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 죄송해요, 저희가 너무 늦었죠? 차가 너무 막혀서.."
권순분 여사는 면목없다는듯한 표정을 지었다.
나름대로 서두른다고 서둘렀건만 여지없이 지각을 해버렸기 때문이었다.
"아니에요, 갑자기 불렀는데 이정도면 아주 늦은 것도 아니죠."
다사랑 병원의 병원장, 지윤희는 손사래치며 입을 떼었다.
병원과의 거리를 계산한다면 그리 늦은 시간도 아니였다.
"촬영은 끝난 건가요? 보니까 철수하는 분위기던데?"
건장한 청년들이 방송장비를 들처메고 아래로 내려오고 있었다.
관계자는 아니지만 철수하는 분위기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네에..PD님께서 더는 지체할 수 없다고 하셔서...대타로 다른 아기모델을 촬영하셨어요...죄송해요....연우 할머님."
"죄송할 것 없어요, 촬영시간에 지각한 저희 잘못이 큰 걸요?"
권순분 여사는 손사래를 쳤다.
"계약금은 애아빠를 통해 돌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아니요, 넣어두세요, 이쪽에서 일방적으로 다른 모델을 구한 걸요? 위로금이라고 생각하고 받아두세요."
지윤희는 연신 손사래를 쳤다.
그리 달콤한 말로 꾀여놓고 멋대로 모델까지 바꿔버려 헛걸음을 하게 만들었다.
그런데 계약금을 돌려받다니
실로 면목 없는 짓이었다.
"아니요, 촬영도 안했는데 계약금을 받는 건 도리가 아니죠, 받을 수 없어요."
"아니요, 정말 신경쓰지 않으셔도 돼요, 진심이에요."
서로 염치가 없다고 생각한 두 여인간의 작은 실랑이가 벌어지기 시작하였다.
"아부우우..아아아."
그 둘사이에 껴있던 연우는 길게 하품을 하였다.
어른들의 실랑이가 꽤나 지루하게 느껴진 까닭이었다.
벌컥
"그 문제, 제가 해결해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때 문이 벌컥 열리더니 떠난 줄 알았던 장명석PD가 모습을 드러내며 언성을 높였다.
그러자 두 여인의 시선이 동시에 그쪽으로 향하기 시작하였다.
의문 어린 표정을 지은 채로 말이다.
"연우를 모델로 재촬영을 하면 됩니다!"
장명석PD는 생기 가득한 모습으로 언성을 높였다.
"예에!?"
"재촬영이요!?"
그러자 두 여인은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은 채 되물었다.
이미 철수를 진행하고 있던 상황이 아니던가
그런데 재촬영이라니?
저게 대체 무슨 소리란 말인가
"그렇습니다, 그리하면 계약금을 돌려줄 필요가 없게 되지 않겠습니까? 하하하하."
장명석은 사람 좋은 웃음을 흘리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아까는 분명 이미 모든 촬영이 끝났다고..."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장명석은 단호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이 아이를 마주하니 이대로 놓치면 후회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장명석은 아기천사가 재림한듯한 귀여운 아기, 연우를 응시하며 입을 떼었다.
이건 세상에 널리 알려야할 천상의 귀여움이었다.
만약 자신의 카메라에 이걸 담지 않고 다른 매체를 통해 알려지게 된다면 필시 크게 후회하고 마리라
"그러니 부디 허락해주셨으면 합니다."
꾸벅
장명석PD는 허리 숙여 정중히 인사를 건네었다.
콧대 높은 PD의 태도라고 보기엔 너무나 저자세였다.
".......저기..그럼 먼젓번에 촬영한 아이는 어떻게 되는 건가요?"
권순분 여사는 걱정 어린 표정을 지은 채 입을 떼었다.
"전부 통편집할 생각입니다!"
찬란한 태양이 존재하는 곳에 구태여 반딧불이를 넣을 생각은 없었다.
완벽한 작품에 방해만 될 뿐이니
"그러면 살짝 곤란할 것 같아요."
"네에!?"
장명석PD는 얼빠진 표정을 지은 채 되물었다.
별안간 저게 무슨 소리란 말인가
"아기랑 애엄마 모두 고단한 촬영을 감내했을 거예요. 그런데 그 노력을 수포로 돌아가게 한다는 게 영 내키지가 않네요."
