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31 필살기를 습득한 레오나
대한민국은 암두시아스와 악토아의 습격을 받은 직후, 가장 먼저 대피소를 늘린 나라였다.
전국에 어마어마하게 많은 지하방공호를 설치했고, 모든 건물에 방공호 설치를 의무로 지정했다.
지구방위조약이 맺어진 이후 생긴 비상상황 시 행동강령 또한 전 국민에게 돌렸다.
그리고 한국의 노력은 지금 그 성과를 보이고 있었다.
삐빅! 삐빅!
[이블리언 에너지가 탐지되었습니다. 대전 시민 여러분들께서는 속히 방공호로 대피해주시길 바랍니다. 이블리언 에너지가 탐지되었습니다. 대전 시민 여러분들께서는……]
하늘을 쩌렁쩌렁 울려대는 긴급재난방송.
사람들은 당황해하면서도 일사불란하게 대전 곳곳에 마련된 방공호로 몰려갔다.
거리가 비워지는 시간은 그야말로 순식간.
건물에 있던 사람들마저 긴급 엘리베이터로 빠르게 내려갔다.
성숙한 시민의식이 이뤄낸 결과였다.
그리고 나는 캐시 박사와 전투기를 탄 채로, 내 귀여운 마물 게이트의 주변을 선회하고 있었다.
우리의 주변으론 대한민국의 공군 전투기가 수십 대 출격해 뒤를 받쳐주고 있는 상태.
조약에 따라 모든 국가의 국방부와 신속한 방위체계를 갖추고 있었기에 일어난 일이었다.
그들에 대한 명령권은 기본적으론 캐시 박사가 가지고 있었지만, 유사시엔 지휘관에게 넘어가도록 되어 있었다.
“이블리언 게이지가 42퍼센트에서 멈춰있어요.”
“더 오를 기미는 안 보이지?”
“네. 근데 저 아가리 주변에 거뭇한 연기가 피어오르는 장면을 보니 곧 열릴 것 같은데요.”
모니터를 바라보던 내 침착한 말이 끝나자마자,
쩌어억-!
마물 게이트가 수천 개의 이빨을 위아래로 움직여 벌렸다.
그러자 거기서부터 검은 그림자처럼 흐릿하게 생긴 괴물이 수십 마리 출몰했다.
파락스의 수하, 호프 이터였다.
크르르르...!
크기가 3미터 가까이 되는 호프 이터들은 대전 시내에 쿵! 하는 소리와 함께 내려와 흙먼지를 일으켰다.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모습이 인간을 찾고 있는 것 같다.
불쌍한 것들... 쯔쯔... 인간들은 다 대피한지 오랜데.
호프 이터들이 먹잇감을 탐색하고 있을 때, 전투기 위에 자리한 포탈에서 번쩍! 하는 빛이 일어나더니 레오나가 등장했다.
그녀는 하늘색 안광을 넘실넘실 뿜어대며 호프 이터들에게 달려들었고, 그들을 도륙하기 시작했다.
서겅!
크아아아앙!
몸이 이등분된 호프 이터 한 마리가 단말마를 내뱉으며 죽었다.
42%의 게이지는 내가 만든 표로 따지자면 D등급.
인간들의 입장에선 무척 강한 마물임에도, 지금은 너무나도 무기력한 모습을 보이는 중이었다.
하지만 이건 레오나의 힘이 엄청났기에 그리 보이는 것뿐, 호프 이터는 탱크의 장갑 정도는 가뿐히 씹어 먹을 수 있는 존재들이다.
일반 화기들은 당연히 통하지 않았고, 대포마저 궤도를 틀어버리는 갑주를 지닌 놈들.
만약 인간들의 군대만으로 이들을 처리하려 한다면 엄청난 피해를 감수해야 할 것이다.
-스트라이커1, 여기는 팔콘1-1, 제2비행전대 특수임무비행단 팔콘 편대가 작전지역에 도착했습니다. 명령을 내려주십시오.
공군 조종사의 낮고 굵은 목소리가 전투기의 스피커를 타고 들려왔다.
스트라이커1은 박사의 콜사인.
통신 버튼을 누른 캐시 박사의 입에서 변조된 목소리가 나왔다.
“공대지 미사일은 준비된 상태인가요?”
-물론입니다.
“레오나와 가장 먼 곳에 있는 괴물들을 집중적으로 공격하도록 하세요. 지금은 재산피해에 신경 쓸 때가 아니니 가장 강한 화력으로 갈기세요.”
-수신 양호. 알겠습니다. 팔콘 아웃.
통신을 종료한 조종사가 오더를 내리자, 수십 대의 전투기에서 공대지 미사일이 발사됐다.
푸화악!
경쾌한 소리와 함께 순식간에 아래로 내리꽂힌 그 대함용 미사일이 폭발했다.
콰아앙!
지축을 울리는 굉음과 함께 대전 전 지역이 흔들린다.
이쯤 되면 지하 깊숙이 자리한 방공호에 있는 시민들이 걱정될 정도.
미사일 한 발 한 발의 폭발범위가 컸고, 위력도 대단했다.
