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협지 안으로 들어와버렸다-1349화 (1,350/1,419)

"잘 생각하셨습니다."

출입 관리국 직원, 차이콥프는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절대 돌아갈 수 없다고 박박 우기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던 여자가 고집은 꺾고 돌아가겠다는 말을 내뱉은 까닭이었다.

"그럼 항공권은 이쪽에서 마련토록 하겠습니다. 좌석은 특별히 비즈니스 클래스로 준비해두지요."

나름 선심쓰듯 입을 떼었다.

"아니요."

그러자 이한설은 단호하게 거절을 표하였다.

"당신네들의 호의같은 건 필요없어요! 그냥 이코노미로 주세요."

무척이나 기분나쁜 티를 팍팍내면서 말이다.

"이코노미 좌석은 많이 불편하실텐데요?"

퍼스트 클래스에 앉아 러시아로 넘어온 이들이었다.

그들에게 있어 서민이나 타는 이코노미는 실로 불편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건 저희가 알아서할테니까, 신경 끄세요."

'쯔쯧, 자존심은 세가지고 제 복을 걷어차는 구만.'

그 앙칼진 태도에 차이콥프는 속으로 혀를 가벼이 찼다.

자존심때문에 편의까지 포기하는 태도가 실로 어리석게 느껴진 까닭이었다.

어차피 쫓겨나게 되는 거 좀더 편의를 추구하는 게 실리적이지 않겠는가

실로 멍청한 년이 아닐 수 없었다.

"뭐, 알겠습니다, 그럼 가장 빠른 이코노미 좌석을 예약하죠."

구태여 설득할 생각은 없었다.

스스로 싫다는 걸 뭘 어쩌겠는가

"흥."

휘익

차이콥프의 말을 들은 이한설은 그대로 몸을 돌렸다.

그리고 빠르게 걸음을 옮기기 시작하였다.

'잘사는 나라사는 계집들은 하나같이 자존심이 더럽게 높다니까. 쯔쯧'

차이콥프는 그런 이한설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혀를 가벼이 찼다.

돈많은 멍청이라고 그녀를 조롱하면서 말이다.

.

.

.

.

"선우님!...저...말씀하신대로...이코노미석으로...예약해달라고 했어요."

"해준답니까?"

'네에..조언해주신대로...자존심 상하고 기분 나쁜 티를 팍팍 내니까..별말 없이 수긍하더라구요."

"역시 이한설 통역관은 유능하시네요, 출입검사관까지 깜빡 속여넘길 정도로 연기력이 뛰어난 걸 보면 말입니다."

선우는 흡족스러운듯한 표정을 지었다.

'헤헤...제가 사실 대학교때 연극동아리를 했었거든요.."

이한설은 쑥쓰럽다는듯한 표정을 지었다.

VVIP에게 능력을 인정받았다는 사실에 상당히 기뻤던 까닭이었다.

"그럼 그 연기력 쭉 믿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선우는 부드러이 미소를 지었다.

"저어..그런데 선우님."

"말씀하세요."

"정말 눈치 못 챌까요?"

이한설은 불안한듯한 표정을 지었다.

"눈치 못챌 겁니다. 이코노미쪽까지 일일히 신경쓸 정도로 승무원들이 한가하진 않을 테니까요."

항공기 내부 좌석의 70%는 이코노미석이었다.

인원이 많은 만큼 난잡스럽고 정신이 없었다.

그런 곳을 일일히 신경써줄 만큼 승무원들의 인력이 남아돌진 않을 것이다.

"........그럼 다행이긴 한데.."

"처음만 잘 넘길 수만 있으면 문제 없을 겁니다, 너무 걱정마세요."

선우는 히죽거리며 입을 떼었다.

"네에....알겠습니다."

이한설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불안감이 완전히 가신 건 아니지만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이미 주사위는 던져진 상황이였으니

'최선을 다하자! 내 커리어를 위해서라도!'

이내 이한설은 굳은 의지를 다졌다.

*********

김포 공항행 항공기 내부

"저기요."

창가쪽에 앉아있던 모자와 선글라스, 마스크를 뒤집어쓴 선우가 가벼이 손을 들어올려 승무원을 불러세웠다.

"네에, 말씀해주세요."

승무원은 특유의 해맑은 미소를 지은 채 입을 떼었다.

"담요 하나 가져다주시겠습니까? 한숨 자고 싶어서요."

"예에, 금방 가져다드리겠습니다."