분명 상당한 고생이 뒤따랐을 것이다.
낯선 환경에서 애를 달래고 촬영을 지속시키는 것 모두 실로 힘든 일이었을테니
그렇기에 쉽사리 수락할 수 없었다.
지각한 자신들이 그 기회를 강탈한다면 그쪽 애엄마의 노력은 수포로 돌아가고 말테니ㅣ
"하지만....애초에 이번 홍보 모델은 연우였습니다!"
"그렇긴 하지만 저희는 지각을 했고 기회는 그쪽으로 넘어간 게 아닌가요? 그런 상황에서 다시금 기회를 빼앗는 게 영 석연치가 않네요."
"......그..그런.."
장명석PD는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지금까지 이런 경우는 단한번도 없었다.
누구나 기회가 있다면 쟁취를 망설이지 않았다.
다른 이들의 박탈감따위는 안중에도 없이 행동했던 것이다.
그런데 다른 이의 박탈감을 위해 거절을 하다니
실로 당혹스러움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생각이상으로 교양이 깊으신 분이다.'
이렇게 된 이상
좀더 좋은 방향으로 합의점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
이대로 연우를 포기할 수 없으니
"그렇다면....정현이 부분을 통편집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그리하면 연우를 촬영할 기회를 주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어머, 정말 그게 가능한가요?"
"병원 홍보 부분을 연우와 정현이 2인 체제로 가면될듯 합니다.....괜찮겠습니까?"
"그렇게까지 해주시는데 거절하는 건 도리는 아니죠. 알겠습니다. 그리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장명석 PD는 연신 허리 숙여 감사를 표하였다.
결국 연우라는 원석을 가공할 기회를 얻었다는 게 너무나 흡족스러운 까닭이었다.
"그럼 곧바로 스튜디오로 이동하도록 하겠습니다."
"스튜디오요?"
지윤희는 의아한듯 되물었다.
촬영은 어디까지 병원에서만 진행된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별안간 스튜디오라니?
"최적의 장소에서 최고의 장비들로 최선을 다할 생각입니다. 부디 양해 해주셨으면 합니다."
"...아..네에.."
지윤희는 얼떨떨한 표정을 지었다.
정현이를 찍을 때만해도 병원에 마련된 간이 스튜디오에서 대충 몇장찍고 말더니
연우는 그 대우부터가 달랐다.
'과연 연우의 매력은 장PD조차 홀린 건가?'
이정도면 경국지색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 꼬장꼬장한 PD조차 매료시키는 걸 보면 말이다.
"그럼 제 차로 안내하겠습니다. 따라와주십시오."
"알겠습니다...가자, 연우야~"
"아부아아~"
권순분 여사는 앞서가는 장명석PD을 그대로 따라가기 시작하였다.
"같..같이가요!"
지윤희 또한 다급히 그 뒤를 따라가기 시작하였다
**********
"전용 스튜디오까지 가서 촬영하셨다구요?"
'그렇단다."
"뭘 그렇게까지 했대요? 고작 병원 홍보 촬영인데."
"글쎄, PD말로는 최적의 장소에서 최고의 장비들로 최선을 다하고 싶다고 말하더구나."
"연우가 어지간히 마음에 들었나보네요."
선우는 히죽거리며 입을 떼었다.
아무래도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내 귀여운 자식은 다른 사람 눈에도 너무나 귀여운 존재인듯 하였다.
이렇게까지 큰 배려를 받는 걸 보면 말이다.
"연우의 매력을 알아본 게지."
권순분 여사는 뿌듯한 표정을 지었다.
"연우가 칭얼대거나 말썽 부리진 않았어요?"
"PD님이 칭찬하시더구나, 이렇게 착하고 순한 아이는 처음이라고."
"우리 연우가 착하고 순하긴 하죠."
선우는 동의하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아, 그리고 원장 선생님께서 잔금을 입금했다고 전해달라더구나."
"아..그래요? 천천히 줘도 되는데."
"맺고 끊는 게 정확한 걸 보면 참 야무진 아가씨야. 그런 아가씨가 살림도 잘하는 법이지."
권순분 여사는 은근한 눈빛으로 선우를 바라보며 입을 떼었다.
"그 젊은 나이에 원장 직함까지 달정도면 보통 야무진 게 아니긴 하겠죠."
