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18화 〉 무안들외전 175. 도날드 바이든의 사과
* * *
러시아의 멸망
그 원인에 대해선 세계 최고의 정보력을 가지고 있는 미국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원인 조사를 위한 특수부대를 몇번이고 파견했지만 모두 허사로 돌아갔다.
근처에만 가도 모든 첨단 장비들이 먹통으로 만들어버리는 원인불명의 강력한 자성과 빙하기를 연상시키는 혹한의 추위가 그들의 접근을 허락치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미국조차 알아내지 못한 멸망 원인에 대해서 여러가지 가설이 나오고 있는 상황이었다.
환경오염에 의해 파괴당한 지구가 자정작용을 위해 인간을 멸망시키기로 결정했다던가
다량의 핵실험으로 인해 만들어진 대량의 먼지가 하늘을 뒤덮어 빙하기가 찾아왔다던가
얼음폭풍을 일으키는 대재앙급 괴수가 러시아를 쑥대밭으로 만들었다던가
첫눈처럼 아름답기 그지없는 마녀가 얼음의 저주를 내려 러시아의 국토를 영원히 봉인시켰다는던가
운석의 충돌로 인해 발생한 러시아 전체에 재해가 닥쳤다던가
꽤나 허무맹랑하면서도 그럴듯한 가설들이 난립을 하였다.
하지만 모든 가설들은 그저 추측에 기인한 것일 뿐
누구 하나 근거있는 해답을 내놓진 못하는 상황이었다.
'저놈이..러시아를..멸망시켰다고?'
그런 가운데 눈앞에 남자가 주장을 하였다.
스스로가 러시아를 멸망시킨 당사자라고
수틀린다면 미국 또한 같은 꼴로 만들어버리겠다고
처음 그 말을 들었을 땐
개소리라고 생각하였다.
금사자, 레오나를 압도하는 힘을 인정하긴 하지만 일개 개인의 몸으로 러시아라는 강대국을 무너뜨리기엔 한계가 있다는 생각이 든 까닭이었다.
'....하지만..거짓을 말하는..눈빛이..아니였다.'
문제는 남자의 눈빛이었다.
한점의 흔들림없는 올곧은 눈빛.
그 눈빛 속에선 일말의 거짓조차 찾아볼 수 없었다.
한치의 거짓없는 진심인 것이다.
러시아를 멸망시켰다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발언이
진심을 눈치챈 순간
동공이 쉴새없이 흔들렸다.
몸이 가늘게 떨려오기 시작하였다.
압도적인 공포
러시아라는 강대국조차 아무렇지 않게 멸망시킬 수 있는 압도적 무력을 지닌 초월적 존재 대한 본능적인 공포가 물밀듯 차올라 전신을 휘감은 것이다.
'나는...대체 무슨 짓을..저지른 거지!?'
덜컥 겁이 났다.
인간의 한계따윈 한참전에 초월한 존재를 몰라보고 시건방진 태도를 취하였다.
그를 모욕하고
그의 연인들에게 폭언을 가하기까지 하였다.
무엇보다 그의 자식까지 씹어먹겠다던 홀랜더의 모욕.
필시 여유롭던 그의 표정이 바뀐 건 분명 그 모욕의 영향일 것이다.
'수습해야해..어떻게든....최대한 빨리'
당장 수습해야했다.
만약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미국 또한 러시아와 마찬가지로 멸망을 면치 못할 것이다.
인구나 최신무기따위로 어찌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니였으니
'하지만..어떻게..어떻게 해야하지?'
분명 그에게 미국에 대한 인식은 최악일 것이다.
뭘 어디서부터 어떻게 수습해야할지 감조차 잡히지 않았다.
그렇게 얼마나 고심을 하였을까
".......만약 지금까지 일어난 모든 것들을 없던 일로 하겠다면.....조용히 넘어가주실 수 있겠습니까?"
오스틴은 한층 공손해진 말투로 그에게 되물었다.
