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모스크바.
휘이이이이이잉
휘몰아친 차가운 설풍이 도시 전체를 감싸기 시작하였다.
"에..에취이!"
수도방위대 소속 헌터, 르마노프는 요란스럽게 재채기를 토해내었다.
설풍과 함께 한기가 콧끝을 간지럽게 한 까닭이었다.
"침튀잖아! 임마."
동기인 카디로프는 눈살을 잔뜩 찌푸렸다.
재채기를 할거면 저 멀리에 대고 할 것이지
어디 사람 면전에 대고 내뱉는다는 말인가
"내 탓하지말라고, 이건 전부 빌어먹을 날씨때문이니까."
르마노프는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이건 모두 예보도 없이 휘몰아치는 눈보라때문이었다.
만약 예보라도 해줬다면 이렇게 추위에 덜덜 떨일은 없었을테니 말이다.
"아니 명백히 네 탓이다! 더러운 면상을 왜 하필 이쪽에 들이미냐고!"
"누가 거기 있으래! 임마!"
곧이어 르마노프와 카디로프는 거칠게 주먹다짐을 하기 시작하였다.
"르마노프랑 카디로프가 싸운다!"
"다들 모여~!!"
"싸움이야? 나도 끼어야지!"
"헤헤~ 난장판이다!!"
싸움소식에 수도 방위대 소속 헌터들은 너도나도할 것 모여들어 둘을 감쌌다.
"판돈 걸어! 판돈!"
그들의 상관, 보리스는 말리긴 커녕 제일 먼저 나서서 도박을 주최하기 시작하였다.
그 나물에 그 밥이란 말이 실로 어울리는 모습이었다.
"르파노프한테 2000루블!"
"카디로프한테 1000루블!"
"르마노프한테 3000루블!"
"르마노프! 카디로프 그 깍쟁이 녀석을 조져버려!"
"카디로프! 그 야만스러운 놈을 순한 양으로 만들어버리라고!"
그리고 판돈까지 걸며 열띤 환호를 보내기 시작하였다.
"뒈져어어!"
"너나 뒈져어!"
르마노프와 카디로프는 그 열띤 환호에 호응하듯 격렬한 주먹질을 하기 시작하였다.
지극히 평화로운 모스크바 수도방위대의 일상이었다.
그렇게 한창 격렬한 싸움이 벌어지던 그 때.
휘이이이이이이이잉
휘몰아치던 설풍이 한층 더 강력해지며 시리도록 차가운 냉기가 그들을 덮치기 시작하였다.
"으으으으.."
"하으으으."
마력으로 신체를 감싸고 있는 헌터들조차 몸을 잘게 떨게 만들만큼 강력한 냉기가 말이다.
"뭐야...이거..왜 이렇게 추워?"
한창 주먹질하던 카디로프는 주먹질을 잠시 멈춘 채 입을 떼었다.
기묘할 정도의 추위에 의아함이 든 까닭이었다.
냉기 관련 능력을 각성 후 냉기 저항을 얻게된 자신이었다.
영하 40도의 추위에서도 반팔을 입고 샌들을 신은 채 마트에 장을 보러갈 정도로 추위에 무딘 신체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자신이 추위에 덜덜 떨다니
실로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퍼어어억
"끄아아아악!"
이내 카디로프의 면상에 두터운 주먹이 꽂혔다.
"이새끼야, 어딜 한눈을 팔아!"
콰당
카디로프는 충격을 버티지 못하고 그대로 엉덩방아를 찧었다.
"야 임마! 지금 싸울 때가 아니라고!"
카디로프는 인상을 잔뜩 찌푸린 채 고함을 내질렀다.
"뭐?"
"날씨가 이상하다고!"
"날씨야, 원래 이상했잖아? 새삼스럽게."
"내가 춥다고 임마!"
"나도 추워 이새끼야!"
"아니, 미친놈아! 냉기 저항능력을 갖고 있는 내가 추워죽겠다고!"
".......어....그렇네?"
르마노프는 멍청한 표정을 지은 채 대꾸하였다.
생각해보니 확실히 이상하긴 하였다.
영하 40도까지 내려가는 한겨울에도 강에서 알몸으로 목욕하는 저놈이 추위를 느끼다니
휘이이이잉
"흐으으으.."
부르르르르
순간 르마노프 또한 전신을 부르르 떨기 시작하였다.
막상 의식을 하고나니 그 추위가 한층 더 사무치게 느껴진 까닭이었다.
추웠다.
