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협지 안으로 들어와버렸다-1342화 (1,343/1,419)

부들 부들 부들

용자는 양팔을 부들부들 떨기 시작하였다.

무려 삼십분이나 쉼없이 들고 있다보니 경련이 일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살짝만..내릴까?'

이내 용자는 슬쩍 선우의 눈치를 봤다.

그는 뒤돈 채 무언가 상념에 빠진듯한 모습이었다.

살짝 내려도 티가 날 것 같진 않았다.

뒤통수에 눈이 달려있지 않은 이상 말이다.

스르르륵

요령껏 각도를 조절하기 시작하였다.

"똑바로 들어."

그때 귓가로 싸늘한 음성이 파고들었다.

-히이익!

번쩍

깜짝 놀란 용자는 다급히 손을 번쩍 들어올렸다.

아무래도 저 귀신같은 놈의 뒤통수에는 눈이 달려있는듯 하였다.

그렇게 한참동안이나 벌이 이어졌다.

부들 부들 부들

팔의 떨림이 한층 더 심해지기 시작하였다.

'언제까지 해야되는데! 아오 아파아아! 아오 아파아!'

그렇게 한창 벌을 받고 있던 그 때.

"용자야."

상념에 빠져있던 선우가 천천히 입을 떼었다.

-말씀하세요! 마스터!

"팔 많이 아파?"

-엄청 아파요! 죽겠어요!

"그럼 내리고 싶겠네?"

-내리고 싶어요!

"그럼 대책을 내놔."

선우는 담담한 어조로 입을 떼었다.

-대책이요?

"고갈된 차원에너지를 다시 재충전할 수 있는 대책말이야. 알고 있지?"

-차원 에너지라는 게...기본적으로 가만히 내버려두면 알아서...충전되는 거라서...그냥 기다리면..

"못기다려, 타 차원에는 여우같은 부인들과 토끼같은 자식들이 날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구."

선우는 고개를 내저었다.

연우를 위해서라도 더는 지체하고 싶지 않았다.

내색하진 않지만 분명 어미를 애타게 그리워하고 있을 것이다.

워낙 성숙해서 그렇지

나이만 따지면 한창 엄마의 손길이 필요한 젖먹이에 불과하니 말이다.

"그러니까 최대한 빠르게 차원에너지를 회복할 대책을 내놔."

-.......가장 안전하고 확실한 건...역시 기다리는 게..

"위험하고 불확실해도 돼, 시간만 단축시킬 수 있다면 말이야."

-..........

그 말에 용자는 짐짓 고심 어린 표정을 지었다.

이걸 말해야할지 말지 고민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그...그러니까...한가지....방법이 있긴 한데요..

이내 용자는 결심한듯 천천히 입을 떼었다.

"뭔데? 말해봐."

-차원 에너지가 소모되는 이유가...타차원에서 소환된 존재가 역소환되지 않도록 현 차원에 붙잡아두느라 그런 거거든요......그러니까...그 타차원에서 소환된 존재를 지워버린다면 차원 에너지가 다시금 환원되긴 할거예요.

"지운다는 말은..혹시?"

-네에...죽이는 거예요, 그럼 구태여 현 차원에 붙잡아둘 필요가 없으니 차원에너지는 원래대로 환원될 거예요.

"호오, 확실히...그런 방법이면 금방 복구시킬 수 있겠네.."

선우는 흡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과연 죽으라는 법은 없는듯 하였다.

이렇게 획기적이고 빠르게 차원에너지를 재충전시킬 수 있는 방법이 있는 걸 보면 말이다.

"잘했어, 용자야, 네 덕분에 걱정을 한시름 덜었네. 손 내려도 좋아."

선우는 히죽거리며 입을 떼었다.

-...헤헤헤..뭘요..마스터를 위해선 당연한 일을 한 것 뿐인 걸요.

용자는 간사한 웃음을 흘리며 입을 떼었다.

"자아, 그럼 이제 갔다와."

-네에?

"차원에너지 복구시키러 갔다오라고.

-...그게..무슨..

"네 입으로 말했잖아? 차원을 넘어온 존재들을 지우면  차원 에너지가 환원이 될 거라고 말이야, 오늘부터 전국 방방곡곡 돌아다니면서 차원을 넘어온 녀석들을 모조리 잡아먹어버려."

-............

