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협지 안으로 들어와버렸다-1355화 (1,356/1,419)

-러시아에서 원인불명의 통신장애가 발생하여 대사관을 비롯한 관광객, 거주자들과의 연락이 완전히 두절되었습니다. 현재 각국에서는 원인파악을 위해 각고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상황이지만 있습니다만 위성을 비롯한 모든 통신장비가 오작동한 까닭에 원인파악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입니다. 자세한 상황은 우크라이나 루간스크 국경선 부근에 김대기 기자가 전해드립니다.

-김대기 기자입니다! 저는 현재 우크라이나 루간스크 국경선에 나와있는데요..

갑자기 화면이 암전되었다.

"아니, 갑자기 왜 꺼?"

장광효는 눈살을 살짝 찌푸린 채 입을 떼었다.

"곧 연우 광고 촬영하러 갈 시간이야. 안늦으려면 지금부터 준비해야돼"

"지금 광고 촬영이 문제가 아니야! 러시아면 선우가 출장 간 곳이잖아! 당신은 걱정도 안돼?"

장광효는 답답하다는듯한 표정을 지은 채 언성을 높였다.

아들의 생사가 불분명한 상황에서 어찌 저리 태연하다는 말인가

계모도 이러진 않을 것이다.

"방금 전 용자를 통해서 연락이 왔어, 아무런 문제없으니까 걱정하지 말라구."

"뭐야?! 연락이 왔었어?"

장광효는 머쓱한 표정을 지은 채 되물었다.

"응, 오늘 안에 도착할 거라고 하더라구, 그러니까 쓸데없는 걱정말고 어서 준비해."

"......알았어...."

장광효는 머리를 긁적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괜스레 오버를 한 것 같은 민망함이 느껴진 까닭이었다.

"우리 연우도 할미랑 예쁜 옷 입으러 갈까?"

"꺄하~"

혼자 놀고 있던 연우는 해맑은 미소를 지은 채 작달막한 팔을  파닥거리기 시작하였다.

"우리 연우는 웃는 것도 이리 이쁘네, 누굴 닮아 이리 이쁠까?"

권순분 여사는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뭐든 구김살 하나 없이 즐기는 연우의 모습이 너무나 귀엽고 깜찍하게 느껴진 까닭이었다.

"아바 아바!"

"아빠를 닮았어? 하긴 우리 할미 아들이 잘생기긴 했지, 아암."

권순분 여사는 미소가 더욱더 진해지기 시작하였다.

말귀를 알아듣는 연우의 성장에 신기함과 대견함이 절로 든 까닭이었다.

이제 두살 된 아이가 어찌 이리도 똑똑할 수 있다는 말인가

'아무래도 좀더 크면 영재 학원인가 뭔가를 알아봐야겠어.'

대한민국의 틀에 박힌 교육으로는 연우와 같은 천재를 담아낼 수 없을 것이다.

영재 교육원에 들어가 재능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게 가장 최선이리라

그렇게 한창 연우의 행복한 미래에 대한 설계를 하던 차.

"어마! 어마!"

뒤이어 연우가 엄마를 연호하기 시작하였다.

"....아.."

순간 권순분 여사는 말문이 턱하고 막히고 말았다.

해맑게 어미를 찾는 연우의 모습에 어떠한 말도 할 수 없던 까닭이었다.

'....연우가 어미를 잊지 않았구나.'

그간 티를 내지 않아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아무래도 연우는 친모를 잊지 않고 있는듯 하였다.

'분명...도망가거나..이혼한 거겠지.'

아들말로는 불가피한 사정으로 멀리 떨어져있다고 하지만 권순분 여사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아무리 불가피하다고 해도 젖먹이를 두고 떠날 이유는 없다는 생각이 든 까닭이었다.

아마 불효하는 마음에 그런 불편한 진실을 애써 감춰두고 있는 것이리라

'......걱정이네..우리 연우..'

괜스레 걱정이 되었다.

지금이야 멋모르니 괜찮겠지만

나이가 들면 어미가 없는 상황에 대해 인지할 때가 올 것이다.

그리고 만약 그리 된다면 실로 걷잡을 수 없는 박탈감을 느낄 수도 있었다.

