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협지 안으로 들어와버렸다-1325화 (1,326/1,419)

"장광효, 57세, 육성전기 대형디스플레이사업부장, 무난한 업무처리 능력과 원만한 대인관계로 상사 및 부하직원과 신뢰가 두터움."

"건들만한 건덕지는 없나?"

차일식은 담담한 어조로 입을 떼었다.

"대인관계도 무난하고 이렇다할 경쟁자가 있는 것도 아니고 업무이력도 평소 행실도 깔끔합니다."

"그 나이에 그 직급정도 되면 구린 구석이 한두군데 정도는 있을 법도 한데.....전혀 없는건가?"

"전혀 없습니다. 그런 부분에선 외골수적인 면이 있어서....원천차단을한듯 합니다."

"그런 외골수가 잘도 부장을 달았구만."

외골수적인 성향은 사내정치에서 독으로 작용하기 마련이었다.

윗선에선 그런 외골수를 가까이하기 꺼려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도 부장직책을 달았다니

능력으로 정치력을 커버한 인물인듯 하였다.

"회사에서 평판은 어떤가?"

"정년도 얼마 남지 않았고 권위주의적인 면모도 없는터라 이래저래 무난한 평판입니다."

"그렇다면 회사 내부에서 뒤흔드는 건 무리겠군."

평판도 나쁘지 않고 꼬투리잡을 만큼 구린 구석도 없었다.

무리하게 뒤흔들려고했다간 오히려 꼬리가 잡힐 수도 있었다.

"예에...아무래도 그럴 것 같습니다."

비서는 고개를 주억거리며 입을 떼었다.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좀더 지저분해질 수밖에."

차일식은 차분한 눈빛으로 반짝였다.

내부에서 흔들 수 없다면 외부에서 흔들면 그뿐이었다.

대한민국에서 사람 하나 병신으로 만드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였으니.

*******

"우리 연우~ 둥가둥가~"

장광효는 사랑스러운 손자를 높이 들어올린 채 좌우로 이리저리 흔들기 시작하였다.

"꺄하앗~"

그러자 연우는 해맑은 웃음을 터트렸다.

놀이기구를 타는듯한 느낌에 절로 가분좋아진 까닭이었다.

"기분 좋아요? 우리 손자가 그렇게 기분 좋아? 그럼 한번 더할까? 둥가~둥가~둥가~둥가~"

장광효는 헤벌쭉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좀더 격렬하게 연우를 흔들기 시작하였다.

"꺄하아아아~~"

이내 연우의 웃음소리가 집안 가득히 퍼지기 시작하였다.

"선우아빠, 이제 그만하고 연우 이리 줘."

그때 부엌에 있던 권순분 여사가 걸어오며 손을 뻗었다.

"잘놀고있는데, 왜?"

"이제 출근해야지, 벌써 8시야."

권순분 여사는 벽에 걸린 시계를 가리키며 입을 떼었다.

시침과 초침이 정확히 8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벌써?"

"벌써라니, 밥도 안먹고 1시간이나 놀아줬으면서."

"아아.......가기 싫은데..."

이대로 가기엔 손주가 너무나 귀엽고 사랑스러웠다.

좀더 이 사랑스러움을 즐기고 싶은 것이다.

"가기 싫어도 가야지. 우리 손주 맛난 거 사먹이고 또로로 장난감도 사주고 이쁜 옷도 사입히려면 말이야."

"...후우...그래..우리 손주, 용돈도 벌어야지."

장광효는 수긍한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리고 권순분 여사에게 연우를 내어주었다.

"연우야, 이제 할애비 돈벌러갔다올게, 아빠랑 할머니말 잘듣고 있어, 알았지?"

"하부지~ 돈! 마이마이!"

연우는 양손을 널찍히 펼치며 마구마구 흔들기 시작하였다.

"하하하하, 그래, 그래, 돈 많이 많이 벌어올게."

그 모습이 너무 귀여워 웃음이 절로 나왔다.

어쩜 이리도 사랑스러울까?

"아버지, 다녀오세요."

이내 선우 또한 아버지께 인사를 건네었다.

"그래, 우리 아들도 푹 쉬고 있어, 헌터 연수원에 들어가면 엄청 바빠질테니까."

툭 툭 툭

-왕~ 왕~ 헥헥헥

"그래, 용자도 연우랑 잘놀아주고 있거라."

쓰담 쓰담 쓰담

"그럼 갔다올게."

장광효는 용자를 서너번 쓰다듬은 뒤 그대로 바깥으로 나가버렸다.

'더 열심히 벌어오자.'

그리고 바깥으로 나선 장광효는 속으로 다짐하였다.

