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6 새로운 만남
“야! 지혁아! 이거 봤냐?”
남자 동기가 휴대폰을 내 앞으로 내민다.
거기엔 악토아의 눈알을 향해 검을 내리꽂는 레오나가 있었다.
옛날 필름 카메라로 찍은 것 같은, 화질이 별로 좋지 않은 사진.
캐시 박사는 여러 방법으로 힘을 써서 이런 사진이나 영상을 남겨두지 않았는데, 이런 아날로그식은 어쩌지 못했다.
비스트 슬레이어의 명성을 높여주는 것들 중엔 이런 빈티지 물건들도 있었다.
“봤어. 인터넷에 돌아다니더라.”
“자세히는 안 보이지만 딱 봐도 예쁜 여자잖아. 게다가 현실의 슈퍼히어로라고. 아무런 생각도 안 들어?”
“글쎄...? 딱히?”
“머리가 하늘색인데 외국인인지 한국인인지 분간이 안 가네... 몸매도 미쳤던데 실제로 한 번만 보고 싶다.”
“넌 괴물이 나타난 것보다 저 여자의 얼굴에 더 관심이 가나보다?”
“그 괴물이 나한테 피해를 끼친 건 아니잖아. 난 사건이 있던 날 집에서 게임하고 있었다고. 게다가 처음에 나타났던 괴물에 비해서 피해도 얼마 없었다잖냐.”
월요일, 한국대는 악토아와 레오나의 얘기로 꽃을 피웠다.
어딜 가든, 어느 시간대든 그 이야기가 튀어나왔고, 레오나에 대한 것이 주를 이루었다.
반면 나이 좀 먹었다 싶은 사람들의 관심사는 괴물이었다.
어디서 왔는지, 왜 왔는지 진지하게 추론을 하기 시작했으며, 제대로 된 연구를 통해 대비해야 한다고 했다.
대한민국은 지금 전 세계에서 엄청난 관심을 받고 있었다.
세계연합은 물론 일반인들에게까지 마법소녀와 괴물은 엄청난 화젯거리.
정부에서 비밀리에 약물을 주사하여 키운 초인이다, 외계행성에서 온 새로운 종족이다 등등, 온갖 추측과 음모론이 난무했다.
심지어는 팬클럽까지 생길 정도였다.
카페가 생긴 지 하루도 채 안 됐는데 세계인들의 가입 러쉬로 회원 수가 이백만이 넘어갔다.
정작 그 화제의 주인공인 세화는 너무나도 창피해했다.
오후수업을 마친 나는, 정문에서 날 기다리고 있던 세화에게 푸념을 들었다.
“미치겠어... 온통 다 그 얘기뿐이야.”
“그야 그렇겠지. 괴물에 맞서 싸우는 마법소녀... 대체 누가 안 궁금하고 배기겠어?”
“마법소녀가 아니라 그냥 변신...”
“쉿. 목소리 낮추고 집에 가자.”
내 말에 자신의 실책을 알아차린 세화가 주위를 둘러보았다.
다행히 들은 사람은 없었기에, 그녀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머리가 복잡해. 박사님은 지금 뭘 하고 계실까?”
박사? 지금쯤 알아서 마물에 대한 대비책을 구축하고 있다.
이블라인 에너지도 나타나지 않고 있으니 바삐 움직이며 세계연합과 접촉하는 중이다.
나나 세화는 그냥 가만히 앉아서 돌아가는 상황을 보면 된다.
내가 방긋 웃으며 말했다.
“복잡한 생각하지 말고 들어가자. 박사님이 그랬잖아. 아무 생각 말고 현실을 살라고. 그리고 너 꼭 이 일을 하고 싶다며. 적응하려고 노력하는 게 낫지 않을까?”
“지금은 도저히 적응이 안 돼.”
“그럼 언급하지 마. 간단하잖아?”
“알았어...”
“돌아가면서 떡볶이나 사갈까?”
“아니. 그냥 가자... 가서 쉬고 싶어.”
“그래.”
세화는 동기들에게 내 오피스텔에 사는 걸 들킬까봐 걱정했다.
때문에 버스를 기다리는 척하며 나와 따로 갔다.
집에서 맥주를 꺼내 소파에 누운 난, 세화가 초인종을 누르길 기다렸다.
현재 그녀는 분명, 분명 나와 뭐라도 하고 싶을 것이다.
딩-동!
예상대로였다.
문을 연 내가 아무 말 없이 웃어주며 세화를 안으로 들였다.
그녀는 총총걸음으로 내 소파에 가서 등을 기대고 앉았다.
손엔 여러 종류의 과자를 든 채였다.
“웬 과자야?”
“맛있어보여서 사왔어... 나도 맥주 줘.”
“네가 직접 꺼내.”
“아 좀! 나 스트레스 받는단 말이야!”
