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협지 안으로 들어와버렸다-1395화 (1,396/1,419)

"흐극...흐극...흐극...흐으윽....으으윽..흐윽.."

그녀는 하염없이 울고 또 울었다.

어둠의 마력을 갖고 태어나게 만든 세상에 대한 원망.

채찍으로 얻어받은 것에 대한 고통

어둡고 서늘한 다락방 속 홀로 있어야한다는 외로움

부모에게조차 사랑받지 못하는 스스로에 대한 연민

소중한 친구를 눈앞에서 잃게 된 절망감.

수많은 복잡한 감정들이 얽혀 그녀의 눈물샘을 끊임없이 자극하였다.

"하아아..봐봐..재밌다니까? 하하하하하하!"

알버트는 그녀의 울음소리를 들으며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학대를 받아 죽기직전까지 몰려도

다락방에 가둬 굶기직전까지 내버려두어도

따돌리고 모욕하며 차마 입에 담지 못할 비난을 가해도

언제나 담담히 참아내던 그녀가

기어이 눈물을 내보였다.

자신이 결국 그녀를 정복한 것이다.

어찌 기쁘지 않을 수 있으랴

"흐허어어어엉...흐어어어어엉...으으으윽...으아아아아앙!!"

소녀는 눈물 콧물 가리지 않고 울고 또 울기 시작하였다.

"혼자 보기 아까운데? 하하하하하하하하"

알버트는 그런 소녀를 바라보며 흥겨운 웃음을 터트렸다.

상반된 두 감정들이 다락방 전체에 울리기 시작하였다.

저벅 저벅 저벅 저벅 저벅

그때 다락방 아래 계단을 밟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것 좀 보세요! 제가 이 악마같은 년을 울렸어요!"

알버트는 계단쪽을 바라보며 해맑게 웃었다.

필시 아버지 아니면 어머니일 것이란 생각이 든 까닭이었다.

"어?"

하지만 다락방에 올라온 건 예상과는 전혀 다른 사람이었다.

검은 머리에 섬뜩하리만큼 고요한 눈동자를 가진 남자.

지금껏 단한번도 마주한 적 없는 이가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악마는 너지, 이 빌어먹을 새끼야."

남자는 짜증 어린 눈빛으로 알버트를 노려보며 입을 떼었다.

"......아저씨는...누구신데요!"

"악마사냥꾼."

스스로 악마 사냥꾼이라고 지칭한 남자는 주먹을 들어올렸다.

휘이이익

그리고 가벼이 후려쳐버렸다.

콰지지지직

그 순간 알버트의 머리통이 터져버렸다.

주먹에 담긴 거력을 17세 소년의 연약한 머리로는 도저히 견뎌낼 수 없던 까닭이었다.

털썩

곧이어 머리를 잃은 알버트가 그대로 바닥에 널부러지게 되었다.

".............."

소녀는 꿈과도 같은 광경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눈앞에 일어난 일들이 너무나 비현실적으로 느껴진 까닭이었다.

스으윽

그때 알버트의 머리통을 부순 남자가 그녀를 향해 천천히 투박한 손을 뻗었다.

"가자."

"어..어딜요?...저는..어디에도 못가요....부모님이 허락지 않았어요.."

"그럼 이 더럽고 냄새나는 곳에 계속 있을래?"

남자는 주위를 둘러보며 말을 이었다.

아무리 좋게봐도 시궁창이라는 말이 절로 나오는 공간이었다.

"...하지만..전.....전.."

소녀는 여전히 망설이는듯 입을 떼었다.

여기있는 건 죽는 것보다 싫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쉽사리 저 손을 잡을수 없었다.

만약 여기서 멋대로 나간다면

부모님이 크게 실망한 것이다.

바라마지 않던 이상적이고 화목한 가족이 될 기회를 영영 잃고 마는 것이다.

어찌 망설이지 않을 수 있으랴

"낳아줬다고 해서 다 부모는 아니야."

남자는 망설이는 그녀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부모라고 해서 모두 가족인 건 아니기도 하지."

"................"

