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협지 안으로 들어와버렸다-1340화 (1,341/1,419)

"반갑습니다, 다사랑 소아병원의 원장 지윤희라고 합니다."

꾸벅

지윤희는 가벼이 허리를 숙였다.

오라버니의 동료이자 홍보 촬영에 핵심이 되어줄 장명석 PD에게 최대한 예의를 차린 것이다.

"아아, 반갑습니다. 선생님께서 지PD 동생분이시라고?"

"네에, 제가 지강산 PD의 동생이에요."

"이야, 놀랐네, 그 산도적 같은 놈한테 이렇게 어여쁜 여동생분 있었을 줄이야. 전혀 안닮았어."

장명석 PD는 히죽거리며 입을 떼었다.

"그런 말 많이 듣는답니다. 호호호."

가벼운 농으로 병원내부에는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감돌기 시작하였다.

"그럼 곧바로 촬영에 들어가도록 하죠, 시간이 많지는 않으니까...아기는 어디있습니까?"

"그게...아직 연우가 도착하지 않아서요."

"아직도 말입니까?"

와락

장명석 PD는 눈살을 살짝 찌푸렸다.

완벽주의자인 그가 가장 싫어하는 건 일정대로 움직여주지 않는 것이었다.

꾸물거리거나 지각하는 걸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것이다.

"아무래도 갑작스레 호출하셔서...준비 시간이 좀 걸릴듯 해요."

"......아기 모델의 일정을 안비워둔 겁니까?"

"..그게...아무래도 촬영 언제 개시될지 모르는데, 하염없이 병원쪽에 붙잡둘 수 없어서요.."

애초에 연우아빠가 내건조건이기도 하였다.

쓸데없는 대기 시간없이 촬영만하고 깔끔하게 끝내기로 말이다.

때문에 방법이 없었다.

일정이 잡히면 호출하는 것외엔 말이다.

"하아.."

그런 속사정을 모르는 장명석 PD는 가벼이 한숨을 내쉬었다.

아직 본격적인 촬영도 시작하지 않았건만 벌써부터 스트레스가 쌓였다.

'역시 아마추어는 아마추어라는 건가?'

만약 전문 아기모델이였다면 오늘 일정을 전부 비워두고 병원에서 하염없이 대기를 하였을 것이다.

촬영에 지장을 줘 PD에 밉보이는 것만큼 두려운 일도 없었을테니

'...어쩔 수 없지...프로는 아니니까.'

이해하기로 하였다.

원래라면 한바탕 소리를 지르고 촬영을 접자는 소리까지 나왔겠지만

상대가 아마추어이기도 하고 꽤나 친한 동료의 여동생이기도 하였다.

그런데 어찌 아량을 베풀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럼 아기 모델이 오기 전까지 가볍게 인터뷰를 따도록 하겠습니다."

"네에, 이해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예에, 뭐 그럼 어디 앉을만한 곳이 있습니까?"

"집무실에 하면 될 거예요. 조명도 괜찮아서 분명 예쁘게 나올 거예요."

"예에, 알겠습니다. 집무실에서 하죠."

"네에, 절 따라오시면 돼요."

저벅 저벅 저벅

지윤희는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장명석PD는 그 뒤를 천천히 따라가기 시작하였다.

.

.

.

.

"아기모델을 구할 생각은 어쩌다하게 되었습니까? 지윤희 원장님."

장명석 PD는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아무래도 소아과다보니까, 전면에 내세울 귀여운 아기모델이 있으면 홍보 효과를 톡톡히 내보일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역시 젊은 원장님이라 그런지, 생각하는 게 신세대스러운 것 같습니다."

"좋게 봐주셔서 감사해요, 호호호."

"그럼 아기모델은 어떻게 찾으신 겁니까?"

"병원에 오는 아기들을 유심히 보고 그 중에서 가장 홍보에 어울릴만한 아이를 선택하게 되었어요."

"홍보에 어울릴만한 조건이 있을까요?"

"아무래도 화면을 좀 잘받아야할 것 같아서 피부를 좀 많이 봤던 것 같아요, 그리고 성격도 낯선 사람을 크게 경계하지 않는 무던한 성격을 많이 봤구요."