돌연 빼액 소리를 지른 그녀.
어이가 없어진 난,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는 맥주를 꺼내 세화에게 던졌다.
그러자 세화가 당황한 손놀림으로 그것을 받더니 눈살을 찌푸렸다.
그녀가 귀엽게 투정을 부렸다.
“왜 던지고 난리야?”
“시끄러.”
칼같이 대답한 내가 세화에게서 멀찍이 떨어져 TV를 켰다.
이후 아무 말 없이, 무표정으로 예능 프로그램을 보았다.
과자를 입에 우겨넣다시피 하던 세화는, 그런 날 흘깃거리더니 발을 꼼지락거렸다.
그녀가 엉덩이를 슬쩍슬쩍 움직여 내게 다가왔다.
“지혁아. 화났어?”
“아니.”
“근데 왜 이렇게 차가워?”
“차가운 게 아니라 TV보고 있잖아.”
“재미없잖아.”
“재밌어.”
“예능 프로그램인데... 한 번도 안 웃었잖아.”
그 말에 대답하지 않은 내가 자세를 바꿨다.
팔걸이에 머리를 기대고 세화의 몸 양옆으로 다리를 올려 누웠다.
그러면서도 시선은 TV에 가있었다.
그런 내 눈치를 보던 세화가 가까이 다가온다.
난 딱히 그녀를 제지하지 않았다.
그에 얼굴색이 밝아진 세화가 내 가슴에 쏙 들어와 몸을 돌려 눕는다.
내 팔을 잡아 자신의 가슴 아래로 두기까지 한다.
그러더니 나에게 사과를 했다.
“내가 미안해.”
“뭐가 미안한데?”
“철없이 어리광부린 거...”
“잘 아네.”
“근데 난 네가... 너무 의지돼서...”
유승현은?
네가 힘들 때 가장 먼저 의지할 수 있는 사람 아니야?
이 질문들이 내 목구멍 끝까지 튀어나오려다 말았다.
세화의 대답이 두려워서 묻지 않는 게 아니다.
물어보라고 한다면 당장 물어볼 수 있다.
흔들어놓기도 좋고.
하지만 세화는 계속 유승현과 만나야 한다.
오랜 시간동안 만나며 나와 그놈의 사이에서 번민하고, 그렇게 천천히 내가 친 그물에 스스로 몸을 말고 들어와야 한다.
세화의 손을 만지작거리던 내가 말했다.
“난 내일 학교 끝나고 어디 갈 데 있어. 밤늦게나 돌아올 거니까 먼저 자.”
“어디 가는데? 저번에 말했던 그 비서 분 보러 가?”
“아니.”
“나도 같이 가면 안 돼? 저녁에 심심한데...”
“안 돼.”
세화가 손톱을 입으로 가져가 깨작깨작 씹었다.
목적지를 말해주지 않으니 짜증이라도 난 모양.
하지만 내가 또 화를 낼까봐 캐묻지는 않으려 하는 것 같았다.
“카드 줄 테니까 친구들이랑 놀러 갔다 오든지.”
“나 돈 있는데...”
“누가 뭐래? 그냥 써. 복지라고 생각해. 세계의 영웅을 위한 복지.”
“.... 그런 말 하지 마. 유치해...”
“어쨌든 쓰라면 써. 먹고 싶은 거 먹고, 사고 싶은 것도 사고 해.”
“.....”
“대답.”
“아, 알았어.”
만족스레 고개를 끄덕인 난, 세화의 얄상한 턱을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말했다.
“그리고 머리스타일이 너무 답답해 보이는데...”
“그래...? 펌이 풀려서 그런가봐. 내일 미용실 다녀와서 다시 넣을까?”
유승현은 세화의 이 청순해 보이는 머리스타일을 굉장히 좋아했다.
그러나 나는 저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스타일 자체는 괜찮은데, 그냥 유승현이 좋아하는 쪽이라 마음에 들지 않는 거라고 보면 됐다.
“좀 과감하게 바꿔봐. 난 목덜미가 보이는 게 좋아.”
“그... 생각해볼게.”
생각해본다고? 그럼 돌아왔을 때 머리스타일이 바뀌어있겠군.
입꼬리를 올린 내가 낮게 웃었다.
**
다음 날, 난 수업이 끝나자마자 대전까지 날아갔다.
유리아를 보기 위해서였다.
추적용 마물은 개조가 덜 끝나 아직도 위치밖에는 못 봤고, 감시카메라는 집 안까진 살피지 못한다.
그 때문에 이렇게 발품을 팔아야 했던 것이다.
‘유리아는 정부에서 공식적인 이민자로 분류하고 있으니 불법체류자는 아니다.’
그런데 어떻게 이민자가 될 수 있었던 걸까?
한국인과 결혼도 안 했고, 어디 취직하지도 않았다.
