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법소녀물 야겜 속 최종보스가 되었다-26화 (26/471)

EP.26 구밀복검

며칠이 지났다.

캐시 박사는 결국 모든 나라는 물론 전 세계 곳곳에 포탈을 설치했다.

기술유출에 관한 우려는 없었다.

박사가 포탈은 민감하며 레오나의 이동수단이라고, 절대 건드리지 말라고, 만약 건드려서 망가지기라도 하면 제때 오지 못할 수도 있다고 협박 아닌 협박을 곁들이자 모두 수긍했다.

또한 일개 인간들의 두뇌로는 천재 박사를 따라올 수도 없었으니 걱정하지 않아도 될 수준이었다.

내 집의 빈 방에도 포탈이 하나 설치되어 있었다.

이블리언 게이지가 순식간에 차올라 게이트가 열리는 급박한 순간, 그 때를 위한 포탈이었다.

그리고 난 틈을 내서 박사와 함께 디바이스의 용량을 늘려갔다.

용량을 늘리는 방법이야 벌 것 없었다.

그저 살아있는 생명체 같은 아이테르의 가동 범위만 넓혀주면 끝.

아이테르는 무척 민감한 에너지라, 잘못 건드리면 일부가 영원히 소실될 수 있었다.

때문에 아주 천천히 일을 진행하는 중이었다.

“쏭, 난 한숨 자러 가볼 테니까 오늘 용량개조는 네가 마무리해놔. 너희끼리 돌아갈 수 있지?”

“예. 쉬셔요.”

요 며칠간 무척 많이 뛰어다닌 박사는 나에게 디바이스를 맡기고 연구실에 마련된 방에서 잠을 청했다.

슬쩍 세화를 보니 새근새근 잠들어 있다.

하긴, 세화는 이 자리가 매우 지루할 테지.

디바이스를 건드리려면 그녀가 필요하니... 어쩔 수 없었다고 본다.

이제 눈치를 볼 것도 없겠다, 난 디바이스에 공간을 신설했다.

박사의 남편인 파슨스가 설치했던 것보다 더 높은, 나만 만질 수 있는 은밀한 보안체계를 설정해두고, 그 안에 몰래 만들어두었던 슈트의 일부를 집어넣었다.

짙은 보라색으로 채색된, 허벅지까지 딱 달라붙는 부츠.

굽은 기존보다 더 높고 뾰족하게 만들어 관능미를 더한 부츠였다.

블레이드 같은 장비는 따로 장착하지 않았다.

세화가 완전히 내 것이 된다면, 내 마력을 사용할 수 있을 테니까.

지금은 대 마물용 소모품과 검으로 마물들을 도륙한다면, 나중엔 검과 마법으로 인세를 혼란에 빠뜨릴 것이다.

‘일단은 여기까지.’

틈틈이 시간을 내서 만든 건 부츠가 끝이었다.

이제 본격적으로 디바이스를 만지작거릴 수 있으니 계속 이런 식으로 진행하면 된다.

개조를 마무리한 나는 세화를 깨웠다.

“세화야, 일어나. 집에 가자.”

“흐응... 좀만 더 잘래...”

“얼른 일어나.”

“싫어엉...”

눈도 뜨지 않고 웅얼거리는 세화.

그녀에게 가까이 다다간 내가 말했다.

“목 감아. 안아줄게.”

세화가 두 손으로 내 목을 감아왔다.

그녀의 등과 안쪽 무릎에 팔을 넣어 안아든 나는, 디바이스가 있는 탁상으로 갔다.

그러자 세화가 한쪽 팔을 뻗어 무언가를 찾는 듯 탁상을 툭툭 건드렸다.

우웅!

그 때, 디바이스가 신비한 소리를 내며 세화의 팔에 착 감기면서 여성용 시계로 모습을 바꾸었다.

디바이스를 착용한 세화는 다시금 내 목에 팔을 감고 몸을 웅크렸다.

