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40 배덕의 끝은 음문
요식업 프랜차이즈 본사.
“사장님, 이세화 님께서 도착하셨습니다.”
사장실 소파에서 휘파람을 불고 있던 난, 문밖에서 최아람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큰 목소리로 말했다.
“들어와요.”
문이 열리며 하늘하늘한 치마를 살랑거리는 세화가 들어온다.
그녀는 입구에서 상체를 45도 각도로 숙이고 있는 아람을 흘긋거리더니, 만면에 환한 미소를 지으며 내게 다가왔다.
신경을 쓰는구나.
조만간 아람을 세화의 배덕감을 증폭시키는 용도로 이용해먹어야겠다.
머리채를 잡아당기게 해봐? 아니면 유승현 때처럼 뺨을 올려치도록 만들어볼까?
후자가 좋겠군.
세화는 검은색 가죽소파에서 차를 마시고 있는 내 옆에 앉았다.
문이 조용히 닫히는 것을 본 그녀가 내게 달라붙는다.
와이셔츠 카라와 넥타이를 슬쩍 만져주는 것이 이 단정한 정장차림이 마음에 드나보다.
그녀의 손을 슬며시 잡아챈 내가 말했다.
“수고했어.”
그에 세화의 얼굴이 시무룩해진다.
시험은 완벽하게 조졌구나.
“망했어...”
“1학년이 다 그런 거지. 너무 상심하지는 마.”
기말고사가 끝나는 마지막 날이 오늘이다.
이것으로 1학기는 종강.
세화는 계절학기나 보강을 하지 않아 곧바로 긴 휴일을 갖게 됐다.
세화의 앞머리를 정리해준 내가 씨익 웃었다.
“집에 들렀다가 공항으로 가자.”
기말고사가 끝나자마자 여행을 가기로 했으니, 옷가지 몇 벌 챙기고 곧장 제주도로 떠날 생각이었다.
아무도 방해받지 않는, 우리 둘만의 여행.
세화가 함박미소를 짓는다.
“응.”
“아, 그리고 이거 받아.”
난 커피테이블 밑을 뒤적거려 박스를 하나 꺼냈다.
주문제작이 끝난, 유승현이 샀던 것과 똑같은 디자인의 반지였다.
세화가 박스를 열어보더니 반지를 꺼내 살펴보았다.
그리고 반지 안쪽에 새긴 새로운 레터링을 보더니 얼굴을 구겼다.
짧은 영어 문장.
세화가 더듬거리며 그 문장을 읽는다.
“지, 지혁의 노예 세화...?”
“잘 썼지?”
개구쟁이 같은 내 얼굴.
세화가 어안이 벙벙한 눈빛으로 날 바라보더니 한숨을 내쉰다.
“에휴... 네가 그럼 그렇지.”
그러더니 몸을 부르르 떤다.
입꼬리가 살짝 올라가 있는 것이, 이 반지를 낀 채 유승현을 만나는 걸 상상하고 흥분한 모양이다.
내가 말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유승현은 좋아라하겠지.”
“들키면...”
“개과는 단순하잖아. 네가 반지를 빼지 않았다고 기뻐할 걸? 그러면서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어대겠지.”
“.... 그치... 개과는 단순하지.”
내 말에 동의한 세화의 표정엔 색기가 감돌고 있었다.
난 주머니에서 똑같은 반지 하나를 더 꺼냈다.
유승현이 산 물건이었다.
그것을 몇 번 공중에 띄우고 잡고 하던 내가 물었다.
“버릴까? 아니면 갖고 있을래?”
세화가 머뭇거린다. 선택하기가 망설여지는 모양.
난 세화의 손에 반지를 들려주었다.
“보관하고 있다가 나중에 네가 결정해.”
“응...”
“일어나자, 집에 가서 짐 싸야지.”
그에 방금까지 번민하던 표정을 싹 날려버리는 세화.
유승현의 반지를 핸드백에 대충 집어넣은 그녀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의 손을 잡은 내가 문을 나서니, 잘 정리된 책상에 앉아있는 아람이 보인다.
그곳에서 눈에 띄는 서류 하나를 집어 뚫어지게 보던 내가 세화에게 말했다.
“먼저 엘리베이터 잡고 있을래? 잠깐 결재 좀 하고 갈게. 확인해본다는 걸 깜박하고 있었네.”
