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4 변해가는 세화
“하아...”
세화의 몸에 정액을 뿌린 내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 슬슬 여러 체위들을 해볼 때가 됐는데, 밤엔 조신함의 끝을 보여주는 세화가 정상위 외엔 하지 않으려고 하니 슬슬 질려갔다.
물론 세화 자체가 질린다는 건 절대 아니다.
세화는 언제, 어떻게 품어도 완벽했으니까.
그저 재미없는 섹스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거다.
이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세화는 제대로 된 첫날밤을 보냈을 때처럼 여전히 쑥쓰러워하며 내가 몸에 묻은 정액을 닦아주길 기다렸다.
내 방 침대 옆 탁상엔 언제부턴가 물티슈가 있었다.
휴지로 닦으면 피부가 망가질까 두려워 세화가 스스로 사온 것이다.
물티슈를 다소 강하게 뽑은 내가 그녀의 복부를 닦아주었다.
“좋았어?”
세화는 대답하지 않고 자신의 팔을 슬쩍 내게 보여주었다.
희미한 빛과 웅웅거리는 소음을 내고 있는 디바이스를 직접 보라는 듯이.
흥분에 겨워 미쳐있었다는 뜻이구나. 보나마나 100%로 채워졌겠네.
피식한 나는 말없이 그녀의 뽀얀 피부를 닦아내는데 집중했다.
우웅!
정액을 다 닦고 나니 세화의 휴대폰에 유승현의 문자가 왔다.
한창 업무 중일 텐데 문자질이라니. 마르셀라보고 혼을 좀 내라고 해야겠다.
약간 귀찮은 표정으로 휴대폰을 보는 세화에게, 내가 물었다.
“유승현 씨야?”
“응. 오늘도 힘내라고 보내왔어.”
“그래서 뭐라고 답할 건데?”
“안 보낼 거야. 자는 척할래...”
유승현... 참 불쌍한 놈이다.
어제는 너무 고파서 자지를 잡고 딸딸이까지 치던데... 마물을 통해 그 모습을 봐서 짜증났었지.
원래대로 흘러갔다면 세화와 꽁냥대며 신나게 떡을 쳐대고 있었을 텐데, 이게 다 업보다.
세화라는 완벽한 여자를 놔두고 다른 비스트 슬레이어들과 떡이나 쳐댄 업보.
인과응보, 자업자득이라는 거다.
그러니 내가 세화를 빼앗아도 겸허히 받아들여라.
우웅!
마침 내 휴대폰에도 문자가 온다.
[태곤 아저씨, 또 내 문자 씹을 거에요? 지금 바빠? 만날래요?]
유리아의 문자.
요즘 계속 다양한 시간대에 문자를 보내는데, 난리도 이런 난리가 없다.
답장을 하긴 해야 하는데...
“저번에도 그러던데 밤늦게 누구야?”
세화가 옆에서 호기심 어린 눈으로 휴대폰을 보려고 하는 게 문제다.
일단 업무용 휴대폰이라고 하긴 해놓아서 괜찮았지만 이렇게 늦은 시간까지 문자를 보내면 의심할 수밖에 없겠지.
“업무 문자야.”
“업무 문자를 이렇게 늦게 받아?”
“최근 연구실에서 연구만 몰두하느라 결재할 서류가 밀려 있어서 그래.”
“비서 아저씨가 알아서 처리하시잖아.”
“중요한 건 내가 해야지.”
“.... 혹시 연수 아니야?”
의심 가득한 눈초리로 날 쏘아보는 세화.
음... 세화의 마음도 좀 진정이 된 듯 보이겠다, 슬슬 다른 교육을 좀 시켜놔야겠다.
내가 어이없는 얼굴로 답했다.
“아니야. 연수였다면 일반 휴대폰으로 문자가 왔겠지. 그리고 연수면 또 어때서?”
“또 어때서라니... 연수한테 관심 있어?”
“글쎄.”
“왜 그렇게 애매한 대답을 해?”
“내가 연수한테 관심을 가지면 이상한 건가? 넌 유승현 씨라는 남자친구가 있잖아. 난 여자친구 좀 있으면 안 돼?”
세화가 입을 앙다문다.
그래, 할 말 없지?
이기적인 세화야, 얼굴이 서서히 구겨지면서 뾰로통하게 변하는 모습이 참 귀엽구나.
“그럼 내가 승현이랑 잤으면 좋겠어?”
예상대로 격한 반응을 보인다.