너무 추워 머리털이 수직으로 바짝바짝 세워질 것만 같았다.
".....흐으으...으으..추워."
"왜..이렇게 추워졌어어.."
"흐으읏....으으.."
"불이라도 피워야하는 거 아니야?"
열띤 환호와 호응을 보냈던 다른 헌터들 또한 르마노프와 마찬가지로 전신을 덜덜 떨기 시작하였다.
뼛속까지 시리게 만드는 극도의 한기를 도저히 견뎌낼 수 없던 까닭이었다.
그렇게 모든 헌터들 추위에 덜덜 떨고 있을 때
펄럭 펄럭 펄럭 펄럭
무언가 날개짓하는 소리가 그들의 귓가로 파고들기 시작하였다.
"....무슨 소리지?"
"날개 소리?"
그 소리에 의아함을 느낀 헌터들은 소리를 따라 정면쪽을 향해 천천히 시선을 돌렸다.
그러자 저 멀리에 허공 뜬 채 커다란 날개를 쉴새없이 휘두르고 있는 거대한 괴조의 모습을
"저건 괴수잖아!"
"맙소사 저렇게 큰 괴수라니!"
"말도 안돼! 게이트 징조따윈 포착되지 않았는데!!"
방위대 소속 헌터들 모두 당혹스러움을 느끼기 시작하였다.
괴수의 등장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저정도 크기의 대괴수가 나타났다면 필시 저놈을 뱉어낸 게이트 또한 어마어마한 존재감을 드러냈을 것이다.
보통 대괴수의 크기와 게이트의 크기는 비례하기 마련이었으니
그런데 오늘은 그 어떤 게이트도 포착되지 않았다.
당혹스러움을 느낄 수밖에 없는 것이다.
"르마노프! 카디로프! 당장 마력포 꺼내와!"
그렇게 헌터들이 당혹스러움을 느끼며 우왕좌왕하고 있을 때 그들의 상관, 보리스는 심각한 표정을 지은 채 고함을 내질렀다.
""알겠습니다!""
우렁차게 대답한 두 남자는 다급히 걸음을 옮기기 시작하였다.
한시가 급하다는 걸 너무나 잘인지한 까닭이었다.
"빅토르! 당장 윗쪽에 무전을 날려!"
"알겠습니다!"
대답을 마친 빅토르는 곧바로 무전을 꺼내들었다.
" 여기는 B-1지구 정문! 전방 5km내에 거대 괴생명체 출현! 긴급 지원바람! 다시 한번 말하겠다. 전방 5km내 거대 괴생명체 출현! 긴급 지원바람!!"
저 날개소리의 정체가 괴수임을 인지한 그들은 서둘러 전투를 준비를 하기 시작하였다.
아티팩트를 통해 제작했던 마력포를 다수 배치하고
무기고를 열고 무기를 꺼내 무장을 하였으며.
경찰과 협력하여 시민들을 대피소로 피신시켰다.
시민들의 안전과 수도의 방위를 위한 최선의 준비를 끝마친 것이다.
"격발하라!"
곧이어 전투 준비를 끝마친 보리스는 커다란 칼로 괴조를 가리키며 큰소리로 외쳤다.
퍼어어엉 퍼어어엉
퍼어어엉 퍼어어엉
요란스러운 폭격음과 함께 도시 전체가 뒤흔들리기 시작하였다.
**************
"제기랄! 발포하라! 발포하라! 결코 수도에 닿게해선 안된다!"
콰아아앙
콰콰콰콰쾅
콰아아아앙
그와 동시에 요란스러운 폭음과 함께 수많은 마력탄들이 괴조를 향해 쏟아지기 시작하였다.
펄럭 펄럭 펄럭 펄럭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괴조는 어떠한 상처조차 입지 않았다.
너무나 평온하게 모스크바를 향해 전진하고 전진할 뿐이었다.
"제기랄! 보리스 대장! 마력포가 통하지 않습니다! 다른 방도가 필요합니다!"
르마노프는 눈쌀을 찌푸린 채 언성을 높였다.
웬만한 헌터의 전력과 맞먹는다는 마력포가 전혀 들어먹지 않고 있었다.
이대로 있다간 수도가 함락되고 말 것이다.
"아무리 저놈이 단단하다고 해도 속에는 꾸준히 데미지는 쌓이고 있을 것이다! 쉬지말고 쏘고 또 쏴라!"
"하지만 이대로 가다간 저놈이 수도에 닿고 맙니다!"
"그건 걱정하지마라! 내 어떻게든 막아볼터이니!"
