사 봤어. 댓글에 나에 대한 비난이 있었는데 대체 왜 그러는 거야? 우린 아무런 대가 없이 저들을 도와주고 있는데...”
그 비난? 마르셀라가 조작한 거야.
“인간들이 원래 그렇지 뭐. 세계연합도 우리가 없으면 나라가 위험해지니까 굽신거리는 거지, 속으론 딴 마음을 품고 있을 걸? 저번엔 박사님한테 돈을 쥐어줄 테니 자기나라를 우선적으로 봐달라는 이사회의 사람도 한 명 있었어.”
“.... 정말?”
“정말이야. 그때 얼마나 화가 나던지... 네가 저번에 박사님에게 했던 말처럼 탐색기를 회수하고 싶더라.”
박사는 내게 당부했었다.
세화에게 절대 이런 이야기를 하지 말라고.
하지만 내가 왜 그래야 하는가?
세화의 마음속에 자리한 악의를 더욱 키워줄 수 있는데.
“그건 그냥 실수로... 말한 건데... 박사님이 저번에 그러셨잖아. 세상엔 그런 사람들보다 좋은 사람들이 더 많다고.”
“내 생각은 달라. 대부분 착한 척을 하는 거야. 위선적이고 기회주의적인 놈들... 그런 놈들이 더 위험해. 만약 그놈들이 본심을 드러내는 것을 보면, 대놓고 널 비난했던 놈들은 양반이라고 느껴질 걸?”
“그래...?”
“인터넷엔 널 희롱하는 댓글들도 많아. 그런 놈들이 사회에 나가선 정상처럼 굴겠지.”
세화가 저도 모르게 이를 간다.
눈빛이 매서워지면서 격한 콧바람을 내뿜는다.
더 분노해. 살심을 품어. 인간들은 다 믿을 수 없는 새끼들이야.
“박사님도 네가 변신하는 걸 당연하게 생각하고 계셔. 보통 사명감으론 할 수 없는 일인데... 그걸 알아주지 않으니 화가 나. 요즘 박사님이 네게 고마워한 적이 있던가? 오히려 널 꾸중하기만 했잖아.”
“.... 응.”
“가깝다고 할 수 있는 박사님마저도 그러는데, 세상 사람들은 어떻겠어? 진짜 네게 고마워하는 사람들은 극소수야.”
세화의 얼굴이 슬퍼진다.
곧 눈물을 터뜨릴 것 같은 얼굴.
난 그녀의 입술에 입을 한 차례 맞춰주었다.
그리고는 말했다.
“네가 마땅히 받아야할 찬사도 듣지 못하니까 열 받아.”
“지혁아... 네가... 네가 말해주잖아. 고맙다고, 사랑한다고... 난 그거면 돼... 그러면 엄청 힘이 나.”
“언제든지 말해줄 수 있어.”
“그럼 말해줘... 나 지금 힘들어...”
“고맙고 사랑해.”
그 말에 적극적으로 내게 입을 맞춰오는 세화.
그런 그녀의 키스를 받아주던 나는 속으로 대소를 터뜨릴 수밖에 없었다.
**
세화의 마음을 크게 흔드는데 성공한 다음 날, 나는 세화를 집에서 쉬도록 하고 연구실에 들렀다.
“박사님.”
“왜 왔어? 푹 쉬라니까... 손에 든 건 뭐야?”
“좋은 자양강장제가 있길래 사왔어요.”
박사가 인자한 웃음으로 고맙다는 대답을 대신하고는 내가 놓아둔 박스를 열었다.
자양강장제 하나를 원샷한 그녀가 크... 하는 소리를 냈다.
“맛은 쓰네.”
“몸에 좋은 약이 쓰다잖아요.”
“고마워. 그런데... 그만 두려고 찾아온 건 아니겠지?”
“그럴 생각 없다니까요. 그냥... 어제 정색한 일에 대해서 사과를 드리려고 왔어요.”
