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법소녀물 야겜 속 최종보스가 되었다-35화 (35/471)

EP.35 세화는 유승현이 창피하다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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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화는 꼭지가 돌아버리기 직전이었다.

거하게 취한 유승현이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했기 때문.

그뿐 만이라면 이렇지 않겠는데, 그를 부축해주고 있는 자신에게 무게를 실으니 문제였다.

“아... 진짜...”

그녀는 낑낑대면서 정신을 제대로 붙잡지 못하고 있는 유승현을 데리고 골드퍼퓸 호텔로 움직였다.

한국대와 골드퍼퓸 호텔은 꽤나 가깝다.

걸어서 가기에도 무리가 없는 거리.

하지만 거대한 돼지 한 마리를 옮기고 있던 세화는, 그 거리가 마라톤 거리보다 길게 느껴졌다.

레오나로 변신해서 호텔 창문을 깨뜨린 다음 거기 던져놓을까 진지하게 고민했을 정도.

“으음... 세화야...”

철없이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승현.

세화는 어이가 없었다.

오랜만에 나왔다고 술만 벌컥벌컥 들이켜는, 스스로를 컨트롤하지 못하는 남자친구에게 성질이 났다.

가장 화가 나는 부분은 승현이 자기의 일 이야기만 했다는 점이다.

승현이 자신을 오랜만에 만난 것처럼, 자신도 승현을 오랜만에 만났다.

그럼에도 승현은 여자친구에 대한 배려는커녕, 자기가 얼마나 일을 잘했는지 마치 랩을 하듯 떠벌렸다.

학생회 선배에게 큰 소리로 자신을 잘 부탁했다고 말한 것도 화가 났다.

지가 뭔데 초면인 사람에게 그런 말을 하는지... 커플링을 받은 직후 그랬을 땐 창피해서 쥐구멍에라도 숨어들어가고 싶었었다.

세화는 옆에서 옛날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는 승현을 보고 아랫입술을 꽉 깨물었다.

자신을 봐서 신이 난 건 이해하지만 어쩜 이렇게나 철이 없는지... 예전에는 믿음직스러웠는데.

그녀는 지혁이 보고 싶었다.

얌전한 주사를 가지고 있는 그가, 세화 자신이 먼저 취할 때면 번쩍 안아들고 침대로 데려가 사랑스런 손길로 몸을 쓰다듬어주는 그가 눈앞에 아른거렸다.

이마에 키스를 해주면서 고급 원단으로 제작된 이불을 덮어주는 지혁이 간절하게 보고 싶다.

그에게 어리광을 부리고 싶다.

그런 생각을 하며 잘 떨어지지 않는 발을 열심히 놀리는 찰나, 승현이 비틀댔다.

“으아아...”

무게가 훅 옆으로 쏠린 세화는, 안간힘을 쓰며 승현이 넘어지지 않도록 팔을 잡아당겼다.

헉헉대며 벽에 유승현을 기대도록 한 세화는, 그녀 자신도 벽에 등을 기댔다.

그리고는 목구멍 깊숙한 곳에서부터 올라오는 짜증을 감탄사 하나로 표현했다.

“아...!”

목소리가 다소 컸기에 주목을 받았다.

몇몇 사람들이 안타까워하는 얼굴로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다.

그런 사람들을 보면서, 세화는 문득 이러한 생각이 들었다.

왜 손을 빌려주지 않는 걸까? 나와 지혁, 그리고 캐시 박사님은 이들을 위해 열심히 고생하고 있는데,

곤경에 처할 수 있는 이들을 아무런 대가도 없이 도와주고 있는데,

우리가 없었다면 너희들은 이렇게 편히 거리를 돌아다닐 수도 없었을 텐데.

‘아냐... 세화야, 정신 차려.’

치밀어 오르는 화를 가라앉힌 세화는 자신의 뺨을 제법 강하게 쳤다.

이런 생각을 해선 안 된다. 올곧은 마음씨의 레오나가 그래서야 되겠는가?

