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산
가장 아름다운 산이라고 불리우며 세계 유산으로까지 지정된 중국의 자랑.
그런 황산이 원인불명의 재해로 인해 완전히 붕괴되어있었다.
곳곳에 토사들과 돌덩이들이 난잡하게 섞여있었고 장관을 이뤘던 거목들은 완전히 뜯겨져나가 처참한 흔적만 보일 뿐이었다.
'여기가 황산이라고?'
그 광경을 마주한 선우는 당혹스러운듯한 표정을 지었다.
황산의 아름다운 풍경을 너무나 잘알고 있던 그였다.
주소양과 몇번이고 등산을 하며 사랑을 나눴던 장소였으니
하지만 이제 기억 속에 아름다운 황산은 존재하지 않았다.
-마스터! 여기입니다! 여기!
파닥 파닥 파닥
용자는 작달막한 날개를 연신 파닥거리며 언성을 높였다.
아무래도 무언가 발견한듯 싶었다.
"아아, 그래."
상념에서 깨어난 선우는 마음을 추스른 뒤 용자가 있는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볼 수 있었다.
운석이 충돌한 것처럼 깊게 패여있는 거대한 크레이터를
-여기서 세라스의 마력이 진하게 느껴집니다.
용자는 크레이터를 눈짓하며 입을 떼었다.
"......이곳에서..."
선우는 감각을 한층 더 기만하게 만든 뒤 크레이터를 둘러보았다.
과연 용자의 말대로 세라스 특유의 차가운 마력이 느껴지기 시작하였다.
'.......큰싸움이 벌어졌군.'
세라스가 실종된지 일주일
그정도 시간이 지났음에도 이정도 진한 마력이 배여있다는 건 어마어마한 마력 유동이 일어났다는 뜻일 것이다.
'상대는 동등 혹은 그 이상의 강자.'
그렇지 않고서야 그 신중한 녀석이 이렇게 요란스럽게 일을 벌일 리는 없을테니
'....동등이상의 강자라...'
선우는 침중한 표정을 지은 채 턱을 쓸었다.
세라스는 현경 초입 수준의 무력을 갖춘 존재였다.
드넓은 판테시아 대륙에서 두각을 드러내며 일곱 지배자로서 군림한 절대자이기도 하고 말이다.
그런 세라스와 동등 혹은 그 이상의 수준을 갖춘 존재라니
생각이 절로 깊어질 수밖에 없었다.
"세라스외에 다른 흔적은 없어?"
-전혀 없었어요.
용자는 고개를 좌우로 내저었다.
이정도 대규모 충돌이라면 다른 흔적이 남을 법도 하건만
세라스의 마력외에는 그 어떠한 흔적도 발견할 수 없었다.
"일부러 은폐한건가?"
-아무래도 그런 것 같아요.
과할 정도로 흔적이 깔끔하였다.
이정도면 의도적인 은폐라고 판단해도 무방하리라
"정체를 들키고 싶지 않다...이건가?"
-그렇다면 저와 면식이 있는 녀석일지도 모르겠네요.
용자는 눈을 가늘게 뜨며 말을 이었다.
"마땅한 후보가 있을까?"
-없진 않습니다, 세라스가 대륙을 군림하는 일곱 지배자들 중 하나라고는 하지만 최강인 건 아니니까요.
자신을 비롯한 다른 일곱지배자들만해도 세라스를 제압할 가능성을 지니고 있는 존재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일곱 지배자들의 힘은 기본적으로 동등하기에
환경이나 컨디션과 같은 변수에 따라 달라지기 마련이니
"그렇다면 또 다른 일곱지배자들 중 하나일 수도 있겠군."
-그럴 수도 있고 아니면 용사나 사천왕 중 하나일지도 모르죠.
"용사?"
마왕이라는 존재는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그런데 용사라니?
저건 또 무슨 존재란 말인가
-태양신으로부터 선택받은 인류 최강의 존재예요. 마왕과 맞설 수 있는 가능성을 품고 있는 판테시아 대륙의 유일한 희망이죠.
"강한가?"
-이미 10여년 전부터 일곱 지배자들에 근접한 힘을 지니고 있던 녀석입니다. 지금쯤이라면 더욱더 강해졌을 거예요.
"...그렇다면 그쪽일 가능성도 충분하겠네."
-하지만 그럴 가능성은 현저히 낮을 겁니다.
"어째서지?"
선우는 모르겠다는듯 되물었다.
