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협지 안으로 들어와버렸다-1326화 (1,327/1,419)

난생처음 방문한 지구대.

그곳은 상상이상으로 산만한 곳이었다.

인사불성이 된 취객의 코골이.

실랑이를 벌이고 있는 경찰들의 고함.

끊임없이 울려퍼지는 타자소리.

각종 민원인들의 높은 언성.

이 모든 게 맞물려 지구대 전체를 떠들썩하게 만든 것이다.

'아버지는 어디있는거지?'

재빨리 이곳저곳을 두리번거렸다.

한시라도 빨리 아버지를 찾기 위해

그리고 얼마지 않아 끄트머리쪽 칸막이 너머로 익숙한 반백머리가 보이기 시작하였다.

"아버지!"

망설이지 않고 달려갔다.

아버지를 만나기 위해

".....왔냐."

지구대에서 처음 마주한 아버지는 무척이나 초췌한 몰골이었다.

말 많고 유쾌하던 평소와는 달리 어둡고 침울함이 가득 차 있었고 양손에는 은빛의 쇠고랑을 차고 있었다.

"대체 어떻게 된 거예요? 아버지."

".............."

장광효는 고개를 숙인 채 어떠한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저 애꿎은 바닥만 응시할 뿐.

"장광효씨 보호자 되십니까?"

그때 아버지 앞쪽에 있던 경찰이 물음을 건넸다.

"아, 예에, 아들입니다."

선우는 곧바로 고개를 돌려 답하였다.

"반갑습니다. 담당 경사 최우식입니다."

"네에, 반갑습니다. 장선우라고 합니다."

선우는 가벼이 고개를 숙였다.

"그것보다 대체 어떻게 된겁니까?"

그리고 곧바로 물음을 던졌다.

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이냐면서 말이다.

"아버님되시는 장광효씨께서 51지구쪽에 있는 골목길에서 길가던 여성을 붙잡아 강제로 추행하고 폭행까지 하였습니다. 그것뿐만 아니라 말려고 했던 사람들까지 함께 폭행했구요."

최우식은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말도 안됩니다, 저희 아버지께서는 그런 짓을 하실 분이 아닙니다."

선우는 단박에 부정을 하였다.

장난기 넘치고 정많은 아버지였다.

그런 아버지가 여자를 추행하고 폭행까지 저지르다니

말도 안되는 개소리였다.

단단히 오해를 받은 게 분명하였다

"아버님을 믿고 싶은 마음은 충분히 이해하지만 이미 증거와 증인까지 확보되어있는 상황입니다."

"무슨 증거요? 무슨 증인이요?"

"아버님께서 직접적으로 폭력을 행사한 장면을 촬영한 목격자가 있습니다. 그분으로부터 영상을 확보했고 증언까지 받아둔 상황입니다."

최우식은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영상을 제가 직접 확인해야겠습니다."

"알겠습니다. 곧바로 틀어드리죠."

최우식은 곧바로 노트북을 돌렸다.

달칵

그리고 가벼이 스페이스바를 눌렀다.

그러자 화면 속 영상이 재생되기 시작하였다.

네다섯되어보이는 건장한 청년들을 일방적으로 폭행하고 있는 아버지의 모습이 보였다.

그 뒤로는 바닥에 널부러진 채 덜덜 떨고 있는 여자의 모습이 비추었다.

"어떻습니까? 이제 납득이 좀 되십니까?"

"증거로 채택되기에는 불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영상을 모두 본 선우는 단호하게 말을 내뱉었다.

"아드님, 옹호하고 싶은 건 알겠는데..억지를 부린다고 사실이 달라지진 않습니다."

"옹호가 아니라 객관적인 사실을 말하는 겁니다. 남자들과 드잡이질을 했다는 건 인정할 수 있겠지만 일방적인 폭행임을 증명하기엔 영상 길이가 너무 짧지 않습니까? 아버지 얼굴을 보니까 상처가 좀 있던데, 영상에는 안찍혔지만 서로간의 주먹이 오갔을지 모를 상황이지 않습니까?"

