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법소녀물 야겜 속 최종보스가 되었다-23화 (23/471)

EP.23 뻗어나가는 음모 #3

캐시 박사는 결국 원하는 것을 얻어냈다.

세계연합과 영공개방, 피해보상에 관한 조약들을 맺은 것이다.

조약의 명칭은 [지구방위조약].

그녀는 각국에 이블리언 게이지를 체크할 수 있는 탐색기를 설치해주었고, 이제 박사와 우린 아무런 문제없이 모든 나라의 영공을 통과해 괴물들과 싸울 수 있게 됐다.

얼마 전 내가 전 세계로 보냈던 허접한 마물들, 그리고 일본에 보냈던 검치호 덕분이었다.

몇몇 나라에서 박사의 기술력을 탐내 제작방법을 알려달라고 했지만, 남용된다면 큰 사건이 발생할 수도 있어 박사는 완강하게 거절했다.

그 여성 히어로의 정체가 뭐냐고 묻는 세계연합의 임원들에겐 레오나라고 답했다.

비스트 슬레이어, 레오나. 이 외엔 알려주지 않았다.

박사의 회고에 따르면 그런 질문을 예상하지 못했었는데, 내가 노래를 부르던 게 갑자기 생각나 홧김에 그리 말해버렸다고 했다.

공식적인 이름이 레오나라는, 촌티가 풀풀 나는 이름이라며 내 뒤통수를 갈기는 것이, 쪽팔리긴 어지간히 쪽팔렸던 모양이었다.

아주 거지같은 년이었다. 내가 아니었으면 지가 레오나라는 이름을 붙였을 텐데.

어쨌든 이 소식은 전 세계로 퍼져나갔고, 바야흐로 대 마물시대가 벌어짐과 동시에 레오나의 명성은 비약적으로 올라갔다.

온갖 매체에서 레오나의 이름이 흘러나오고, 팬 카페 가입자 수가 폭증, 심지어 피규어까지 만들려고 대기하는 업체들도 생길 정도였다.

세상이 이렇게 떠들썩한 데에 비해 연구실은 조용했다.

나와 캐시 박사는 본격적으로 연구개발에 돌입했고, 세화는 학교를 다니다 가끔 연구실에 들러 분위기를 밝혀주었다.

지금은 박사와 나, 둘만이 연구실에서 여러 이론들을 세우며 토론을 하고 있다가 잠시 휴식시간을 가진 상태였다.

기름기 가득한 머리카락과 눈 밑이 퀭한 나는 커피를 홀짝였다.

캐시 박사는 학교에 가지도 못하고, 씻지도 못한 채 연구에 몰두하는 내가 기특했는지 최근부터 날 다르게 호칭했다.

“야, 쏭.”

이렇게 말이다.

내 현재 성씨인 송을 강조하는 거다.

“왜요.”

“좋았니?”

“뭐가요?”

“세화랑 잔 거.”

“푸읍!”

입 안에 있는 커피를 물리학 이론이 빼곡히 써진 화이트보드에 뱉어낸 나.

박사가 혀를 끌끌 찼다.

“쯧... 외워놓길 다행이었지.”

“케헥! 컥! 뜬금없이 그런 말은 왜 해요!?”

“이젠 너도 아이테르에 대해 알았잖아.”

“그건 거의 5일 전에 알았다고요. 조용히 잘 지내다가 왜 지금...”

“그래서, 어땠냐고.”

어떻긴 이 썅년아. 매일매일이 좋아 죽을 것 같지.

난 박사를 깡그리 무시하며 화이트보드를 닦아내기 시작했다.

“회사 사장님 말을 씹으신다고? 가족같이 대해줬는데 서운하네. 글러먹은 직원이야.”

뒤에서 개소리가 들려온다.

가족 같기는 개뿔, 개좆같이 대해줬지.

잠깐, 이년도 한 번 떨어뜨려봐?

내 수하로 만들 수만 있다면 비스트 슬레이어 공략이 무척 쉬워지는데...

날 몇 번이고 물 먹인 년이라 이용해먹다가 죽일 생각밖에 없었는데, 가만 보면 박사도 한 몸매, 한 외모 한다는 말이지.

‘문제는 내가 이년에 대해 자세히 모른다는 거다.’

다른 비스트 슬레이어들의 특징은 모조리 알고 있다.

하지만 박사에 대한 정보는 한정적이었다.