“아니, 갑자기 그런 말이 왜 나와? 내가 연수랑 잔다고 했냐?”
“그렇게 들렸는데?”
“혼자 오해하는 걸 보니까 이상한 생각을 하고 있네.”
“대답이나 해! 내가 승현이랑 잤으면 좋겠냐구!”
갑자기 버럭 소리를 지르는 그녀.
내가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남자친구랑 자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니잖아.”
“넌 아무런 생각도 안 든다 이거네? 좋아, 알았어.”
씩씩대며 침대에서 일어나 옷을 챙겨 입는 그녀.
풀악셀을 밟고 급가속하려는 모습이 웃긴다.
뭔가 굳은 결심을 한 모양인데... 어디 한 번 해봐라.
내가 가소로운 듯 한 미소를 지었다.
“난 풀어준 적 없다. 너 스스로도 약속했고. 알아서 해봐.”
그 말에 브라와 팬티를 입던 세화가 흠칫한다.
유승현과 어떠한 스킨십도 하지 않겠다는 약속.
내가 그 약속을 들먹인다는 걸 알아차린 것이다.
하지만 이내 다시 예의 그 화난 표정으로 돌아오더니, 옷가지와 휴대폰을 챙겨 안방 문을 쾅 소리가 나도록 닫으며 나갔다.
나는 한쪽 입꼬리를 올린 채 유리아에게 답장을 보냈다.
[유리아 씨... 제발... 저 자고 있었습니다... 조만간 만나 뵈러 갈 테니까 문자 좀 그만 보내요.]
우웅!
[조만간이라는 말은 너무 광범위하지 않나? 날짜 정해요.]
마왕인 내게 이 따위 말버릇이라니, 버릇없는 년.
일단은 맞춰주마.
[다음 주... 다음 주 주말에 봅시다. 제가 연락할게요.]
[더 빨리 만날 수는 없고요?]
[해외로 출장을 가야 합니다. 다음 주에 꼭 연락드릴게요. 그리고 제발... 제발 밤늦게 문자 보내지 마세요.]
[생각해보고요. 안녕히 주무세요.]
답장을 보고 휴대폰을 휙 던진 내가 누워서 다리를 꼰 채로 휘파람을 불었다.
세화야, 홧김에 유승현과 뭘 하려고 해도 소용없어.
네 몸은 이미 나한테 적응돼있거든.
그따위 초식동물이랑 놀려고 해도 재미가 없을 거다.
@@
“진짜 짜증나... 내가 얼마나 자길 생각하는지도 모르고...”
골드퍼퓸 호텔로 가던 세화의 중얼거림이었다.
그녀는 지금 빠르게 옷을 갈아입고 승현을 보기 위해 나온 상태.
표정을 잔뜩 구긴 채로 길을 가던 세화는, 자신을 향해 꽤 잘생긴 남자 한 명이 휴대폰을 든 채 주뼛주뼛 다가오자 눈을 치켜떴다.
“저... 실례가 안 된다면 전화번호...”
“남자친구 있어요!”
다소 큰 목소리였기에 남자가 이크 하며 물러났다.
오늘따라 다 짜증났다.
이렇게 연락처를 따러 다가오는 사람들도 짜증, 심지어는 길거리를 돌아다니는 죄 없는 사람들도 짜증...
빠른 걸음으로 호텔을 향해 나아가던 그녀는, 대형 건물 전광판에 변신한 자신의 모습이 있자 조금 놀랐다.
일본에서 찍혔던 사진이었는데, 여태까지 도촬된 여러 장의 사진 중에서 화질이 가장 좋았다.
그래봤자 흐릿한 건 똑같았지만 말이다.
전광판엔 큼지막한 파란색 손글씨체로 이렇게 쓰여 있었다.
[대한민국의 자랑, 세계의 영웅, 비스트 슬레이어 레오나 파이팅!!]
개인 팬이 광고를 붙인 것 같은 느낌을 풀풀 풍기는 전광판이었다.
대한민국 출신인 건 어떻게 아는 건지... 한국에서 괴물이 두 번 나타났고, 당시 자신 또한 금방 나타났기에 한국인인 줄 아는 모양이었다.
매일 매스컴에 끊이질 않고 등장하는 레오나, 그러나 현실의 세화 자신은 평범한 대학생.
이런 이중적인 생활은 몇 주 전까지만 해도 힘들었지만, 지금은 적응이 됐다.
