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열독.
무림의 여걸들마저 오줌을 지리고 반쯤 정신을 나가버리게 만들었던 무림 최악의 고문독.
그 악명 높은 붉은 악귀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좀..좀더 이성적으로 생각하세요! 이렇게한다고 당신 아버지의 죄가 없어지는 게 아니잖아요? 아니 오히려 괘씸죄로 가중 처벌은 물론이고 아들인 당신까지 징역살이하게 될거라구요..가정을 생각해야죠! 어머니도 모셔야죠!"
그 붉은 손길에 겁을 잔뜩 집어먹은 서민하는 재빨리 입을 놀리기 시작하였다.
어떻게든 그를 진정시키기 위함이었다.
"최대한 이성적으로 생각한 결과야, 작정하고 달려들면 공권력만으로는 도저히 안되겠다는 결론이 났거든."
선우는 담담한 어조로 입을 떼었다.
피해자와 목격자, 동조자까지
입을 맞추고 있는 치밀하게 짜여있는 판이었다.
공권력으로 결백을 증명하는 건 무리였다.
"경찰은 못믿어, 그러니 내가 직접 결백을 증명할 수밖에."
"이건 결백 증명이 아니고 협박으로 위증 강요하는 거잖아요!"
"네 진술이 사실이라면 그렇겠지, 그런데 내가 보기엔 전혀 아닌 것 같아서 말이야."
"제 말은 사실이에요! 당신 아버지가 절 추행하고 폭행했다구요! 왜 당신 아버지의 말만 믿고 제 말은 믿지 않는 거죠!?"
"너 바보야? 난생처음 본 너 따위랑 평생 함께 산 아버지의 신뢰가 같을 리 없잖아?"
선우는 어이없다는듯한 표정을 지었다.
이거 상상이상으로 멍청한 년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건 공정하지 않아요! 한쪽 말만 믿다니! 불합리하고 불공평하다구요!"
"네가 뭔가 착각을 한 것 같은데."
선우는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난 경찰도, 판사도, 변호사도 아니야, 그러니까 얼마든지 불공평해도, 불합리해도, 불공정해도 돼."
선우는 싸늘하게 눈을 반짝였다.
움찔
그 싸늘한 눈빛에 서민하는 몸을 잘게 떨었다
원초적인 공포가 전신을 휘감은 까닭이었다.
무서웠다.
너무 무서워 오줌을 지릴 것만 같았다.
저벅
그때 눈앞에 남자가 다시금 한걸음을 내딛었다.
"싫어어어어!! 오지마아아!! 오지말라고!"
그 모습에 서민하는 광분하며 손에 잡히대로 집어던지기 시작하였다.
불길한 적색의 손길.
저게 무엇인지는 알 수는 없지만 마주한 순간 극도의 거부감이 일어났다.
내면에 잠재되어있는 생존본능이 끊임없이 경고를 보내기 시작한 것이다.
저벅 저벅 저벅
하지만 선우는 그런 반항을 사뿐히 무시한 채 그녀의 코앞에 도달하였다.
꽈아악
그리고 한치의 망설임없이 그녀의 머리채를 우악스럽게 움켜쥐었다.
"아아아아악!!"
머리털이 뽑힐 것 같은 고통에 서민하는 비명을 내지르기 시작하였다.
일반적으로 남자들이 여자를 상대할 때
어느정도 힘을 조절하기 마련이었다.
자칫 잘못하다간 크게 다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무의식적으로 브레이크를 걸기 때문이다.
하지만 눈앞에 남자는 그런 브레이크따윈 전혀 없었다.
머리털이 빠지던 말던
다치던 말던
전혀 신경쓰지 않은 채 머리끄댕이를 잡아댕기고 있는 것이다.
"아아아악!...아파요오오!...아파요오오!"
"잘 기억해둬, 지금 고통이 그리워질테니까."
물컹
곧이어 선우는 서민하의 알맞게 부풀어오른 가슴 위에 붉게 물들어진 손을 올렸다.
"이게 무슨..!"
서민하는 언성을 높였다.
갑작스러운 성추행에 당혹스러움을 느낀 것이다.
손댈 생각이 없다더니
아무래도 전부 새빨간 거짓말인듯 하였다.
스으으으으윽
그 순간 손끝을 통해 작열독기가 그녀의 단전 안으로 스며들기 시작하였다.