선우는 동의하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원장이라고 나이가 지긋할 줄 알았는데 그것도 아니더구나....너랑 엇비슷했지, 아마."
"저보다 4살 정도 연상일 거예요."
"엄마는 그 아가씨가 참 마음에 들더구나."
"예에?"
선우는 어이없다는듯한 표정을 지은 채 반문하였다.
"직업도 좋고 얼굴도 예쁘고 성격도 싹싹하고 그런 신부감이 세상에 어디있겠니?"
"아니..어머니.."
선우는 난감한듯한 표정을 지었다.
아무래도 어머니는 아직도 마누라가 도망갔다고 생각하는듯 하였다.
그렇지 않고서야 대끔 신부감을 추천하진 않을테니
"그냥 그렇다고, 호호호, 너무 의미부여하지말거라, 별뜻 없이 말한 거니."
어머니는 가벼이 웃으며 자리를 떴다.
그리고 그 광경을 지켜보던 선우는 생각하였다.
한시라도 빨리 마누라들을 데려와야할 것 같다고
이대로 방치했다간 강제로 맞선을 보게할지도 모를테니 말이다.
'이번 주말에 어떻게든 해야겠네.'
**************
"거기 중앙에 벽조목."
-네에
파닥 파닥 파닥
용자는 작은 날개를 파닥거리며 커다란 벽조목을 공터 중앙에 위치한 커다란 원 안에 옮기기 시작하였다.
작은 몸으로 하기엔 꽤나 고역스러운 일이었지만 불평따윈 없었다.
한번 항의했다 머리통이 후려쳐진 경험이 있으니
툭
"그 상태로 진주 으깨서 진법 구축시켜."
-네에..
슬쩍
그 명령에 뒤에 매어둔 배낭에서 진주를 한움큼 꺼내었다.
-흐아아아악!!
꽈아아악
그리고 온힘을 다해 진주를 움켜쥐기 시작하였다.
으드드득 으드드득
사라라락
그러자 작은 주먹 안에 진주가 서로 맞물리며 가루가 흩날리기 시작하였다.
-이야아압!
파닥 파닥 파닥 파닥
곧이어 커다란 원 안에는 자로 잰듯 반듯한 육각형이 만들어졌다.
"좋아, 이제 각 꼭지점에 순서대로 재료들을 옮겨."
-.....네에.
파닥 파닥 파닥 파닥
용자는 배낭에서 블랙마켓에서 어렵사리 구한 구미호의 꼬리를 꺼내었다.
그리고 가장 상단에 있는 꼭지점 위에 그대로 올렸다.
그다음은 게이트의 등장으로 멸종위기에서 완전히 벗어나게 된 아프리카 코뿔소의 뿔
그리고 게이트 속 괴수들로 인해 지상최강의 생물이라는 타이틀을 빼앗긴 코끼리의 상아.
1만분의 1의 확률로 태어난다는 초회귀 호랑이, 백호의 가죽
블랙마켓에서 어렵사리 구하게 된 구미호의 꼬리.
미리 뽑아둔 자신의 비늘
그다음 백퍼센트 악어가죽으로 만들어진 배낭을 던져두었다.
-후우우..
재료들을 완전히 배치한 용자는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다했어요!
그리고 선우를 바라보며 입을 떼었다.
"좋아, 이제부터는 내가할테니까, 뒤로 물러서 있어."
-네에!
용자는 고개를 주억거리고는 날개를 파닥거리며 저 멀리 거리를 벌리기 시작하였다.
저벅 저벅 저벅
선우는 만들어진 진쪽으로 천천히 걸음을 떼었다.
그리고 주머니 속에서 흑진주 한움큼을 꺼내들었다.
으드득 으드득 으드득
그리고 흑진주를 으깨 가루로 만들어 연원을 알 수 없는 주문을 새기기 시작하였다.
그다음 온갖 희귀 귀금속들을 으깨 만든 가루와 고목 수액을 섞어 만든 특수한 용액을 재료들을 향해 순차적으로 뿌리기 시작하였다.
우우우우우우우웅
그다음 자연기를 집중시키기 시작하였다.
또다시 차원의 문을 열 수 있도록
솨아아아아아아
곧이어 진을 중심으로 찬란한 빛이 뿜어지기 시작하였다.
차원을 넘나드는 기적의 진법.
시공려천외진법이 다시금 발동된 것이다.
'좋아!'