용자는 노골적으로 인상을 와락 구겼다.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였다.

이 빌어먹을 마스터의 머릿속에는 짬처리를 시킬 생각으로 가득 차있는 것이다.

'이래서 안말하려고 했던 건데.'

후회가 되었다.

차라리 끝까지 입을 다물고 있을 걸

괜히 입을 놀려 이렇게 귀찮을 상황을 만들어버리다니 말이다.

-저어...마스터...저도 마스터를 위해 봉사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지만 현실적으로 무척이나 힘들 일이에요.

"뭐가 힘든데?"

-제가 노는 것처럼 보이지만 은근 바쁜 용이에요, 작은 마스터의 기저귀도 갈아야하고 고급 분유도 타먹여야하고 놀이 장난감도 해야하고.....집안 일도 해야하거든요...게다가...제가 몸이 좀 큽니까? 이 커다란 거체를 이끌고 이곳저곳을 쏘다니면 분명 주목을 받게 될 거예요. 그럼 마스터 입장이 곤란해지지 않겠어요? 전 일단 마스터에게 종속된 입장인데..

"괜찮아, 다 방법이 있으니까."

선우는 대수롭지 않다는듯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마법을 허용해줄게."

-네에!? 마..마법이요!?

"아아, 사냥할 때는 완전 해방, 집안에서는 해가 되지 않는 생활 마법까지 허용토록 해줄게 그럼 모두 수행할 수 있겠지?"

-마법을..허락해주신다면...불가능하진..않은 일이긴 합니다.

용자는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떼었다.

설마하니 극도로 조심스러운 성격을 지닌 마스터가 조건부지만 마법을 허용할 줄은 전혀 예상치 못한 까닭이었다.

'그래도 귀찮은데..'

솔직히 요즘 그리 나쁘지 않는 삶을 살고 있는 용자였다.

육아나 집안일을 한다고는 하지만 대체적으로 자신은 보조같은 존재였기에 그리 큰힘이 들진 않았다.

대체적으로 힘든 일은 마스터의 어머니가 모두 담당하고 있으니

게다가 놀아주는 것 자체도 큰 문제가 아니였다.

한두시간 뒤면 낮잠을 자니

그 시간만 고생하면 그 후부터 온전히 자신만의 시간이었다.

마음껏 뉴튜브를 보고 게임을 하며  꿀같은 휴식을 보낼 수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마법이 허락된다고 해도 구태여 이리저리 돌아다니면서 개고생을 하고 싶진 않았다.

"조건을 하나 붙여주지, 만약 차원에너지를 수복시키면 이번년도에 갚아야할 이자, 전부 탕감시켜줄게."

-정..정말입니까!?

순간 귀찮음으로 가득 차 있던 용자의 눈빛에 생기가 돌기 시작하였다.

자신이 변제할 이자는 200조의 20%인 40조.

고작 차원에너지 수복에 그걸 전부 탕감해준다면 실로 어마어마하게 남는 장사가 아닐 수 없었다.

"정말이고 말고, 어때, 할래?"

-할게요! 할게요! 시켜주세요!

용자는 대뜸 언성을 높였다.

빛을 변제할 수 있는 최고의 기회였다.

이걸 놓친다면 바보가 분명하리라

"좋아, 그럼 부탁할게, 용자야."

-예엡! 저만 믿으세요 주인님!

용자는 이마에 조막만한 손날을 가져다대며 충성 자세를 취하였다.

"그래, 그래, 잘부탁한다."

쓰담 쓰담 쓰담

선우는 그런 용자를 귀엽다는듯 쓰다듬었다.

'한시름 덜었네.'

선우의 입가에는 진한 미소가 지어졌다.

이제 기다리기만 하면될 듯 싶었다.

이 훌륭한 채굴 노예가 차원에너지를 완전히 수복해버릴 때까지 말이다.

***********

"하아...하아..하아.."

장명석 PD는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필생의 역작을 위해

온신경을 집중한 결과 전신의 힘이 쭉 빠져 탈진해버린 것이다.

"PD님, 괜찮으십니까?"

조감독 오세훈은 걱정 어린 표정을 지었다.

"......아직..시작 안했지?"

"네에...30분 전입니다."

"...잘됐구만...아주 잘됐어..하하하."

장명석PD는 허허로운 웃음을 흘리기 시작하였다.