승무원은 부드러이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곧바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하였다.

"그럼 전 이만 가보겠습니다. 담요가 오면 더미로 위로 올려주세요,"

그녀가 꽤나 멀어지자 선우는 옆자리에 있는 이한설을 바라보며 속삭이듯 말을 이었다.

"...네에...알겠어요."

"그럼 행운을 빌겠습니다."

선우는 부드러이 미소를 지었다.

푸욱

그와 동시에 그의 고개가 아래쪽으로 푹 숙여졌다.

더불어 팔다리는 추욱 처지기 시작하였다.

옷가지만 남겨둔 채 몸만 이동해버린 것이다.

"......허어.."

그 신비로운 광경에 이한설은 경악을 하였다.

미리 귀띔을 받긴하였지만 막상 직접 마주하니 그 놀라움이 결코 작지 않은 까닭이었다.

'이게 국보급 인재의 힘인가?'

과연 VVIP로서 국가가 예의주시하는 인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얼마나 넋놓고 감탄하였을까

"담요 가져왔습니다."

어느새 도착한 승무원이 조심스레 입을 떼었다.

"아.....피곤했는지 방금 막 잠들어서요......주시면 제가 직접 덮도록 할게요."

번쩍 정신을 차린 이한설은 조근거리듯 입을 떼었다.

"아..예에..알겠습니다."

승무원은 이내 창가쪽을 슬쩍보더니 덩달아 조근거리며 입을 떼었다.

그리고 담요를 조심스레 건네주었다.

그다음 천천히 걸음을 옮기기 시작하였다.

혹시라도 발소리에 깨지 않도록

그 광경을 지켜보던 이한설은 이내 담요를 펼쳐 더미 위로 조심스레 덮어주었다.

'제발..들키지말아줘..'

그리고 속으로 간절히 빌었다.

부디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기를

.

.

.

.

.

부우우우우우웅

커다란 여객기가 이륙하여 창공으로 치솟기 시작하였다.

"다행히 안들켰나보네."

그 광경을 지켜보던 선우는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다행히 끝까지 들키지 않은듯 하였다.

이렇게 무리없이 이륙하는 걸 보면 말이다.

'그럼 이쪽도 자유롭게 움직여볼까?'

러시아쪽에서 자신의 존재를 전혀 모르는 상황이었다.

이제 제약없이 움직이는데 문제는 없으리라

'일단 입국 금지된 이유부터 알아봐야겠군.'

자신을 콕 집어 입국 금지 처분을 시킨 게 우연치고는 너무나 수상스러웠다.

이에 관해 알아봐야할듯 싶었다.

'혹시라도 마왕의 입김이 작용된 것일지도 모르니까 말이야.'

만약 정말 그리된 것이라면 마왕을 찾는 일이 생각보다 쉬워질지도 몰랐다.

결정권자를 그대로 타고올라가면 될 일이니.

'어디해보자구, 마왕.'

선우의 눈빛이 차갑게 빛나기 시작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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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아...딸꾹...딸꾹..."

차이콥프는 잔뜩 상기된 얼굴을 한 채 연신 딸꾹거리며 비틀비틀 걸음을 옮기기 시작하였다.

한눈에 봐도 만취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는 모습이었다.

"하아..적당히..먹었어야했는데..딸꾹.."

오늘은 결혼기념일이었다.

지금 상태로 들어간다면 필시 크게 대노한 마누라를 마주하게 되리라

'좀만...쉬어야야겠구만.'

털썩

근처 벤치에 앉아 등을 기대었다.

'이제 살겠구만..그래.'

그래도 기대고 있으니 어느정도 술이 깨는 것처럼 느껴졌다.

-많이도 마셨네.

그때 머릿속에서 무언가 웅웅거리며 울리기 시작하였다.

'사람의 목소리?'

의아함이 든 차이코프는 간신히 눈을 떠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리고 볼 수 있었다.

자신 옆에 앉아있는 동양인 남자 하나를.

'익숙한데?'

실로 익숙한 얼굴이었다.

머릿속에 기억을 찬찬히 더듬어보았다.

"네..네가 어떻게!!"

순간 술이 확 깼다.

오늘 낮 입국심사를 거부당했던 남자.

장선우임을 떠올릴 수 있던 까닭이었다.

-쉬이잇

선우는 그의 목울대에 손끝을 들이민 채 의념을 전달하였다.

".........."

차이코프는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입을 여는 순간

저 위협적인 손끝이 목을 꿰뚫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 까닭이었다.