-용사라는 존재는 일종의 억지력과 같아요. 그저 존재하는 것만으로 전면전 꺼리게 만들죠, 그런 존재가 한가로이 게이트를 통해 지구로 넘어온다? 멸망하고 싶은 게 아니라면 그런 무모한 짓을 벌일 리 없죠.
용자는 확신 어린 표정을 지은 채 입을 떼었다.
"그것도 그렇네."
용사는 어찌보면 핵과 같은 존재였다.
그런 존재가 한가로이 이곳에 넘어올 리 만무하였다.
"그럼 사천왕은 뭐지?"
이어 선우는 의문 어린 표정을 지은 채 되물었다.
-마왕에게 직접 권능을 부여받은 고위 마족들이에요, 하나같이 성가실정도로 강한 힘을 지니고 있죠.
"일곱 지배자들과 비교하면 얼마나 강하지?"
-동등 혹은 그 이상이예요.
용자는 차분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힘 자체는 일곱 지배자들과 별차이가 없지만 마왕에게 직접 부여받은 권능이 지랄맞게 성가시거든요.
용자는 눈살을 살짝 찌푸린 채 말을 이었다.
"상대해본 적 있나보네?"
-절 본드래곤으로 만들겠다고 덤벼든 미친년이 하나 있었거든요.
부르르르
용자는 전신을 부르르 떨기 시작하였다.
죽여도 죽여도 되살아나는 정신나간 불사의 권능.
목숨을 위협할 정도로 강대하고 잔혹한 흑마술.
메마르지 않는 무한의 마력.
화산지대 전체를 뒤덮었던 불사의 군단까지
상상만해도 치가 떨리는 경험이 아닐 수 없었다.
-결국 그년 때문에 레어를 포기하기까지 했습죠.
"사천왕 수준이 그정도라면 세라스가 맥을 못추긴 하겠네."
선우는 이해됐다는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이 오만한 용자마저 치를 떨며 줄행랑을 놓을 상대라면
천하의 세라스도 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용자야."
-네에, 말씀하세요, 마스터.
"마왕일 가능성은 없는 거냐?"
일곱 지배자와 용사, 사천왕을 거론하면서
정작 판테시아 최강이라고 불리우는 마왕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의아함이 들 수밖에 없었다.
-절대 아닐겁니다.
용자는 단호하게 말을 이었다.
"어째서지?"
-강자는 약자의 눈치따윈 보지 않는 법이니까요.
마왕에게 있어
자신은 견제의 대상따위가 아니였다.
그저 가벼이 즈려밟으면 죽게 되는 하찮기 그지없는 존재인 것이다.
그런데 뭣하러 흔적을 지우겠는가
오히려 흔적을 드러내 경고를 할 것이다.
알아서 숙이고 들어오라고 말이다.
"틀린 말은 아니네."
선우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모략이나 술수는 약자의 임기응변에 불과하였다.
약하지만 살고 싶기에
강자의 눈치를 살피며 마련한 생존법
강자가 그런 생존법에 의지할 이유는 없었다.
강자란 그저 타고난 힘으로 모든 걸 헤쳐나가는 존재였으니
'그렇다면 후보는 대략 열 명인가?'
용자와 세라스를 제외한 다섯 지배자
일곱 지배자마저 고전시킨 사천왕
그리고 태양신의 선택을 받은 인류 최강, 용사.
도합 열명의 용의자들.
세라스를 납치한 이는 분명 이들 중에 하나이리라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부디 말이 통하는 상대면 좋겠군.'
물론 안통한다고 해도 상관없었다.
자신은 개통령도 울고갈 교정전문가 중 하나였으니
물론 그 대상이 개가 아니라는 차이가 존재하긴 하지만 말이다.
"뭐, 어쨌든 후보는 좁혀졌으니까, 슬슬 움직이자."
-어떻게 하시게요?
"일단 근처 군부대부터 털 거야."
군부대까지 동원해 민간인 출입을 금하고 철저히 감시하고 있었고 노골적인 언론 통제로 황산 붕괴 이슈를 무마시키려는 움직임마저 보이고 있었다.
필시 무언가 숨기고 있는 게 분명하였다.
'책임자 정도되면 뭐든 알고 있겠지.'
물론 몰라도 상관없었다.
윗대가리를 끊임없이 털다보면 뭐든 나올테니
러시아와 마찬가지로 말이다.
**********
강소성, 절강성, 안휘성, 강서성, 복건성 등 중국 동부 전체를 아우르는 군사작전 구역.