성격 더러운 천재 과학자, 남편의 유언을 받들어 유지를 이어가는 사람.

이 외엔 잘 몰랐다.

좋은 생각 같기는 한데... 좋아, 일단 리스트에 올려놓자.

“이상한 소리 마시고 포탈 연구에나 신경 쓰시죠.”

“계속 그러고 있는데 답이 안 나오고 있잖아. 머리가 아프다, 머리가 아파. 이 상태에서 괴물들이 나오면 어찌 될까 걱정이야. 이블리언 에너지도 탐색이 되질 않아서 불안하네.”

“불길한 소리는 마세요. 안 나오면 좋잖습니까. 그리고 박사님은 잘 해주시고 계세요.”

“오늘따라 친절하네?”

“이건 사실이니까요. 근데 접때 세계에 나타났던 인간형 괴물들도 레오나가 처리하게 되나요?”

“어떤 괴물이 나올지 모르니까, 일단 나타났다고 연락을 해오면 가긴 해야겠지.”

그렇다면 내가 가이드라인을 제시해주마.

마물들을 좀 더 내보내 표본을 쌓는 척하고, 인간들끼리 알아서 등급을 매길 수 있도록 탐색기를 개량해주면 되겠지.

일정 등급 이하의 마물이 나타난다면 군대로도 처리할 수 있는 수준,

그 이상 마물이라면 비스트 슬레이어가 필요한 수준으로.

그때까지는 조금만 고생하자, 세화야.

네 복지를 위해 여러 계획들을 생각하고 있으니까 참아줘.

**

“마왕님! 저는 암두시아스, 악토아 같은 떨거지들과 다릅니다! 내보내주시기만 한다면 마왕님께서 원하시는 모든 일을 제가 처리하겠습니다!”

비밀기지를 울리는 우렁찬 출사표 예고.

입꼬리를 올린 난, 특수한 철창에 갇힌 인간형 마물을 바라보았다.

인간의 몸을 가졌지만 얼굴은 숫소의 모양을 하고 있는, 기상천외한 생김새를 가진 이놈의 이름은 파락스.

1탄 거의 막바지에 나오는 나의 심복이었다.

지능도 인간만큼 뛰어난 녀석이기도 했다.

절망이라는 감정을 먹고 사는 아주 악독한 마물이었는데, 기습적으로 나타나 인간들을 학살하며 그 감정을 흡수해 엄청난 힘을 발휘하게 된다.

레오나의 필살기에 으스러져 사라지는 최후를 맞는 놈이기도 하고.

어쨌든 이놈은 내가 게임을 플레이할 때도 고전을 면치 못했던 놈이었다.

그때까지 모아두었던 소모품을 절반 가까이 사용해서 간신히 쓰러뜨린 강자.

지금 내보내면 레오나는 고전을 면치 못하다 변신이 풀릴 가능성이 매우 높다.

“파락스여, 네가 날뛸 기회는 얼마든지 만들어줄 테니 지금은 참거라.”

“그러시다면야 묵묵히 때를 기다리겠지만... 이 안에만 있다 보니 미쳐버릴 것 같습니다.”

“널 가만 놔두자니 마음이 아프군. 네 수하들을 보내주면 되겠느냐?”

소의 면상이 헤벌쭉해진다.

기괴해 미쳐버릴 것 같은 얼굴.

토악질을 간신히 참아낸 내가 말을 이었다.

“네 수하들이 모은 절망의 감정. 그것을 흡수한다면 만족하겠지?”

쿵!

파락스가 바닥에 대가리를... 아니, 코를 처박는다.

“마왕님! 이 파락스는 마왕님을 충실하게 섬길 것임을 다시 한 번 맹세하는 바입니다!”

“그래. 앞으로도 그 충성심을 잃지 않도록 해라.”

네가 레오나에게 뒈질 때까지만.

몸을 돌려 방을 나온 내가 왕좌에 몸을 맡겼다.

싸늘하고 포근한 모순적인 느낌.

여기 앉다보면 내 정체성을 찾아가는 기분이다.

마왕 타이라트, 에란델의 총수.

근엄한 자세로 왕좌에 앉아있는 내게, 마르셀라가 눈을 빛내며 다가온다.

“마왕님... 너무 어울리십니다... 에란델을 정복할 때의 마왕님을 뵙는 것 같아 저도 모르게 눈물이...”

