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으으윽...흐으윽...흐아아아아아아앙~!!!흐아아아아앙!...와아아아아아아앙~!!"
키르케는 어린아이처럼 서럽게 울부짖기 시작하였다.
자신을 이렇게 만든 세상에 대한 원망
이렇게 살 수 밖에 없던 스스로에 대한 연민
결국 끝까지 사랑받지 못하였다는 것에 대한 설움
수많은 감정들이 맞물려 비통함과 원통함을 내보였고 끝끝내 그녀를 절망하게 만들었다.
때문에 그저 울부짖을 수밖에 없었다.
수백년이 넘는 세월동안 애써 외면하고 있었던 절망의 깊이는 불사의 마녀라고 불리우는 그녀조차 감히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이었으니
"하아아아아아앙~!!...흐으윽...흐으으윽...으으으윽..으으윽...우와아아아아아앙!!!"
울부짖음이 더욱더 격해지기 시작하였다.
주르르륵 주르르륵 주르륵
이내 피눈물마저 흘러내리기 시작하였다.
참혹하고 절망적인 슬픔을 완벽하게 단련된 육신조차 감내할 수 없던 까닭이었다.
선우는 그런 그녀를 말없이 응시하였다.
"슬픔, 비통함, 원망, 서러움, 연민, 저주, 분노, 절망인가."
그리고 이내 울음소리에 담겨있는 감정들을 천천히 읊조렸다.
부정否定.
그 자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감정의 집합체들
'불쌍하군.'
그 감정을 접한 선우는 연민을 느꼈다.
부정한 감정들은 전부 키르케의 삶으로부터 기인되었을 것이다.
'필시 불행과 절망으로 점칠되어있는 삶을 살았을테지.'
머릿속에 그녀의 삶이 그려지는듯 하였다.
사랑받지 못한 삶
관심받지 못한 삶
배척받으며 살아왔던 삶
홀로 외로이 살아왔던 삶
'아마도 몇번이고 절망하고 또 절망한 끝에 사도의 길을 걷게 되었을테지.'
그녀가 인간성을 잃게된 게 어느정도 이해가 되었다.
만약 자신 또한 소중한 이들이 없었더라면 인간성을 완전히 상실했을 지도 모를 일이었으니
"넌 실로 불쌍한 여인이구나, 키르케."
울음 속에 섞인 수많은 부정의 감정을 볼 때
그녀는 선천적으로 감정이 결여된 사이코패스따위가 아니였다.
오히려 감정이 풍부하고 여리디 여린 여인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감내할 수 없는 커다란 절망이 널 바꾸게 만들었겠지."
그저 절망 끝에 망가진 인간일 뿐
"평생토록 온전한 사랑을 받지 못했겠지."
저벅
"사는 것보다 죽는 게 낫다는 생각을 몇번이고 했겠지."
저벅
"절망만을 안겨준 인간따위보단 시체가 훨씬 좋은 친구라고 여겼겠지, 적어도 널 슬프게 하지는 않았을테니까."
저벅
"키르케, 너를 이해한다, 너는 또다른 나와 다를 바가 없는 존재니."
저벅
"나 또한 소중한 이들을 만나지 못했더라면 너와 다를 바 없었을 것이다, 인간에게 절망하고 나를 불행하게 만든 세상을 증오하며 살아왔겠지."
뚝
곧이어 선우는 키르케의 코앞에서 걸음을 멈춰섰다.
"그 상처를 너무나도 잘알기에 널 직접 보듬어주겠다"
우우우우우우우우우웅
선우의 중심으로 거대한 음양조화기가 일렁이기 시작하였다.
"절망하여 인간이길 포기한 너에게 인간으로서의 기쁨을 알려주겠다."
선우는 몸을 천천히 숙였다.
덥석
그리고 주저앉은 채 울부짖고 있는 키르케의 뒤통수를 움켜쥐었다.
츄으으으으읍
그다음 한치의 망설임없이 입을 맞추었다.