"끄아아아아아아아아악!!!!!!"
곧이어 찢어지는듯한 비명성이 사방에 울려퍼지기 시작하였다.
*********
처음 가슴에 손이 닿았을 때는 극도의 수치심을 느꼈다.
무단으로 방안으로 침입한 불한당이 다짜고짜 가슴을 움켜쥐다니
실로 치욕스럽고 모욕적인 일이 아닐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더러운 새끼!....'
역시 남자는 전부 짐승이었다.
손대지 않겠다고 호언장담할 땐 언제고 다짜고짜 젖가슴에 손부터 올린단 말인가.
'..그래, 어디 마음껏 범해봐, 대신 넌 대가를 치르게 될거야! 네 애비도 너도 모두 콩밥을 먹일거야! 평생토록 대한민국에 얼굴 들이밀지 못하도록 만들거야!'
서민하는 철저한 복수를 다짐하였다.
자신에게 끔찍한 짓을 저지른 저놈이 평생토록 후회하게 만들겠다고
그렇게 한창 다짐하던 그때
사아아아악
갑자기 가슴 부근에서 따스함과 포근함이 전해지기 시작하였다.
마치 어머니의 품속에 있는듯한 착각이 일정도의 따스함이 말이다.
'....따..뜻해..아아..'
이내 몸이 노곤노곤해지면서 힘이 쭉 빠지기 시작하였다.
따스함이 차올랐던 긴장감과 불안감을 서서히 완화시킨 것이다.
몸이 액체가 되어 녹아내리는듯한 기묘한 느낌이 들었다.
그렇게 얼마나 지속되었을까
후끈 후끈 후끈
'....더워..'
몸의 긴장을 풀어주던 따스함에 열기가 더해져 더위가 느껴지기 시작하였다.
비유한다면 초여름에 땡볕 아래 있는듯한 느낌이었다.
'.더워...너무 더워어어....더워어어..'
시간이 지날수록 열기는 더욱더 가중되었다.
초여름정도에 불과한 열기가 이제는 한여름처럼 느껴지기 시작한 것이다.
전신이 화끈거렸고 땀이 쉴새없이 분비되며 침대시트를 적시기 시작하였다.
'뜨거워......뜨거워어어...아아아..'
곧이어 한여름을 넘어 사막 한가운데 놓여진 것과 같은 열기가 전신을 휘감았다.
이제는 더이상 더워정도로는 표현할 수 없었다.
뜨겁다.
화상을 입을 것 같은 뜨거움이 본격적으로 느껴지기 시작한 것이다.
'싫어어...뜨거워...너무 뜨거워어어!'
몸을 이리저리 뒤척이며 어떻게든 벗어나려고 하였지만 소용없는 일이었다.
머리칼을 옥죄고있는 압력이 너무 강하여 자력으로는 도저히 벗어날 수 없던 까닭이었다.
'하으읏...으으윽...으으읏...으으윽..'
결국 서민하는 점점 그 열기를 더해가는 고통 속에 그대로 방치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곧이어 피부가 타는듯한 느낌이 들기 시작하였다.
피부가 녹아내려 진물이 흘러나오는듯한 착각이 일었다.
그리고 열기가 피부 속까지 파고들어 힘줄, 뼈, 오장육부, 뇌까지 절여버리기 시작하였다.
흔적조차 남기지 않고 완전히 태워버리겠다는듯이 말이다.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서민하는 괴악스러운 비명성을 내질렀다.
열기로부터 전해지는 끔찍한 고통이 도저히 참아낼 수 없던 까닭이었다.
불에 달궈진 수천개의 바늘이 전신을 콕콕 찌르는듯한 고통.
수천 수억 수십억의 불개미들이 전신을 휘감은 채 일제히 살점을 물어뜯는듯한 고통
용암에 전신을 강제로 입수시킨듯한 고통.
장작더미에 쌓여진 채 전신이 불태워지는듯한 고통.
모든 게 맞물려 그녀에게 도저히 참을 수 없는 끔찍한 고통을 선사하기 시작한 것이다.
"아아아악!...아아아아아악!!"
서민하는 끔찍한 고통을 참지 못하고 발광을 하기 시작하였다.
후두두두두둑
이내 붙잡혀있던 그녀의 머리털이 그대로 뜯어져버렸다.