“아, 응. 알았어.”
세화가 유리문을 열고 임원 전용 엘리베이터의 버튼을 눌렀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난, 의자에서 일어난 아람이 조곤조곤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해오자 고개를 돌렸다.
“저... 사장님. 그 문서는 이미 결재가 끝났는데...”
“알아요.”
“그럼...”
“스타킹 올 나갔다고 알려주려고요.”
“네? 아...”
아람이 깜짝 놀라 자신의 종아리 부근을 확인해보았다.
확실히 한쪽 스타킹의 올이 아주 살짝 나가있었다.
자세히 보지 않으면 찾아내기 힘들 정도로.
신기하지? 내가 어떻게 봤는지.
“오전에 결재서류 가지고 왔을 때 봤어요. 긴가 민가 했는데 자세히 보니까 나갔더라고.”
“가, 감사합니다.”
다리를 감상했다고 돌려 말했는데, 반응이 나쁘지 않다.
밉보이기 싫어서 억지로 대답하는 것도 아니고.
방긋 미소를 지은 난 서류를 내려놓았다.
“내일 휴무죠? 오늘은 차가 많이 막힐 예정이라고 하니까 정시 두 시간 전에 퇴근해요.”
“네... 감사합니다.”
꾸벅 인사하는 아람을 뒤로한 채 유리문을 연 내가 세화에게 손을 흔들었다.
**
보슬비가 내리면서 흙냄새가 올라오기 시작하는 제주도.
그곳의 바람을 온 몸으로 느낀 세화는 기지개를 폈다.
아! 하는 감탄사를 내뱉은 세화가 내게 다가와 말했다.
“진짜 좋다. 제주도는 엄청 오랜만에 와봐.”
“언제 와봤는데?”
“고등학교 1학년 때 수학여행으로. 넌... 거의 1년 다 돼가겠네.”
세화의 얼굴이 침울해졌다.
내가 강화도에서 부모님 유골을 제주도 바다에 뿌렸다고 말한 것을 기억하고 있구나.
난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세화의 어깨에 팔을 둘렀다.
그러자 세화가 자신의 가슴팍에 내려온 내 손을 잡는다.
“예약한 렌터카나 찾으러 가자.”
“응. 내가 운전해 봐도 돼?”
면허가 나와서 도전정신을 불태우고 있구만.
나중에 비싸고 안전한 걸로 사줄 테니까 지금은 참아라 세화야.
“1년 안 돼서 운전자 등록도 못할 걸? 새벽에 차 없을 때 몰래 간단하게 해보던지 하자.”
“알았어.”
우린 렌터카 셔틀을 타고 업체로 움직였다.
거기서 예약을 해둔, 승차감이 좋은 고급 세단을 빌리고 남쪽으로 움직였다.
내가 예약한 호텔은 제주도에서 가장 유명한 5성급 호텔.
1박 가격이 어마어마한 곳이었다.
발렛을 맡긴 우리는 곧 로비에 들어섰다.
문을 열어준 도어맨의 90도 인사를 어색하게 받아준 세화는, 로비 안의 화려한 인테리어에 눈을 이리저리 굴렸다.
생전 처음 보는 장식물들을 보니 신기한 모양이다.
데스크 직원의 안내에 따라 스위트룸으로 이동한 우리.
난 캐리어를 들어준 벨보이에게 팁을 무척 많이 줬다.
벨보이의 얼굴이 함지박 만하게 벌어지면서, 군기가 바짝 든 자세로 우리에게 인사를 했다.
그가 방문을 닫자마자, 태연한 척을 하고 있던 세화가 나를 나무란다.
“무슨 팁을 그렇게 많이 줘?”
“오늘은 기분이 좋거든. 넌 안 그래?”
싱글벙글 웃으며 그리 말하니, 세화가 금세 표정을 바꿔 쑥쓰러워한다.
“나도 좋긴 한데...”
“잠깐 쉬었다가 늦은 저녁 먹으러 가자.”
난 거실에 마련된 소파에 엉덩이를 붙여 얼굴을 뒤로 꺾었다.
세화는 그런 내 하반신에 다리를 올렸고, 신발을 벗어 내 고간에 발을 가져갔다.
벌써 시작하자는 거야? 저녁 먹자니까?
자연스레 하반신에 반응이 온다.