“시끄럽다. 아이테르는 어찌 됐지?”

“분석은 어느 정도 완료됐지만... 수정방법은 찾지 못했어요. 시간을 더 주신다면...”

“음...”

“죄, 죄송합니다! 최대한 빨리 일을 진행할게요!”

그냥 걱정스런 감탄사만 내뱉었을 뿐인데 왜 사과하고 지랄이야?

혹시 내가 언짢았다고 생각하는 건가?

솔직히 급하게 마음먹을 부분은 없다.

난 언제든 세화의 디바이스를 만지작거릴 수 있을 정도로 신뢰를 쌓았으니까.

그냥 오해하도록 해야겠군.

가끔 날 날카로운 눈으로 째리던데, 이참에 교육을 좀 시켜놔야 한다.

“빠른 시일 내로 완료하도록 해라. 내 인내심을 시험하려고 하지 말고.”

“네, 네...! 마왕님...”

“그리고 최근 추적용 마물 개조가 끝났다고 했지? 유리아에게 붙여놓아라.”

“알겠습니다아...”

“네가...”

난 말을 삼켰다.

여러 일들을 하고 있으니 시간에 쫓기는 네 마음, 아주 잘 안다고 말해주려 했는데...

난 마왕이고 넌 내 수하니까. 당연히 날 위해 몸 바쳐 일해야지.

“아니, 아무것도 아니니라. 추적용 마물은 유승현에게도 붙여놓고, 파락스의 수하들을 내보내라. 위치는... 흠... 동아시아는 세 차례나 우리 마물들이 나타났으니 아프리카 정도면 좋겠군.”

“몇 마리나 내보낼까요?”

“알아서 처리해라. 적당한 피해를 끼치다가 레오나에게 진압될 정도면 된다.”

“네, 마왕님. 맡겨주세요.”

**

[어제 새벽, 모로코에 소머리를 한 인간형의 괴물이 다수 출몰해 피해를 끼쳤습니다. 하지만 초음속 전투기를 타고 날아온 비스트 슬레이어 레오나의 활약에 모두 소멸되었으며, 모로코 정부는 레오나에게 감사를.....]

[세계연합이사회에선 모로코의 사건을 두고 지구방위조약이 첫 선을 보인 순간이었다며, 이블리언 에너지 탐색기를 설치해준 캐시 박사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이후 모로코에 발생한 피해를 계산해 국가와 개인들에게 보상하겠다며.....]

연구실 안, 여러 대의 모니터에서 나오는 뉴스.

잠자코 뉴스를 보던 박사가 세화의 어깨를 두드렸다.

“잘했어. 정말 신속하고 체계적으로 움직여서 이번엔 피해가 얼마 없었어.”

“네... 하지만 구하지 못한 사람들이 있어요. 전 그게 너무 가슴이 아파요.”

“알아. 그래서 우리가 쉬지 않고 포탈 연구를...”

쿠당! 우당탕!

의자에서 굴러 떨어진 나 때문에, 세화와 박사의 대화가 끊겼다.

세화가 황급히 다가와 날 부축해주었다.

“지혁아!”

그녀의 걱정에도 대답하지 않은 내가 흥분에 가득 찬 목소리로 소리쳤다.

“돼... 됐다! 됐다고!”

연구실 안을 쩌렁쩌렁 울리는 내 외침.

떡진 머리를 하고 수염도 거뭇하게 난 상태로 방방 뛰는 난 누가 봐도 발명품을 발명한 공밀레였다.

박사가 놀란 낯으로 다가왔다.

“뭐야? 뭔데? 사고라도 쳤냐?”

“포탈이요! 워프 포탈! 완성했어요!”

“뭐!?”

까무러칠 듯 놀라는 박사.

흐흐... 잘 봐라, 더 놀라게 해주마.

“자, 보세요...”

난 캐시 박사와 함께 만든 손바닥 만 한 크기의 원형 물체를 두 개 들고 연구실 양끝에 던졌다.

그러자 물체가 철그럭하는 소리를 내더니, 사람 한 명이 올라갈 수 있을 정도의 크기로 늘어나면서 몸체를 바닥에 고정했다.

난 연구실 전경이 잘 보이도록 모션 카메라를 설치한 뒤, 그중 하나에 올라타고는 손에 든 버튼을 꾹 눌렀다.