"네 부모는 자격이 없는 인간들이야, 가족이라고 칭할 수조차 없는 존재지, 여기 남는다면 넌 평생 받지도 못할 애정을 갈구하며 하루하루 절망하며 살아가게 될 거야."

".하지만...하지만..전..기댈 곳이..없어요....부모님이 아니면...전...전..그 누구에게도..사랑받을 수 없어요...누구도..제 가족이 되어주지 않아요.."

소녀는 슬픈 눈빛으로 남자를 응시하며 말을 이었다.

부모 자격이 없다는 건 그녀 또한 내심 알고 있던 사실이었다.

그 어떤 부모도 배아파 낳은 자식에게 이런 비정상적인 학대를 하진 않을테니까.

하지만 그런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그녀는 쉬이 나설 수 없었다.

부모 자격조차 없는 쓰레기들이지만 그들이 아니라면 자신은 그 누구에게도 기댈 수 없을테니

그 누구에게도 사랑받을 수 없을테니

"내가 널 사랑해주겠다."

"..네에?"

"그리고 기댈 수 있는 가족이 되어주지."

".....농담하지마세요.."

"농담아 아니다."

남자는 한치의 망설임조차 없는 눈동자로 소녀를 응시하였다.

"........전...보잘 것 없는 어린아이예요...."

"내 고향에선 어린아이를 잠재된 미래를 가지고 있는 꿈나무라고 부르지."

"전.....음침하고...감정기복이 없어서..마녀같다는 말도 듣고 살아요."

"나이에 걸맞지 않게 성숙하다는 증거다, 마녀? 그건 멍청이들이 지껄이는 개소리다."

"....전....토끼를....친구로 삼는....이상한 아이예요."

"전혀 이상하지 않다, 다른 생명체을 소중히 대한다는 건 그만큼 감성적이고 이타적이라는 증거이니."

".....전...그러니까..전...어둠의 마력을 타고났어요.....죽을만한 상처를 입어도 오히려..회복해버려요...마을사람들은 저보고....악마의 저주가 씌인 아이래요."

"오히려 좋다, 죽지 않는다면 널 더욱더 오래볼 수 있을테니까."

".....그러니까..전...그러니까....그.."

남자의 단호한 태도에 당황한 소녀는 말을 더듬기 시작하였다.

뭐든 좋게 해석해주고 긍정해주는 남자의 태도에 무어라 답해야할지 판단이 서지 않은 까닭이었다.

"스스로를 낮추려 하지말거라."

그러자 남자가 이내 서서히 말을 이었다.

"너는 있는 그대로 소중한 아이니."

그리고 따스한 미소를 짓기 시작하였다.

피이잉

순간 눈물이 핑돌았다.

주르르르륵

더불어 눈물이 쉴새없이 흘러내리기 시작하였다.

있는 그대로 소중한 아이.

살면서 처음 들어본 말이었다.

죽어버리라고

너같은 건 없어져야한다고

태어난 것 자체가 저주라고

마을사람들뿐 아니라 가족조차 자신을 부정하고 깎아내렸다.

그런데 이 난생처음 본 남자가 말하였다.

스스로 깎아내리지말라고

너는 있는 그대로가 소중한 아이라고

감격이 차오를 수밖에 없었다.

난생처음 느껴본 인정과 호의였으니

"슬픈 일이 떠오른 것이냐?"

남자는 그런 소녀를 바라보며 걱정스레 물었다.

도리 도리 도리

"그렇다면 어찌하여 우는 것이냐?"

"기뻐서...흐으윽...으윽..기뻐서..우는 거예요..으윽.."

소녀는 먼젓번과 마찬가지로 눈물은 물론이고 콧물까지 질질 흘리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그 표정은 그전과는 전혀 달랐다.

절망 어릴 때와는 달리 행복함과 감격이 잔뜩 떠올려져있는 것이다.

"이정도로 감격하면 섭하다, 세상에는 더욱더 행복한 것들이 가득하니."

스으으윽

남자는 다시금 손을 내밀었다.

"어떠느냐? 나와 가겠느냐?"

"네에!"

덥석.

소녀는 해맑게 웃으며 내밀어진 손을 붙잡았다.