바지 위로 불룩 솟은 내 고간을 양발바닥으로 잡은 세화는 휴대폰을 들어 사진을 찍었다.
트윙클이라도 하려는 모양.
뭐... 학교 다니느라, 마물들 처리하느라 바빠서 뭐 하나 제대로 못했으니 마음껏 해라.
휴대폰을 빠른 속도로 두드린 세화가 내게 화면을 보여주었다.
“어때?”
[지친 주인님을 위한 마사지♡]
[팔로워 여러분들, 오늘 기대하세요!]
세화의 포스트를 보던 내가 피식했다.
저번에 유승현의 따귀를 때린 이후로 봉인이 풀린 느낌이구나.
근데 오늘 기대하라니... 동영상이라도 찍으려나 싶다.
“잘 썼네.”
“오늘 동영상 올릴래.”
진짜였네? 그럼 뒤치기 할 때 찍을까?
태연하게 고개만 끄덕이는 나.
세화가 묘한 미소를 짓더니 내 팔을 잡아당긴다.
침대로 가자는 뜻이구나.
“조금만 있다가 저녁 먹자니까.”
“그럼 손으로 해줄까?”
“오늘따라 왜 이렇게 텐션이 높아?”
“여행 와서 좋으니까 그렇지... 그리고 너 운전 오래해서 피곤하잖아. 기분이라도 좋아지게 해주려구...”
거 참 극진하네.
난 끄응 하는 소리와 함께 자리에서 일어났다.
세화를 데리고 침대에 가 누운 나는, 그녀를 꽉 안아주었다.
은은한 체리향 샴푸냄새가 풍겨오는 세화의 머리카락.
땀 냄새가 전혀 나지 않아 기분이 좋다.
언제 봐도, 언제 느껴도 완벽한 여자다.
“잠깐 이렇게 있다가, 내려가기 전에 짧게 한 번 하자.”
세화는 이런 애정표현에 들떴는지, 내 가슴팍에 있던 얼굴을 낑낑거리며 빼내 나와 눈을 맞췄다.
그렇게 한참 서로를 바라보던 우리.
세화의 말문이 열렸다.
“지혁아.”
“응?”
“박사님이 새 디바이스를 만들어내시면... 내 동료가 한 명 생기는 거지?”
그럼, 물론이지.
유리아라는 드센 기집년과 한솥밥을 먹게 될 거다.
하지만 너무 걱정은 하지 마.
내가 잘 조교시켜서 네 앞을 기게 만들어줄 테니까.
“그렇게 되는 거지. 왜?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친구가 생길 예정이라 좋아?”
“어떻게 알았어?”
“표정에 다 나오잖아.”
살포시 웃음을 짓는 세화.
마음을 제대로 알아주니 감동했음이 분명하다.
“오래 걸릴 것 같아?”
“일단 만드는데도 시간이 꽤 걸린다고 하셨고, 적합자를 찾는 것도 힘들 거야. 세상엔 너 같은 정의감을 가진 사람이 별로 없거든.”
“빨리 찾았으면 좋겠다... 근데 새로 만든 디바이스도 그... 나랑 똑같을까?”
아이테르를 말함이었다.
“아이테르의 특성은 다르지 않으니까... 아마 그렇겠지.”
“그럼... 남자친구가 있는 사람이어야 하겠네? 결혼했거나...”
“이 좋은 날에 그런 걸 고민해서 뭐에 쓸래? 박사님이 그랬잖아. 연구실에서 나가면, 게이트가 없으면 이세화의 삶을 살아가라고.”
“응...”
세화가 눈꺼풀을 조금 내렸다.
슬슬 하고 싶나보군.
짧게 쏟아내고 저녁 먹으러 가야겠다.
라고 내가 생각한 내가 세화의 입술에 키스를 하려던 찰나, 그녀가 손에 쥐고 있던 휴대폰이 울렸다.
그때, 눈을 꿈틀한 세화가 팔을 들었다.
누구인지 모를 방해꾼이 전화를 걸어 욱한 것이다.
휴대폰을 집어 던지려던 그녀는, 그게 내가 사준 것임을 자각하고는 이빨을 악 물고 팔을 내렸다.
“스트레스를 덜 받는다더니 그게 아닌가보네. 그렇게 해서 화가 풀린다면 던져도 돼. 휴대폰이야 새로 사면 그만이니까.”