명백한 항복 선언
미 국방장관인 자신을 모욕한 것도
아메리카 최고의 히어로이자 평화의 상징인 홀랜더의 죽음도
아메리카 최고의 슈퍼스타이자 최대 전력 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는 히어로집단인 세븐 스타즈의 죽음도
모두 불문으로 부치겠다는 건 명백한 항복 선언이었다.
오직 미국의 안전한 보존을 위해 자국에 대한 자부심과 미 국방장관으로서의 자존심따윈 저 멀리 내던진 채 오직 미국의 안전만을 보장해달라는 굴욕을 감수하기로 한 것이다.
"싫은데?"
하지만 그런 오스틴의 결의에도 불구하고 선우의 태도는 싸늘하기 그지 없었다.
그가 자존심을 꺾든 자부심을 꺾든
이미 감정이 상한 선우 입장에선 하등 상관없는 짓이었기때문이었다.
"어...어째서입니까!?"
오스틴 장관은 난감한듯한 표정을 지은 채 되물었다.
자존심과 자부심을 꺾고 굴욕마저 감수하였다.
그런데 어찌 저리 부정적인 반응을 내보인다는 말인가
"없던 일로 하기에는 내 감정이 꽤 많이 상했거든."
선우는 북풍한설처럼 싸늘하기 그지없는 눈빛으로 그를 내려다보며 입을 떼었다.
시건방진 태도 정도는 이해해줄 수 있었다.
미 국방장관쯤 되는 양반이 세상에 무서울 게 어디있겠는가
콧대가 하늘에 닿을듯 한없이 높은 것도
어줍잖은 무력으로 강행돌파하려고 했던 것도
모두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내 여인들과 아이를 건드는 건 선넘었지.'
독고령에게 고문에 가까운 구타를 가하고
요랑과 뱃속에 있는 아기까지 모욕한 홀랜더의 언행을 도저히 넘어갈 수는 없었다.
죽음마저 부족할 정도로 감정이 상한 것이다.
그런데 어찌 그저 퉁치는 걸로 끝낼 수 있겠는가
".....감정이 상한 것에 대해선.....직접 머리 숙여 사과하겠습니다....부디...노여움을 풀어주십시오."
꾸벅
오스틴 장관은 그 무거운 머리를 한치의 망설임없이 숙여버렸다.
미 국방장관으로서의 자존심보단 그의 분노를 잠재우는 게 우선이라는 판단이 든 까닭이었다.
"부족해."
"....무릎을 꿇라면 꿇겠습니다."
"그것도 부족해."
"심심한 위로가 될 수 있도록....물질적인 보상을 하도록 하겠습니다....돈이 되었든 보석이 되었든...주식이 되었든...뭐든 원하는 만큼 제공하도록 하겠습니다!"
오스틴 장관은 다듭한 어조로 말을 잇기 시작하였다.
"난 물질적인 보상같은 걸 원치않아."
이미 차고 넘칠정도로 부귀를 누리고 있는 선우였다.
물질적인 보상따위에 혹할 리 만무하였다.
"그렇다면....원하는 걸..말씀해주십시오! 뭐든..뭐든 하겠습니다!..부디..자비를 베풀어주십시오!"
오스틴 장관은 떨리는 목소리로 간절히 빌기 시작하였다.
이대로 관계를 파탄낼 수는 없었다.
어떻게든 용서를 구해
미국의 안전을 도모해야하는 것이다.
스윽
선우는 간절히 용서를 구하는 오스틴을 담담한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사과."
그리고 이내 천천히 말을 이었다.
"내가 원하는 건 진심이 담긴 사과야."
"사과라면 얼마든지 하겠습니다! Mr.장! 백번 천번이라도 하겠습니다! 무릎을 꿇고 머리를 처박고 구두를 핥으라고해도 얼마든지 감내하겠습니다!"
오스틴 장관은 화색을 띈 채 언성을 높이기 시작하였다.