하지만 죽은 호프 이터들은 단 다섯 마리.
직격당한 녀석들의 몸은 박살이 났지만, 그 외엔 활발했다.
미사일과 적당한 거리를 두고 있던 놈들은 피부에 흠집조차 나지 않았다.
-이 무슨...
팔콘 편대의 지휘관이 당황해하는 그 순간,
써걱! 서거걱!
레오나가 팔을 빠르게 휘두르더니 호프 이터 한 마리를 갈기갈기 찢어버렸다.
-와...
-저게 사람인가...?
-지금 녹화하고 있어?
-찍어도 다시 못 봐. 스트라이커가 전파방해를 하고 있잖아. 닥치고 미사일이나 갈겨. 최대한 직격시키도록 만들고.
나와 박사가 탄 전투기에서 조종사들의 감탄과 대화가 들려온다.
그래, 내 레오나가 얼마나 강한지 똑똑히 봐둬라.
인류의 수호신인 그녀의 칼끝은 언제고 너희들을 향하게 될 테니까.
삐빅! 삐빅!
그때, 호프 이터가 나왔던 게이트 옆에 또 다른 게이트가 생겨났다.
“박사님! 새로운 이블리언 에너지에요!”
“나도 봤어! 게이지는?”
“10퍼센트... 20퍼센트... 30, 40, 55... 74퍼센트입니다. 게이트가 열려요!”
74퍼센트는 앞으로 표준 가이드라인이 될 내 등급표로 따지자면 B등급 범위에 속해있다.
쩌어억!
게이트는 호프 이터를 내보낸 게이트보다 입을 더 크게 벌렸다.
그리고 거기서 나타난 마물은...
-으하하하! 드디어! 드디어 나왔다...! 타이라트 님을 위하여!!-
에란델의 공용어를 쩌렁쩌렁 외쳐대는 소머리의 파락스였다.
인간들에겐 미지의 언어로 들리겠지. 하지만 고지능 생명체인 점은 단박에 알 수 있을 거다.
앞으로 골머리 좀 싸맬 걸?
본래 몸집으로 돌아온 파락스의 크기는 암두시아스보다 작은 10미터 정도.
놈은 나타나자마자 레오나의 견제대상이 되었다.
“하아압!”
마법소녀다운 기합성을 내지른 그녀는, 공기를 뻥뻥 터뜨리며 파락스에게 쇄도했다.
그리고는 두 손으로 검을 잡고 생명체의 급소인 목을 쳤다.
하지만...
카아앙!!
검은 파락스의 피부를 뚫지 못한 채 튕겨나가고 말았다.
‘파락스의 피부는 호프 이터 따위완 비교도 안 되는데...’
-으으음!!-
그래도 아프긴 했나보다. 목을 꺾어대면서 신음을 내는 것을 보니까.
레오나야, 내가 좀 도와줄 테니까 일단 시간만 끌어.
마르셀라와 약점을 만들어놨단 말이야.
파락스가 지하에 꽁꽁 숨어있는 인간들을 찾아 절망을 먹는 것만 막아.
만약 막지 못하면 파락스는 네가 지켜야할 인간들을 수백, 수천 명씩 죽이면서 더욱 강대해질 거야.
나는 귀에다 손을 올려 레오나와 통신했다.
“레오나! 너무 급하게 공격하지 마! 일단 탐색부터 하는 게 먼저야!”
-하지만...
“디바이스 용량도 두 배 이상 늘어났잖아. 남은 변신시간은 대략 8분이니까 아직 여유는 있어. 시선만 끌면서 약점을 찾아봐. 우리도 스캔해서 찾아볼게.”
-아, 알았어.
대답을 마친 레오나는 파락스에게서 살짝 떨어져 대 마물용 소모품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래, 그렇게 원거리에서 시간을 끌란 말이야. 무턱대고 돌진하지 말고.
**
대전 중구는 팔콘 편대와 전투기에서 뿜어져 나온 화력 때문에 싹 밀렸다고 해도 무방한 수준으로 초토화되었다.
멀쩡한 건물이 없을 정도. 그러나 수확은 있었다.
호프 이터들을 모조리 죽이는 데에 성공한 것이다.
“이만 돌아가도록 하세요. 저 덩치 큰 소머리는 우리가 처리할 테니까.”
캐시 박사의 명령에 팔콘 편대가 기다렸다는 듯 물러나기 시작했다.
미사일을 쏴도 작은 생채기 하나 나지 않는 파락스다.
그대로 있다간 뭘 해보지도 못하고 뒈질 것 같았기에, 그들은 박사의 명령이 웬 떡이냐 싶어 재빨리 사라졌다.
그리고 레오나는...
“합!”
터엉!
-크으윽! 이년이...!-
파락스를 밀어붙이고 있었다.
놈의 양쪽 무릎은 뼈가 잘 맞지 않아 덜컥거리고 있었는데, 나와 마르셀라가 놈 몰래 투여한 나노머신 덕분이었다.
놈의 슬개골은 그 나노머신에게 갉아 먹히고 있는 중이었다.
