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아...하아...하아...하아."
세라스는 거칠게 숨을 내쉬었다.
무리한 필멸기 운용이 전신에 상당한 부담을 준 까닭이었다.
'더럽게 아프네..빌어먹을.'
뼈마디가 쑤셨고 근육이 욱신거렸으며 마력을 담아둔 심장이 터질 것만 같았다.
'아직은 무리였던가?'
아무래도 블리자드 버드는 시기상조였던듯 싶었다.
위력도 반감되고 반동도 이렇게 심하게 오는 걸 보면 말이다.
"많이 아픈가봐? 숨을 헐떡거리네."
그때 얄미운 목소리가 귓가로 파고들기 시작하였다.
SS급 헌터마저 무릎꿇렸다던 러시아의 골칫거리였다.
-.....과연 듣던대로 괴물이로군, 비록 60%밖에 구현하지 못했다고는 하지만...설마 얼음대륙을 쪼개버린 블리자드 버드를 버텨낼 줄이야.
"별거 없던데?"
선우는 태연스레 말을 내뱉었다.
강맹한 공격이긴 하지만 못버틸 수준은 아니였다.
애초에 태권을 쓰지 않고 건곤대나이로 공기의 방향만 틀어버렸어도 완전히 빗나가게 만들 수 있었으리라
-....허세부리지마라....네 녀석이 최선을 다해 방비한 걸...난 알고 있으니.
"아닌데?"
-솔직하지 못한 놈이로군, 뭐, 그렇다고 쳐주지.
세라스는 멋대로 결론지어버렸다.
블리자드가 별거 아니라는 말을 도저히 인정할 수 없던 까닭이었다.
얼음대륙마저 쪼개버린 최흉의 필멸기가 어찌 별거 아닐 수 있다는 말인가
말도 안되는 일이었다.
"누가 새 대가리아니랄까봐, 말 한번 더럽게 못알아처먹네"
-뭣이! 지금 날 모욕하는 건가! 용서할 수 없다! 인간!
세라스는 발끈하며 언성을 높였다.
모욕적인 그의 말에 분노가 치솟은 까닭이었다.
-난 얼음 대륙의 수호신이자 판테시아 대륙에 군림하는 위대한 일곱 지배자들 중 하나인 혹한의 세라스다! 그런 나를 어찌 한낱 인간따위가 모욕을 한다는 말인가! 이는 있을 수도 있어서도 안되는 일이다!
"용자란 비슷한 애인가보네."
-용자? 용자가 누구지!?
"기억 안나? 며칠 전 이곳에 왔었잖아?"
선우는 차분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날개가 뜯어지고 가슴이 뚫리고 꼬리가 잘랐잖아."
-설마...분노의 베이거스를 말하는 것인가!?
"판테시아에서는 그렇게 부르나보지?"
-하하하하하하하! 실로 우습기 그지없구나! 판테시아 전역을 두려움에 떨게 했던 멸망의 드래곤이! 한낱 인간따위게 조롱당하다니!
"말조심해, 조롱이라니."
선우는 눈살을 찌푸린 채 입을 떼었다.
"우리 사랑스러운 아들이 직접 선택한 이름이다."
-아무래도 그리 똑똑한 아이는 아닌듯하구나, 이리도 촌스러운 작명실력을 갖춘 걸보면 말이야!
세라스는 가시 가득한 말로 도발하기 시작하였다.
나름대로 빈틈을 야기할 전략이었다.
"뭐, 이새끼야?"
하지만 그 전략은 최악의 실수가 되어버렸다.
"다시 말해봐, 우리 아들이 뭐?"
아들밖에 모르는 바보
선우 앞에서 연우를 건드는 건 실로 위험스럽기 짝이 없는 행동이었다.
아들과 관련된 일이라면 그나마 부여잡고 있는 이성의 끈마저 완전히 끊겨버리기 때문이다.
-똑똑치 않다고 하였다! 용자라니! 언어는 달라도 촌스러운 어감만큼은 똑똑히 알겠구나! 인간!
세라스는 분위기의 반전을 눈치챘지만 굴하지 않았다.
이제와서 겁을 집어먹고 물러선다는 건 얼음대륙의 수호신으로서의 자존심이 허락치 않은 까닭이었다.
"너, 방금 선 넘었어. 새대가리."
선우는 흉식악살처럼 얼굴을 와락 구겼다.
-애초에 우리사이에 지켜야할 선따위가...꾸에에에엑!!!
콰아아아아아앙
세라스의 말은 끝까지 이어지지 못하였다.