솨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그와 동시에 온사방에 찬란한 빛이 흩뿌려지기 시작하였다.

**********

파르르

길다란 속눈썹이 파르르 떨리기 시작하였다.

스르르륵

그와 함께 고운 두눈이 서서히 뜨여졌다.

그러자 순백색의 하늘이 시야를 가득 메우기 시작하였다.

의아함이 들었다.

저 순백의 하늘은 무엇이란 말인가

"깨어났나보군."

그때 익숙한 목소리가 파고들기 시작하였다.

휘익

재빨리 고개를 돌렸다.

그 순간 볼 수 있었다.

여유로운 미소를 지은 채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남자.

장선우의 모습을

"그대로군...그대가 나를 구해주었어."

키르케는 차분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뭐 기억나는 거라도 있나봐?"

"자세한 기억은 나지 않아, 하지만 감정은 그대로 남아있어....그대를 볼 때면..이 두 가슴이 벅차오르고...따스한 온기가..느껴져..필시..내 안의 공허함을 채워준 건 그대겠지..."

덥석

키르케는 수박통만한 커다란 가슴을 양손으로 움켜쥐며 말을 이었다.

꽤나 야릇한 모습이 시각을 즐겁게 만들어주었다.

"고마워....진심으로 고마워, 그대가 아니였다면..난 마음의 감옥에서 도저히 헤어나올 수 없었을 거야."

꾸벅

이내 몸을 일으켜세운 키르케가 고개 숙여 진심으로 감사를 표하였다.

그가 아니였다면 마음의 감옥에 갇힌 채 영원히 빠져나올 수 없었을 것이다.

육신만 살아있고 넋이 나간 살아있는 시체가 될 뻔한 것이다.

어찌 감사하지 않을 수 있으랴

"감사인사를 들으려고 한건 아니다, 내 나름 용건이 있어, 겸사겸사 네 정신을 일깨운 것 뿐이니."

"그럼에도 고마운 건 고마운 것이지.."

"정 고마우면 내게 적극적으로 협조하는 게 어때? 애초에 널 일깨운 건 협조를 위함이었으니 말이야"

"애석하게도 그 청은 들어줄 수 없을 듯 하구나."

키르케는 고개를 살짝 내저으며 말을 이었다.

"역시 말뿐인 건가? 꽤나 실망인데."

"말뿐이 아니다, 난 진심으로 네게 고마워하고 있단다. 내 목숨을 달라고한다면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줄 수 있을 만큼."

키르케는 진심 어린 눈빛으로 그를 응시하며 말을 이었다.

"하지만 배신은 할 수 없다, 마왕님은 모두에게 외면당한 채 외롭게 살아가던 나를 인정해주시고 은혜를 내려주신 은인이야.....그런 마왕님을 배신할 수는 없단다."

키르케는 단호한 표정을 지은 채 입을 떼었다.

도저히 배신은 할 수 없었다.

그에게 느끼는 은혜로움과

마왕에게 느끼는 은혜로움은 우열을 가릴 수 없을 정도였으니

"하아...역시 쉽지는 않네."

선우는 아쉬운듯한 표정을 지었다.

쉽게 해결될 것이라 생각지는 않았지만

상황이 막상 이리 되니 실망감이 든 까닭이었다.

"네게는 미안하게 생각해....그러니..대신이라고는 뭣하지만 배신을 제외한 것이라면 그 어떠한 청도 들어주도록 하마......네게 느끼고 있는 은혜 또한 진심이니."

키르케는 차분한 어조로 말을 잇기 시작하였다.

"어떠한 청도 말인가?"

"물론. 무엇이든 들어주마. 나를 구렁텅이 속에서 꺼내준 그대를 위해서."

키르케는 고개를 주억거리며 말을 내뱉었다.

"말을 바꾸거나 하진 않겠지?"

"난 쉽사리 말을 바꾸는 염치 없는 여자가 아니란다."

키르케는 호언장담을 하였다.

선우가 무엇을 요구할지는 알 수 없었지만 거부할 생각따위는 추호도 없던 까닭이었다.

절망의 구렁텅이 속에서 꺼내준 그를 위해서라면 목숨을 내놓으라는 말조차 기꺼이 수행할 수 있었으니

"좋아, 믿어보지, 키르케."