딸린 식구가 많은만큼 더욱더 열심히 벌자고 말이다.

**********

"또로로 장난감 좀 주십시오."

장난감 가게에 들어선 장광효는 직원에게 대뜸 말하였다.

"어떤 걸로 드릴까요?"

직원은 친절히 되물었다.

"전부 주십시오."

"종류가 좀 많을텐데 괜찮으시겠어요?"

"상관없습니다. 많으면 오히려 좋지 않겠습니까? 우리 손자가 갖고 놀게 많아질테니까 허허허."

장광효는 사람좋은 웃음을 짓기 시작하였다.

종류가 많으면 오히려 좋았다.

선택의 폭이 오히려 늘어나게 될테니

"알겠습니다."

직원은 흐뭇한 미소를 지은 채 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우르르르

곧이어 모습을 드러낸 직원은 장난감들을 한아름 안아든 채 등장하여 가판대에 그대로 쏟아내기 시작하였다.

"...어...어어.."

그 광경에 장광효는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장난감 종류가 상상이상으로 많았기 때문이었다.

"또로로와 친구들 자동차, 또로로와 친구들 소꿉놀이세트, 또로로 인형, 또로로의 친구, 크엉 디럭스 에볼루션 피규어, 또로로 버스트각성 모드 , 또로로와 친구들 블럭, 또로로와 친구들 섯다, 또로로 모형칼, 또로로 수류탄, 또로로 시즈탱크 모드, 32단 합체 엠페러 또로로, 얼티메이트 갓 또로로입니다."

"....종류가 엄청 많군요."

"아무래도 요즘 가장 핫하고 트렌드한 캐릭터다보니 관련상품이 좀 많아요."

".......허어..."

헛웃음이 절로 나왔다.

아무래도 아동용 애니메이션 시장을 너무 얕본듯 하였다.

설마하니 이렇게까지 많은 장난감을 내보일 줄이야.

'몇개 뺼까?'

하지만 이내 고개를 내저었다.

이미 호기롭게 전부 달라고 말한 상황이었다.

여기서 뺀다면 손주에게 돈을 아끼는 쪼잔한 할아버지가 될 것이다.

".....전부 다합해서 얼마입니까?"

이내 장광효는 체념한듯 입을 떼었다.

"잠시만요.....제가 손주를 사랑하는 고객님께 특별가로 해주고 싶어서. 호호호."

이내 직원은 품안에서 계산기 하나를 꺼내들었다.

"신규할인 10%에 비자카드쓰시면 5% 추가할인, 거기다 특가할인 15%, 가정의 달 행사 할인까지 추가로 적용하고, 여기다 브랜드데이 특가할인까지 땡겨서 해드릴게요. 호호호."

탁 탁 탁 탁

직원은 중얼거리며 계산기를 빠르게 두드리기 시작하였다.

"총합 78만 5500인데....5500원 빼고 딱 78만원에 드릴게요."

".......그게 할인된..가격..?"

"네에, 가격이 너무 좋죠? 호호호."

"......6개월 할부로 부탁드리겠습니다."

이내 장광효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 카드를 건네었다.

"합리적인 선택, 감사드립니다. 고객님."

직원의 미소는 한층 더 화사해졌다.

********

"연우야~ 할애비간다~"

흔들 흔들

장광효는 장난감이 든 봉지를 위아래로 연신 흔들며 기분 좋게 걸음을 옮기기 시작하였다.

뜻하지 않은 과대 지출이 뼈아프긴 하였지만 이미 저질러버린 상황이니 골치아픈 생각보다는 기분좋은 생각만하기로 마음먹은 까닭이었다.

'선우엄마한테 욕좀 먹지, 뭐.'

맨날 먹는 욕.

이제와서 더 먹는다고해도 그리 두려울 것 것 없었다.

그렇게 한창 기분 좋은 발걸음을 옮기던 그때였다.

"꺄아아아아악! 도와주세요!"

귀를 찢는듯한 비명성이 귓가로 파고들기 시작하였다.

'여자 비명소리?'

휘익

장광효는 비명소리를 따라 재빨리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골목길쪽에서 남자 네명이 여자 하나를 둘러싼 형국이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하였다.

한눈에 봐도 꽤나 위험해보이는듯한 광경이었다.

'...위험해보이는데.'

곧바로 휴대폰에 손을 가져다대었다.

일단 신고부터 넣을 요량이었다.

"아저씨! 아저씨 도와주세요! 제발.."

그때 장광효를 발견한 여자가 다급히 조용히 요청하기 시작하였다.

"시발, 조용히 안해?"

짜아악

그러자 옆에 있던 험상궂은 남자가 그녀의 뺨을 그대로 후려갈겼다.