그것을 발견한 척한 나는 레오나에게 오더를 내렸고, 그녀가 착실하게 파락스의 무릎에 충격을 누적시키니 상황은 역전되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파락스를 죽이기는 힘들다.
후반부에 나오는 보스를 초반부에 내보냈으니, 필살기가 없는 레오나로선 파락스를 잠시 무력화시키는 게 최대.
레오나에게 필살기를 습득하도록 해야 하는데, 이에 대한 일은 이미 계획해두었다.
‘자, 마르셀라야... 준비는 됐겠지? 악토아 때처럼 심하게 하면 꼬리를 잘라버릴 줄 알아라.’
딱 몇 시간 정신을 잃을 정도면 된다.
난 모니터를 뚫어지게 주시하고 있는 박사 몰래 마르셀라에게 신호를 보냈다.
그러자 파락스의 초점이 그 누구도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조금 흐려졌다.
놈이 레오나의 공격도 무시한 채로 내가 탄 전투기를 향해 양팔을 뻗는다.
그리고...
푸화악!
열 손가락에서 검은 마력을 내뿜었다.
마치 워터젯 같이 가느다란 그것은, 모아두었던 절망의 힘을 소모하는, 파락스가 비상시 외엔 쓰기 싫어하는 공격이었다.
그럼에도 왜 놈이 이런 공격을 했느냐?
그건 바로 마르셀라가 아몬을 시켜 파락스에게 강제최면을 걸었기 때문이었다.
이로 인해 아몬은 한동안 힘을 쓰지 못하겠지만 뭐... 필살기 각성용도로 쓰면 좋으니까.
좋게좋게 생각하자.
레오나는 유승현이 죽을 위기에 처한 급박한 상황에서 필살기를 습득했었다.
사랑하는 사람의 위기상황 때 자연스레 익혔다는 소리다.
지금의 그녀는 유승현과 함께 날 사랑하고 있으니, 습득조건은 다르지 않을 터.
내가 뒈지기 직전까지 간다면 레오나는 파락스를 한 칼에 보내버리고 날 구하러 올 것이다.
퍼석!
파락스가 내뿜은 검은 마력은 튼튼한 재질의 전투기 장갑을 관통해버렸다.
그리고 그 공격경로에 있던 난...
“컥!”
배때지에 다섯 개의 구멍이 났다.
짧은 비명소리를 내뱉은 내가 양손으로 배를 만졌다.
찐득한 촉감. 피가 철철 흘러나오는구나.
이 씨발... 마르셀라 개 같은 년아, 심하게 하지 말라니까...
내가 지금 평범한 인간의 몸인 걸 잊어버린 건가?
아니면 나한테 억하심정이 있었던 거야? 꼬리를 물었을 때 좋아했던 것을 보면 그건 아닌 것 같은데...
그래도 뭐, 죽기 직전까지는 간 것 같네.
“꺄아아악!!”
멀리서 레오나가 절규하는 소리를 들으며, 난 망가져버린 모니터에 얼굴을 묻었다.
아아... 시야가 시커멓게 변하는구나.
전투기가 추락하고 있다.
앞에서 박사가 황급히 달려와 탈출장치의 버튼을 누른다.
푸확!
콕피트가 열리면서 내 몸이 의자와 함께 공중으로 튀어나갔다.
바람 한 번 시원하네. 구멍난 배때지에 통풍도 잘 되고.
우우웅! 우웅!
멀리 있는 공중에서 노란색 빛무리가 줄줄 뿜어져 나오는 게 보인다.
레오나의 검이 어마어마하게 커진 상태로 파락스의 미간을 향해 날아가는 것도 보인다.
눈이 너무 부셔서 잘 보이진 않지만, 레오나가 필살기를 깨우친 것이 분명하다.
이름을 좀 붙여야 되는데... 뭐라고 하면 어울릴까?
사랑의 힘으로 익힌 거니까 러블리 소드라고 할까? 아니, 너무 유치하다.
모르겠다, 그냥 기존처럼 필살기라고 부르자.
꿈에서 좀 생각해보던가.
덥썩!
누군가가 내 몸을 부드럽게 잡아 들어올렸다.
감겨오는 눈을 억지로 붙잡고 정면을 보니, 하늘색 눈동자에서 투명한 눈물을 줄줄 흘리는 레오나가 보인다.
날 구했구나. 당연히 그래야지.
입술이 달싹이는 것으로 보아 뭐라고 말을 하고 있는 것 같긴 한데... 귀가 들리지 않는다.
그나저나 레오나의 얼굴을 코앞에서 보는 건 처음이다.
세화의 특징이 드러나니 더욱 예쁜 것 같다.
마르셀라 썅년, 저 아름답고 고귀한 얼굴을 자세히 살펴야 하는데 날 이렇게 만들다니.
일어나면 진짜 뒤졌다.
아니지, 마르셀라가 아니라 아몬을 조져야 맞는 거 아닌가?
모르겠다, 그냥 둘 다 혼내자.
그 생각을 끝으로, 난 정신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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