선우는 히죽거리며 말을 이었다.

무엇이든 들어주겠다는 그녀의 청이 무척이나 마음에 든듯한 모습이었다.

"그래, 그럼 어디 마음껏 말해보렴, 네가 내걸 조건이 무엇인지 말이야"

키르케는 올곧은 눈빛으로 선우를 응시하며 말을 이었다.

"내가 원하는 건 정지다."

그 말에 선우는 담담한 어조로 입을 떼었다.

"정지? 심정지를 말하는 거니?"

"아니, 그런 게 아니야, 그저 가만히 있으면 된다는 뜻이지."

선우는 고개를 좌우로 살짝 내저으며 입을 떼었다.

".....정말 그런 조건으로 만족한다구?"

키르케는 이해할 수 없다는듯한 표정을 지은 채 되물었다.

그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던 까닭이었다.

자신이 누구란 말인가

불사의 군세를 지휘하는 판테시아 대륙 최강의 네크로맨서.

불사의 마녀, 키르케가 아니던가

그런 자신에게 무엇이든 부탁할 권리를 얻어놓고 고작 원하는 게 단순히 가만히 있는 것이라니?

대체 무슨 생각으로 저런 이상한 청을 요구한다는 말인가

"만족한다."

선우는 올곧은 눈빛으로 그녀를 응시하며 입을 떼었다.

"....진심이로군."

그 눈빛을 마주한 키르케는 알 수 있었다.

그의 말이 농담이 아닌 진심이라는 사실을

진심으로 정지하길 원하고 있는 것이다.

".....바꿀 생각은 전혀 없겠지?"

"물론."

"..........이해가 안되는구나...고작..정지라니."

"그래서 못하겠다는 말인가?"

"아니, 그런 말은 아니다, 납득 못한다하여 명을 거절할 생각따위는 추호도 없으니."

처억

말을 마친 그녀는 양손으로 그래도 내렸다.

그다음 커다란 가슴을 쭉 펴 정자세로 섰다.

"이제부터 완전히 정지토록 하마, 네 명이 떨어지기전까지 절대 움직이지 않을테니, 죽일 정도로 패버리든...고문해 죽이든 내 몸뚱아리를 마음대로 하려무나."

키르케는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죽일 생각도, 고문할 생각도 없다. 키르케."

선우는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그저 약속을 지켜려는 것 뿐이니."

"무슨 약속을 말하는 거지?"

키르케는 모르겠다는듯한 표정을 지었다.

"상처받던 가녀린 여인과 했던 약속이지."

선우는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그녀는 말했다, 부모같지 않은 년놈들이 아니라면 사랑받지 못할 것이라고 기댈 곳도 없고 가족이 될 수도 없을 거라고."

"..............."

그 말을 들은 키르케는 시무룩해지기 시작하였다.

기억은 안나지만 자신의 이야기라는 것을 어림짐작할 수 있던 까닭이었다.

"난 그런 그녀에게 약속을 했다. 사랑해주겠다고 내가 가족이 되어주겠다고."

선우는 또렷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뭉클

그리고 그 말을 들은 키르케는 뭉클한 감정을 느꼈다.

공허하고 텅비어있던 가슴 속에 다시금 벅차오르기 시작한 것이다.

"그 약속을 지금 지킬 생각이다."

스르르르륵

곧이어 선우가 바지를 내리기 시작하였다.

쑤우우우우우욱

그러자 무언가 승천하듯 하늘 위로 치솟아올랐다.

버섯갓을 연상케하는 기둥끄트머리쪽 커다란 우산

쇠몽둥이를 연상케하는 팔뚝만한 거대한 기둥.

주름이 자글자글한 주머니

그 속에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는 두개의 알들

대암컷결전병기.

자지.

그 절대적이고 위용넘치는 무기가 만천하에 모습을 드러내게 된 것이다.

"가족이 되어주겠다, 키르케."

자지를 드러낸 선우는 환한 웃음을 지었다.

"겸사겸사 가족도 만들어주지."

그의 미소가 한층 더 짙어지기 시작하였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