"목격자와 피해자들의 진술이 있었습니다."

"진술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 좀더 객관적인 증거가 있어야죠, 처음부터 상황을 전부 알 수 있는 cctv같은 거 말입니다."

"아쉽게도 마침 근처 cctv가 고장이 나 영상을 확보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마땅한 증거는 없는 거 아닙니까? 상황을 특정하기엔 영상은 짧고 가장 객관적인 증거는 확보할 수 없는 상황이니까요."

이내 최우식은 똥씹은 표정을 지었다.

틀린 말이 아니였다.

객관적인 증거라고 보기엔 설득력이 여러모로 부족한 증거물이었기 때문이었다.

"증거는....부족할지 몰라도....피해자 진술과 목격담을 토대로 정황은 강제 추행과 폭행 사실에 대해선 명확해진 상황입니다. 충분히 혐의가 인정될 수 있다는 말입니다."

"피해자가 어떻게 진술했는데요?"

"길가던 중 갑자기 끌어안고 민망하고 수치스러운 부분을 강제적으로 만졌고 반항을 하니 뺨을 비롯해 온몸을 구타했다고 하던구요. 같이 폭행당했던 분들도 피해자와 똑같이 증언했구요."

"거듭 말씀드리지만 아버지께서는 그러실 분이 아닙니다."

"당시 아버님의 혈중알콜농도 0.09로 이정도면 면허 취소가 나올 정도로 만취한 상황이었습니다. 평소에는 상상도 못할 일을 저질렀다고 해도 충분히 설득력이 있는 상황이지요."

음주는 인간으로 지켜야할 도덕적 관념을 망각시키고 내면에 꼭꼭 숨어있는 음습함과 저열함을 드러나게 만든다.

범죄를 저지를 만한 설득력을 갖추고 있는 것이다.

".....아버지께서는 뭐라고 진술하셨습니까?"

"전부 새빨간 거짓말이라고 진술하더군요, 피해자를 강제 추행한 적도 폭력을 가한 적도 없으며 오히려 남자들이 여자를 둘러싸고 폭력을 가했고 스스로 나서 그 상황을 중재하였고 뜻하지 않게 서로 주먹이 오고갔다고 말입니다. 말도 안되는 진술이죠."

"어째서 말이 안된다고 단정 짓는 겁니까?"

"피해자가 폭력을 가한 사람들을 옹호하고 도와주려고 나선 무고한 사람에게 누명을 씌우게 어디 말이 됩니까?"

"모든 가능성을 열어둬야하는 거 아닙니까? 진짜로 그런 걸수도 있지 않습니까?"

"상식적으로 말이 안되니까.."

"상식적인 일만 일어나면 범죄가 왜 일어나겠습니까? 당장 아버지 손에 있는 수갑을 푸세요!, 아직 진술만 오가고 있는 상황에서 왜 가해자 취급을 합니까!"

선우는 눈살을 잔뜩 찌푸린 채 언성을 높였다.

"......알겠습니다."

한껏 기세가 눌린 최우식은 장광효의 수갑을 그대로 풀어버렸다.

"피해자를 만나게 해주십시오. 직접 진술을 들어야겠습니다."

이내 선우는 최우식을 바라보며 입을 떼었다.

"지금은 무리입니다."

"왜 안되죠?"

"지금은 전부 귀가 조치해서 자리없습니다."

"서로 진술이 엇갈리는 대질신문도 안하고 그쪽만 귀가조치했다구요?"

선우는 짜증 어린 눈빛으로 최우식을 노려보며 입을 떼었다.

이새끼 상상이상으로 개새끼다.

무슨 일 처리를 이따위로 한다는 말인가.

"아무래도 밤이 늦어 가족들이 걱정하기도 했고....병원도 가봐야하기도 하니까.."

"그럼 저희 아버지는요? 저희 아버지도 걱정할 가족이 있고 얼굴에 피멍이 가득합니다. 그런데 왜 귀가 시켜주지 않는거죠?"

"....그거야 아무래도 혐의 인정을 하지않으니...."

