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법소녀물 야겜 속 최종보스가 되었다-15화 (15/471)

EP.15 두 번째 변신

치이이익!

악토아의 산성액은 대단히 절륜했다.

그 어떠한 것이든 녹여버리는 미친 산성.

모습을 나타낸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주변은 이미 황폐화되어있었다.

그리고 나는...

“끄아아악!”

창문을 뚫고 날아온 산성액이 왼팔에 닿아 고통에 몸부림쳤다.

그런데 마르셀라야, 이건 좀 심하지 않냐?

그냥 화상 정도만 생각했는데 산성이 너무 강하잖아.

악토아가 나타난 순간 몸을 일반인처럼 바꿔버려서 더 아팠다.

돌아가면 싸다구를 올려쳐 교육을 좀 시켜야겠다.

천만다행히도 산성액은 극소량만 날아왔고, 내 살을 조금 녹이다가 이내 소멸됐다.

그리고 세화는...

투콰앙!

하늘색 빛을 두른 레오나로 변신한 채, 허공에 무지막지한 굉음을 내며 악토아에게 돌진했다.

끼이이익!

악토아는 레오나의 강대한 힘에 상당한 경계심을 가졌는지 모든 촉수를 그녀에게로 향해 산성액을 발사했다.

푸슉! 푸슉!

수천 개의 촉수 끝에서 나오는 산성액은 참... 징그러웠다.

구역질이 날 만큼 말이다.

레오나는 비약적으로 상승된 동체시력과 검으로 액을 쳐내고 있었다.

쾅쾅!

“괴짜! 당장 튀어나와!”

방문에서 들려오는 캐시 박사의 외침.

난 얼굴을 있는 대로 찌푸리며 문을 열었다.

그러자 박사가 피칠갑이 된 내 왼팔을 보고 크게 놀랐다.

“너 다쳤어!?”

“끄윽... 초록색 액체가 팔에 튀더니...”

“젠장!”

욕지거리를 내뱉은 그녀는 날 자신의 방으로 데리고 갔다.

그러고선 가방에서 소형 주사기를 꺼내 내 팔에 주사했다.

“진통제야. 헤로인보다 강한 진통효과를 가지고 있지만 부작용은 하나도 없어. 구하기 힘든 건데...”

알고 있다 이년아.

그리고 이 개 같은 년이... 지금 조수가 다쳤는데 아까워할 때냐?

중요한 순간이니까 참아준다.

고통이 순식간에 멎은 내가 신기한 듯 왼팔을 빙빙 돌렸다.

“우... 우와... 이거 효과가 무슨...”

“팔 돌리지 마 이 한심한 자식아. 근육이 손상되면 치료가 늦어지니까.”

“아, 예...”

머쓱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한 내가 말을 이었다.

“뭘 할까요?”

“빠르게 분석해야지. 일단 통신기부터 차.”

“예.”

박사가 내민 자그마한 통신기를 오른쪽 귀에 찬 내가 그것을 툭툭 두드렸다.

그러자 지직거리는 소리와 함께 바람을 가르는 소리, 무언가를 쳐내는 소리가 들렸다.

레오나의 머리에 있는 통신기와 연결되면서, 그녀의 주변 소음이 들리는 것이다.

음질 구린 거 봐라, 내가 따로 개량해주마.

“아아... 세화... 아니지, 레오나. 들려?”

그 말에 박사가 날 한심한 눈으로 바라본다.

그따구로 보지 마. 원래 네가 골라줘야 할 이름이었다고.

“레오나라고?”

“제가 고른 이름이에요. 어울리죠?”

“하아... 넌 이런 상황에서도... 됐으니까 분석이나 시작하자. 정찰기를 보내놨으니 곧 스캔 결과가 나올 거야. 그때까지 화면을 보면서 행동반경이나 약점 같은 걸 찾아봐.”

“예, 해봅시다.”

난 박사의 앞에 있는 노트북 두 개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그 때, 통신기에서 전자음이 발생하더니 레오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지혁이야?

세화의 목소리에 자신감을 더한, 완벽한 음색.

언제 들어도 귀가 정화되는 수준이다.

“맞아. 잘 들려? 저 괴물은 어때 보여?”

-잘 들... 으읏!

이쪽에 정신이 팔려 산성액 하나를 간신히 피한 그녀였다.