부우우웅
보리스는 거대한 대검을 치켜들었다.
"포격 헌터들을 제외한 모든 대원들은 나와 함께간다!"
그리고 곧바로 괴조를 향해 내달리기 시작하였다.
"알겠습니다!"
"믿고 따르겠습니다!"
곧이어 다른 대원들 또한 우렁차게 대답하여 그대로 그의 뒤를 따르기 시작하였다.
"수도를 사수하라!"
이내 허공에 튀어오른 보리스는 괴조를 향해 마력을 잔뜩 머금은 거대한 대검을 휘두르기 시작하였다.
"우오오오오오오!!"
헌터들 또한 뛰어올라 자신들만의 장기를 선보이기 시작하였다.
불꽃을 던지고 벼락을 부르며 얼음을 쏘아내고 바위를 던졌다.
그렇게 정체불명의 괴조와 러시아 최고 헌터부대 간의 건곤일척의 승부가 시작됐다.
.
.
.
.
.
.
.
"쿨럭....쿨럭.."
기침과 함께 핏물이 한움큼씩 토해지기 시작하였다.
비틀 비틀 비틀
힘이 빠져 전신이 비틀거리기 시작하였다.
'안된다...안돼..'
하나 남은 팔로 대검을 들어올렸다.
푸우우욱
그리고 눈덮힌 땅속에 대검을 박아넣어 몸을 간신히 지탱하였다.
"하아...하아..하아.."
거칠게 숨을 몰아쉬기 시작하였다.
끊임없이 지속된 전투에 숨고를 틈조차 없던 까닭이었다.
쉬고 싶었다.
이대로 쓰러져 수면에 빠져든다면 더한 행복도 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그럴 수는...없어.'
으드득
이를 악물었다.
목에 힘을 주고 강제로 쳐들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볼 수 있었다.
자신을 똑바로 내려다보고 있는 거대한 괴조의 모습을
'.....허어..'
괴조를 마주한 순간
허탈함이 느껴졌다.
세계구급이라고 칭해지는 러시아 최고 헌터들의 전력을 쏟아부었음에도 불구하고 생채기 하나 나지 않았다.
너무나 멀쩡한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이다.
'...저건...인간의 힘으로 어찌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깨달을 수 있었다.
눈앞에 존재는 감히 인간따위가 막아설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그야말로 재앙
그 자체라는 사실을
-인간치고는 꽤나 재밌더구나.
그렇게 절망하고 있던 차 아름다운 미성이 귓가로 파고들기 시작하였다.
"말을...할 수 있던건가.."
어림잡아 짐작할 수 있었다.
눈앞에 괴조가 자신에게 말을 걸고 있다는 것을
-우월하기 그지없는 내게, 인간의 언어따윈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지.
"....너는...너는 대체..누구지?...대체..어떻게...이곳에 온 목적이 무엇이냐!."
-난 혹한의 세라스, 차원 너머 판테시아 대륙에 군림하고 있는 일곱 군주들 중 하나이자 얼음대륙의 화신.
스스로 세라스라고 설명한 괴조는 눈을 반짝이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지구의 인간들을 모조리 멸할 존재이다.
".....인간이...네놈들에게...무슨 잘못이라도 했던가?
-아니, 너희들에게 잘못따윈 없다, 그저 운이 나빴다고 생각하거라.
세라스는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하앗.......고작 운수때문에..80억 인구가 죽어야한다니...끔찍스럽군.."
보리스는 어이없다는듯 헛웃음을 내뱉었다.
그리고 눈덮힌 땅속에 꽂아놓았던 대검을 천천히 들어올리며 혹한의 세라스에게 겨누기 시작하였다.
-아직도 내게 맞설 심산인가?
"이대로 쓰러지기엔 지켜야할 게 너무 많아서 말이야."
자랑스러운 조국
사랑하는 가족.
친애하는 이웃.
그리고 이대로 꺾일 수 없다는 신념.
지킬 게 너무 많았다.
이대로 포기할 수는 없는 것이다.
-어깨가 무거운 자로군, 난 그런 자를 선호하지.
세라스는 재밌다는듯한 어투로 말을 이었다.
신념 가득한 자를 보는 건 실로 즐거운 일이었다.
-내 특별히 자비를 베풀어 네게 좋은 구경을 시켜주도록 하마.
"좋은..구경?"
펄럭 펄럭 펄럭 펄럭
이내 세라스의 거대한 신체가 창공으로 치솟았다.
그리고 곧바로 모스크바를 향해 날개짓을 하기 시작하였다.