"혐의가 없으니까, 억울하니까 인정하지 않는 거 아닙니까! 그런데 멋대로 범인 취급을 하고 사람을 잡아둬? 당신은 무죄추정의 원칙도 몰라? 당신이 경찰이야?"

선우는 살벌하기 그지없는 눈빛으로 최우식을 노려보기 시작하였다.

움찔

그 눈빛을 마주한 최우식은 몸을 움찔 떨고는 그대로 굳어버렸다.

평소라면 어디 어린 놈의 새끼가 반말이냐며 고함을 내질렀겠지만 도저히 그리 할 수 없었다.

눈빛을 마주한 순간

소름이 돋으며 전신이 딱딱하게 굳어버렸기 때문이었다.

무서웠다.

연쇄살인마를 만났을 때보다 몇십배는 말이다.

"아버지도 당장 귀가조치 시키세요."

"...하지만..그게.."

"진술이 엇갈리고 마땅한 증거도 없고 피해자들은 자리에 없어 대질신문도 할 수 없는 상황이잖습니까? 이런 상황에서 아버지를 잡아둘 이유는 없다고 생각하는데요? 구속영장이 있는 것도 아니고 말입니다. 제 말이 틀렸습니까?"

선우는 어디 반박해보라면 반박해보라는듯이 최우식에게 되물었다.

"..........알겠습니다. 오늘은 이만 들어가시지요."

결국 최우식은 백기를 들 수밖에 없었다.

마땅한 명분이 없었다.

물론 억지를 부린다면 도주 혹은 증거인멸 우려가 있다며 붙잡아둘 수도 있겠지만 눈앞에 아들이라는 남자 앞에서 그딴 말을 씨부렸다간 도저히 감당을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여기선 그저 적당히 백기를 드는 게 가장 현명한 판단이리라

.

.

.

.

.

.

".........미안하구나."

"뭘 미안해요."

"나 때문에 팔자에도 없는 경찰서까지 오지 않았냐?"

"다 경험 아니겠어요? 신경쓰지마세요."

선우는 손사래치며 입을 떼었다.

"경찰서 오는 게 무슨 경험이라고.....평생 올 일 없으면 좋은 곳인데."

"다시는 안오면 돼죠."

"......그래, 다신 안와야지."

"........"

"........"

이내 두 사람 사이에는 어색한 침묵이 자리잡기 시작하였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아버지."

".......그래."

"전 아버지 믿어요 절대 그러실 분 아니라는 거,....그러니까 너무 걱정하지마세요. 제가 있는 한 어떻게든 아버지의 결백을 증명될테니까요."

"걱정돼서 그러는 게 아니란다. 우리 말 잘하는 아들이 어련히 알아서 해주겠지. 뭣하면 변호사를 써도 되고."

"표정은 안그런데요? 엄청 침울해져있는데?"

"아까워서 그렇다.."

"아깝다뇨?"

선우는 의아한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사실 오늘 연우 장난감을 산더미처럼 사놨거든...그런데 갑자기 체포되느라...챙기지 못하고 전부 버려두고 왔단다...그게 자꾸만 눈에 아른거리고 아까워...좀처럼 기운이 나지 않는구나."

장광효는 침울한 표정을 지은 채 입을 떼었다.

"아니, 무슨 장난감을 걱정하고 있어요, 뭐 중요한 거라고."

강간미수 및 폭행범으로 몰린 마당에 장난감이 무슨 대수란 말인가.

"연우랑 손가락 걸고 약속했다는 말이다...빈손으로 얼마나 실망하겠어.."

"연우는 착하니까 이해해줄 거예요. 그러니까 걱정마세요."

"그럴려나? 그치, 우리 연우는 착하니까 할애비의 깊은 속사정을 이해해주겠지, 흠흠"

장광효의 표정이 한결 풀리기 시작하였다.

아무래도 아버지에겐 범인으로 몰리는 일보다 손주에게 미움받는 일이 더욱더 문제였던듯 싶었다.

'....저런 아버지가 여자를 강제 추행하고 폭행했다고?'