적응하는데 큰 도움을 준 사람은 유승현이 아닌 송지혁.
승현도 물론 도움을 주긴 줬다.
힘내라고, 언제나 네 편이라고 말해오면서 말이다.
하지만 지혁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그는 자신이 힘들어하는 모습과, 인간들은 상대할 수 없는 괴물들과 싸우는 모습을 지척에서 봐왔다.
때문에 자신의 마음을 무척이나 잘 알았다.
그에게 진실한 조언과 위로를 들을 때면 힘겨웠던 마음이 사르르 녹는 기분이었다.
“하아...”
자신은 분명 승현을 사랑하고 있었다.
십 년이 넘은 소꿉친구. 매번 같이 붙어 다녔기에 그와 있으면 재미있다.
마음에 안정이 찾아오는 느낌이고.
그러나 이는 지혁도 마찬가지.
아니, 최근엔 지혁과 있을 때가 승현과 있을 때보다 더 재미있었다.
걱정거리가 하나도 생각이 안 날 정도로.
세화는 승현에 대한 죄책감이 새록새록 솟아났다.
승현과는 섹스를 하지 않았음에도 지혁과는 자주 잔다.
지혁이 마음에 들어 할까 고민하며 속옷을 살 정도였고, 심지어 먼저 원한다고 들이대기까지 했다.
‘난 쓰레기야...’
캐시 박사는 레오나의 정의는 도덕과 다르다며 위로를 했지만... 미안한 건 미안한 것.
현재 자신이 잘못된 행동을 하고 있음을, 세화는 아주 잘 알고 있었다.
노선을 확실히 정해야 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둘 중 어느 한 명도 놓치기 싫었다.
인터넷 커뮤니티에 남자친구를 두고 바람핀 여자의 썰이 올라올 때 욕했던 일이 엊그제 같은데 똑같은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
아니, 오히려 그보다 더한 사람이 됐다.
“하아... 짜증나...”
이런 자신을 욕하면서 걸음을 옮기길 한참, 골드퍼퓸 호텔이 눈앞에 보였다.
세화는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머뭇거리다가 승현에게 전화를 걸었다.
뚜루루루-!
발신음이 세 번 지나가고 얼마 후,
-여보세요?
승현이 전화를 받았다.
주변에서 희미하게 시끌벅적한 소리가 들려오는 것을 보니 한창 일을 하는 중인 것 같았다.
“일하는 중이야?”
-응. 화장실에서 몰래 받는 중이야.
“잠깐 만날 수 있어? 보고 싶은데...”
-음... 지금 어디야?
“호텔 앞.”
-뭐? 호텔 앞이라고? 무슨 일 있어?
“나올 수 있는지 없는지나 말해.”
-금방 나갈게. 5분만 기다려줘.
전화를 끊은 세화는 호텔 앞에 마련된 벤치에 앉아 승현을 기다렸다.
그녀는 마음속에서 다짐했다.
오늘 꼭 남자친구인 승현과 거사를 치르지는 않더라도 찐한 스킨십은 하겠다고.
지혁이 했던 말을 상기한 세화는, 다시금 화가 치밀어 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그녀가 지혁에게 문자를 보냈다.
[네가 네 입으로 직접 말한 거야. 남자친구랑 자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니라고. 후회하지 마.]
그러자 얼마 후에 답신이 온다.
[이상한 일은 아니지. 근데 허락한 적 없어. 잘 기억해.]
[네가 허락하지 않으면 어쩔 건데?]
[어디 한 번 해봐.]
휴대폰 화면을 바라보던 세화는 기가 찼다.
“하, 참내...”
한 차례 감탄사를 내뱉은 세화는, 문득 불안감이 솟구쳤다.
오늘 이후 지혁이 자신을 모르는 사람처럼 대하면 어떡하지? 라는 걱정이 생겨났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호텔 입구에서 승현이 보이자 세화는 에라 모르겠다! 라고 생각한 채 자리에서 일어났다.
“세화야.”
웨이터복을 입은 승현의 모습은 썩 괜찮았다.
지혁처럼 잘생긴 건 아니었지만, 오랜 시간 봐와서 익숙해서인지 절로 웃음이 나왔다.
그녀는 아무 말 없이 승현에게 와락 안겼다.
그런 뜬금없는 행동에 잠시 당황하던 승현이 세화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
“무슨 일이 있긴 한가보네. 그토록 빼려던 포옹도 하는 거 보니까. 우리 진짜 오랜만에 보는 거지?”
