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협지 안으로 들어와버렸다-1392화 (1,393/1,419)

망자들이 멈춰섰다.

뇌를 파먹기 위해 맹렬히 달려들던 좀비들도

생전의 전투력을 보존한 채 학살을 자행하던 스켈레톤들도

경지에 다다른 마법을 간직한 채 부활한 리치들도

번쩍이는 송곳니로 피를 탐하던 뱀파이어들도

영체로 된 육신으로 물리적 공격을 무시하는 악령, 레이스들도

데스 오라를 두른 채 데스 블레이드를 휘두르던 데스나이트들도

약속이라도 한 것마냥

일제히 움직임을 멈춰선 것이다.

-뭐야?

그 광경에 한창 학살을 벌이던 용자는 눈살을 살짝 찌푸렸다.

망자들의 갑작스러운 변화에 당혹스러움을 느낀 것이다.

-그러게..저놈들..왜 갑자기 움직임을 멈춰선거지?

펭귄으로 돌아가 회복에 전념하고 있던 세라스 또한 의아한듯 표정을 지었다.

갑작스러운 이변에 의문을 느낀 까닭이었다.

쿠우웅 쿠우우웅 쿠우웅 쿠우웅 쿠우웅

곧이어 멈춰선 언데드들이 일제히 무너져내리기 시작하였다.

마치 실이 끊어진 꼭두각시처럼

-끝난 건가?

-보통 그런 말하면 안 끝난거던데?

세라스가 슬쩍 딴지를 걸었다.

-......그럼 도대체 왜 저렇게 된건데?

-그거야 나도 모르지.

-새대가리 새끼, 넌 어떻게 끝까지 도움이 안되냐?

-지도 모르면서 왜 나한테 지랄인데!

-뭐어? 지랄? 너 말 다했냐?

-다 못했다! 왜!

-브레스로 몸 좀 뜨끈하게 뎁혀지고 싶은가봐? 새대가리.

-어디 해봐! 얼음숨결로 뼛속까지 얼어붙게 만들테니까! 도마뱀새끼야!

그렇게 두 절대자가 옥신각신하며 소리를 내지르던 그때였다.

사라라라라라

사라라라라락

무너져내린 모든 언데드들이 가루가 되어 흩날리더니 일제히 한곳을 향해 날아들기 시작하였다.

마치 정해진 길이 있는 것처럼

그 모습에 의아함을 느낀 두 절대자는 자연히 가루들을 따라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볼 수 있었다.

칠흑과도 같은 양날개를 펼친 채 선우와 대치하고 있는 냉혹스러운 여인의 모습을

불사의 마녀, 키르케

그녀는 패한 게 아니였다.

도시 전체를 뒤덮고 있는 수많은 언데드들의 힘을 흡수해 새로운 형태의 힘을 내보이고 있는 것이다.

-......뭐가 심상치 않은 일이 일어난 것 같은데?

불길한 악의로 가득 찬 모습.

뭔지는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키르케에게 심상치 않은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유추할 수 있었다.

-동감이다...뭔지 모르겠지만...이전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용자는 동의하다는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본드래곤으로 만들어버리겠다며 달려들었을 때도 저런 모습을 내보인 적은 없었다.

필시 고이고이 숨겨둔 무기가 분명하리라

-마스터...위험하려나?

-멍청아, 그럴 리가 있겠냐?

용자는 말도 안된다는듯 입을 떼었다.

분명 키르케는 강하다.

아마 저 상태라면 만전을 기한 자신과 세라스가 동시에 달려든다고 해도 도저히 감당해낼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마스터라면 다르지.'

결국 키르케는 패하게 될 것이다.

처참한 몰골을 한채로 말이다.

그 누구보다 강한 장선우가 그리 만들테니.

*********

우우우우우우우우우웅

불사의 마녀, 키르케를 중심으로 거대한 마력이 일렁이기 시작하였다.

1억 2678만 3874명의 언데드들이 가진 사령의 기운들이 일제히 모여든 까닭이었다.

촤아아아아아아악

촤아아아아아아악

이내 키르케의 등뒤에서 칠흑과도 같은 묵빛의 날개가 맹렬한 기세로 치솟아오르기 시작하였다.

신의 은총을 한몸에 받던 타락한 대천사가 인간에게 직접 전수해주었다는 최악의 마법.

마주한 자로 하여금 영원한 죽음을 선사한다는 죽음의 날개.

데스윙Death Wing

사령술의 정점에 이른 최고의 네크로맨서만이 재현해낼 수 있다는 비기 중에 비기가 그 위용 넘치는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아가, 어떻느냐? 새로운 나의 힘이."