말도 안되는 개소리였다.

'개새끼들, 전부 찾아내고 만다.'

선우는 눈을 빛냈다.

담당 경찰의 태도로 보아 현상황에서 공권력따위는 전혀 도움이될 것 같지 않았다.

이미 아버지를 범인으로 상정하고 있는 상황에서 어찌 기댈 수 있겠는가

차라리 직접 나서서 진상을 조사하는 게 가장 최선이리라

선우의 눈빛이 싸늘하게 반짝이기 시작하였다

*************

-도로롱 휘유우우~ 도로롱 휘유우우

소형견만한 아기용이 귀여운 코골이를 하기 시작하였다.

꼼지락 꼼지락 꼼지락

더불어 귀여운 몸뚱아리를 이리저리 꼼지락거리기 시작하였다.

보는 이로 하여금 절로 미소가 지어지는 흐뭇한 광경이 아닐 수 없었다.

"일어나."

퍼억

그리고 그 흐뭇한 광경을 지켜보던 선우는 망설임없이 주먹을 휘갈겼다.

-아아아악!

머리를 쥐어박힌 장본인, 용자는 조막만한 손으로 머리를 움켜쥐며 비명을 내질렀다.

뇌를 뒤흔드는 충격이 그대로 전해진 까닭이었다.

-왜 때려요!

"할 일이 있어."

-그럼 곱게 깨우면 되지, 왜 때려서 깨우는데요!

용자는 잔뜩 성난 목소리로 언성을 높였다.

"용자가 반항?"

선우는 살벌한 눈빛으로 용자를 노려보았다.

-반항은 아니구요.....다음부터는 좀더 살갑게 깨워주셨으면 좋겠어요...헤헤헤....애완 동물은 이쁨 받아야 오래산대요...

그 눈빛에 기가 죽은 용자는 헤실거리며 조근거리기 시작하였다.

잠시 미쳐 호기롭게 반항하긴 하였지만 저 살벌한 눈빛을 마주하니 곧바로 제정신이 돌아왔다.

"이쁜 짓을 해야 이뻐해주지, 안그래?"

-저 항상 이쁜데요? 보세요, 꼬리로 이렇게 헬리콥터도 만들 수 있어요!

붕 붕 붕 붕

용자는 꼬리를 빠르게 회전시키기 시작하였다.

연우으로부터 배운 헬리콥터 흉내였다.

"그런 장난스러운 재롱말고 좀더 이쁜짓 할 기회를 줄게, 용자야."

-이쁜 짓을 할 기회요?

용자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펄럭

그때 용자 앞에 옷 한벌이 날아들기 시작하였다.

"맡아."

-......뭐를..?

"뭐긴 뭐야, 냄새지."

-그러니까 냄새를 왜 맡아야하는데요..?

"거기 냄새 배게 만든 놈들을 모조리 찾아내야하거든."

선우는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찾아서 뭐하시게요?

"태어난 걸 후회하게 해주려고."

선우는 살벌하기 그지없는 눈빛을 반짝였다.

움찔

그리고 그 눈빛을 마주한 용자의 몸은 저도 모르게 움츠러들고 말았다.

언제나 여유롭고 장난스러웠던 평소와는 다른 농후한 살의와 커다란 분노가 그대로 전해진 까닭이었다.

처음이었다.

저리도 진한 살의를 내비치는 건

저리도 강맹항 분노를 흩뿌리는 건

'.....무슨 일인지는 모르지만...이새끼들...뒈지겠는데?'

그리고 냄새를 맡으며 생각하였다.

어떤 새끼들인지는 모르겠지만 걸려도 단단히 잘못걸렸다고

아무리 겁대가리가 없어도 그렇지.

어찌 대륙을 멸망직전까지 몰고간 마왕과 동격의 초월자를 건들 생각을 한다는 말인가

'지구쪽 인간들은 목숨이 여벌인가보네.'

그게 아니라면 전 차원에서 제일 멍청한 게 분명할 것이다.

본능에 충실한 짐승조차 강자를 알아보기 마련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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