“응...”
“손톱은 또 언제 칠했대? 예쁘다. 어디 조용한 데라도 갈까?”
“일은 괜찮아...?”
“실장님한테 허락받았어. 20분 정도 시간 있어.”
세화는 조금 실망했다.
거짓말이라도 일보다 자신이 더 중요하다고 말해주길 바랐는데...
하지만 이내 머리를 털어냈다.
승현은 단순해서 대놓고 말하지 않으면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니까.
승현의 따뜻한 손을 잡은 세화는, 그를 데리고 인적이 드문 공원으로 갔다.
그리고는 다짜고짜 말했다.
“나 키스해줘.”
그래, 이건 당연한 것.
지혁의 말처럼 남자친구와 이런 저런 일을 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오히려 오래 사귀었는데 섹스도 한 번 안 하는 게 이상한 거다.
“뭐...?”
승현은 눈에 띄게 당황해했지만, 세화가 긴 속눈썹을 내려뜨리자 이내 긴장한 얼굴로 다가가 입술을 내밀었다.
혀와 혀가 얽히는, 나름 진한 키스였다.
세화는 그것도 모자라 승현의 손을 강제로 잡아채 자신의 가슴으로 가져왔다.
그러자 승현의 몸에 힘이 크게 들어가면서, 세화의 가슴을 투박한 손길로 애무하기 시작했다.
또 오늘따라 세화의 분위기가 너무 야릇했던 탓일까?
승현의 정장바지 사이에 있던 고간이 불쑥 솟아나면서, 세화의 허벅지에 닿았다.
키스는 점점 격해져갔다.
승현은 온갖 방법으로 세화를 만족시켜주기 위해 열심히 일을 벌였다.
가슴을 만지거나, 허리를 잡아 주물거리거나, 아니면 엉덩이를 살짝 위로 들어 올리거나.
그러나 세화가 흥분하는 일은 전혀 일어나지 않았다.
‘디바이스도 조용해...’
디바이스는 100퍼센트 충전이 되더라도 세화 자신이 흥분하면 소리를 낸다.
아이테르라는 신비한 에너지 때문.
어쨌든 키스 도중, 애무를 받는 도중 딴 생각을 할 정도로 승현의 스킨십은 밋밋했다.
세화는 좀 더 과감하게 나가보기로 했다.
가만히 있던 자신의 손을 아래로 향하게 해 승현의 고간을 살짝 잡았다.
‘지혁이보다 작은 것 같은데...’
세화가 이런 생각을 하던 그 때,
“으음...!”
승현이 인상을 찌푸리더니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에 세화가 눈을 살짝 뜨고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다행히 싼 건 아니다.
하지만 곧 싸버릴 것 같은 모습이라고 해야 할까? 제 혼자 흥분해선 안절부절 못한다.
‘.....’
전혀 기분이 좋지도 않은 상태로 승현과 스킨십을 하던 세화는, 머릿속에 온갖 생각이 선명하게 들자 그냥 입술을 떼어냈다.
그러자 승현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세화야... 너 이런 적 한 번도 없었잖아...”
“어...? 응... 그렇지.”
“오늘따라 엄청 과감하네... 더 해도 돼?”
세화가 눈썹을 아주 살짝 구겼다.
밤엔 강압적으로 바뀌는 지혁과는 다른 태도.
이미 지혁에게 적응해버려서 그런 것일까? 정중하게 물어오니 갑작스레 흥미가 식어버렸다.
자신은 전혀 흥분하지 않았는데, 승현만 기분이 좋은지 몽롱한 얼굴을 하고 있는 것도 조금 서러웠다.
“미... 안해 승현아. 잠깐 내 정신이 어떻게 됐나봐...”
거절의 의사표시였다.
“아쉽다... 어쩔 수 없지. 알았어.”
이번 승현의 대답도 마찬가지.
지혁이었다면 자신이 무서워하든 말든 들이대서 흥분시켜줬을 텐데...
이런 생각을 하기엔 미안하지만 설레지가 않는다.
재미있지도 않다.
세화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 미안해. 나 이만 가볼게. 일 열심히 하고 끝나면 연락해.”
그리 말한 세화가 몸을 돌려 뛰어갔다.
승현은 굳이 그녀를 잡지 않았다.
자신에게 들이댄 것에 대해 부끄러워하는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
그는 만면에 미소를 띠운 채로 호텔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발기가 안 풀리는 자지를 어떻게든 위로 옮겨대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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