죽음의 날개를 펼친 키르케가 고저없는 차분한 목소리로 입을 떼었다.

흥분하고 다급했던 때와는 전혀 달랐다.

강맹하기 그지없는 힘이 그녀에게 냉정을 되찾아준 것이다.

"꽤 강하군."

그 물음에 선우는 순순히 고개를 주억거렸다.

과연 1억이 넘는 원령의 힘을 흡수한 것인지는 몰라도 그 힘은 기존의 수준을 아득히 뛰어넘고 있었다.

"하지만 딱 그뿐이다, 내겐 그리 큰 위협이 될 것 같진 않군."

분명 그녀는 강하였다.

하지만 위협이 될 수준은 아니였다.

자신은 그 이상으로 강하였으니

"시험해보겠느냐?"

"못할 것도 없지."

말을 마친 선우는 천천히 검을 늘어뜨렸다.

그리고 키르케를 가만히 응시하였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쇄애애애애애애액

먼저 움직임을 보인 건 키르케였다.

초고층 빌딩마저 초월한 거대한 흑익을 거침없이 휘두른 것이다.

'빠르지만 단순해.'

피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타탓

이내 선우가 가벼이 몸을 튕겼다.

그러자 신형이 쏘아지며 흑익의 범위를 완전히 벗어나게 되었다.

곧이어 거대한 흑익이 선우가 있던 곳을 그대로 내리쳤다.

콰콰콰콰콰쾅

우르르르르르

그리고 이변이 일어났다.

흑익이 닿자 땅이 갈라지고 지반이 무너지기 시작한 것이다.

'...상당한 질량을 품고 있어.'

선우는 그 광경을 꽤 놀랐다는듯 바라보았다.

아무래도 크기만 큰 허풍선은 아닌듯하였다.

지형마저 바꿀 수 있는 힘을 갖추는 걸 보면 말이다.

"이건 시작에 불과하단다! 아가!"

키르케는 차가운 눈빛을 반짝였다.

그리고 곧바로 반대쪽 흑익 또한 휘두르기 시작하였다.

콰아아아아아앙

콰아아아아아앙

거대한 두개의 흑익이 무자비하게 휘둘러지기 시작하였다.

서걱

초고층 빌딩들이 무를 동강내듯 거침없이 잘려졌다.

서걱

시멘트로 다져진 바닥이 베어져 지반이 무너지기 시작하였다 .

서걱

철제로 만들어진 거대한 교량 반으로 잘려져 그대로 무너져내렸다.

현세의 존재하는 그 어떤 것들도 흑익을 버텨낼 수 없었다.

흑익에 담긴 힘은 현세의 힘을 한참이나 전에 초월하였으니

"아가! 이게 대체 어떻게 된 것이냐? 분명 날 시험해본다고 하지 않았느냐? 그런데 이렇게 접근조차 못하다니?"

키르케는 안쪽으로 파고들 생각조차 못한 채 피하기 급급한 선우를 내려다보며 조롱기 어린 미소를 지었다.

자신만만한 태도와 달리 실속은 전혀 없는 모습이었다.

어찌 비웃음이 나오지 않을 수 있으랴

"그 자신만만 모습은 허세에 불과했던 것이더냐?"

키르케는 히죽거리며 입을 떼었다.

명백한 조롱.

그를 완전히 내려다보는듯한 태도를 취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조롱과 도발에도 불구하고 선우는 여전히 회피에만 집중할 뿐이었다.

"아가, 그런 소극적인 태도는 나를 어찌할 수 없단다, 남자라면 조금 더 적극적으로 나서보는 게 어떻겠느냐?"

승기를 잡았다고 느낀 키르케는 부드러이 미소를 지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불리해질테니 말이야."

꽈악 꽈아악

이내 그녀는 죽음의 낫을 강하게 움켜쥐었다.

사아아악 사아아아악 사아아악 사아악

그리고 대낫을 휘둘러 죽음의 참격 또한 쉴새없이 쏘아보내기 시작하였다.

그녀 말대로 상황은 악화되어버린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선우는 변함이 없었다.

어떤 공격 자세도

어떤 방어 자세도

취하지 않았다.

오로지 회피만을 신경 쓸 뿐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흑익인 뒷걸음질친 선우의 코앞을 내리찍었다.

한치도 되지 않는 아슬아슬한 거리를 두고 회피해버린 것이다.

"참으로 미꾸라지처럼 요리조리 잘도 피하는구나, 아가, 전생이 미꾸라지가 아니였나싶구나...후훗."

키르케는 비웃음을 흘리기 시작하였다.