그 광경에 선우는 눈을 빛냈다.
이제 다시금 재회였다.
사랑하는 모든 여인들과 말이다.
뚝
그때 이변이 일어났다.
뿜어져나오던 찬란한 빛이 순식간에 사라져버린 것이다.
"어?"
그 광경에 선우는 당혹스러운듯한 표정을 지었다.
별안간 저게 대체 무슨 일이란 말인가
잘 발동되던 진법이 별안간 왜 끊긴다는 말인가
'왜 저래!?'
우우우우우우웅
다시금 자연기를 집중시켰다.
하지만 이번에는 빛조차 뿜어져나오지 않았다.
어떠한 반응조차 하지 않는 것이다.
실로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진법을 잘못 그린건가?'
아니 그럴 리 없었다.
자신이 구축한 시공려천외진법은 완벽하였다.
재료도 주문도 진법도
무엇 하나 흠잡을 데가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설마 중원의 재료가 아니라서?...아니면 중원의 자연기와는 달라서?...'
수많은 가설들이 머릿속에 떠오르기 시작하였다.
'젠장할...모르겠어.'
하지만 마땅한 답을 찾아낼 수는 없었다.
작정하고 찾는다면 실패할 이유는 차고넘쳤으니
-역시 안됐네요.
그때 귓가로 용자의 목소리가 파고들기 시작하였다.
까딱
선우는 손가락을 까딱였다.
-흐..흐에에에엑!
그러자 용자의 몸이 지체없이 선우쪽으로 끌려오기 시작하였다.
"역시라니? 무슨 말이지?"
선우는 용자의 목울대를 강하게 움켜쥔 채 물었다.
뭔가 알고 있는듯한 것처럼 느껴진 까닭이었다.
-케켁..케켁..케케켁..이거..좀..놓고..케에엑..
통 통 통 통
용자는 괴롭다는듯한 표정을 지은 채 선우의 손을 가벼이 두드리기 시작하였다.
옥죄는 압력에 숨쉬는 것조차 고통스러웠기 때문이었다.
"뭔가 알고 있는 거지? 제대로 말해, 왜 실패한다고 생각한 거지?"
선우는 싸늘한 눈빛으로 용자를 노려보며 물었다.
-그...그게..케엑....현재...지구의 차원..에너지가..바닥난...케엑..상태라서..케케켁.."
"차원 에너지?"
-....차원이동에는...케엑..차원에너지라는 게...켁켁...필요한데...이게.....한정된..양이라서.....케켁.한번 사용되면....재충전할 때까지는...케케켁...다른 차원의 문을 열 수..없어요오오..케에엑.....그래서...몬스터들을 이쪽에 보내는 것도...한계가...있는..케켁
"그럼 현재 지구의 차원 에너지가 전부 떨어졌다는 말이야?"
-케에엑...아무래도..케켁....차원에너지....강대한 존재가 넘어올 수록...케케켁.....많이 소모되는터라...케케켁....
"그럼 너랑 나때문에 차원에너지가 전부 떨어졌다는 소리야?"
-케케케켁...저희뿐아니라..두번..더있었어요..차원의 문이..열린 적이..
"두번?"
-며칠 전...케케켁..북쪽에서....저랑 엇비슷한 힘을 갖춘 두개의 존재가 넘어왔던 걸 감지했어요....아무래도..그 여파가 아닐까 싶어요.케케켁.
"그런 걸 알고 있었으면 미리 말해줬어야할 거 아니야! 괜히 헛고생했잖아! 이 멍청한 비만도마뱀아!"
콰아아앙
선우는 주먹을 움켜쥐고 용자의 머리통을 쥐어박았다.
-끄아아아아아악!!
폴짝 폴짝 폴짝 폴짝
그대로 땅에 처박힌 용자는 머리통을 움켜쥔 채 폴짝폴짝 뛰기 시작하였다.
극심한 고통을 도저히 참을 수 없던 까닭이었다.
"하아.."
이내 선우는 가벼이 한숨을 내쉬었다.
설마하니
차원에너지란 게 후달려 차원의 문을 열 수 없게 되었을 줄은 전혀 예상치 못한 까닭이었다.
'미치겠군.'
아무래도 마누라들 모두와 재회하는 일은 좀더 늦춰질듯 싶었다.
차원의 에너지가 완전히 수복될 때까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