내게 쏙 들어온 모양새.

피식한 난 세화의 말라버린 따뜻한 입술에 슬쩍 혀를 가져다 댔다.

그러자 세화가 기분이 좋은 듯 몸을 뒤척이더니 혀로 제 입술을 핥았다.

“박사님은 주무시니까, 오늘은 우리끼리 가자.”

“우응... 더...”

“더 해달라고?”

“응...”

“돌아가서 실컷 해줄게.”

세화는 내 대답이 만족스러웠는지 눈을 감은 채로 지그시 웃었다.

쯔쯔... 이런 모습만 보면 영락없는 철부지인데.

누가 널 지금 엄청난 인기를 몰고 다니는 레오나라고 생각하겠냐.

그녀의 토실토실한 엉덩이를 툭툭 두드려주면서, 난 연구실을 빠져나갔다.

집에 돌아갈 때까지 세화는 내게서 떨어지려 하지 않았다.

플라잉 택시를 타고 돌아갈 때도 마찬가지였다.

[무인 플라잉 택시 안에서의 외설행위는 법으로 금지되어 있습니다. 부디 자중해주시길 바랍니다.]

차 안에 달린 감시카메라를 본 택시회사에서 이렇게 통신을 보내올 정도였으니 오죽하겠는가.

저번에 질내사정을 한 이후, 세화는 나에게 하는 애정표현 빈도가 부쩍 늘었다.

공공장소에서도 이런 스킨십을 서슴지 않았고, 틈 날 때마다 뽀뽀를 하거나 팔짱을 껴오거나 했다.

만약 대학 사람들 중 한 명이 이런 세화를 본다면, 그녀의 이미지는 완전히 나락이었다.

세화에게 남자친구가 있다는 건 대학 사람들 모두 알고 있었으니까.

그녀는 딱히 그런 걸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지만 말이다.

결국 난 계속 얼굴을 들이미는 세화를 밀어내면서 힘겹게 집으로 돌아갔다.

**

“으응...”

아침, 세화가 눈을 부비면서 스르륵 일어나더니, 정장을 입고 있는 나를 본다.

그녀는 내가 내준 집을 아예 버리다시피 하고는 나와 함께 눌러 살고 있었다.

마치 동거를 하는 커플처럼 말이다.

“오늘 어디 가?”

“회사에 일이 생겨서. 처리한 뒤에 친구 좀 만나고 올게.”

“친구...? 아... 그 저번에 말했던 여자?”

“맞아. 촉도 좋네.”

“만나지 마.”

갑작스레 정색을 하는 세화였다.

정장바지의 벨트를 잠근 내가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내가 설마 걔랑 뭔 일이라도 생기겠냐. 나한텐 네가 있는데. 금방 올 테니까 기다리고 있어.”

“회사는 가도 되는데, 그 사람은 만나러 가지 마.”

“이미 약속을 잡아놨는데 뭐라고 해 그럼.”

“회사 일 생겼다고 하면 되잖아. 가지 말라면 가지 마. 오늘 주말이잖아. 나 심심해.”

질투심 좋고, 표정 좋고.

난 어쩔 수 없는 양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알았어. 오늘은 안 만날게. 회사 일만 보고 바로 돌아오면 되지?”

‘오늘은’ 이라는 말에 세화가 눈썹을 꿈틀했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주억거렸다.

나중에 또 떼를 쓰면 된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지금 문자 보내. 못 만날 것 같다고 보낸 다음 나한테 보여줘.”

나는 표정을 굳혔다.

이렇게까지 할 거냐? 날 믿지 못하는 거냐? 라는 눈빛으로 세화를 보니, 그녀가 이번 건 심했다고 생각했는지 말투를 조금 너그럽게 바꾸었다.

“진짜 안 만날 거지?”

“내가 거짓말하는 거 봤어?”