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웅
그러자 선우와 키르케 주위로 태양처럼 찬란한 빛이 뿜어져나오기 시작하였다.
솨아아아아아아아
곧이어 찬란한 빛이 온사방을 뒤덮었다.
세상이 빛으로 가득 채워졌다.
마치 한줌의 어둠조차 허용치 않겠다는듯이 말이다.
*******
온사방이 하얗게 물들여져있는 순백색의 공간
그곳에 중앙에 젊은 두 남녀가 서로를 마주한 채 진한 입맞춤을 나누고 있었다.
선우와 키르케.
입맞춤을 통해 전혀 다른 공간으로 동시에 이동해버린 것이다.
츄으으으읍
이내 선우가 천천히 입을 떼어내었다.
그리고 주위를 슬며시 둘러보았다.
그러자 온통 백색으로 칠해져있는 공간에 들어오기 시작하였다.
'성공했나보군.'
씨익
그 광경에 선우는 흡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과거 해신이 구현시켰던 심상 세계.
시간과 공간은 물론이고 육신까지 초월한 정신체만이 존재할 수 있는 곳.
그곳을 완벽히 재현해낸 건 물론이고 키르케마저 데려올 수 있었다.
완벽히 성공시킨 것이다.
어찌 기쁘지 않을 수 있으랴.
'좋아, 이제 프라이빗한 공간으로 왔으니까..슬슬 시작해볼까?'
선우는 히죽거리며 웃기 시작하였다.
용자도 세라스도
세실리아도 없는 이상
더이상 이제 꺼릴 게 없었다.
이곳은 자신만의 프라이빗한 공간이였으니
그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것이다.
'일단 가슴 속에 있는 그 무거운 것들부터 손수 처리해주지.'
선우는 음흉하게 웃으며 손을 뻗었다.
***********
"이 빌어먹을 년! 불결한 년! 더러운 년!"
한눈에 봐도 제정신이 아님을 알 수 있는 중년남자가 가죽으로 된 채찍을 거세게 휘두르기 시작하였다.
짜악 짜아악 짜아악 짜아악 짜악
"아아아악!...아아아악!!...아아악!..아악!""
어린 소녀는 고통 어린 비명성을 내지르기 시작하였다.
본디 채찍은 성인 남성의 살점조차 통째로 뜯어버리는 위력적인 무기인 법.
그런 무기를 고작 일곱살난 소녀가 견뎌낼 수 있을 리 만무하였다.
그저 비명을 지르고 고통을 호소할 뿐
"엄살 피우지마! 세게도 안했다고! 이 악마같은 년아아!!"
중년남자는 짜증 어린 목소리로 고함을 내질렀다.
"흐으윽...아빠...아빠....살려주세요..때리지마세요..착한..아이가 될게요..제발요.."
소녀는 덜덜 떨며 조막만한 손을 연신 빌어대기 시작하였다.
"네년이 하는 말따위 믿을 성 싶더냐아아!"
모든 게 가증스러운 거짓처럼 느껴졌다.
고통스럽다는듯 비명을 내지르는 것도
착한 아이가 되겠다며 애원을 하는 것도
전부 말이다.
짜아아악 짜아아악 짜아아악 짜아악
"아아아악...어머니!...어머니이이!....도와주세요오!..제발..제발아아!"
소녀는 어머니를 애타게 찾았다.
하지만 소용없는 짓이었다.
그녀의 어머니는 그저 차가운 눈빛으로 방관만 할 뿐
어떠한 조치조차 취하지 않았으니
"빌어먹을 년! 내가 너때문에 무슨 치욕을 당했는지 알아! 아냐고! 악마를 낳은 개새끼라며 길드에서 일거리를 안준단 말이다! 네년때문이야! 네년때문에 우리 가족 모두가 굶어죽게 생겼단 말이다아아!!!!!!!!!!! 으아아아아!!
아무도 일거리를 주지 않았다.