늦는 건 아닐까 조마조마하면서도 퀄리티가 떨어질까섣불리 속도를 올리지도 못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 속에 묵묵히 편집 작업을 이어갔던 것이다.

그런데 다행히 지각을 면한듯 싶었다.

아직 30분이나 남아있는 걸 보면 말이다.

"....좋아, 그럼 송출 준비하자고, 우리의 역작을 말이야."

장명석PD의 입가에는 진한 미소가 지어졌다.

.

.

.

.

.

"네에~, 어머니, 37번에서 하는 굿모닝 생생중계에요! 네에....호호호호, 연예계는 무슨, 그냥 작게 방송 한 번 탄건데요, 뭐....네에...아버님이 녹화준비를 하고 계시다구요? 아이참, 안그러셔도 되는데, 호호호호. 네에...네에...또 연락드릴게요.,호호호"

"엄마, 37번이라니까? 놓치면 안돼! 우리 정현이가 주인공으로 나온단 말이야! 아빠도 당장 깨워! 뭐? 밤새 일하고 와서 깊이 잠들었다고? 그래도 깨우! 하나뿐인 손녀가 나오는데 꼭 봐야지! 꼭 깨워! 안보면 당분간 손녀딸 볼 생각하지 말라고 전해주고!"

"어머~ 우현 엄마, 응응, 맞아 37번에 굿모닝 생생중계야~ 연예인? 에이, 그냥 방송 한번 출연한 것 뿐인데, 뭐, 병원장 오빠가 PD라니까..운 좋으면..그쪽 연줄타고 어찌될지 모르긴 하지...호호호, 뭐어? 내가 왜 우현 엄마를 모른 척해~! 우리가 얼마나 친한데~ 응,응, 그래."

"후우."

정현맘은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아내었다.

쉴새없이 전화를 돌리다보니 상당한 심력이 소모된 까닭이었다.

"어디보자..다음은."

스르륵

하지만 그런 고단함에도 불구하고 휴대폰을 붙잡은 손을 놓지 않았다.

오히려 또 연락할 사람이 없나 전화번호부를 뒤질 뿐이었다.

"아니, 꼭 그렇게 요란스럽게 해야해?"

그 광경을 지켜보던 정현의 아빠, 서강순은 눈살을 찌푸린 채 입을 떼었다.

아내의 요란스러움이 실로 마음에 들지 않은 까닭이었다.

TV에 나오면 나오는 거지

어찌 저렇게 동네방네 떠들고 다니며 자랑하지 못해 안달을 낸다는 말인가

"요란스럽다뇨! 우리 정현이가 TV에 나오는데 당연히 이정도는 해야죠!"

"그래도 적당히 해야지, 시댁이나 외가는 그렇다고 쳐도 꼭두새벽부터 어린이집 선생님부터 맘카페 회원들한테까지 일일히 전화를 돌리는 건 무슨 무례야!"

"다들 이 시간에 일어날 시간이라구요! 전혀 실례가 아니예요! 모르면 가만히 좀 있어요!"

"뭐라구!"

"당신도 전화번호부 뒤져서 부하직원에게 전화라도 거세요! 우리 정현이 모습을 많은 사람들이 봐주면 좋잖아요!"

"됐다, 됐어, 내가 말을 말아야지. 쯔쯧"

서강순은 혀를 찼다.

이미 방송 출연에 눈이 돌아가버린 여편네였다.

여기서 뭐라 해봤자 들어먹을 리 만무하였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후우~ 다됐다."

이내 정현맘은 흡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결국 전화번호부에 있는 모든 인맥들에게 홍보를 끝마친 것이다.

이제 남은 건 흐뭇한 마음으로 감상하는 것이리라

정현맘은 리모컨을 눌러 37번으로 채널을 돌렸다.

채널에서는 굿모닝 생생중계가 막 시작하고 있었다.

"한다..한다.이제 우리 정현이 나온다."

정현맘은 잔뜩 졸려하고 있는 정현이를 붙든 채 입을 떼었다.

그리고 얌전히 기다렸다.

머지 않아 화려하게 등장할 정현이의 모습을

그렇게 얼마나 기다렸을까

-귀여움의 전쟁, 냉혹한 아기모델의 세계로 여러분을 초대하겠습니다!

나레이션과 함께 화면에는 여러 아기들이 스쳐지나가기 시작하였다.