마음을 다잡은 세화가 다시 승현을 데리고 가기 위해 그의 팔을 어깨에 두르는 순간,

“음냐... 세화야... 레오나로 변신해줘... 보고 싶어...”

승현이 이렇게 중얼거렸다.

정신이 번쩍 든 세화는, 자신도 모르게 승현의 뺨을 갈겼다.

짜악!

경쾌한 소리와 함께 승현의 고개가 홱! 돌아가고,

“억...!”

순간 정신이 돌아온 승현이 당황한 표정으로 세화를 바라보았다.

세화의 입에선 지금까지 절대 하지 않았던 욕설이 튀어나왔다.

“야! 이 미친 새끼야!”

거리가 떠나가라 소리친 그녀.

후끈거려오는 뺨에 손을 올린 승현이 눈을 크게 떴다.

“세... 세화야... 왜 그래...?”

왜 그러냐니... 지금 자기가 한 말도 기억하지 못하는 건가?

인사불성이 될 때까치 처먹는 걸 말렸어야 하는 건데...

주먹을 꽉 쥐고 부들부들 떨던 세화가 승현을 쏘아붙였다.

“이제 술 좀 깼냐? 이 멍청한 놈아?”

“어...? 응... 아마도...”

승현의 대답에 씩씩대던 세화가 심호흡을 여러 번 했다.

그러고선 통보했다.

“이제 혼자 가.”

“내, 내가 무슨 실수를 했나보다. 미안...”

“네가 뭘 잘못했는지 알고 미안하대? 그냥 가라고. 가! 가서 처자라고!”

“알았어... 깨어나면 연락할게.”

놀라 자빠지기 일보직전이었던 승현이 세화에게서 뒷걸음질 치다 조금 튀어나온 보도블럭에 걸려 넘어졌다.

볼썽사납게 엉덩방아를 찧는 그.

어떻게든 일어나려고 해보지만, 술이 덜 깼는지 비틀거리다가 다시 바닥에 넘어진다.

세화가 이마에 손을 짚고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진짜 짜증나...”

그때였다.

위이잉 하는 사이렌소리가 울리더니, 경찰차 한 대가 근처에 섰다.

거기에서 나온 중년 경찰관이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다가와 묻는다.

“도와드릴까요?”

세화는 그 경찰관이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로 보였다.

아... 역시 아직 사회는 살아있구나.

민중의 지팡이가 있어.

“네... 제발 도와주세요...”

간절한 말투로 그리 말하니, 경찰관이 고개를 끄덕이며 유승현을 부축한다.

그 모습을 본 세화가 말을 이었다.

“골드퍼퓸 호텔까지만 부탁드릴게요...”

“예, 알겠습니다.”

“정말... 정말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그쪽 분도 같이 사시는 건가요?”

“아니에요. 전 근처 오피스텔에 살아요. 이만 돌아가 보겠습니다. 정말 감사드려요.”

상체를 꾸벅 숙여 배꼽인사를 한 세화는, 승현을 잠시 웬수를 보듯 바라본 뒤 몸을 돌렸다.

짐덩이를 보내고 오피스텔로 가던 그녀의 눈에서 돌연 눈물이 터져 나왔다.

먹먹하기도 하고, 서럽기도 하고, 폭력을 쓴 자신에게 화가 났기도 하고, 승현에게 짜증도 나고, 지혁이 보고 싶기도 한... 여러 감정이 뒤섞여있는 눈물.

왼손으로 눈가를 닦으며 열심히 발을 놀리던 그녀는, 약지에서 딱딱한 느낌이 일자 아차 했다.

‘지혁이가 이거 보면 화낼 텐데...’

세화는 약지에서 반지를 빼내려 했다.

하지만 승현이 균형을 잃었을 때 그를 도와주면서 벽에 손을 찧었는지, 손가락이 부어있어 빠지지 않았다.

자그마한 상처도 나있는 상태였기에 너무 아팠다.

그래도 어떻게든 낑낑대며 반지를 돌려대고 있는데, 뒤에서 낮고 굵은 음색이 들려왔다.