동부전구의의 사령원, 임교한 상장은 실로 당혹스럽기 그지 없는 표정을 지었다.
초대치 않는 불청객이 불현듯 막사를 방문하여 입을 틀어막은 까닭이었다.
'대체..어떻게?'
수많은 의문이 치솟았다.
십만의 병력을 어떻게 뚫어냈는지
막사를 경호하던 S급 헌터들을 어떻게 뚫어냈는지
어떻게 이렇게 소리소문없이 중앙막사까지 도달하게 되었는지.
대체 무슨 목적으로 이곳을 찾아온 것인지
"쉬이이이."
그때 검지 손가락으로 입술을 지그시 짓눌러 조용히하라는듯한 제스처를 취하기 시작하였다.
끄덕 끄덕 끄덕
임교한 상장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현재 자신의 목숨은 풍전등화 그 자체였다.
미약한 바람만 불어도 꺼질만큼 위태롭기 그지 없는 것이다.
어찌 거역할 수 있으랴
"말귀를 알아듣네."
남자는 히죽거리며 천천히 입에서 손을 떼어내었다.
그리고 임교한을 똑바로 응시하기 시작하였다.
"너..너는!?"
얼굴을 똑바로 마주하자 임교한은 깨달았다는듯한 표정을 지었다.
아는 얼굴이었다.
아니 모를 수가 없었다.
그는 중국 언론을 떠들썩하게 만든 장본인이였으니
"........장선우."
"날 아나보네."
선우는 히죽거리며 말을 이었다.
"....본국을 떠들썩하게 만든 장본인을 어찌 모르겠는가?"
"하긴 반응이 요란스럽긴 했지."
선우는 동의한다는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환영인파부터 리무진에 최고급 호텔 예약
문화관광부 장관과 면담까지
자신의 입국에 대한 중국의 반응은 요란스럽기 그지 없었다.
분명 언론 또한 집중적으로 조명하였으리라
"자네가...왜 이곳에 있는 거지?.."
임교한 상장은 침중한 표정을 지은 채 물었다.
그 유명인사가 별안간 왜 자신의 막사에 찾아온다는 말인가
"몇가지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서 말이야."
선우는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그래서 강제로 들어왔다?"
"그렇다고 할 수 있지."
"미쳤군, 이곳이 어디인줄 모르는 건가? 아니 애초에 내가 누군지 모르는 건가?"
"이곳에 책임자 아니야?"
알 리 없었다.
그저 가장 화려하고 거창하게 생긴 막사에 들어왔을 뿐
"이곳은 동부 전체를 아우르는 군사 작전 구역! 동부전구이다! 그리고 나는 동부전구의 사령원! 상장 임교한이다! 동부전구에 총책임자라는 말이다!"
임교한은 언성을 높이며 호통을 치기 시작하였다.
상대에게 자신과의 격차를 깨닫게 해주기 위해
얼마나 무례하고 위험한 짓을 했는지 깨닫게 해주기 위해
"생각보다 계급이 높네."
상장이라면 중국내 현역 군인 중 최고위 계급을 의미하였다.
타국의 대장과 맞먹는 지위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예상외로 계급이 높았다.
기껏해야 대령 정도 되는 줄 알았는데 말이다.
'오히려 잘된건가?'
이정도 고위층이라면 웬만한 정보는 빠삭히 알고 있을테니
"네놈이 얼마나 중죄를 저질렀는지 알겠느냐! 총사령관의 막사를 멋대로 침범해 협박을 하다니! 이정도면 즉결 처분을 한다해도 부당하다하는 이는 없을 것이다!"
"어떻게 할건데?"
"뭣이!"
"어떻게 즉결처분할 건데?"
선우는 히죽거리며 되물었다.
"....그..그건.."
임교한은 마땅히 대답을 할 수 없었다.
현재 자신은 무력화되어 완전히 제압을 당한 상황이었다.
그를 어떻게 할만한 힘따윈 없는 것이다.
그러니 대답을 할 수 있을 리 없었다.
"칼을 쥐고 있는 건 나지, 당신이 아니야."
선우는 싸늘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그러니까 쓸데없이 권위를 내세우려고 하지마, 그딴 거에 굴할 거였으며 애초에 막사로 들어오지도 않았을테니까."
"..........알겠네."
임교한은 그대로 꼬리를 말았다.
권위가 먹히는 상대가 아니라는 걸 인지할 수 있던 까닭이었다.