"조건이 생각보다 까다롭군요."

"아무래도 다사랑 소아병원에 오는 아기들은 하나같이 전부 귀여워서, 이렇게 차별화된 조건을 걸지 않으면 도저히 뽑을 수가 없을 것 같더라구요."

"하하하하, 병원장님은 아기들을 정말 귀여워하시는 군요."

"아기들이 귀여워서 소아과를 선택했는 걸요? 호호호."

지윤희의 웃음소리가 집무실 내부를 가득히 메우기 시작하였다.

'제법인데?'

그리고 그 모습을 본 장명석 PD는 속으로 살짝 감탄하였다.

너도나도할 것 없이 아기들이 전부 귀여워

차별점을 둘 수밖에 없었다는 저 말.

저 말은 선택받지 못한 아기엄마들에게 큰 위로가 될 것이다.

자식이 못나서가 아닌 조건에 부합하지 않았다는 늬앙스가 가득 풍기고 있었으니 말이다.

'병원 평판까지 챙기다니, 젊은 아가씨가 꽤나 능수능란하네.'

과연 젊은 나이에 원장까지할만한 관록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아, 그럼 이제 원장님이 고르고 고른 아기 모델을 만나러 가볼까요?"

"네에~ 그럼 곧바로 연우를 소개해드릴게요."

"오케이, 컷."

이내 장명석 PD는 가벼이 컷사인을 보냈다.

마무리까지 완벽한 인터뷰였다.

이이상은 필요가 없으리라

"수고하셨습니다. 지윤희 원장님."

"수고하셨습니다, 장명석 PD님."

두 사람은 서로 꾸벅 인사를 건네었다.

"아기모델 쪽은 아직 도착하지 않은 겁니까?"

"네에..잠시만요, 한번 전화 좀 해보도록 할게요."

지윤희는 곧바로 휴대폰을 들어올렸다.

그리고 빠르게 터치하여 번호를 누르기 시작하였다.

"네에~여보세요...네에...여기 다사랑병원인데요,...네에....아...네에...연우 할머님 안녕하세요....네에.....네네....오늘 모델건으로 전화드렸는데요..네에...아...그럼 얼마나 걸리실 것 같으세요?...네에...아...네에...일단 최대한 빨리 와주세요..네에..네..감사합니다."

곧이어 지윤희는 전화를 그대로 끊어버렸다.

"어디랍니까?"

"아무래도..시간이 좀 걸릴듯 해요."

"얼마나요?"

"......그게....한 40분 정도..걸릴 것 같다구.."

"......40분이나 말입니까?"

"네에....교통카드를 안챙기셔서...다시 집을 갔다왔다구....배차 간격도 상당히 넓기도 해서.."

지윤희는 면목없다는듯한 표정을 지었다.

"원장님, 저희쪽에서..더..지체하는 건..많이 곤란한데요..이미 2시간이나 지나서."

"죄송합니다....정말 죄송합니다."

"죄송하고 말고가 아니라..애들이 퇴근이 늦어져서요..아무래도....더 늦춰지는 건 곤란할 것 같습니다."

"....아.."

지윤희는 절망적인 표정을 지었다

누구보다 찬란하게 빛난 아기천사, 연우의 모습을 세상에 온전히 내보일 수 없다는 생각이 절망감이 차오른 까닭이었다.

"죄송합니다, 저희도 어떻게든 진행하고 싶습니다만..이게 나름대로 일정이라는 게 있어서요."

".....아니요....일정이 있다면..어쩔 수 없죠..여태까지 기다린 것만으로도 그저 죄송할 따름이에요."

"...네에...그럼 이대로 끝내는 걸로.."

그렇게 마무리가 되는듯 하였다.

"어머~ 이게 무슨 일이래?"

그때 특유의 찌르는듯한 하이톤이 병원 내부에 울려퍼지기 시작하였다.

휘익

지윤희는 고개를 돌렸다.

그 순간 볼 수 있었다.

30대 초반의 표독스러운 인상을 가진 여인과 맹한 인상을 가진 아기를

"촬영일이 오늘이였나봐요? 호호호."