“세화야, 뭐해?”

그렇게나 듣고 싶었던 목소리, 보고 싶어 마지않던 지혁이었다.

당장 몸을 돌려 그에게 안기고 싶었던 세화였지만, 반지를 본 지혁이 성을 낼까 두려워 그를 등진 상태로 가만히 있었다.

하지만 울음이 터져 나오는 건 막을 수 없었다.

“흐어어엉...!”

고개를 숙인 채 어깨를 들썩이며 펑펑 울어재끼던 세화는, 뒤에서 다가온 지혁이 자신을 부드럽게 안자 결국 그에게로 몸을 돌렸다.

그렇게 세화는 지혁의 가슴팍에서 한참동안 대성통곡을 터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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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을 적신 손가락을 세화의 예쁜 코에 가져다댄 내가 말했다.

“킁해. 킁.”

크으응! 소리를 내며 코를 푼 그녀.

내 손에 찐득한 콧물이 눌러 붙었다.

난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그저 묵묵히 손을 씻고 다시 세화의 코를 풀어줄 뿐.

세화는 이번엔 코를 길게 풀다 콜록거렸다.

얼씨구... 기침까지 하니 웃음을 참기가 힘들다.

결국 난 피식했고, 세화는 그런 날 쏘아보며 울먹였다.

난 깨끗한 다른 손으로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세화의 코를 다 풀어주고 부드러운 수건으로 얼굴을 닦아준 난, 이어서 자잘한 상처가 난 그녀의 손을 씻겼다.

“아악!”

비명을 내지르며 손을 뒤로 빼는 그녀.

그냥 물만 묻혔는데도 엄살을 피우다니... 거 참...

내가 인자한 얼굴을 하며 수압을 약하게 조절하자, 세화가 입을 삐죽 내밀더니 손에 힘을 뺀다.

그 뒤 새 수건을 꺼내 손을 닦아주려 하는데, 세화가 작은 목소리로 말한다.

“휴지로... 휴지로 닦아줘... 수건 따가워...”

“휴지로 닦으면 더 아파. 물 때문에 찢어져 조각들도 군데군데 묻을 거고.”

“.....”

“살살 닦을게.”

“응...”

내게 손을 잡힌 채 고개를 한 차례 주억거리는 모습이 영락없는 꼬맹이다.

난 그녀의 손을 아주 살살 닦아주었다.

중간에 고통이 느껴졌는지 세화가 얼굴을 찡그렸으나, 장하게도 참아냈다.

세화를 데리고 거실로 간 나는, 그녀를 식탁에 앉힌 채 의약품 상자를 갖고 왔다.

거기서 연고를 꺼내 쪼그려 앉은 세화를 올려다보았다.

세화의 얼굴은 완전히 부어올라있었다.

15분간 신나게 울어댔으니 그럴 수밖에.

그녀를 만난 건 순전히 우연.

강남 여기저기를 싸돌아다니다가 이쯤이면 됐겠다 싶어 돌아와 연락을 하려 했는데, 오피스텔 입구에서 반지를 빼고 있던 세화를 발견했다.

‘일이 너무 심각하게 흘러갔나보다.’

구슬피 우는 세화를 보고 어찌나 마음이 아려오던지.

딱 봐도 유승현이 실수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유승현 이 새끼, 평생 가둬두고 군만두만 줘야겠다.

“약 바르고 밴드 감을 때까지 참을 수 있지?”

“.... 응.”

“착하다. 나중에 연구실 가면 의료기기에서 치료하자.”

세화의 세 손가락에 연고를 바르고 밴드까지 감아준 난, 콧물과 침, 눈물의 삼위일체로 범벅되어 있는 와이셔츠를 벗었다.

이후 세화를 안아들고 침대에 눕힌 뒤, 바지를 대충 벗어던지고 그녀의 옆에 누웠다.

그러자 세화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한다.

“이불에 음식 냄새 배는데...”

“상관없어.”

“화 안 내...?”

약지에 끼운 반지 때문에 화가 나지 않느냐고 묻는 것이었다.