이 빌어먹을 년이 저주받았다는 이유로
자신 또한 마을에서 배척받기 시작한 것이다.
자연히 분노가 차오를 수밖에 없었다.
하루벌어 하루먹고 사는 처지에 일거리가 없다는 건 당장 죽으라는 것과 다름이 없었으니
짜아아악 짜아아악 짜아악 짜아악 짜아아아악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끔찍한 비명성이 사방에 울려퍼지기 시작하였다.
.
.
.
털썩
이내 소녀는 고통을 참지 못하고 그대로 바닥에 처박히고 말았다.
힘이 빠져 더는 몸을 지탱할 수 없던 것이다.
"꼴도 보기 싫다! 당장 다락방에 가둬!"
"알겠어요."
어미는 한치의 망설임없이 그런 그녀를 안아들었다.
"어머니...안돼요...저..다락방은..싫어요..어둡고..축축한..그곳에..가기..싫어요..제발..제발...그러지 말아주세요..제발.."
소녀는 애원하였다.
다락방은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어둡고 인간의 온기조차 느낄 수 없을 정도로 서늘한 곳이었다.
그런데로 들어가고 싶지 않았다.
혼자라는 기분을 상기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그런 애원에도 어미는 소녀를 곧바로 다락방에 올려버렸다.
철커덕 철커덕
그리고 문고리에는 두터운 자물쇠마저 채워버렸다.
절대 빠져나갈 수 없도록
콩 콩 콩 콩 콩 콩
"싫어어어!..다락방은..싫어요오오!..제발..제발..열어주세요!..제발..착한 아이가 될게요!...눈에 띄지않도록 쥐죽은듯이 살아갈게요..제발..제발..절 가두지 말아주세요..어머니...아버지이이!!"
소녀는 조막만한 주먹으로 다락방 문을 두드리며 애원하고 또 애원하였다.
하지만 소용없는 짓이었다.
그녀의 외침에 달려와줄 이는 그 누구도 없었으니
.
.
.
.
"엄마...저 이번에 백점을 맞았어요!"
"그래? 우리 아가 착하구나, 오늘은 특별히 엄마의 특제 스튜를 해주도록 하마."
"와아아~신난다아아."
"아빠아빠, 오늘 잘다녀왔어요?"
"그래, 우리 예쁜 딸, 이 먼데까지 마중을 나왔구나."
"아빠가 보고 싶어서 왔어요!"
"하하하하 역시 딸 하나는 잘뒀다니까!"
다락방에 갇힌 소녀는 홀로 역할극에 심취하였다.
그녀가 바라고 있는 이상적인 가족를 하나하나 연기하기 시작한 것이다.
자애롭고 칭찬해주는 어머니.
때리지 않고 애정넘치는 아버지.
그 속에 해맑게 살아가는 자신.
"헤헤헤..행복해요...너무..행복해요..정말..행복해요오.."
그녀는 행복을 연기하였다.
현실과는 전혀 달랐지만
그럼에도 멈추지 않았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외로움에 미쳐버릴 것만 같았으니
그렇게 그녀는 몇번이고 몇번이고 연기를 하며 소망하였다.
언젠가 이상처럼 모두가 화복해지기를
그렇게 한창 연기를 하던 차
철커덕 철커덕
누군가 자물쇠를 여는 소리가 귓가에 울렸다.
"어머니!"
그 모습에 소녀는 화색을 띄었다.
자신의 소망이 이뤄진 게 아닐까라는
일말의 희망이 소녀를 활짝 피어나게 만든 것이다.
쭈우우욱
하지만 예상과 달리 모습을 드러낸 건 배다른 이복오빠, 알버트였다.
"어때? 지낼만해?"
알버트는 히죽거리며 입을 떼었다.
".....네..에에.."
소녀는 떨리는 목소리로 답을 하였다.
부모님 못지 않게 자신을 괴롭히고 학대했던 알버트였다.
그런 그가 친근하게 다가오니 되려 불안감이 느껴졌다.