“쏭! 잠깐만! 무턱대고 들어가면 네 몸이...!”

캐시 박사가 황급히 날 말리려고 해보았지만 늦었다.

위이잉!!

포탈 아래에서 나타나기 시작한 새하얀 빛은, 이미 내 몸 전체를 감쌌으니까.

그리고...

슈우욱!

난 순식간에 반대편에 설치해둔 포탈에 나타났다.

토할 것 같은 표정을 지은 상태로.

황급히 쓰레기통을 찾은 내가 그 안에 오늘 먹은 내용물을 뱉어냈다.

“우욱...! 웨에엑!”

어지럼증을 느껴서였다.

포탈은 현재 일반인의 몸인 내가 구역질을 할 정도로 적응하기 힘들었다.

하지만 강대한 힘을 가진 레오나라면 충분히 버틸 수 있으리라.

“지혁아! 괜찮아!?”

토악질을 해대고 있는 나에게 다가온 세화.

내가 한손을 들어 괜찮다는 제스처를 취했다.

토를 한 차례 하고 나니 괜찮아진 내가 주변에 널린, 기름이 묻은 수건으로 입을 닦았다.

캐시 박사는 이미 모션 카메라에 녹음된 워프 과정을 지켜보는 중이었다.

“뒤쪽으로 왜곡된 공간에 네가 있었구나. 맞지?”

“맞아요. 박사님의 이론이에요. 워프하려면 폴리머스로 만든 반물질이 필요한데 박사님이라면 충분히 만들 수 있겠죠?”

“넌... 너는...”

그녀답지 않게 말을 더듬는 박사.

떨리는 몸으로 나에게 다가온 그녀가 말했다.

“이런 말을 하기엔 자존심 상하지만... 넌 진짜 천재야. 우리 남편을 보는 것 같아.”

이거 엄청난 칭찬을 들었구만.

고맙지는 않다.

“이제 세화가 마음고생하지 않을 거에요. 각국에 포탈을 설치해놓는 건 박사님이 알아서... 헉!”

나는 말을 잇지 못했다.

날 향해 달려온 세화가 와락 안겨왔기 때문.

그녀를 위해 만들었다고 살짝 언급해줬더니 박사 앞에서도 눈치를 보지 않고 안긴다.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그녀의 등을 두드리던 내가 박사에게 물었다.

“과연 각국에서 이 포탈을 가만 놔두려고 할까요?”

“가만 놔둘 수밖에 없도록 만들어야지. 인증되지 않은 사람이 건드린다면 폭발하도록 장치를 설치해놓거나...”

“너무 과격한 거 아녜요?”

“내가 알아서 할게. 걱정하지 말고, 정말 수고했어. 작동법은 내가 말했던 대로 된 거니?”

“맞아요. 다 박사님이 설계한 대로죠. 조금 어지럽긴 한데 레오나로 변신한 세화라면 충분히 버틸 수 있을 거에요.”

“좋아. 오늘하고 내일은 푹 쉬어.”

“드디어 휴가를 받는군요. 휴우...”

그간 했던 고생을 일축한 내 한숨에, 박사가 피식 웃었다.

“그래. 넌 자격 있어.”

당연히 있지.

이러려고 포탈을 만든 건데.

내 흉계가 탄력을 받는구나. 아주 순조롭다, 순조로워.

박사가 포탈을 전 세계에 설치하고 나면, 다음은 디바이스 용량개조에 돌입한다.

일단 신비한 힘인 아이테르의 연구가 끝날 때까진 일부 기능만 수정할 수 있을 테지.

예를 들자면 디자인 수정이나 장비 탈부착 같은...

지금은 이것만 있으면 된다.

아이테르 연구가 끝나면 성적인 일들에 여러 효과들을 추가할 수 있을 테니까.

온갖 음흉한 흉계가 내 머릿속을 가득 채운다.

일단은 레오나의 디바이스를 만지작거리면서, 앞으로 추가될 비스트 슬레이어들을 위한 디바이스를 개발하면서 외관을 내 취향대로 바꿔주겠다.

다만 박사가 눈치채선 안 된다.

지금은 그저 숨겨진 기능으로만 만들자.

비스트 슬레이어들이 몸과 마음을 모조리 바치면서 떨어질 때, 세상이 그녀들을 향해 절대적인 믿음을 줄 때, 그때 터뜨리는 거다.

다음화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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