-잘 들려. 그 말대가리보다는 곤란한 것 같지만... 쉽게 처치할 수 있을 것 같아.

박사가 레오나를 나무랐다.

“방심하지 마.”

-네, 박사님.

이제 악토아는 산성액을 뿌림과 동시에 촉수를 휘두르기까지 했다.

하지만 레오나가 휘두른 거대한 검에 의해 속절없이 잘려나갔다.

촤아악! 끼이이익!

잔뜩 화가 났는지 산성액을 여기저기 흩뿌리는 악토아.

레오나는 그 무엇보다도 빨리 움직이며 놈이 주변에 피해를 끼치지 못하도록 액을 쳐냈다.

그러면서 악토아의 성질을 돋운 건 덤이었다.

그 사이 나와 박사는 악토아의 전신을 체킹하고 있었다.

“촉수가 잘려도 움직임은 그대로에요. 신경계가 따로 노는 거라고 생각되고, 몸이 바닥에 고정되어 있는 것 같아요. 이동할 염려는 없어 보이는데요? 만약 움직인다 해도 둔할 것이 분명하고...”

“그래. 나도 같은 생각이야. 스캔 결과는... 나왔다.”

악토아의 내부를 빠르게 살핀 박사가 곤란한 듯 말했다.

“물속에 잠긴 몸체 쪽에 항문으로 보이는 구멍이 있어. 그쪽을 노릴 수 있다면 좋겠지만... 몸통에도 촉수가 붙어있고, 수압 때문에 세화의 움직임이 느려질 거야. 너무 위험해.”

“촉수들 한가운데에 눈 같은 것도 있어요. 촉수는 잘라도 소용없었으니 그쪽을 노려보는 게 맞다고 봐요.”

“좋아. 잘했어. 너도 들었지? 현재 네 게이지는 62%니까 빠르게 접근해야 해.”

-네.

퍼엉! 퍼엉!

레오나의 주변에서 큰 소음이 발생했다.

그녀가 공중에서 발을 굴릴 때마다 공기가 터져나가면서 주변에 충격파를 발산하는 것이다.

그녀는 곧 악토아의 촉수를 착실히 베어 넘기며 접근하기 시작했다.

끼이이익!!

촉수가 사라질 때마다 레오나의 속도가 서서히 상승했다.

그녀는 얼마 지나지 않아 악토아의 눈 지척까지 접근할 수 있었다.

-하압!

큰 기합을 내지른 그녀가 눈에 검을 찔렀다.

그러나,

치지지직! 팅!

눈에 씌인 보호막에 가로막혀 검이 튕겨나가고 말았다.

그 대가는 컸다.

끼이익! 덥썩!

레오나의 균형이 흐트러진 순간, 악토아가 촉수로 그녀의 몸을 잡아 감아버린 것이다.

-꺄악!

소녀처럼 비명을 내지른 레오나가 버둥거려보았지만, 촉수는 이미 그녀의 몸을 완벽하게 봉쇄한 상태.

촉수의 압력은 대단했고, 손을 움직일 수 없는 레오나로선 그것을 떼어내지 못했다.

-크윽...! 이런...! 몸이...!

악토아는 레오나의 눈앞으로 촉수를 가져가 음흉한 움직임을 보였다.

마치 이제부터 네 모든 구멍을 탐해주리라... 라고 말하는 듯했다.

그런 악토아와 레오나의 모습을 지켜보던 박사가 소리쳤다.

“안 돼!”

이대로 가다간 레오나의 온몸이 부서지거나, 산성액에 녹아버릴 것 같다.

멍청한 년... 소리만 꽥꽥 지르지 말고 나처럼 해결책을 찾으란 말이야.

뭐, 고작 두 번째로 등장한 마물인데다 갑작스럽게 나왔으니 대비가 덜 된 것도 감안해서... 마음이 넓은 내가 이해해주마.

“박사님! 저 괴물의 눈에 검이 닿았을 때 주변에 스파크가 튀었어요!”

“나도 알아! 그게 뭐 어쨌다고!”

“전류로 이루어진 방벽일 수도 있으니 EMP탄이라도 쏴보라고요! 그냥 안 된다고만 할 겁니까?”

그 말에 퍼뜩 정신을 차린 박사가 키보드를 따닥거렸다.