너에 대한 마음을 표현할 땐 거짓말한 적은 없어.

하지만 나머지는 모조리 거짓이야.

그렇게 유승현에게서 널 거의 다 빼앗았지.

“아니... 언제 돌아올 건데?”

“글쎄... 최소한 서너 시간은 걸릴 것 같은데. 경기도에 있는 회사라.”

세화에겐 친구라고 포장한 유리아가 대구에 살고 있다고 했다.

서너 시간이라면 의심할 수 없는 시간이었다.

“알았어...”

“너도 나갔다 와. 그리고 내 카드로 면허학원 등록해.”

“면허학원? 왜?”

“언제까지 뚜벅이로 살 건데? 아무리 학교가 가깝다고 해도 차는 있어야지. 내가 없을 땐 너 혼자 연구실에 갈 일도 있을 테고...”

“네가 왜 없는데?”

“감기라도 걸려서 아프면 집에서 쉬어야겠지. 어쨌든 그렇게 해.”

시무룩한 얼굴로 변한 세화가 힘없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응... 근데 아프지 마.”

날 생각하는 마음이 오롯이 느껴진다.

아아... 또 꼴리는데 이거...

한 판 하고 유리아를 만나러 갈까?

아니, 참자. 오늘은 세화에게 시킬 일도 있으니까.

“알았어. 최대한 건강하게 살 테니까, 면허학원 등록한 다음 왁싱하고 와.”

“.... 꼭 해야 돼? 한 번도 안 해봤는데...”

“말했잖아. 난 아래가 말끔한 게 좋다고. 하고 오면 오늘 네가 원하는 건 전부 다 해줄게.”

세화의 눈이 기대감으로 번들거린다.

“진짜? 약속한 거다?”

“그래. 돌아와서 시간이 남으면 돈까스 좀 만들어놓고. 오늘따라 좀 당기네.”

“응.”

대답을 들은 난, 세화의 이마에 진한 키스를 해주었다.

내 애정표현이 좋았는지 마치 새하얀 새끼 하프물범마냥 눈을 지그시 감는 그녀.

씨익 웃은 내가 그녀의 볼을 손가락으로 두드려주고는 집에서 나왔다.

이후 그 누구도 모르는 나만의 포탈을 열고 대전에 도착했다.

얼굴과 몸은 어느 샌가 김태곤으로 변한지 오래.

그렇게 나는 유리아와의 약속장소로 나갔다.

그녀는 이미 날 기다리고 있었다.

멀리서 반갑게 손을 흔드는 그녀에게 다가간 내가 인사했다.

“오랜만입니다. 유리아 씨.”

“잘 지내셨죠? 태곤 아저씨. 출장은 잘 다녀오셨고요?”

“예.”

“들어갈까요? 할 이야기가 많아요.”

경청해주도록 하마.

대신, 오래는 말고.

세화가 목이 빠져라 기다릴 테니까.

고개를 끄덕인 나는 유리아와 함께 조용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횟집에 들어갔다.

**

“.... 그래서 그 괴물을 지배하는 은하계의 총수가 있는데, 이름은 타이라트고... 그를 죽이러 여기 오셨다고요?”

유리아는 내게 자신이 어디서 왔는지 오픈했다.

이렇게까지 솔직할 줄은 몰랐는데 의외였다.

덕분에 씰룩거리는 입꼬리를 간신히 복구시키느라 미쳐버리는 줄 알았다.

“네, 맞아요. 부모님의 원수죠.”

“찾고 있다던 사람이 그 사람입니까?”

“사람이 아니라 괴물이에요. 쓰레기고.”

괴물은 아닌데 쓰레기는 맞지. 인정해주마.

“불과 몇 주 전에 그런 이야길 들었다면 유리아 씨를 미친 사람 취급하고 돌아갔을 텐데... 요새 이블리언 게이트라는 곳에서 괴물들이 쏟아져 나오니 안 믿을 수도 없군요.”