멸망의 기로에 선 상황이었다.
사과정도로 값싸게 끝낼 수만 있다면 얼마든지 감내할 수 있었다.
미 국방장관의 명예따위는 저 멀리 내던진 채
그 어떤 치욕스러운 상황도 충분히 행할 수 있는 것이다.
"당신의 사과를 바라는 게 아니야, 장관."
"네에!? 그게...무슨?!..그렇다면 혹시 홀랜더의 상관인 제임스의 사과를 바라시는 겁니까?! 그 또한 얼마든지 행할 수 있습니다! 미국을 위해서라면 그 또한 머리를 처박고 Mr.장의 구두를 핥을 것입니다!"
"그 녀석도 아니야, 애초에 관심조차 없다."
"그럼..대체..누구의 사과를 원하시는 겁니까?..대체."
오스틴 장관은 모르겠다는듯한 표정을 지은 채 되물었다.
이번 사태의 최고 책임자는 미국방장관인 자신과 히어로주식회사의 CEO인 제임스였다.
그런 자신들의 사과가 아니라면
대체 누구의 사과를 원하는 것이란 말인가
"도널드 바이든."
순간 오스틴 장관은 눈을 동그랗게 치켜뜨기 시작하였다.
전혀 예상치 못한 발언에 딩혹스러움을 느낀 것이다.
"지...지금...뭐라고...하셨습니까?"
혹여 잘못 들은 게 아닐까
다시금 되물었다.
"도널드 바이든 몰라? 당신네 나라 하얀지붕 아래에 사는 양반말이야."
선우는 그가 새겨들을 수 있도록 또박또박 발음하기 시작하였다.
"내가 원하는 건 도날드 바이든의 사과다."
"!?!?!"
그리고 그 또렷한 대답에 오스틴 장관의 눈동자가 화등잔만하게 커지기 시작하였다.
그의 말도 안되는 요구에 경악을 금치 못한 것이다.
도널드 바이든이 누구란 말인가
세계최강대국
아메리카의 국가원수이자 정부수반이고
미군의 총사령관이자 통수권자로서 미군을 통솔 및 통수하는 절대 권력자이면서
전 세계 유일한 초강대국의 수장으로서 국제사회에서 그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세계의 실질적인 지배자가 아니던가
그런 도널드 바이든에게 공식적인 사과를 요구하다니!?
어찌 경악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모든 책임은 저와 제임스, 그리고 홀랜더에게 있습니다! 그런데 어찌 대통령의 사과를 원한다는 말입니까!"
오스틴 장관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듯한 표정을 지은 채 언성을 높였다.
"결국 최종 결정권자는 도날드 바이든 대통령 아니야? 당신네들이 중국으로 날아오는 걸 그 양반이 수락했을 거 아니야?"
"그..그건 그렇지만.."
"그렇다면 대통령이 끝까지 책임져야하지 않겠어? 최종 결정권자답게 말이야."
"아무리 그대로 너무 과한 요구입니다!"
과했다.
너무 과해 도저히 소화시킬 수 없는 요구였다.
세계 최강대국의 통치자가
일개 동양인에게
그것도 국가전력을 죽여버린 불구대천 원수에게
공식적인 사과를 할 리 만무하였다.
이는 미국 전체의 명예가 걸린 일이었으니
'더욱이..도널드 바이든은 누구보다 명예를 중요시한다.'
실리보다는 명예를 중시하는 자였다.
그런 그가 드높은 자존심을 꺾고 굽히고 들어가진 않을 것이다.
일개 동양인에게 머리 숙여 사과한다면 그의 명예가 한없이 밑바닥으로 추락해버리고 말테니
"그래서 수용할 수 없다는 건가?"
선우는 담담한 어조로 되물었다.
".....대통령은 무리입니다..하다못해 부통령으로 조건을 낮춰주신다면...."
부통령이라면 설득해볼 만했다.