전혀 예상치 못했던 거대한 충격이 머리통을 그대로 내리꽂혀진 까닭이었다.
쇄애애애애애애애애액
쿠우우우우우우웅
곧이어 세라스는 거침없이 추락하였고 그대로 꼴사납게 땅에 처박히고 말았다.
-끄으으윽...으으윽...으아악!!
그리고 두개골이 함몰될듯한 격통에 세라스는 머리를 들어올린 채 고통으로 가득한 비명을 내지르기 시작하였다.
아팠다.
너무 아파
눈물이 찔끔 배어나올 것만 같았다.
별안간 대체 이게 무슨 일이란 말인가
콰아아아아아아앙
-꾸웨에에에에엑!!
그때 다시금 머리통에 거대한 충격이 전해졌다.
그와 동시에 들처올렸던 머리통이 다시금 땅에 처박혔다.
어느새 지척까지 다가온 선우가 발을 들어올려 머리통을 강하게 짓밟아버렸기 떄문이었다.
-으아아아악!! 가만두지 않겠다아아!!
세라스는 전신에서 냉기를 내뿜기 시작하였다.
판테시아 대륙 전체를 얼어붙게 만들었던 혹한의 냉기가 거침없이 흩뿌려지기 시작한 것이다.
콰아아아아앙
-꾸웨에에에에엑!!!
하지만 그런 혹한의 냉기 앞에서도 선우의 발길질은 멈추지 않았다.
콰아아아아앙
아니 오히려 냉기가 강해질 수록 더욱더 강하게 짓밟기 시작하였다.
-어..어째서!...어째서 얼지 않는 거야아아아!!! 아아아악!!
도저히 믿기지 않았다.
자신의 냉기가 무엇이란 말인가
판테시아 전체를 얼어붙었던 혹한의 냉기가 아니던가
그런데 어찌 그런 혹한의 냉기조차
이 조그만한 인간을 얼어붙게 만들지 못한다는 말인가
어찌 이렇게 속수무책으로 당하기만 한다는 말인가
믿기지 않았다.
아니 믿을 수 없었다.
대체 저 인간의 정체는 무엇이란 말인가
콰아아아아아아앙
그때 다시금 강맹한 충격이 뇌를 울리기 시작하였다.
'이러다간..죽을지도..몰라....아니....죽을 거야.'
더는 무리였다.
더이상은 감당할 여력이 없는 것이다.
-인..인간!!...잠.깐!!.
세라스는 다급히 인간을 불렀다.
콰아아앙
하지만 대답 대신 돌아온 건 무자비한 폭력이었다.
-당장..그만두지..아아악!
콰아아아앙
-우리..대화로....아아아악!!
콰아아아아아앙
-내가...내가 잘못..했다!!..잘못했으니까...아아아아악!!
콰아아아아아아앙
무언가가 잘못되었음을 깨달은 뒤에는 이미 늦은 상황이었다.
그의 압도적인 폭력은 거침이 없었고 세라스는 그대로 머리통을 얌전히 짓밟힐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발광하고 마력을 내뿜으며 저항을 해도 상대는 모든 걸 무의미하게 만들어버렸으니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꺼으으으으윽...으으....으으으..으어어억..
땅에 처박힌 세라스는 의미불명의 신음을 흘리며 전신을 파들파들 떨기 시작하였다.
압도적이고 끔찍한 폭력앞에 완전히 정신줄을 완전히 놓아버린 것이다.
"....이새끼, 정신 놨네."
아직 분이 덜 풀린 선우는 눈살을 잔뜩 찌푸렸다.
이제 시작이거늘
벌써부터 정신줄을 놓는단 말인가
"안되지, 안돼."
선우는 오른 손을 시뻘겋게 물들이기 시작하였다.
푸우우욱
그리고 한치의 망설임없이 푸른 깃털 속에 거죽에 그대로 쑤셔버렸다.
-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그 순간 정신줄을 놓았던 세라스의 입에서 격렬한 괴성이 터져나왔다.
전신이 타는듯한 끔찍한 고통에 절로 제정신이 돌아온 것이다.
"누구 마음대로 정신줄 놓으래? 아직 멀었어, 이새끼야."
콰아아앙 콰아아앙 콰아아앙
정신줄이 돌아오자 선우는 다시금 세라스를 짓밟기 시작하였다.
-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그렇게 세라스는 정신줄조차 마음대로 놓지 못한 채 끔찍한 고통에 시달리고 또 시달리게 되었다.
선우의 분노가 완전히 가라앉을 때까지 말이다.