공격은 못하고 그저 회피에만 급급한 그의 모습이 너무나 우습게 느껴진 까닭이었다.

"다 보여."

그때 잠자코 있던 선우가 드디어 첫마디를 꺼내었다.

"뭐라구?"

"네 공격, 전부 다보인다구."

질나쁜 장난기로 가득한 악동같은 미소를 띄운 채로 말이다.

"질나쁜 농담을 하는구나!!"

그 건방진 태도에 부아가 치밀어오른 키르케는 남아있는 오른쪽 흑익을 빠르게 휘둘렀다.

몸통을 반으로 분리시켜버릴 기세로.

사아아아아악

하지만 그 공격은 허공을 가를 수밖에 없었다.

흑익이 코앞까지 다가온 순간

허리를 뒤로 젖혀 가벼이 피해버린 까닭이었다.

쇄애애애애애애액

이번에는 왼쪽 흑익을 그대로 내지르기 시작하였다.

몸통을 관통시켜버릴 요량이었다.

하지만 이번에 그 뜻이 이루어지는 일은 없었다.

그저 왼발을 축으로 삼아 몸을 돌리는 기초적인 보법으로 음속마저 뛰어넘는 속도로 쏘아지는 흑익을 너무나 쉽게 피해버린 까닭이었다.

"말했잖아, 전부 보인다구."

선우는 히죽거리며 입을 떼었다.

"이제 너의 공격은 어떤 것도 닿지 않아."

그리고 당당히 선고하였다

무척이나 자신만만한 표정을 지은 채로 말이다.

으드드득

그 말에 키르케는 이를 갈았다.

더할나위 없는 거대한 굴욕감을 느낀 까닭이었다.

흑익黑翼은 1억 2678만 3874기의 언데드들을 흡수해 만들어낸 힘의 결정체와 같았다.

그런데 닿지 않는다니

통하지 않는다니

어찌 치욕스러움과 굴욕감을 느끼지 않을 수 있으랴

"실로 광오하기 그지 없구나! 고작 공격 몇 번 피하였다고 그런 건방진 태도를 취하다니!!"

이내 키르케는 분을 토해내며 고함을 내질렀다.

그리고 이번엔 대낫을 휘둘러 참격을 쏘아보냈다.

두개의 커다란 흑익과 죽음의 낫을 통해 만들어낸 무한한 참격으로 다시금 그를 압박하기 시작한 것이다.

저벅 저벅 저벅 저벅

선우는 폭풍처럼 쏟아지는 공격 앞에서 여유로이 앞쪽으로 걸음을 옮길 뿐이었다.

쇄애애애애애액

다시금 흑익이 몸통을 노리며 날아왔다.

이번에도 왼발을 축으로 삼아 몸을 돌려 가뿐히 회피하였다.

쇄애애애애액

반대쪽 흑익이 연이어 정수리쪽을 내리찍기 시작하였다.

이번엔 오른발을 축으로 삼아 몸을 옆으로 돌렸다.

콰아아아아앙

등뒤쪽으로 흑익이 스쳐지나가며 땅을 내리찍기 시작하였다.

사아아아아아악

사아아아아아악

사아아아아아악

수많은 참격들이 쏟아지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선우에겐 위협이 되진 않았다.

그 어떤 참격도 그의 몸에 닿을 수 없었으니

그렇게 폭풍처럼 쏟아지는 모든 공격들이 간발의 차이로 스쳐지나갔다.

신에 다다른 회피력이 눈앞에 드러나기 시작한 것이다.

"어..어떻게..저런.."

그 도저히 믿을 수 없는 광경에 키르케는 경악을 금치 못하였다.

자신조차 뚫어낼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할 수 없는 맹공의 폭풍이었다.

그런데 그 폭풍 속 저 남자는 너무나 여유로이 걸어오고 있었다.

폭풍같은 맹공들을 그저 자연 바람처럼 흘려보내면서 말이다.

경악을 할 수밖에 없었다.

대체 저게 무슨 조화란 말인가

'정말로..다보인다는 말인가..'

질끈

키르케는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너무나 압도적인 능력 앞에 분한 마음이 치솟은 까닭이었다.

'...이대로 가다간...코앞까지 오고만다.'

그리고 이내 눈을 반짝였다.

무슨 수를 써야했다.

이대로 냅뒀다간 칼날이 닿는 범위까지 허용할지도 모를 일이었으니

[블레이드 토네이도!!]

뒤이어 핏빛 칼날들이 소용돌이치며 그대로 쏘아졌다.

[다크 스피어!!]