-이제야 얌전하네.

"...원하는 게..무엇인가

-미안한데 내가 말은 전달할 수는 있는데 듣기는 좀 안되서.

의념을 전달할 수 있지만 상대의 생각은 읽어낼 수 없었다.

-여기에 다시 말해볼래?

선우는 똑똑한 ai 번역기 맘마고를 들이민 채 의념을 전달하였다.

"원하는 게 무엇이냐고 물었다."

차이콥프는 또박또박 말을 내뱉었다.

-시원시원해서 좋네.

선우는 히죽거리며 입을 떼었다.

쓸데없이 빙빙 돌리지 않아될듯 싶었다.

-내가 왜 입국 금지 당한 건지 알고 싶다.

"그에 관해선..저희쪽에서도..알 수 없습니다...위쪽에서 내려온 명령인지라."

-그럼 알만한 사람한테 물어보면 되는 거 아니야?

"예에?!"

-너보다 윗대가리면 이유를 알고 있을 거 아니야? 안그래?

"....무리입니다...일개 심사관따위를 만나줄 리 없습니다."

-해야할텐데? 안전을 보장받고 싶다면 말이야.

"저는 국가에서 인정한 입국심사관입니다, 만약 저를 건드린다면 러시아와 대한민국간의 국제적 문제로 발전하게 될겁니다."

-만약 들킨다면 그렇게 되겠지, 하지만 술먹고 혼자 나자빠져 죽는다면 멍청한 술주정뱅이의 죽음같은 가벼운 헤프닝으로 끝나지 않겠어?

선우는 의념을 전달하였다.

"................."

-잘 선택하는 게 좋아, 이쪽도 나름 사정이 급해서 말이야.

만약 마왕이 러시아의 수뇌부를 장악하였다면 상황은 꽤나 심각했다.

한가로이 여유를 부릴 수 없는 것이다.

"............안내하겠습니다."

차이콥프는 예상외로 순순히 포기를 선택하였다.

-탁월한 선택이야.

그 선택에 선우는 흡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

똑 똑 똑

누군가 문을 두드리기 시작하였다.

"누구지?"

"카밀라입니다. 장관님."

문 너머로 비서실장인 레도야키프의 목소리가 울렸다.

"무슨 일이지?"

법무부장관, 이반 코테프는 의아한듯 입을 떼었다.

"셰레메티예보 국제공항의 입국검사관, 차이콥프가 장관님께 독대를 요청하였습니다."

"입국검사관따위가 나를?"

이반 코테프는 눈살을 찌푸렸다.

"어떻게 할까요?"

"어떻게 하긴! 돌려보내야지! 그런 건 자네 선에서 알아서 잘라내야지! 어찌 내게 보고까지 하는가!"

"차이콥프 검사관은 장선우라는 동양인을 송환시킨 검사관입니다."

"장..장선우!?"

순간 이반 코테프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전혀 예상치 못한 말에 당혹스러움을 느낀 까닭이었다.

"....네에, 아무래도 그에 관해서 몇가지 드릴 말이 있는 듯 합니다....어떻게 할까요?"

".....일단 들여보내게...장선우에 관한 것이라면 얘기가 달라지지."

이반 코테프는 담담한 어조로 입을 떼었다.

기밀 중에 기밀.

코드네임 엔젤이 애타게 찾는 남자

장선우 관한 보고라면 이야기가 달라졌다.

시간을 할애하여 들어볼 가치가 충분한 것이다.

"알겠습니다, 그럼 곧바로 준비토록 하겠습니다."

.

.

.

.

.

.

똑 똑 똑 똑

곧이어 다시금 문이 두드려졌다.

"장관님, 입국심사관 차이콥프입니다."

문너머로 낯선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하였다.

"들어오게."

이반 코테프는 곧바로 출입을 허락하였다.

끼이이익

그러자 말이 끝나기 무섭게 경첩 맞물리는 소리와 함께 문이 서서히 열리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중년의 남자가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하였다.

셰레메티예보 국제공항의 입국심사관, 차이코프였다.

"만나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꾸벅

문앞에 선 차이콥프는 허리 숙여 인사를 건네었다.

"그래, 반갑네, 이반 코테프일세."

이반 코테프는 대충 손인사를 하였다.

"일단 앉도록 하지."

그리고 곧바로 손짓을 하기 시작하였다.

"예엡!"

끼이이이이익

차이콥프는 곧바로 문을 닫았다.