********
이반 코테프
그는 지금 전율을 느끼고 있었다.
모스크바 전역을 궤멸시킬 뻔했던 재앙의 대괴수
혹한의 세라스.
그 흉악스러운 절대자가 한없이 초라한 모습으로 짓밟히고 있었다.
너무나 미약하고 조그만 한낱 인간에 의해서
어떻게든 벗어나기 위해 발악해보았지만 소용이 없었다.
그의 절대적인 무력 앞에선 모든 저항이 그저 무용할 뿐이니
뒤이어 흉악스러운 재앙의 대괴수는 울먹이며 애원을 하기 시작하였다.
제발 살려달라고
제발 짓밟지 말아달라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남자는 거침이 없었다.
아니 오히려 더욱더 철저하게 짓밟고 또 짓밟을 뿐이었다.
'....초월자.'
그 광경을 본 순간
떠올릴 수 있는 건 단 하나의 단어뿐이었다.
초월자.
그렇다.
저 남자는
저 장선우라는 존재는
코드네임 엔젤과 마찬가지로 재앙의 대괴수를 뛰어넘는 초월적인 존재인 것이다.
'그저 무의미한 발악이었을 뿐이었구나.'
압도적인 폭력앞에 경외감과 전율을 느끼며 이반 코테프는 깨달았다.
국가의 이익을 위해
장선우와 코드네임 엔젤의 접촉을 차단했던 게 무의미한 발악에 불과하였다는 것을
'나는....실로 어리석은 짓을 저질렀구나.'
저 남자는 재앙마저 뛰어넘은 위대한 초월자였다.
그런 초월적인 존재를 한낱 인간따위가 좌지우지하려고 했다다니
실로 어리석은 일이 아닐 수 없었다.
"허허허허...허허허.."
큰 깨달음을 얻은 이반 코테프는 허허로운 웃음을 흘렸다.
그리고 바깥으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하였다.
이대로 블라디미르 길드로 가
시체라도 수습할 생각이었다.
자신에게 신의 앞길을 막을 자격따윈 없었으니 말이다.
그렇게 법무부장관, 이반 코테프는 그대로 떠나가버렸다
*********
-하아...하아...하아...하아..하아.
작달막한 푸른 펭귄이 당장에라도 숨이 넘어갈 것처럼 거칠게 숨을 몰아쉬기 시작하였다.
'빌어..먹을..'
펭귄의 정체는 세라스였다.
무자비한 폭력에 시달린 결과 본체를 유지할 마력과 체력이 전부 떨어져 작달막한 펭귄으로 돌아가버린 것이다.
'이대로 가다간 죽을 거야.'
이제는 펭귄의 모습조차 벅차다는 생각이 들었다.
죽음이 임박해온 것이다.
'그냥 힘조절해준다고 했을 때 닥치고 있을걸'
세라스는 깊은 후회를 하였다.
알아서 힘조절하겠다고 했을 때
입만 다물고 있었어도 이런 꼴은 안당했을 거란 생각이 든 까닭이었다.
'........개같은..눈치..'
항상 이놈의 눈치가 문제였다.
북궁연 때도 그렇고
베이거스 때도
눈앞에 남자에게조차
이 눈치 때문에 곤욕을 치르게 되었으니
실로 끔찍스러운 눈치가 아닐 수 없었다.
"아, 다행히 살아있네."
그때 귓가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자신을 만신창이로 만든 그 남자의 목소리였다.
덜 덜 덜 덜 덜
전신을 덜덜 떨리기 시작하였다.
본능에 각인된 압도적인 폭력의 공포가.
전신을 사시나무처럼 떨리게 만드는 것이다.
"죽으면 곤란했는데 잘됐어."
-죄...죄송..합니다..죄송..합니다..
세라스는 고장난 태엽 인형처럼 죄송하다는 말을 끊임없이 반복하고 또 반복하기 시작하였다.
너무 무서워
사과외에 다른 말은 내뱉어지지 않은 까닭이었다.
"아아, 용서해줄게, 그만한 대가를 충분히 치뤘으니까."
선우는 선심쓰듯 말하였다.
말 두마디에 죽기직전까지 내몰렸다.
이정도면 나름대로 충분한 대가를 치른 것이리라
-감사합니다...감사합니다...감사합니다.
세라스는 눈시울을 붉히며 연신 감사를 표하였다.
죽음의 공포에서 벗어났다는 생각에 절로 감격을 한 까닭이었다.
"그보다...부탁하고 싶은 게 있는데."
-뭐든 말씀하세요! 불구덩이라도 뛰어들겠습니다!