대통령도 스스로 명예를 실추시키는 게 아니라면 충분히 수용할 것이다.
"타협할 생각같은 건 없다."
하지만 선우는 그의 제안을 단호하게 거절하였다.
그의 결정은 확고하기 그지없었으니
"도널드 바이든이 직접 머리를 숙여 사과하지 않는다면 러시아와 마찬가지로 미국을 석기시대로 회귀시켜주겠다."
선우는 한치의 표정변화조차 없이 살벌하기 그지없는 협박을 내뱉었다.
"................"
오스틴 장관의 얼굴이 한없이 심각해지기 시작하였다.
석기시대로의 회귀
평소라면 코웃음을 쳤을 발언이지만
지금은 도저히 웃음을 지을 수가 없었다.
눈앞에 저 무시무시한 협박을 내뱉는 남자는 충분히 그럴 만한 능력을 가진 초월적인 존재였으니
"선택해라, 어떻게 할거지?"
"............."
오스틴 장관은 차마 쉽사리 답을 할 수가 없었다.
수긍하자니 도널드 바이든 결단코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고
그렇다고 거절하자니 멸망의 시기를 앞당기는 것 같았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상황에 놓여지게 된 것이다.
"도널드 바이든 대통령이 직접 사과토록 하겠습니다."
그때 곁에 있던 레오나가 끼어들어 멋대로 약조를 하였다.
"레오나!"
오스틴 장관은 화들짝 놀라며 언성을 높였다.
자신을 제쳐두고 어찌 제멋대로 결정을 한다는 말인가
"방법이 없지 않습니까? 이대로는 저자를 적으로 돌리게 될 것입니다."
"대통령이 수락할 리 없네!"
"잘압니다, 그 성격에 자존심 꺾는 짓은 절대 하지 않을테니까요."
레오나는 동의한다는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욕심으로 가득한 노인네였다.
쉽사리 허락할 리 없었다.
"하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단 낫다고 생각합니다. 장관."
레오나는 담담한 어조로 소신을 밝혔다.
타협할 리 없겠지만 그럼에도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면 평생 후회할 것이다.
사랑하는 조국을 지키는 작은 가능성마저 무시하였다는 사실에
"..............."
순간 오스틴 장관은 머리에 망치를 맞은듯 멍한 표정을 지었다.
틀린 말이 아니란 생각이 든 까닭이었다.
조그만 가능성이라 무시하며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면 이룩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0%와 0.000001%는 엄연히 다른 것이니
"자네 말이 옳네, 내 괜한 고민을 했군."
이내 오스틴은 고개를 주억거리며 동의를 표하였다.
"내 직접 도날드 바이든 대통령을 사과할 수 있도록 설득하겠네.....약간의 말미를 줄 수 있겠는가?"
그다음 천천히 시선을 돌려 선우를 응시하였다.
그리고 차분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한달."
잠시 그를 응시하던 선우가 입을 떼었다.
"그 이상은 시간을 줄 수 없다. 장관."
"...........알겠네, 내 최선을 다하도록 하지."
오스틴은 수긍한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는 마음만 먹는다면 얼마든지 미군을 멸망시킬 힘을 가진 존재였다.
그런데 구태여 사과를 받겠다고 한달을 기다려준다는 건 어느정도 이쪽의 사정을 헤아려주겠다는 뜻일 것이다.
"......그럼 우린 이만 가보도록 하겠네..."
오스틴은 십년은 폭삭 늙어버린 얼굴로 터덜터덜 걸음을 옮기기 시작하였다.
레오나 또한 수심가득한 표정으로 그 뒤를 조심스레 따랐다.
이계인을 회유해 차원 너머의 비밀을 알아내고 대륙을 집어삼키려던 야망을 불태우던 그들은
그렇게 어떠한 성과도 이룩하지 못하고 막대한 손실만 본 채 그대로 미국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초강대국의 권력자라는 지위가 절로 초라해지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