표독스러운 인상의 여자, 정현맘은 특유의 요란스러운 웃음을 흘리기 시작하였다.

"정현 어머니...여기는 어떻게?"

"우.연.히 지나가다 선생님 생각이 나서요."

"하지만 오늘은 분명 휴무라고..."

"불이 켜져있더라구요, 그래서 얼굴이나 보러올까하고 와봤죠, 그런데 촬영하시나봐요? 호호."

"아...네에."

"그런데 주인공이 보이지 않네요?"

"그게...시간이 늦어진다고 해서요."

"어머, 그럼 안되죠, 우리 PD님들, 작가님들, 감독님들 전부 바쁜 사람들인데, 안그래요?"

"......네에..그렇죠."

지윤희는 속이 부글부글 끓는 느낌을 받았다.

특유의 가르치려드는 말투

말투 하나하나에 배어있는 비꼼

모든 게 분노를 치밀게 만든 까닭이었다.

"저분은?"

장명석 PD는 의아한듯한 표정을 지은 채 물음을 던졌다.

"...아, 네에, 저희 병원에 다니고 있는 정현이 어머님이세요."

"아...그렇군요."

장명석 PD는 슬쩍 아기를 훑기 시작하였다.

'딱 동네 병원 홍보하게 생겼네.'

그리고 눈을 반짝였다.

무난하고 평범한 인상.

조정만 들어가면 충분히 훌륭한 홍보모델이 될 것 같았다.

"원장님, 이렇게 된 거 정현이를 모델로 삼으시는 게 어떠십니까?"

"정현이를요?"

"네에, 더 이상 시간을 지체할 수도 없고 마침 이 정현이라는 아이도 모델을 시켜도 될만큼 충분히 매력적인 아이인 것 같아서요."

장명석PD는 눈을 반짝였다.

이정도도 최대로 양보해준 것이다.

만약 이 제안도 거절한다면 뒤도 안돌아보고 떠나고마리라

".......그게...저...그러니까...정현 어머님하고 따로 이야기가 된 게..없어서..."

"할 게요! 우리 정현이 꼭 시켜주세요!"

그때 정현맘이 다급히 끼어들어 언성을 높였다.

"우리 원장님께서 곤란하신데 저희가 어떻게 모른 척 하겠어요, 그치 정현아? 호호호호호."

".......네에.."

"하하하하, 그럼 잘되었군요, 곧바로 촬영에 들어가도록 하겠습니다."

"호호호호, 마침 공주님 드레스를 입길 잘했네, 그치 정현아?"

그렇게 지윤희 원장을 제외한 모두가 웃는 촬영이 시작되었다.

************

"오케이, 컷!"

장명석 PD의 우렁찬 목소리가 울렸다.

"정현 어머님, 고생 많으셨습니다."

"호호호, 감사드려요, PD님도 정말 고생 많이 하셨어요.  우리 정현이 이쁜 사진을 많이 찍어주셨는데 밥이라고 한끼 사야되는 건 아닌가 싶네요."

"하하하하하, 아닙니다. 이게 저희 일인데요."

"호호호 나중에 기회되면 언제고 연락주세요...제가 거하게 한상 대접할게요."

"하하하하 기대하겠습니다"

성공적으로 촬영을 마친 두 사람은 화기애애하게 대화를 나누기 시작하였다

소기 목적 달성에 두 사람 모두 만족스러운듯한 모습이었다.

"그럼 저는 먼저 가볼게요, 정현이가 많이 힘들어해서요."

"네에, 알겠습니다. 영상은 다음주 굿모닝 생생중계에서 확인하시면 될겁니다."

"호호호, 녹화부터 해야겠네요"

정현맘은 흡족스러운 웃음을 흘리기 시작하였다.

"그럼 고생하세요."

꾸벅

그리고 곧바로 병원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무척이나 가벼운 발걸음으로 말이다.

"원장님께서도 수고하셨습니다."

그녀가 나가자 장명석 PD는 이번엔 지윤희를 바라보며 인사를 하였다.

"....아..네에."

지윤희는 꽤나 시무룩한 표정을 지은 채 대꾸를 하였다.