화나긴 하는데, 오늘은 드넓은 아량으로 널 품어줘야 하는 날이야.

난 너그러운 미소를 지었다.

“안 내. 미안해, 세화야.”

세화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는다.

사과를 들으니 혼란스러운 모양이다.

“왜...?”

“축제에 가지 말라고 할 걸, 괜히 보냈다 싶어.”

“.....”

또 운다. 울보네, 울보.

손으로 눈가를 닦아주니, 세화가 훌쩍이다가 탐스런 입술을 연다.

“나 씻을래...”

“연고까지 발랐는데?”

“손만 빼고.”

“한손으로 샤워하게?”

“.....”

표독스러워진 세화의 표정. 눈빛으로 사람을 죽일 것만 같다.

아, 씻겨달라는 소리였구나. 이제야 이해가 되네.

오늘따라 어리광이 폭발한다.

그래, 침대에 유승현 냄새도 안 배고 좋지 뭐.

자리에서 일어난 내가 세화를 번쩍 안아들었다.

오늘의 세화는 한 살배기 아기 같았다.

그냥 가만히, 손가락 하나 꼼짝하지 않고 내 손길에 몸을 맡긴 채로 시중을 받았다.

영광인줄 알아라. 마왕이 씻겨줬으니까.

세화의 온몸을 꼼꼼하게 닦아주고 다시 함께 누운 난, 그녀에게 오늘 있었던 모든 일을 들었다.

“그래서... 경찰관님이 도와주셔서... 여기 왔어.”

“그랬구나.”

이야기를 다 들은 내가 포근한 미소를 지었다.

그나저나 유승현의 싸다구를 올려쳤단 말이야? 이거 장하네.

게다가 미친 새끼라니... 욕 한 번 하지 않던 세화의 입에서 나온 말이라고는 충격적이었다.

도와주지 않는 사람들에게 욱한 것도 놀라웠다.

나에게는 좋은 일이었지만.

“진짜 보고 싶었어.”

“나도 너 보고 싶어서 빨리 온 거야. 근데... 유승현 그 새끼... 입이 좀 싸네.”

“.... 내말이.”

공감을 해버린다고?

아예 정나미가 뚝 떨어져버렸구나.

이야... 굳건한 마음씨를 가진 세화에게 이러기도 쉽지 않은데.

“지혁아.”

“응?”

“나 머리가 너무 복잡해.”

유승현과 나 때문에? 아니면 오늘 사용했던 욕과 폭력 때문에?

‘둘 다겠지.’

난 말없이 그녀를 꽉 안았다.

그러자 세화가 내 가슴팍에 얼굴을 묻는다.

“고생 많았어. 당분간은 푹 쉬자.”

세화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입을 살짝 벌려 내 가슴에 대고 바람을 불어댈 뿐.

또 밴드 아래에 있는 반지를 몰래 빼내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내 복부에서 네 손이 꼼지락거리고 있는 게 느껴지는데, 차라리 대놓고 하지...

“그만.”

내가 엄한 말투로 그리 말하자, 그제야 세화가 손을 멈춘다.

우웅-!

그와 동시에 탁상 위에서 울리는 세화의 휴대폰.

대충 술이 깬 유승현이 틀림없다.

내가 세화에게 휴대폰을 가져다주려 몸을 움직이자, 그녀가 상체를 벌떡 일으키고는 휴대폰을 집었다.

발신자를 본 그녀는 얼굴을 있는 대로 구기더니, 휴대폰을 아주 강하게 벽으로 던져버렸다.

콰직! 하는 소리와 함께 바닥에 떨어진 세화의 낡은 휴대폰.

진동은 더 이상 울려대지 않았다.

아예 망가져버린 것 같다.

그녀는 한쪽 귀퉁이가 움푹 들어간 휴대폰을 잠시간 빤히 바라보더니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재수 없게...”

그리고는 다시 내 품으로 쏙 들어와 새근새근 숨소리를 냈다.

난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세화를 안아주었다.

속으론 거듭 쾌재를 부르고 있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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