한시라도 빨리 닿고 말겠다는듯이 말이다.
"멈..멈춰어!!"
철푸덕
보리스는 다급히 쫓아가보려고 했지만 소용없는 짓이었다.
이미 힘이 빠질대로 빠져 도저히 몸을 지탱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두눈 똑바로 뜨고 지켜보거라!!! 네놈이 지키려고 했던 모든 것들이 산산조각 나는 모습을!!
세라스는 신념으로 가득한 자를 좋아하였다.
신념이 가득한 자를 절망시켰을 때의 쾌감은 이루말할 수 없을 정도로 최고였으니
"안돼에에에! 안돼! 멈춰...멈춰 멈춰어!!!"
엉금 엉금 엉금
바닥에 나자빠진 보리스는 엉금엉금 기어가며 애원하기 시작하였다.
제발 멈춰달라고
제발 그만둬달라고
하지만 소용없는 짓이었다.
저 괴조는 이미 모스크바 상공에 진입한 이후였으니
'......끝이야..'
모든 게 끝이었다.
최고의 헌터들조차 감당할 수 없었던 괴물을
일개 시민들과 민간 헌터들이 감당할 수 있을 리 만무하였다.
모두가 멸해지고 마는 것이다.
'......하나님...하나님..제발...제발..굽어살펴주시옵소서.....제발....저 괴물로부터..조국을...사랑하는 가족들을..친애하는...이웃들을.....보호해주시옵소서...부디...부디...'
평생 기도하지 않았던 보리스는 하나밖에 없는 손으로 기도를 하였다.
신의 기적이라도 일어나지 않는 이상
저 존재를 막아내는 건
모스크바를 지켜내는 건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었으니
-모두 끝이다!
모스크바 상공에 진입한 세라스는 거대한 날개를 좌우로 쫘악 펼쳤다.
블리자드를 일으켜 눈앞에 도시를 흔적조차 없이 사라지게 만들 심산이었다.
그렇게 미증유의 마력을 집중시키고 거대한 날개를 펄럭이려던 그 순간
반짝
마치 천둥이 치듯 하늘이 번쩍하고 빛나기 시작하였다.
휘이이이이이이이잉
그와 함께 거대한 설풍이 휘몰아치며 도시를 새하얗게 물들이기 시작하였다.
뚝
혹한의 세라스는 잠시 움직임을 멈췄다.
알 수 없는 오한이 등골을 스쳐지나간 까닭이었다.
'오한? 내가? 얼음대륙의 화신이자 일곱지배자 중 하나인 내가?'
그리고 당혹스러움을 느꼈다.
한기와 냉기를 지배하는 자신이 오한을 느끼며 몸을 떨다니
실로 말도 안되는 일이었다.
그렇게 한창 당혹스러움을 느끼고 있던 차
쩌저저저저적
무언가 갈라지는 소리가 위쪽에서 들려오기 시작하였다.
휘익
세라스는 그 소리를 따라 재빨리 시선을 돌렸다.
그 순간 볼 수 있었다.
하늘에서 강림하듯 천천히 하강하고 있는 눈처럼 새하얀 머리칼을 가진 여신의 모습을
사뿐
곧이어 여인이 눈덮힌 바닥에 사뿐히 착지하였다.
그리고 고개를 올려 창공에 떠있는 세라스를 올려다보기 시작하였다.
-너는 누구지?
그녀와 눈을 마주친 세라스는 긴장 어린 어투로 물음을 던졌다.
대체 정체가 무엇이냐고
"새가 말도 하네."
그 물음에 여인은 신기하다는듯 입을 떼었다.
-난 평범한 새가 아니다! 혹한의 세라스! 얼음대륙의 지배자이자 판테시아에 군림하는 일곱 군주 중 하나란 말이다!
세라스는 발끈하며 언성을 높였다.
누구보다 신성하고 위대한 자신을 한낱 조류 취급을 하다니
절로 부아가 치밀어오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럼 여기는 판테시아란 곳이야?"
-틀렸다! 이곳은 지구다!
"그래? 잘됐네. 잘 찾아온 게 맞아."
여인은 가벼이 미소를 지은 채 고개를 주억거렸다.
꽤나 흡족스럽다는듯이
"그럼 말이야."
그리고 다시금 세라스를 응시하며 운을 떼기 시작하였다.
"너 혹시 장선우라고 알아?"
남편과 아들을 찾기 위해 차원을 넘어선 북해의 절대자.
북궁연은 기대 어린 눈빛을 반짝이기 시작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