“옳은 말만 했는데 사과는 무슨. 미안해야할 사람은 오히려 나야.”
“그렇게 말씀해주시니까 조금 어색하네요. 박사님은 도도한 게 어울려요. 아, 보여드리고 싶은 게 있습니다.”
내가 상황판 앞에 앉아 USB를 꼽고, 이동식 드라이브에 있는 동영상을 띄웠다.
그 안엔 내가 유리아를 차로 안내하는 영상이 있었다.
송지혁이 아니라 김태곤 말이다.
박사가 흥미로운 눈으로 묻는다.
“누구야?”
“김태곤 씨에요. 제 사업 파트너. 감시카메라를 해킹하면서 행적을 조사하다가 옆에 있는 사람을 발견했어요. 신상을 캐보니 이민자였고, 이름은 유리아 엘레나르. 나이는 스물하나. 하는 일은 없고 김태곤 씨한테 돈을 받으면서 생활하는 중이에요.”
“그래? 엄청 예쁘게 생긴 아가씨네.”
“김태곤 씨가 말했던 그 지인인 것 같아요. 처음엔 숨겨둔 딸인가 했는데, 1년 정도 전에 갑작스레 이민자로 등록됐더라고요. 그 전 정보는 찾을 수도 없었어요. 서류엔 스웨덴 출신이라고 적혀져 있는데... 그쪽 데이터베이스를 다 뒤져봤지만 정보가 없었어요.”
“음... 확실히 수상하네.”
“그렇죠? 착한 쪽인지 나쁜 쪽인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나쁜 쪽이었다면...”
“나쁜 쪽이었다면 진작 김태곤을 이용해서 뭘 하려고 했겠지. 아니다... 지금 김태곤한테 작업을 치는 중일 수도 있겠네. 어떻게 생각해?”
“저도 모릅니다. 조심히 접근해서 알아볼까요?”
“할 수 있어?”
당연하지. 할 수 있고말고.
내가 북 치고 장구 치고 다 할 테니까 넌 디바이스 개발이나 계속 하고 있으려무나.
자리에서 일어난 내가 의욕적으로 말했다.
“김태곤 씨에게 넌지시 이야기를 꺼내보죠.”
“급하게 움직이지는 마. 일단 머리를 조금 식힌 후에 접근해도 늦지 않다고 생각해. 신중에 신중을 거듭해야 돼.”
“박사님 말씀대로 할게요. 그... 디바이스는 잘 개발되어가고 있어요?”
“조만간 좋은 소식이 있을 것 같아.”
그렇다면 마르셀라도 내게 좋은 소식을 들고 오겠군.
고개를 끄덕인 내가 생긋 웃었다.
이후 태도를 바꿔 우물쭈물해하며 박사에게 감사를 표했다.
“그... 고맙습니다. 전부 다요.”
“나야말로 고맙지. 네가 아니었다면 나 혼자 엄청 힘들었을 거야. 널 믿고 있어.”
“저도 박사님을 믿어요.”
그리 말한 나는 박사에게 걸어가 어제처럼 그녀를 꽉 안았다.
그녀의 등 윗부분을 두드려주던 내가 말했다.
“앞으로도 잘해 봐요.”
박사는 이런 내가 거북한지 헛기침을 했다.
하지만 이내 적응하고는 내 등허리를 툭툭 쳤다.
그래, 내가 힘들어하고 있으니까 이 정도는 해줄 수 있잖아. 그치?
오랜 시간 박사와 포옹한 내가 그녀를 놓아주었다.
“이만 돌아가 보겠습니다.”
“그래... 조심히 들어가.”
“네.”
연구실을 나온 내가 휘파람을 불었다.
계획이 너무 순탄해서 탈이구나.
오늘따라 날씨가 더럽게 좋다.
세화가 짜장면을 먹고 싶어 하던데... 돌아가면서 포장해야겠다.
다음화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