혼자 살고 있는 것도 확실하다.
누군가에게 도움을 받고 있을 가능성이 있지만... 감시카메라 상으론 수상해 보이는 사람은 없었다.
그저 유리아의 미모에 홀려 달라붙는 발정난 놈들만 있었을 뿐.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유리아가 살고 있는 곳으로 가고 있는데, 휴대폰의 문자 알림소리가 들려왔다.
확인해보니 카드 결제내역이었다.
한대거리에 있는 노래방에서 결제. 아무래도 친구들과 노래를 부르러 간 모양이다.
피식 웃은 내가 휴대폰을 집어넣으려 하는데, 세화에게 메시지가 왔다.
[나 동기들이랑 노래방 왔어. 끝나고 승현이 좀 보러 갔다 올게. 못 본지 꽤 됐잖아.]
허, 굳이 사족을 붙인다?
내게 질투라도 유발하려나보지?
마음대로 해라, 세화야.
네가 유승현한테 처녀를 따였다고 말하기라도 하겠냐?
난 화면을 터치해 답장을 보냈다.
[알아서 해. 나 바빠서 이제 문자 못 봐.]
휴대폰을 대충 우겨넣고 유리아의 집 근처로 간 내가 주변을 살폈다.
제법 그럴싸한 동네.
아파트도 있고, 상가도 있다.
카메라도 무척 많아 치안이 좋은 곳이었다.
난 내 경로의 감시카메라 화면을 조작하고, 유리아의 실시간 위치를 확인 한 뒤, 그 근처의 인적이 없는 골목을 찾아서 들어가 모습을 바꿨다.
꾸드득! 꾸득!
기괴한 소리와 함께 변형되는 몸.
몸이 약간 왜소해지고, 얼굴 전체에 주름이 약간 생겼다.
또 코와 턱에 풍성한 수염이 자라나며 50대 중년인처럼 변했다.
“아. 아.”
목소리도 잘 변해서 마음에 들었다.
그나저나 변신할 때의 기분은 너무 더러웠다.
특히 뼈가 다시 맞춰지는 것이 이질적이고 느낌이 구려 짜증났다.
속으로 그렇게 투덜거린 내가 다시 거리로 나왔을 때였다.
“저기요! 잠깐만...! 잠깐만요 아저씨!”
뒤에서 천사가 노래하는 것 같은, 얇은 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2탄의 히로인이자 막바지에 화살세례로 내 온몸에 구멍을 낸 존재.
유리아가 뒤에서 날 부르고 있었다.
‘너라면 잡을 거라고 생각했지.’
유리아는 무조건 날 잡게 되어있었다.
내 모습이 죽은 그녀의 아비와 판박이였기 때문이다.
완전히 똑같은 건 아니고, 핵심적인 부분이 닮아있었다.
가령 뒷모습, 몸집, 머리스타일 같은 부분이.
‘돌아보면 더 놀랄 거다.’
그리 생각한 내가 몸을 돌렸다.
시야에 금발머리를 한쪽 어깨 아래로 늘어뜨린 푸른 눈의 여자가 보인다.
여우와도 같은 눈매와 도톰한 입술, 새하얀 피부... 슈퍼모델의 기품을 물씬 풍기는 걸음걸이.
귀여움 한두 스푼이 들어간 세화와는 다르게 도도한 냉미녀 느낌을 물씬 풍기는 훤칠한 여자.
유리아 엘레나르였다.
그녀는 내 얼굴을 보고 경악의 경악을 거듭하고 있었다.
당연하지, 죽은 아비와 이목구비가 흡사했으니까.
저 도도한 얼굴이 구겨지는 모습이 참 보기 좋았다.
게임 내에선 저런 급격한 감정변화를 잘 보지 못했는데... 꽤 재미있다.
나는 어리둥절한 얼굴을 한 채 몸을 돌렸다.
“무슨 일이신지?”
이 또한 그녀의 아비와 비슷한 목소리.
낮고 담담하고 인자하기까지 한 중년 신사의 그것이었다.
말투만큼은 지구인의 것과 닮았지만.
유리아는 이번엔 속이 울렁거리는지 입에 손을 가져다대고 헛구역질을 했다.
“욱...!”
난 온몸으로 화들짝 놀란 중년인을 연기하며 그녀에게 다가갔다.
“저런... 괜찮아요? 체라도 한 것이 아닐까 싶은데... 약국이 어디...”
그녀의 시선이 서서히 올라와 나에게로 향했다.
믿겨지지 않는 표정과 눈빛.
푸른 홍채 사이에 있는 거뭇한 동공이 지진이라도 난 듯 떨린다.
그녀의 빨간 딸기 같은 입술이 벌어졌다.
그리고 그곳에서 지구엔 존재하지 않는 언어가 튀어나왔다.
“아,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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