격렬한 발광을 머리칼의 장력이 도저히 견뎌내지 못한 것이다.
쿠우우웅
머리카락을 헌납한 서민하는 그대로 침대 위로 쓰러졌다.
"아아악..아아아악! 아아아아아악!!"
부들 부들 부들 부들 부들
그리고 발작하듯 전신을 쉴새없이 흔들기 시작하였다.
마치 간질병에 걸린 사람처럼 말이다.
"아아아아아아악!!!!아아아아악!!"
살려달라고 빌고 싶었지만 도저히 말이 나오지 않았다.
문장을 조합할만한 여력조차 남아있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끄아아아아아아아악! 아아아악!!"
그저 비명 지르고 또 비명 지를 뿐이었다.
전신을 불타는 감촉을 온전히 느끼면서 말이다.
주르르륵 주르르륵
극심한 고통에 눈물이 질질 쏟아져나왔고 하얀 침이 좔좔 흘러내리기 시작하였다.
퓨수우우우우욱
더불어 아랫도리가 젖어들더니 특유의 노린내가 나는 따스한 액체가 모락모락 연기를 내며 흘러나오기 시작하였다.
한계이상의 고통에 눈물샘이 터지고 괄약근에 풀어져 도저히 제어할 수 없는 지경에 다다른 것이다.
'그냥...그냥 착하게 살걸....그냥...이런 일따위는 동조하지 않을 걸...'
그녀는 후회하였다.
자신이 저지른 일에 대해서
공천을 받아 정계 입문하겠다는 야망을 위해
치밀하게 함정을 파 무고한 이를 범인으로 몰고 누명을 씌웠다.
뿐만 아니라 고문당하기 전 마지막 기회마저 스스로 발로차버린 채 자존심을 세우고 야망을 우선시하였다.
'그러지 말걸...그렇게 하지 않았어야 했는데.'
그리 했으면 안됐다.
그리하면 안되었다.
끝까지 사람의 도리를 지켰어야했다.
편법이 아닌 능력을 키웠어야했다.
마지막 기회를 발로 차버리지 않았어야했다.
만약 그리 했다면
만약 다른 선택을 했다면
이런 끔찍한 고통을 경험할 일은 없었을테니
"흐아아아아아아아아악!!!! 아아아아...아아아!"
서민하는 끔찍한 비명성을 내지르며 울부짖고 또 울부짓었다.
과거 자신이 선택한 모든 것들에 대한 극심한 후회를 하면서 말이다.
********
"헤에에...에에...에에...에에."
서민하는 의미불명의 소리를 내뱉으며 실실 웃기 시작하였다.
언뜻 봐도 제정신처럼 보이는 몰골은 아니였다.
"마스터, 얘 아예 맛이 갔는데요?"
상태를 확인한 용자는 나름의 소신발언을 하였다.
무슨 짓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거 정신줄을 완전히 놔버렸다.
"많이 심각해?"
"....정신이 아예 붕괴가 됐어요, 제정신으로 돌아오려면 몇년은 안정을 취해야할 것 같은데요?"
"그래? 곤란한데...지금 당장 심문해야되는데."
"무리예요, 얘 지금 상태로는 지 이름 석자도 못쓸걸요?"
"마법으로도 고칠 수는 없는 거야?"
"못 고쳐요."
용자는 단호하게 말을 내뱉었다.
"중독이나 오염 혹은 병에 걸렸거나 팔다리가 잘린 외상같은 건 고칠 수 있겠지만 정신붕괴를 복구시키는 마법같은 건 없어요."
"기억을 소거해도 무리려나?"
"가능은 한데, 지금처럼 정신이 붕괴된 상태에서 기억을 소거할 경우 존재 자체를 잊어버리고 지능이 영유아 수준으로 돌아갈 수도 있어요."
"난감하네."
선우는 곤란하다듯 머리를 긁적였다.
"그러게, 조심 좀 하시지."
"나름 조심한다고 했는데, 생각보다 더 고통에 취약하더라구."
연약한 현대인임을 감안하고 작열독의 위력을 반의반이상으로 감소시켰건만
그마저도 너무 과한듯 싶었다.
고작 10분 정도 독기에 절여진 것만으로도 정신이 붕괴된 걸 보면 말이다.