편부 가정에 대한 세상의 편견은 아이에게 더할 나위없는 큰 상처가 되고 말테니.

'선이라도...보던가...아니면 괜찮은 아가씨를 찾아봐야겠어.'

권순분 여사는 연우를 바라보며 굳게 다짐하였다.

이 귀엽고 사랑스러운 손자가 세상의 편견에 상처 받지 않도록 새엄마를 찾아주겠다고

"연우야, 할미만 믿거라."

"꺄하~"

그런 권순분 여사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연우는 그저 해맑게 웃음만 지을 뿐이었다.

*********

"먼젓번에 전화드린 김상섭 PD입니다 반갑습니다. 연우 어머님 되시죠?"

"아니요,호호호호, 저는 할미랍니다."

"이야, 너무 젊으셔서 어머니인줄 알았네요 하하하."

"호호, 그런 말 많이 듣는답니다."

"우리 연우 상태는 어떤가요?"

"꺄부아아~~!!!"

연우는 PD에 물음에 대답하듯 활기차게 언성을 높였다.

"하하하하하, 우리 연우, 오늘 아주 기분이 넘치는구나."

그러자 김상섭 PD는 기분 좋은 표정을 지었다.

안그래도 천사같은 연우가 활기차게 웃으니 그 사랑스러움이 배가 된 까닭이었다.

보는 것만으로도 절로 기분이 좋아졌다.

"아까부터 들떠있는 상태예요, 촬영은 무리없이 진행될 거 같아요."

"하하하, 사실 걱정은 않았습니다. 우리 연우가 촬영에 협조적인 건 이미 업계에서 정평이 나있는 사실이니까요. 하하하."

김상섭 PD는 사람좋은 웃음을 터트리며 입을 떼었다.

"일단 연우는 안쪽에서 대기실에서 대기하시면 됩니다."

"아, 바로 촬영에 들어가는 게 아닌가요?"

권순분 여사는 의아한듯한 표정을 지은 채 되물었다.

"네에, 아무래도 유산균 역할을 맡은 아기들의 촬영이 아직 끝나지 않아서요."

"그럼 언제쯤...끝날까요?"

"연우에게 오래 대기하지 않도록 최대한 빨리 끝내도록 하겠습니다."

"아니에요, 천천히 촬영해주셔서도 돼요, 연우도 방송국 구경하는 걸 좋아하니까요."

"아이고, 이해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래도 너무 늦을 것 같으면 곧바로 접고 연우부터 찍도록 하겠습니다."

"네에, 감사해요, PD님."

"예에, 그럼 조금 이따 뵙겠습니다."

그렇게 인사를 끝마친 뒤 권순분 여사는 연우를 데리고 안쪽으로 들어갔다.

"자아~! 메인 모델도 왔으니까! 빨리 끝내도록 합시다!"

그들이 사라지자 김상섭 PD는 태도를 싹 바꾼 채 고함을 내질렀다.

메인 모델인 연우에겐 삼촌처럼 친절한 그였지만 다른 아기모델에게는 가차없는 호랑이 PD에 불과한 까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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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분 휴식! 테이프만 갈고 곧바로 재촬영하겠습니다!"

곧이어 김상섭 메인 PD가 고함을 내질렀다.

그러자 유산균 옷을 입고 있는 아기모델들쪽으로 엄마들이 모여들기 시작하였다.

"우리 정우 많이 힘들었지! 자아, 주스 좀 먹자!"

"새롬아, 우리 새롬이 괜찮니? 더웠지? 자아 선풍기 좀 쐬자."

"연기 똑바로 못해! 좀더 눈에 띄어야한다고 했잖아!"

엄마들은 곧바로 아이들을 데리고 에어컨쪽으로 이동을 하였다.

후덥지근한 스튜디오의 열기에 귀중한 자식이 혹여 열사병이 걸리는 건 아닐까 걱정이 된 까닭이었다.

"옆으로 좀 가봐야, 우리 명우가 바람을 못쐬잖아요!"

"아니, 그럼 우리 새롬이는 쐬지말라는 건가요!"