그러자 레오나와 악토아에게서 멀찍이 떨어져있던 정찰기가 빠른 속도로 다가오더니, 악토아의 중앙에 자그마한, 겉이 단단한 물질로 감싸진 둥그런 공을 투하했다.

퉁!

악토아는 당연히 그 낯선 물체를 가만 두지 않았다.

놈이 촉수를 휘둘러 공을 쳐냈다.

휘익! 텅!

하지만 악토아는 몰랐다.

자신이 너무 강하게 공을 때렸다는 것을.

퍼헝! 파지지지직!

큰 충격을 받아 공중에서 폭발한 EMP탄이 악토아의 눈에 씐 보호막을 순식간에 무력화시켰다.

동시의 악토아의 몸체에 큰 충격을 줬다.

이건 나와 마르셀라의 작품.

보호막이 사라지면 전신에 충격을 받도록 개조해놓았다.

끼에에에엑!

고통스런 비명을 내뱉은 악토아가 발광을 떨었다.

그러면서 레오나의 몸을 잡은 촉수가 풀렸다.

이러면 끝난 것과 다름없었다.

통신기로 나와 박사의 대화를 유심히 듣고 있었던 그녀는, 침착함을 유지하고 있다가 촉수가 풀린 즉시 악토아의 눈을 향해 검을 던졌다.

-하압!

**

삑! 삑!

심박측정기에서 나오는 규칙적인 소리.

난 연구실에 있는 의료실 침상에 누워 눈을 감고 있었다.

정신을 잃은 건 아니고, 그냥 잠든 척한 거다.

“앞으로도 이렇게 하면 안 돼. 갑자기 튀어나왔다고는 해도 너무 주먹구구식이었어. 우린 준비가 필요해. 언제든 이런 일에 대비할 수 있는 준비가.”

주변에서 캐시 박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럼, 당연히 준비가 필요하지.

악토아는 레오나의 전투력 측정기 겸, 박사의 경각심을 폭증하도록 하기 위한 마물.

밖은 지금 난리가 난 상태다.

암두시아스에 이어 현실세계에선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괴물이 또 나타났으니까.

세계연합은 바삐 움직이고, 대부분의 강대국에서 사람을 한국으로 보내 이상 현상을 조사한다.

박사가 전 세계의 국가와 협력하기 위해 접촉을 시도하는 것도 이맘때쯤.

이제 박사는 본격적으로 비스트 슬레이어 본부를 가동하려고 한다.

여러 발명품을 만들고, 세화가 레오나로 변신하면 상황에 맞게 소모품을 쓸 수 있게끔 디바이스도 개조한다.

레오나라는 인물은 엄청난 유명세를 얻고 한국의 수호자로 이름을 날린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영웅으로 시작해서 전 세계의 아이돌이자 믿음직한 수호신이 된다.

박사는 레오나의 진짜 정체가 밝혀지지 않도록, 세화일 때 평범한 일상을 살아갈 수 있도록 애를 쓰고.

“지혁이는 괜찮아요?”

같은 자리에 있던 세화의 걱정이 담긴 질문.

박사가 대답했다.

“괜찮아. 흉터는 남겠지만 팔은 멀쩡할 테니 걱정하지 마.”

세화가 시무룩한 말투로 말했다.

“제가 조금만 더 신중했더라면...”

“아니, 넌 충분히 잘했어. 그저 그 괴물이 갑작스레 나타나서... 어휴... 이 녀석이 아니었더라면 정말 큰일이 생겼을지도 몰라. 대단한 녀석이긴 해. 머리도 좋고, 임기응변도 뛰어나고... 솔직히 난 당황해서 EMP 같은 건 생각하지 못했어.”

“지혁이의 팔이 피범벅인 것을 봤을 때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어요... 너무 아팠을 텐데... 내색도 안 하고...”

“진통제 효과가 상당해서 그래.”

저 개년을 그냥... 좋은 분위기에 초를 치고 지랄이야.

박사가 말을 이었다.

“그래도 의연하긴 하더라고. 뼈가 보일 정도로 살이 녹았는데 말이야.”

음...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봐주마.

다음엔 네 자랑은 말고 내 칭찬만 해라.

그렇지 않으면 모가지를 따버릴 수도 있어.

“일어나면 그만두려고 할 것 같지 않니?”

박사의 농담 반, 진담 반이 섞인 물음이었다.