"엔젤을 만나고 싶다."
선우는 한없이 진지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물론 가능하겠지?"
그리고 이내 살벌한 미소를 짓기 시작하였다.
그 물음에 세라스의 눈동자가 쉴새없이 흔들리기 시작하였다.
********
-저를 따라오시면 돼요!
뒤뚱 뒤뚱 뒤뚱 뒤뚱
선기로 대충 치료받은 세라스가 짧은 다리를 뒤뚱거리며 앞서가기 시작하였다.
"그래, 부탁할게."
선우는 히죽거리며 그 뒤를 따르기 시작하였다.
설마하니 이렇게 협조적으로 나올 줄은 예상치 못한 까닭이었다.
'그래도 주인이라고...어느정도 의리를 지킬 줄 알았는데 말이야.'
아무래도 판테시아의 괴수에게 의리따위는 중요치 않은 까닭이었다.
그렇게 선우는 뒷짐을 진 채 여유로이 세라스를 따라가기 시작하였다.
까드드득
한편 앞서가던 세라스는 뒤편을 슬쩍 보고는 이를 갈기 시작하였다.
여유로운 선우의 태도에 부아가 치밀어오른 까닭이었다.
'어디 마음껏 여유부려봐라...인간..'
그 여유도 오래가진 않을 것이다.
통칭 엔젤이라고 불리우는 절대자.
북궁연.
그녀를 마주한 순간
저 여유도 사그라지게 될 게 분명하였기 때문이었다.
'북궁연은 시간마저 얼리는 위대한 초월자다...네 녀석따위는 순식간에 얼음 동상으로 만들버릴테지.'
세라스는 북궁연의 승리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시간마저 얼리는 그녀의 권능을 두 놈으로 직접 목격한 까닭이었다.
아무리 날고 긴다고해도 권능 앞에선 그저 무의미할 수밖에 없었다.
시간마저 동결되어버린다면 저 강인한 육체의 힘따윈 무용하게 될테니
'얼음 동상이 된다면..내 친히...부숴주마..쿄쿄쿄쿄쿄쿄쿄쿄쿄'
뒤뚱 뒤뚱 뒤뚱 뒤뚱
세라스는 행복한 상상을 하며 빠르게 걸음을 옮기고 또 옮겼다.
한시라도 빨리 북궁연에게 닿기 위해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이내 세라스는 커다란 문 앞에 도달하게 되었다.
북궁연이 머물고 있는 처소였다.
-여기입니다!
세라스는 무자비한 남자를 돌아보며 활짝 미소를 지었다.
이제 죽을 저놈을 위한 비웃음 가득한 미소였다.
"............"
그런데 남자의 상태가 이상하였다.
그는 대답조차하지 않은 채 그저 멍하니 문을 응시하고 있었다.
마치 넋이 나간 사람처럼 말이다.
'주인님의 기세에 짓눌려버린건가?'
그렇다면 이는 기회였다.
넋이 나간 상황이라면 좀더 승기를 가져오기 유리해질테니
-야아압!!!
세라스는 재빨리 문을 열어젖혔다.
-주인님! 저 빌어먹을 새끼가 저를 마구마구 때리고 괴롭혔어요!! 죽기직전까지 내몰렸다니까요!? 당장 얼려서 얼음동상으로 만들어주세요오오!!!
그리고 큰소리로 도움을 요청하기 시작하였다.
최대한 간결하게 상황을 전달한 것이다.
-어?
그런데 상황이 이상하였다.
안쪽에 머무르고 있던 북궁연이 넋이 나간 채 정면을 응시하고 있던 까닭이었다.
얼음장과도 같았던 얼굴에 온기까지 띄운 채로 말이다.
'뭐야!?...뭔데!?'
세라스는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두 사람은 처음 마주했음에도
서로 의문을 표하지 않았다.
서로 경계하지 않았다.
서로 적의를 내보이지 않았다.
그저 멍하니 응시만할 뿐
대체 이건 또 무슨 개같은 상황이란 말인가
그렇게 한참동안이나 당혹스러워하던 찰나
"연."
자신에게 무자비하게 폭력을 가했던 남자가 입을 떼었다.
애정이 가득한 목소리로
"선우."
그러자 시간마저 동결시키는 주인님 또한 천천히 입을 열었다.
평소에 서릿발과 같은 목소리가 아닌 훈풍이 절로 느껴지는 애틋한 목소리로
'......망할...'
그 순간
세라스는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무언가 잘못되어도 단단히 잘못되었다는 사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