“절대 안 던져...”
세화는 통화종료버튼을 터치했다.
그러고 보니 차단당한 유승현의 소식이 궁금하다.
“유승현은? 차단한 이후로 연락 없어? 모르는 번호로도?”
“없어.”
“진심으로 반성하는 건지, 널 이만 놓아주려는 건지 모르겠네.”
“걔가? 나를?”
세화가 돌연 깔깔거렸다.
웃음소리에서 색기가 느껴질 정도라, 죽었던 내 자지가 순식간에 다시 솟구친다.
좌우로 고개를 꺾은 내가 세화의 위에 올라타자, 한참 즐거워하던 그녀가 손을 내려 내 자지를 덥석 움켜쥐었다.
그러더니 다른 한손으로 내 바지의 단추를 풀어주며 말한다.
“승현이는 날 절대 못 떠나.”
슬슬 날 흥분시키려고 시동을 거는구만.
받아줘서 매도에 취미를 더욱 붙이도록 해보자.
“하긴, 경비견이 주인을 끝까지 모셔야지 어쩌겠어.”
“맞아. 내가 무슨 짓을 하든, 걔는 내 옆에 있을 거야.”
“너와 내가 바람피우고 있는 걸 알아도?”
“응. 지금 당장 이 룸으로 들이닥쳐도 지가 못한 거라며 반성하면 했지, 나한텐 잘못이 없다고 할 남자야.”
세화의 눈이 시뻘겋게 빛나는 것 같다.
마치 음마처럼 말이다.
절로 침이 삼켜진다.
입으로 손을 가져가 하관을 한 차례 쓱 닦으니, 세화가 나를 더 자극한다.
“지금쯤 속으로 죄송하다고 싹싹 빌면서 일하고 있을 걸? 그날 무슨 말을 했는지도 모르는 주제에.”
심장이 불쾌하게 뛰고, 뇌에서 도파민이 분비돼 내 전신으로 퍼진다.
이 기분이 너무나도 좋다.
내가 눈을 부릅뜨고만 있자, 세화가 고개를 갸웃한다.
왜 아직까지 가만히 있지? 라고 물어보는 것 같다.
난 아직 모자라. 더 해봐.
그녀는 내 숨결이 뜨거워진 것을 확인하고는 알 만하다는 듯 입꼬리를 양옆으로 찢었다.
“지금까지 나랑 하려고 하지도 않더라. 순진해빠져선...”
“.....”
“난 매일 밤마다 너한테 다리를 벌리고 있는데.”
완전히 달라진 네 모습이 정말 보기 좋다.
내 자지를 위해, 쾌락을 위해 남자친구를 매도하는 네가, 그 상냥했던 이세화라고 할 수 있을까?
하지만 아직 멀었다. 넌 더 떨어져야 해.
난 상체를 일으켜 상의를 벗어던졌고, 다시 팔을 침대에 짚어 세화를 내려다보았다.
세화의 눈썹이 구겨진다.
아직도 내가 가만히 있으니 성질이 난 모양이다.
다리를 벌리고 치마를 내린 그녀가 내 엉덩이에 두 손을 올려 힘을 준다.
어서 빨리 넣으라는 재촉. 그러나 내 몸은 꿈쩍도 하지 않는다.
아랫입술을 잘근 씹은 세화가 고개를 돌려 내 팔을 봤다.
쭉 뻗어나가다가 두세 갈래로 갈라진 내 핏대를 보고 얼굴이 붉게 물든다.
다시금 나에게 시선을 돌린 그녀가 굳은 결심을 한 눈으로 휴대폰을 든다.
잠시 화면을 조작하던 그녀는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는 스피커폰으로 돌려놓은 뒤 휴대폰을 뒤집어 머리맡에 내려놓았다.
짧은 연결음이 들리고, 내 귀에 낯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보세요. 세화야.
풀이 잔뜩 죽은 유승현의 목소리.
놀란 내가 눈을 동그랗게 뜨자, 세화가 한 차례 웃음을 짓더니 졸린 투로 말한다.
“잘 지내지?”
유승현에게 안부를 묻는 세화의 시선은 날 향해있었다.
네가 안 넣고 배기겠냐는 표정.
이러는데 어떻게 참냐고.
제대로 해줄 테니까 나중에 후회하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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