“그 괴물들은 마물(魔物)이라 불리는 타이라트의 수하들이에요. 맨 처음 나타났던 말머리를 한 놈은 암두시아스, 인천에서 나타난 말미잘 같이 생긴 놈은 악토아, 전 세계에 나타났던 놈들과 후지산에 나타났던 호랑이는 잘 모르겠고요.”

제법이군. 과연 에란델에 살았던 년 답다.

“오호라... 허면 그 괴물... 아니, 마물들을 물리친 영웅에 대해 아는 바는 없으신지?”

“비스트 슬레이어 레오나를 말씀하시는군요. 전 잘 몰라요. 하지만 어떻게든 연락하고 싶어요.”

“그건 어째서인가요?”

“저도 한 손 거들고 싶거든요. 타이라트가 여기마저도 정복하려 하는 걸 좌시할 수 없어요.”

그리 말하는 유리아의 눈에선 복수심을 뛰어넘는 정의감이 있었다.

흠... 이 정도라면 지금 당장 비스트 슬레이어로 만들어놓아도 될 정도인데.

슬슬 숨어있는 아이테르를 찾아나서 볼까?

일 한 번 제대로 벌여봐?

“저도 돕고 싶군요. 하지만 일개 힘없는 시민이 뭘 할 수 있겠습니까. 그저 응원하는 것밖에는...”

“알아요. 아저씨는 고등학생들한테 삥을 뜯길 뻔 하셨죠.”

“크흠...”

“농담이에요. 어쨌든 그 사람들과 연락을 하기만 하면 되는데... 지금 제 사정으론 움직이기가 쉽지 않네요.”

“그건 왜 그렇습니까?”

“제 신분은 불법으로 만들어진 거에요. 여기 왔을 때 적응하다가 범죄조직에 부탁을... 흐흠... 아니, 의뢰를 맡겨서 간신히 얻었죠.”

알고 있어 이년아.

그리고 말은 똑바로 해야지.

의뢰가 아니라 무력으로 협박한 거라고.

변신 전의 기초적인 무력이 대단한 유리아는, 음지에서 칼밥 좀 먹었다 하는 범죄자들이 얼마나 들이댄다 해도 다진육이 될 정도다.

규모가 제법 큰 신분세탁 조직을 일망타진하고 신분을 얻은 다음 착하게 살라 했지? 걔네들이 피땀을 흘려 번 돈도 다 뺏어가고?

이 정보를 찾아내는데 시간이 좀 걸렸다고 마르셀라가 이빨을 갈더라.

안 그래도 바쁜데 음지까지 뒤지려니 짜증이 나긴 했을 것이다.

그래도 유리아를 도와주는 사람이 없다는 것을 알아냈으니 다행이었다.

“크흐흠... 뭐, 어쩔 수 없는 일이 아닙니까. 유리아 씨는 지구인이 아니니까요. 그리고 뭐... 나쁜 친구들을 혼내준 것이니...”

“이해해주셔서 고맙네요. 역시 아저씨는...”

“그 환생 이야기를 하실 거라면 저는 음식이나 먹겠습니다.”

“.... 알았어요.”

“저 또한 그 영웅을 도와주는 사람들에게 연락할 방법을 좀 알아보도록 하지요. 힘이 없어 직접 발 벗고 나서지는 못하더라도 이 정도는 충분히 해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유리아 씨는 제게 남이 아니니까.”

유리아의 안색이 무척 밝아진다.

내 입에서 저런 말이 튀어나오니 기쁜 것 같았다.

그녀에게 마주 웃어준 내가 회를 입에 집어넣으면서 생각했다.

‘그런데 환생이라... 이걸 어떻게 한 번 써먹어 볼까?’

제대로만 먹힌다면 유리아를 멋대로 휘두를 수 있을 것도 같다.

오늘따라 회 맛이 착착 감기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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