"잘지내긴, 이렇게 살이 쭉쭉 빠졌는데, 밥도 제대로 못먹고 있지?"
알버트는 걱정 어린 목소리로 입을 떼었다.
평소에 악동과 같은 모습과는 전혀 상반된 모습이었다.
"..........네에."
그러자 소녀의 경계심이 한층 누그러지기 시작하였다.
정에 굶주린 그녀이기에
고작 말투가 호의적으로 변한 것만으로도 마음이 절로 풀어진 까닭이었다.
"그럴 줄 알고 내가 널 위한 진수성찬을 준비했지, 짜잔."
알버트는 해맑은 미소를 지은 채 뒤쪽에 감춰두고 있던 손을 들어올렸다.
"엘리자벳!"
그리고 들어올려진 손을 본 순간
소녀는 비명과 같은 소리를 내질렀다.
지옥과도 같은 삶에서 유일하게 의지하고 있던 친구.
작은 토끼, 엘리자벳.
그 소중한 친구가 만신창이가 된 채 알버트에게 붙잡혀있던 것이다.
"요리 이름은 토끼정식이야, 맛있겠지?"
"안돼요! 그 아이는 먹을 게 아니예요! 제 친구라구요! 안돼요!..제발..놔주세요...제발."
소녀는 애원하기 시작하였다.
"누가 불결하고 천박한 년 아니랄까봐, 개 소리를 지껄이는구나, 동물이 친구라니 말이야."
알버트는 경멸 어린 눈빛으로 소녀를 내려다보며 말을 이었다.
"비웃어도..상관없어요! 엘리자벳은 제게..유일한 친구니까요...제겐..하나밖에 없는..친구라구요..그러니까..제발..놔주세요..차라리..절 때려주세요..차라리..절...절 죽이세요..제발...엘리자벳만큼은.."
차라리 자신이 죽었으면 죽었지
엘리자뱃이 죽는 건 도저히 볼 수 없었다.
"거절하지, 배다른 동생아."
하지만 알버트는 그런 애원을 무척이나 산뜻하게 거절하였다.
"어..어째서!"
"그야."
철푸덕
이내 알버트는 그대로 손을 놓아버렸다.
그러자 만신창이가 된 엘리자벳이 바닥에 널부러지게 되었다.
"이 편이 재밌잖아?"
콰지지지직
그리고 알버트는 망설임없이 엘리자벳을 짓밟아버렸다.
"안돼에에에에에에에에에!!!!!!"
소녀의 절망 어린 비명성이 울려퍼지기 시작하였다.
"하하하하하하~!! 봐봐 재밌잖아! 너무 재밌잖아아~!!"
알버트는 그 비명성을 즐겼다.
악마같은 년의 비명이라니
어쩜 이리 짜릿할 수 있을까
"엘리자뱃...엘리자뱃..엘리자뱃...안돼..죽으면..안돼..."
곧이어 정신 차린 소녀는 연신 엘리자뱃을 부르짖으며 다가오기 시작하였다.
아직 희망을 놓치 않은 것처럼 보였다.
"안되지."
꾸욱 꾸욱 꾸욱
으지직 으지직 으지직 으지직
그 모습에 알버트는 히죽거리며 발끝을 비비기 시작하였다.
그녀의 마지막 희망마저 완전히 앗아가버린 것이다.
"...으윽...흐으윽...흐으윽....흐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결국 눈물을 꾹꾹 참아내며 언젠간 나아질 것이라고 희망을 품던 소녀는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소중한 친구의 죽음에 꾹꾹 짓눌렀던 감정의 둑이 그대로 무너져내리고만 것이다.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그러자 알버트는 쾌활한 웃음을 터트렸다.
절망하는 그녀를 보는 게 너무나 즐겁게 느껴진 까닭이었다.
그렇게 다락방에는 상반된 두개의 감정이 쉴새없이 맞물리며 불쾌한 불협화음이 울려퍼지기 시작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