털썩

그리고 곧바로 소파에 앉았다.

"그래, 장선우에 관해 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이반 코테프는 곧바로 본론을 꺼내들었다.

하급 공무원을 상대로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은 까닭이었다.

"예에...그게.."

"어려워하지 말고 말해보게, 뭘 말하고 싶은 겐가?"

이반 코테프는 사람 좋은 웃음을 지으며 입을 떼었다.

"....장선우라는 남자가 입국이 금지된 이유를 알고 싶습니다."

"그에 관해선 내가 해줄 말이 없는듯 하군."

순간 이반 코테프는 표정을 굳힌 채 입을 떼었다.

코드네임 엔젤에 관한 모든 내용은 극소수의 수뇌부만이 공유하고 있는 극비 중에 극비였다.

일개 입국 심사관이 알만한 내용이 아닌 것이다.

"하지만 전 꼭 알아야합니다. 장관님."

"자네에게 개방된 정보가 아닐세."

"부탁드리겠습니다."

꾸벅

차이콥프는 허리를 숙인 채 그에게 간곡히 부탁을 하였다.

"돌아가게, 내 더 할 말이 없는듯 하군. 쯧."

이반 코테프는 곧바로 축객령을 내렸다.

시간 낭비라는 생각이 들었다.

고작 이런 생떼를 들어주려고 아까운 시간을 낭비하였다니 말이다.

"만약 말씀하지 않으시면...장관님께서는 크게 후회하실 겁니다."

"뭣이? 지금 날 협박하는 건가!"

이반 코테프는 얼굴을 붉히며 고함을 내질렀다.

하급 공무원따위가 말하는 모양새가 실로 건방지기 짝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누가 누구보고 후회한다는 말인가

"협박이 아니라 사실입니다...그러니..부디."

"나가! 당장 나가지 않는다면 네놈은 내일부터 폐지나 주우면서 살게 될 것이다!"

"후우....전..분명 말씀드렸습니다..장관님."

차이콥프는 가벼이 한숨을 내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곧바로 바깥으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하였다.

끼이이익

곧이어 문이 닫히고 방안에는 이반 코테프 장관만이 홀로 남게 되었다.

"건방진 자식! 누가 누굴 보고!"

그가 나가자 이반 코테프는 연신 차이콥프를 씹어대기 시작하였다.

그 건방진 행동에 분노가 치밀어오른 까닭이었다.

권력 최정점에 위치한 자신에게 일개 톱니바퀴따위가 대들다니

이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아니 있어서도 안되는 일이었다.

그렇게 한창 분노를 발산하던 그때

-새겨듣는 게 좋을텐데 말이야.

'사람 목소리?"

휘익

이반 코테프는 재빨리 주위를 두리번 거리기 시작하였다.

머릿속에 사람 목소리가 들려온 까닭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두리번거려도 사람의 그림자조차 찾을 수 없었다.

-뒤야, 뒤

그때 다시금 머릿속에 사람 목소리가 울렸다.

'뒤?'

그 목소리를 따라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꾸우욱

그러자 뭉툭한 무언가가 관자놀이를 짓누르기 시작하였다.

-소리는 안지르는 게 좋을 거야. 몸 성하고 싶으면 말이야.

꿀꺽

이반 코테프는 침을 꿀꺽 삼켰다.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만약 저 경고를 어긴다면 무사치 못할 것이란 걸.

-말 잘듣네, 마음에 들어.

흡족스러운 목소리가 머릿속에 울리기 시작하였다.

쓰으윽

그리고 무언가 눈앞에 내밀어졌다.

화면에는 파란 앵무새가 그려져있었다.

-자아, 말해봐.

다시금 머릿속에 낯선 남자의 목소리가 울렸다.

-날 입국 금지 시킨 이유가 뭐지?

그 순간 이반 코테프의 동공이 쉴새없이 흔들리기 시작하였다.

질문을 통해 유추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자신을 협박하고 있는 남자의 정체가 무엇인지

코드네임 엔젤을 러시아에 붙잡아두기 위해

대대적으로 입국금지를 당한 동양인.

장선우.

그가 자신을 찾아온 것이다.

-똑바로 말하는 게 좋을 거야, 나 인내심이 깊지가 않아서 말이야.

살벌하기 짝이 없는 목소리가 머릿속에 울려퍼졌다.

'빌어먹을.'

이반 코테프는 속으로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아무래도 일이 꼬여도 단단히 꼬인듯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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