"뭐 다른 방법이 없을까? 배후를 꼭 캐내야돼서 말이야."
"얘를 당장 정상적으로 되돌리는 건 무리지만 배후를 캐내는 거라면 가능해요."
"어떻게?"
"기억을 뽑아내면 돼요, 그 정도는 마법으로도 충분히 가능하거든요."
"정말 그게 가능해?"
"그렇다니까요, 어때요? 저 완전 쓸만하죠?"
용자는 가슴을 쭉 편 채 으쓱한 표정을 지었다.
어서 칭찬하라는듯한 제스처였다.
"엄청 쓸만해! 최고야 용자야!"
선우는 용자를 끌어안았다.
쓰담 쓰담 쓰담 쓰담
그리고 마구잡이로 머리를 쓰다듬기 시작하였다.
"헤헤헤헤...헤헤헤."
용자는 그 쓰다듬을 즐기며 웃음을 흘렸다.
그리고 생각하였다.
역시 칭찬이란 언제 받아도 최고라고 말이다.
"그럼 당장 기억을 뽑아줘."
"알겠습니다~ 그럼 뽑아내서 곧바로 화면으로 띄울게요~ 천장쪽을 바라봐주세요."
용자는 얼이 빠져있는 서민하의 머리에 천천히 손을 올렸다.
우우우우우웅
그리고 마력을 집중하기 시작하였다.
팟
그러자 얼마 지나지 않아 정수리를 중심으로 빛이 쏘아지더니 천장에 커다란 화면 하나가 띄우기 시작하였다.
선우는 시선을 올려 자연히 그 화면에 집중을 하기 시작하였다.
[.......너무 리스크가 크지 않을까요? 만약 들킨다면..]
[리스크가 큰 대신 확실한 보상을 약속하겠네.]
[아무리 그래도 무고한 사람에게 누명을 씌우라니...제겐..너무....버거운..]
[기초의원 공천을 약속하지.]
[네에!?]
[그것도 꽤나 유리한 지역으로 말이야.]
[그..그게 정말인가요?]
[정말이고 말고, 뿐만 아니라 일만 잘 성사된다면 당차원에서 매해 풍족한 지원금을 지원하겠네. 물론 품위 유지비는 따로 지급될거고 말이야.]
[그런.....]
[어떤가? 이제 구미가 당기는가?]
[...............]
[표정을 보니 여전히 고민을 하는구만, 이것 참 나라면 절대 고민안할텐데 말이야, 잘 생각해보게, 이건 천재일우의 기회야, 남들은 수십억을 써도 불가능한 공천을 자네는 이십대 중반이라는 젊은 나이에 받게 되는 거야. 아마 크게 이슈가 될거야, 자네가 말만 잘한다면 국민들에게 눈도장을 단단히 찍히게 될테고 말이야. 이런 기회 다신 없네.]
[.....그쵸, 이런 기회 다신 없죠.]
[그러니 이제 고민을 끝내게, 내가 딸같아서 안타까워서 그래, 자네처럼 능력있고 당에 충성스러운 청년이 정계에 입문해야 우리 의원님께서 큰힘이 되지 않겠는가? 자네가 이번 일만 잘 성사되면 당의 주역으로 활동할 수 있도록 단단히 지원사격해주겠네, 기초의원만하고 끝낼 게 아니지 않은가? 광역의원도하고 금뱃지 달고 국회에 입성 해야지.]
[......국회..]
[그래, 국민의 대표가 되는거야....무척 매력적이지 않은가?]
[.........정말....정말 공천을 약속해주시는 건가요?]
[물론일세, 내 어찌 자네에게 거짓말을 하겠나? 이미 의원님과 합의된 내용일세.]
[...그렇다면.. 저, 하겠어요...당을 위해서..의원님을 위해서..]
[하하하하하, 그래, 그래, 잘생각했어, 자네 아주 좋은 기회를 잡은 거야!]
'저 새끼.'
선우는 너털웃음을 터트리는 중년인을 노려보았다.
낯이 익은 얼굴이었다.
며칠 전 제안을 할게 있다며 자신을 찾아왔던 남자.
스스로를 나용태 의원의 정무보좌관이라고 소개했던 남자.
'차일식.'
선우의 눈빛이 차갑게 빛나기 시작하였다.
아무래도 이번 사태에는 생각이상의 거물이 엮여져있는듯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