말실수라도 했다간 목숨줄이 단번에 끊어지고 마리라
"좋아, 그럼 몇가지 질문을 하지, 성실히 대답하는 게 좋을 거야."
선우는 살벌한 눈빛을 반짝이기 시작하였다.
부르르
그 살벌한 눈빛을 마주한 임교한은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저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맹수 앞에 놓인 것과 같은 위압감과 공포가 든 까닭이었다.
"....알겠네...내 성실히 대답토록 하지."
"좋아, 그럼 첫번째 질문부터 하지."
선우는 고개를 주억거리며 말을 이었다.
"황산이 무너진 이유, 넌 알고있지?"
"?!?!"
순간 임교한의 눈이 화등잔만하게 커지기 시작하였다.
설마하니 처음부터 극비 중에 극비를 대뜸 물어볼 줄은 전혀 예상치 못한 까닭이었다.
"말해, 좋은 말로 할 때."
"..........."
임교한의 동공이 쉴새없이 흔들리기 시작하였다.
이걸 무어라 답해야할 지 감이 잡히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말한다면 이건 국가에 대한 배신이었다.
반대로 침묵을 한다면 목숨이 위태로웠다.
그야말로 진퇴양난 그 자체인 것이다.
".....모른다."
결국 임교한은 시치미를 뚝 떼기로 하였다.
차마 국가를 배신할 수 없던 것이다.
"그래, 처음부터 협조적일 거라고는 생각지도 않았어."
선우는 이해한다는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중국에서 상장 정도 위치에 오른 자라면
필시 국가에 대한 충성도가 하늘을 찌를 것이다.
그런데 어찌 처음부터 협조적으로 나오겠는가
기대조차하지 않았다.
"거짓 한푼없는 진실이다! 나 또한 원인을 파악하기 위해 이곳에 온 것이란 말이다!"
임교한은 억울하다는듯한 표정을 지은 채 고함을 내질렀다.
"그래, 알았어, 알았으니까 잠깐만 있어봐."
선우는 그를 진정시킨 뒤 오른손을 슬며시 들어올렸다.
사아아아악
그러자 이내 오른손이 붉게 물들이기 시작하였다.
마치 불에 달궈진 것처럼 말이다.
꿀꺽
그 불길한 오른손을 마주한 임교한은 침을 꿀꺽하고 삼켰다.
한눈에 봐도 알 수 있었다.
저 불길한 오른손에 심상치 않은 기운이 담겼다는 것을
절로 오금이 저리기 시작하였다.
"한번 더 기회를 줄게, 황산 붕괴 원인이 뭐라고?"
"말했지 않느냐! 원인 불명이라고! 조사차 이곳에 온것이라고!"
임교한은 치솟는 공포를 애써 억누르며 입을 떼었다.
"그래."
선우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꾸우우욱
그리고 망설임없이 임교한의 가슴팍을 짓눌렀다.
"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곧이어 끔찍한 비명성이 막사 내부에 울려퍼지기 시작하였다.
.
.
.
.
.
.
"황산이 무너진 원인은 천인天人과 대괴수의 충돌때문입니다."
무척이나 초췌해진 임교한은 친절히 설명을 잇기 시작하였다.
뻗대던 때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천인天人?"
"게이트를 넘어온 이계인입니다. 당국에선 그녀를 천인이라 지정했지요."
"그녀라면 여자라는 뜻인가?"
"예에, 무척이나 수려한 외모를 지닌 여자였습니다!"
"다른 특징은?"
"풍성하고 찬란한 금발에 청옥처럼 푸른 눈동자! 구름처럼 새하얀 피부를 지닌 여자였습니다! 몸매도 무척이나 멋졌습니다!"
임교한은 기억이 나는대로 끄집어내기 시작하였다.
"어때? 짐작가는 녀석 있어?"
그리고 그 이야기를 들은 선우는 슬며시 용자쪽을 바라보며 물었다.
-딱 한명, 조건이 맞는 녀석이 떠오르네요.
용자는 고개를 주억거리며 입을 떼었다.
"그게 누군데?"
-세실리아 디올 슈페리얼
십여년 전 고작 열네살의 나이로 일곱 지배자들에 근접한 무력을 갖췄던 초천재.
태양의 여신 라트렐과 밤의 여신 녹스의 사랑을 한몸에 받는 성자.
마왕과 대적할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닌 인류의 유일무이한 희망.
-인류 최강의 용사입니다.
용자의 눈빛이 잘게 떨리기 시작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