"밀지마요! 넘어지면 책임질거예요!"

뜨거운 스튜디오 열기에 불쾌지수가 한껏 올라간 애엄마들은  하나같이 성질을 내기 시작하였다.

안그래도 더워죽겠는데 촬영이 지연되니 짜증이 치밀어오른 까닭이었다.

"애들이 이렇게 많은데 무슨 에어컨이 다섯대밖에 없대요?"

"제 말이요! 없으면 대형 선풍기라도 빌려와야지, 기본이 안되있어."

"이러다가 우리 희승이 열사병 걸리겠어요, 안그래도 더위에 약한데."

곧이어 여러 엄마들이 불평을 토로하기 시작하였다.

후덥지근한 촬영장에 대한 불만이 차오른 까닭이었다.

"그런데 아까 연우가 도착했다고 하지 않았어요? 안보이네요."

그때 한 아이 엄마가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입을 떼었다.

일약 스타로 떠오른 아기천사, 연우의 모습이 보이지 않은 까닭이었다.

"아까보니까 뒤쪽에 있는 대기실로 이동하던데요?"

"개인 대기실도 배정받은 거예요?"

"아무래도...이번 광고 메인 모델이니까요.."

"진짜 불공평하네, 메인 모델이고 자시고 대기실도 넓은 것 같은데 다른 애기들 수용하는 게 맞지 않아요? 뭐 이리 차별한데요?"

"그것도 그렇죠, 애기들 몸이 약한데, 이렇게 차별하는 게 맞는지 모르겠네요."

특별대우에 대한 불만이 속출하기 시작하였다.

"이대론 안되겠어요."

그때 잠자코 있던 애엄마하나가 몸을 일으켜세웠다.

아기모델 업계에서 가장 높은 짬밥을 자랑하는 준연예인, 명우맘이었다.

"어떻게 하시게요?"

소영맘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음을 던졌다.

"같이 쓰자고 해야죠."

"그걸 허락해줄까요?"

"애를 내세우면 설마 거절이야 하겠어요?"

"하지만 PD님께서...개인 대기실에는 절대 이용금지라고.."

"지금 그게 대수예요? 이러다가 우리 애 열사병 걸려죽게 생겼는데! 10분을 쉬더라도 제대로 쉬게해야지, 가자 명우야!"

명우맘은 단호하게 말을 내뱉었다.

그리고 명우의 손을 이끌고 대기실쪽으로 향하였다.

그 광경을 지켜본 몇몇 엄마들 또한 그 뒤를 따르기 시작하였다.

명우맘이 총대를 메니 모두가 없던 용기가 샘솟은 것이다.

똑 똑 똑

이내 문앞에 도달한 명우맘이 대기실 문을 두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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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해요, 이렇게 들여보내주시고."

명우맘을 싱글벙글 웃으며 감사를 표하였다.

"정말 이렇게 흔쾌히 수락해주실 지는 몰랐어요."

"감사드려요, 연우 할머님."

다른 엄마들 또한 연신 감사를 표하였다.

"뭘요, 애 키우는 입장에서 서로 돕고 살아야죠, 어른도 버티기 힘들 정도로 더울텐데 애기들이 어떻게 버티겠어요."

권순분 여사는 사람좋은 미소를 지었다.

특권의식따윈 없이 사람좋은 그녀였다.

대기실 자리를 양보해주는 것정도는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리라

"그나저나 연우는 할머님이 직접 데리고 촬영장에 오시나봐요?"

"네에, 애아빠가 많이 바빠서요."

"어머, 며느리분께서는..?"

"그게...같이 살고 있진 않아서요."

"어머..죄송해요..주책이야..정말 쓸데없는 걸 물어서.."

명우맘은 곧바로 사과를 하였다.

설마하니 편부 가정일 줄은 예상치 못한 까닭이었다.

"아닙니다, 궁금할 수도 있지요."

권순분 여사는 손사래를 쳤다.

무례랄 것도 없었다.

어머니의 존재를 묻는 건 너무나 당연한 일이니.

'엄마가 없나보네.'

'뭐야, 편부였어?'

'왠지 옷입는 게 촌스럽다했어.'