그리고 어둠의 마력으로 만든 죽음의 창이 쾌속하게 질주하였다.

새로운 공격 패턴의 추가.

이거라면 그를 어느정도 저지할 수 있으리라

그렇게 생각하였다.

사아아악 사아아아악

하지만 그건 그녀의 착각에 불과하였다.

소용돌이치며 쏟아지는 핏빛의 칼날들도

심장을 향해 파고드는 어둠의 거창도

그를 저지하진 못하였다.

너무나 손쉽게 파훼당해 무용지물이 되어버린 것이다.

저벅 저벅 저벅 저벅 저벅

그렇게 선우는 쏟아지는 모든 공격들을 흘려낸 채 걷고 또 걸었다.

그리고 키르케 앞에 선 순간

그대로 걸음을 멈춰세웠다.

"말했잖아, 다보인다구."

그다음 창공에 떠있는 키르케를 올려다보며 입을 떼었다.

악의로 가득 찬 미소를 띄운 채로

".....아...아...아아.....아..."

그런 선우를 마주한 키르케는 어떠한 행동조차할 수 없었다.

압도.

검 한번 휘두르지 않고

오직 회피만하며 자신의 코앞까지 도달하였다.

이는 그가 마음을 먹었다면 언제고 자신을 죽일 수 있는 증거나 다름이 없었다.

때문에 압도당할 수밖에 없었다.

장선우라는 남자는 1억 2678만 3874명의 힘을 흡수한 자신따위는 아득히 상회하는 초월적인 존재였으니

휘이익 휘이익

이내 한창 그녀를 올려다보던 선우가 흑야를 빠르게 두어번 휘둘렀다.

서걱 서걱

"아아아아아아악!!!"

그러자 키르케가 고통 어린 비명성을 내지르기 시작하였다.

영혼과 결합되어있는 두개의 흑익이 완전히 잘려져나가며 영혼의 상당한 고통을 선사한 까닭이었다.

쿠우우우우웅

더불어 허공에 떠있던 그녀는 그대로 추락하여 바닥을 굴렀다.

끔찍한 고통 앞에 안전히 착지할 여유조차 없던 까닭이었다.

"허으으윽...으으윽...아아아.."

키르케는 고통 어린 신음을 흘리기 시작하였다.

강제로 영혼이 분리된 고통과 추락의 충격이 육신에 고스란히 전해진 까닭이었다.

"고작 이정도로 아파하면 곤란해."

선우는 그런 그녀를 내려다보며 입을 떼었다.

으드드득

그 말에 키르케는 표독스럽게 그를 노려보기 시작하였다.

이 끔찍스러운 고통은 준 장본인이 저리 말하니 부아가 절로 치밀어오른 까닭이었다.

"이제부터 느낄 고통은 진짜거든."

선우는 히죽거리며 말을 이었다.

"뭐..뭐라?"

그 모습에 키르케는 눈동자가 파르르 떨리기 시작하였다.

알 수 없는 불안감과 오싹함이 전신을 휘감은 까닭이었다.

"일단 그 독기부터 완전히 빼내고 시작하자구, 더 지독한 독기로 말이야."

말이 끝나기 무섭게 선우의 오른손이 붉게 물들여지기 시작하였다.

마치 쇳덩이를 달궈놓은 것처럼 말이다.

"....싫어..싫어....싫어어!"

불안감을 느낀 키르케는 엉금엉금 바닥을 기며 도망가기 시작하였다.

본능적인 거부감과 두려움이 그녀를 행동하게 만든 것이다.

"어딜."

까딱

주르르르르륵

"놔아아! 놓으란 말이다아아!!!"

물론 그 꼴을 그대로 봐줄 선우가 아니였다.

건곤대나이를 이용해 그녀를 그대로 끌어온 것이다.

"싫다! 싫단 말이다!!'

무력하게 끌려온 키르케는 발악하듯 소리를 내지르기 시작하였다.

"세상은 좋아하는 일만하면서 살 수 없더라구."

선우는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특히 너처럼 나쁜년이라면 더더욱이 말이야."

그리고 싸늘하게 그녀를 노려보기 시작하였다.

"무릇 남에게 고통을 줄 땐 스스로도 고통받을 각오를 해야하는 법이지."

선우는 붉게 달궈진 손을 서서히 뻗기 시작하였다.

"그러니까 달게받으라구, 불사의 마녀."

꾸우우우욱

곧이어 선우의 붉은 손길이 그녀의 토실한 엉덩이를 짓눌렀다.

"싫어어어어어어어어어!!!!!!!!!!!!"

이내 키르케의 끔찍한 비명성이 사방에 울려퍼지기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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