"저기! 저기 정현이도 지나갔어요!"

그곳에는 정현이의 모습 또한 스쳐지나가듯 나오기 시작하였다.

-더 예뻐지기 위해 노력하고 더 예쁜 미소를 짓기 위해 끊임없이 트레이닝하는 아기모델들!

-업계 최고 연봉을 받는 아기인데요! 무려 그 금액은!! 000만원!

-저희 아기도 혹시나 싶은 마음에 참가해봤답니다.

-예쁜 미소를 짓게 해주고 싶어, 매일 즐거운 동화책을 읽어줘요~ 항상 웃는 낯으로 대하구요

-이름은 서정현이고 이제 100일이 되었어요, 호호호, 워낙 예뻐서 여기저기서 모델을 시키라고 난리랍니다.

-과연 귀여운 아기입니다! 이렇게 울지도 않고 얌전한 걸 보면 말입니다.

-우리 정현이는 공짜로 키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유순한 아이랍니다 호호호

"호호호호, 살이 조금 찌게 나왔네, 역시 화면은 부해보이네."

인터뷰를 본 정현맘은 흡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정현이의 독사진

자신과의 인터뷰까지 빠지지 않고 넣어준 PD의 센스에 흡족스러움을 느낀 까닭이었다.

마음에 들었다.

이정도면 아웃스타그램에 충분히 자랑할 만한 분량이리라

-여기는 A-52지구 소아 병원에는 아주 특별한 아기모델이 있다는데..!

-여기 아주 특별한 아기 모델이 있다구요?

-네에, 엄청엄청 특별해요

-대체 어떻게 특별한지 여쭤볼 수 있을까요?

화면 속 장명석 PD는 의문 어린 표정을 지은 채 물었다.

-명화 속에 나오는 아기천사를 방불케할 정도로 귀여운 아기가 있답니다.

원장 지윤희는 활짝 웃으며 대꾸를 하였다.

-사실 확인을 위해 곧바로 아기 천사가 있는 인근 스튜디오로 이동하게 되었는데요!

찰칵 찰칵 찰칵

-아기는 어디있나요?

-저기 있습니다!

-아아아아.

순간 장명석 PD는 홀린듯한 눈빛을 한 채 정면을 주시하였다.

카메라는 그런 장명석을 담아내더니 그대로 시선을 따라 이동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그 순간

화면에는 명화 속에서나 볼법한 아기 천사가 강림을 하였다.

정적

그리고 활발하게 분위기를 띄우던 자막과 나레이션이 그대로 멈춰섰다.

마치 시간이 멈춰버린 것처럼

-꺄하아아~

데굴 데굴 데굴

짜악 짜악 짜악

그저 카메라에 담아낼 뿐이었다.

구르고 박수를 치며 해맑게 웃는 아기천사의 모습을

그 후부턴 아기천사의 독무대였다.

자막과 나레이션은 아기천사를 끊임없이 띄워올렸고 카메라는 아기천사를 놓치지 않고 끊임없이 촬영하였다.

정보 공유를 위한 프로그램이 아닌 개인 화보처럼

그렇게 얼마니 지났을까

이내 정현맘은 TV의 전원을 꺼버렸다.

"으으..으으..으으.."

그리고 전신을 부들부들 떨기 시작하였다.

"여..여보?"

서강순은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은 채 입을 떼었다.

아내의 상태가 심상치 않음을 느낀 까닭이었다.

"끄아아아아아아아악!!!!!!!!!"

곧이어 그녀의 입에서 분노로 가득한 비명성이 터져나오기 시작하였다.

참을 수 없는 분노가 그녀의 전신을 휘감은 까닭이었다.

"어떻게...어떻게 이럴 수 있어! 어떻게!"

이건 누가봐도 곁다리로 껴준 꼴이었다.

메인은 엄연히 따로 존재하고 있던 것이다.

자존심이 상하였고 수치심이 차올랐다.

그렇게 동네방네 떠들며 자랑자랑했건만 고작 10초 분량이었다니

이따위로 연출하여 자신의 딸을 누구보다 하찮은 존재로 전락시켜버리다니

분노가 차오를 수밖에 없었다.

'복수할 거야...전부 복수할 거야!'

정현맘의 눈빛에는 서릿발과 같은 한기가 어리기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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