“제가 못 그만두게 할 거에요. 전 지혁이가 필요해요. 박사님도 마찬가지구요.”

“훌륭한 인재이긴 하지. 그나저나 레오나가 뭐니? 레오나가.”

“그... 지혁이가 가명을 쓰자고 해서...”

“넌 동의했고?”

“그게...”

“그냥 써. 네가 쓰면 이 녀석도 여기에 소속감을 가질 테니까.”

“네... 어차피 그러려고 했어요...”

잠시 침묵한 박사가 진지한 말투로 말했다.

“현재 디바이스 충전량은 25%야. 내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겠지?”

“네... 충전시켜놓을게요...”

“그래. 언제 또 이블리언 에너지가 발생할지 모르니 항상 대비해둬. 난 연구할 게 있으니 나가볼게. 이 녀석이 깨어나면 말해. 집에 데려다줄 테니.”

“알겠어요.”

박사가 의료실을 나가고 얼마 뒤, 세화가 은근슬쩍 내 손을 잡아왔다.

가녀린 그녀의 손이 차다.

이제 슬슬 눈을 뜨자.

“끄응...”

내 힘겨운 신음에 세화가 화들짝 놀란다.

“지혁아! 괜찮아?”

“세... 세화?”

“나 맞아. 팔은 좀 어때? 필요한 거 있어? 물 갖다 줄까?”

“하나씩... 하나씩 물어봐.”

“미안...”

지그시 눈을 뜬 내가 세화를 빤히 쳐다보았다.

내 걱정이 가득하구나. 괜히 뿌듯하다.

“나 물...”

“물? 알았어. 잠깐만...”

세화가 허겁지겁 물을 떠와 탁상에 놓고, 내 상체를 소중한 물건을 다루듯 만지며 조심스럽게 일으켰다.

그리고는 물을 내 입에 가져다댔다.

물을 한 모금 마신 내가 팔을 바라보았다.

“멀쩡하네...? 아까는 뼈가 보였는데...”

“괜찮을 거래. 그리고 걱정했어. 네가 어떻게 될까봐... 미안해.”

“네가 왜 미안해?”

“내가 조금만 더 빨리 변신했더라면 네가 다치지 않았을 수도 있었잖아.”

“에이... 그건 아니다. 그 말미잘 괴물은 갑작스럽게 튀어나왔어. 그러고선 얼마 뒤에 네가 공중에서 날아가더라. 그 정도면 충분히 빨리 나간 거지.”

세화는 대답하지 않고 내 눈만 바라보았다.

내가 쑥쓰러운 듯 머리를 긁고 말을 이었다.

“그리고... 모니터로 네 변신한 모습을 제대로 봤는데... 진짜 예쁘더라. 머리카락도 길어지고 색깔도 바뀌었던데... 그걸로 염색하면 안 되냐?”

내 실없는 농담에 세화가 픽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힘 빠진 얼굴로 한참 킥킥대던 그녀가 말했다.

“돌아가자. 박사님이 데려다주신대.”

“그래, 돌아가야지. 정신이 너무 피곤해. 내 방 침대가 절실하다. 요 며칠간 너무 많은 일이 있었어.”

세화의 얼굴이 붉어졌다.

많은 일이 있었다고 하니 어제 밤에 일어난 일을 상기한 것이리라.

“그... 지혁아.”

“왜?”

“어제 밤에 있었던 일 있잖아...”

“아무한테도 말하지 않을게.”

“응...”

“돌아가자. 빨리 집에서 쉬고 싶다.”

“그대로 있어. 내가 도와줄게.”

세화의 부축을 받으며 침대에서 나온 내가 생각했다.

세 번째 마물은 조금 천천히 풀어야겠다고.

대신 그냥저냥 인간들도 상대할 수 있는 허접한 것들은 전 세계에 틈틈이 풀어놓을 생각이었다.

그래야 박사가 수월하게 발품을 팔 수 있을 테니까.

그리고 세화를 내 취향으로 바꿔놓으면서, 슬슬 유리아에게 접근해야겠다.

지구인인 로제... 즉, 스텔라는 스스로 한국에 올 때까지 기다려도 된다.

하지만 유리아는 다른 세상에서 온 이상, 원래보다 훨씬 일찍 온 이상 오랜 시간 가만히 둘 수는 없었다.

내 머릿속이 온갖 계획으로 굴러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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