한눈에 봐도 촬영이 마음에 들지 않는듯한 모습이었다.

"그럼 저희도 이만 가보겠습니다. 하하하."

하지만 장명석PD는 그런 지윤희 상태를 사뿐히 무시하였다.

이미 많은 양보를 하였고 필름도 전부 사용하였고 메모리도 빵빵하게 차있는 상태였다.

그야말로 낙장불입.

이제와서 뒤집을 수는 없는 것이다.

"........고생하셨습니다. PD님."

지윤희도 그런 상황을 너무나 잘알기에 수긍하고 고개를 주억거릴 수밖에 없었다.

이제와서 바뀌는 건 없었으니

"야, 철수하자."

"예엡!"

명령이 떨어지기 무섭게 촬영팀이 분주하게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하나둘 짐을 챙겨 밖으로 이동하였다.

"흐음~ 흐음~"

장명석 PD 또한 기분 좋게 걸음을 옮겼다.

지PD의 체면도 챙겨주고 촬영도 성공적으로 마쳤으니 여러모로 괜찮은 마무리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사우나 가서 땀이라도 빼야겠군.'

그렇게 한창 기분 좋은 상상을 하며 엘리베이터 앞에 멈추던 차.

띵동

엘리베이터 문이 서서히 열리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그 순간

장명석 PD는 세상이 환해지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분명 이곳은 실내이거늘

내리쬐는 태양을 마주한 것과 같은 찬란한 빛이 뿜어져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대...대체?!'

장명석 PD는 당혹스러움을 느끼며 정면에 집중을 하였다.

그리고 그는 볼 수 있었다.

진정한 아기천사의 재림을

백설보다 새하얀 피부

별빛보다 빛나는 또랑또랑한 눈빛

찹살떡처럼 말랑하기 그지없는 볼따구

오밀조밀하게 자리잡고 있는 이목구비.

짐짓 성스러움마저 느껴지는 심상치 않은 분위기

"아......."

그는 넋을 잃고 말았다.

지금껏 수많은 아기들을 만나봤지만

아기천사라는 별명을 지어줄 정도로 귀여운 아기들만 만났지만

단언할 수 있었다.

그 어떤 아기도 눈앞에 아기에 비하면 달빛 아래 반딧불이에 불과하다는 것을

"잠시만요, 지나갈게요~"

그때 아기를 품에 안고 있던 중년여자가 입을 떼었다.

그리고 장명석 PD를 지나 병원 안쪽으로 천천히 걸음을 옮기기 시작하였다.

"잠...잠깐만요!"

휘익

장명석은 재빨리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다급히 그녀를 불렀다.

"네에?"

중년 여인은 의아한듯한 표정을 지은 채 되물었다.

"호..혹시..오늘 병원 홍보 모델을 하기로 한...장연우?..아기 모델..보호자분되십니까?"

"맞아요, 이 아이가 연우랍니다."

중년여인, 권순분 여사는 해맑은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다시금 병원 안쪽으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하였다.

"전부 스톱!!"

그 광경을 지켜보던 장명석은 큰소리로 언성을 높였다.

그러자 정신없이 짐을 옮기던 스태프들이 일제히 걸음을 멈춰세웠다.

"처음부터 다시 촬영한다!"

장명석 PD는 멈춰선 스태프들을 바라보며 언성을 높였다.

"네에에!?"

"하..하지만 PD님!"

"이제와서 재촬영은.."

모두가 난감한듯한 표정을 지었다.

퇴근이 얼마 남지 않았거늘

이제와서 재촬영이라니

도저히 용납을 할 수 없었다.

"반론은 받지 않는다!"

장명석은 불평 가득한 스태프들을 바라보며 단호하게 말을 내뱉었다.

"그리고 당장 조감독한테 전화해! 편집 멈추고 장비 챙겨서 병원으로 오라고!"

그리고 보조작가를 바라보며 언성을 높였다.

"에...예엡!"

"굿모닝 생생중계 725화 냉혹한 아기 모델의 세계는 취소한다! 대신 21세기 진정한 아기천사의 재림으로  주제를 바꾼다!"

장명석은 열망 어린 눈빛을 반짝이기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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