'살짝 꼬질한 것 같기도 하네.'

한 편 그 얘기를 엿듣고 있던 다른 엄마들은 속으로 비웃음을  지었다.

뭐든 완벽할 것 같은 연우의 결함에 꽤나 마음에 든 까닭이었다.

"그러고보니 에이전트랑 계약하셨나요?"

"아니요, 그런 건 아직 잘몰라서요."

"그럼 저희 HS에이전트는 어떠세요? 엄청 케어를 잘해주는데."

"저희 마운틴박스 엔터도 좋아요! 아기모델 전문 엔터라서..엄청 좋다니까요."

그렇게 모델 맘들은 비웃던 속내를 감추고 한껏 웃으며 이야기꽃을 피우기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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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에..안들어.'

한편 올해 다섯살이 된 명우는 무척이나 성이 나있는 상황이었다.

시원한 대기실로 들어온 것까진 좋았지만 그외에 모든 게 마음에 들지 않은 까닭이었다.

"여누야~..여누야~ 누나봐봐..발레할 줄 안다~"

"여누야...여기....이거..봐봐..공룡사우르스..로보트야~"

"형아..형아야..여누야~"

"여누야...누나랑..소꿉놀이..하까?..누나가..엄마하고..여누가..아빠야....아랏지? 여보~하고 부르는거야~"

일단 가장 마음에 안드는 건 연우라는 아기에게 쏟아지는 과할 정도의 관심이었다.

명우를 제외한 대부분 아이들은 연우의 관심을 끌기 위해 부던히 노력을 하였다.

본능

우월한 존재와 함께하고 싶은 원초적인 본능이 그들을 절로 연우를 떠받들게 만든 까닭이었다.

'....왜 쟤한테만..관심을 가지는 거야.'

명우는 그 모양새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원래라면 자신에게만 쏟아지던 관심이 연우에게 모두 옮겨가버렸기 때문이었다.

"연우야..뽀뽀 한번만 해봐도 돼?"

그때 내심 마음에 두고 있던 풀잎이의 쑥스러움 목소리가 귓가로 파고들었다

'안돼에에!

그 순간 명우의 눈에 불길이 일기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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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에에에에에에엥!!!!"

대기실에 서러운 울음소리가 울리기 시작하였다.

"뭐야."

"누가 우는 거야!?"

한창 담소를 나누던 엄마들은 화들짝 놀라며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볼 수 있었다.

서럽게 울고 있는 명우의 모습을

"명우야!"

그러자 명우맘은 망설임없이 내달렸다.

그리고 서럽게 울고 있는 명우를 들어올려 상태를 살피기 시작하였다.

명우는 꽤나 상태가 심각하였다.

다리에는 화상을 입었는지 빨갛게 물들어있었고 앞니는 전부 빠져있었다.

"어떻게 된거니! 명우야! 대체 누가 우리 명우를 이렇게 만들었어!"

"흐에에엥...후에에엥..후에에엥!"

그러자 명우가 손가락을 쭉 펼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그 손가락 끝은 연우를 가르치고 있었다.

"연우? 연우가 그렇게 했어?"

"후에에엥!"

끄덕 끄덕 끄덕

명우는 눈물 콧물을 질질 흘리며 고개를 주억거리기 시작하였다.

"연우가 어떻게 했는데!"

"친하게...지내내고..싶어서.....따뜻한..우유 가져갔는데....나한테..부어버렸어어어!! 흐아아아앙!!"

명우는 무척이나 서럽게 울기 시작하였다.

"뭐야!"

그리고 그 말을 들은 명우맘은 쌍심지를 켜며 연우를 노려보기 시작하였다.

귀한 아들을 상처입혔다는 생각에 분노가 차오른 까닭이었다.

"흐으윽...으윽...흐아아아아앙.."

그러자 연우 또한 울음을 터트리기 시작하였다.

악의와 적의로 가득한 시선을 온전히 감당하기엔 연우는 너무나 어린 까닭이었다.

"연우야!"

권순분 여사는 다급히 달려가 연우를 달래기 시작하였다

그렇게 화기애애했던 대기실은 때 아닌 파란을 맞이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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