장광효는 그대로 얼어붙었다.

설마하니 저렇게 무자비하게 뺨을 후려칠 줄은 전혀 예상치 못한 까닭이었다.

"거, 아저씨, 가던 길 가슈, 별일 아니니까."

그때 장광효를 발견한 사내가 눈살을 찌푸린 채 파리쫓듯 손을 휘저었다.

"...별 일이 아닌데...왜 뺨을 때리는 건가?"

"얘가 내 동생인데, 가출해서 잡으러 온거야. 방금 때린 건 훈육이고. 그러니까 그냥 가슈, 가족 일에 상관하지 말고."

"그..그런가?"

"아니예요! 거짓말이에요! 저 이사람들 몰라요! 전부 처음 본 사람들이에요!"

짜아아악

"거짓말이니까, 믿지마슈, 얘 입만 열면 거짓말치는 년이니까."

뺨을 후려친 남자는 히죽거리며 입을 떼었다.

그리고 어서 떠나라는듯 손을 흔들기 시작하였다.

장광효는 고심에 빠졌다.

한눈에 봐도 가족관계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분명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이리라

하지만 선뜻 나설 수는 없었다.

건장한 남자 넷을 막아섰을 때의 리스크가 소시민인 그의 행동을 제지한 까닭이었다.

'위험하다.'

여기서 끼어드는 건 너무 위험하다.

자칫 잘못 얻어맞았간 늙은 몸에 골병이 들 수도 있었고 최악의 경우 맞아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그냥 신고만 하자....이럴 때 쓰라고 공권력이 있는 거 아니겠어?'

이내 장광효는 짧은 고심끝에 결론을 내렸다.

그냥 신고만 하고 끝내자고

영화 속에 주인공이라면 멋지게 난입하여 양아치들을 물리쳤겠지만 자신은 그저 평범한 소시민에 불과하였다.

남의 일에 끼어들어봤자 좋을 것 따윈 전혀 없었다.

"살려주세요...살려주세요...흐윽...흐윽....제발."

그때 울먹이며 애원하는 여자의 목소리가 귓가에 파고들기 시작하였다.

그 순간 눈앞에는 사랑하는 마누라와 3년만에 돌아온 듬직한 아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손자가 아른거리기 시작하였다.

"이놈들! 당장 그만두지 못해!"

이내 장광효는 언성을 높여 고함을 내질렀다.

정의감이 다소 부족할지 몰라도 수치심만큼은 너무나 잘알고 있는 그였다.

적어도 가족에게 부끄러운 가장이 되고 싶진 않았다

씨익

사내들은 그런 장광효를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무척이나 음흉한 미소를 말이다.

**********

"오늘은 아버지가 늦으시네요?"

선우는 의아한듯한 표정을 지었다.

평소보다 늦는 아버지의 퇴근에 의문이 든 까닭이었다.

"그러게 말이다, 왠일로 늦으시지? 요즘은 항상 정시퇴근이었는데."

선우가 돌아온 이후

언제나 정시퇴근을 하던 장광효였다

그런 그가 연락도 없이 늦으니 권순분 여사도 의문이 들 수밖에 없었다

"하부지...하부지...뺘아아아."

연우 또한 장광효가 보고싶은지 칭얼거리기 시작하였다.

무한한 애정을 선사하는 장광효의 존재는 연우 입장에서도 무척이나 소중한 존재였기 때문이었다.

"우리 연우도 할아버지가 보고 싶네."

"부우우...우우우...봐아아아."

"그럼 우리 연우 할아버지한테 전화해서 빨리 오시라고 할까?"

선우는 휴대폰을 들어올리며 입을 떼었다.

"됴아~됴아~ 됴아아아!"

연우는 조막한 손을 파닥파닥 흔들었다.

"그래, 그렇게 하자, 우리 할아버지한테 빨리오라고 하자, 연우 기다리고 있다고, 알았지?"

선우는 웃으면서 수신버튼을 눌렀다.

그리고 곧바로 연우에게 건네주었다.

"할아버지 해봐, 할아버지~"

"뺘아아아~"

연우는 양손으로 휴대폰을 들어올렸다.

"하바~ 하바아~~ 하바아아~"

그리고 귀에 가져다 댄 뒤 할아버지를 부르기 시작하였다.

선우는 그런 연우를 너무나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어쩜 저리 행동 하나하나가 귀여울 수 있을까

".....뱌아아....아아아..부으으.."

그때 별안간 연우의 표정이 시무룩해졌다.

"하부으으...아아.."

그리고 고개를 좌우로 절레절레 내젓기 시작하였다.

"우리 연우, 왜? 할아버지가 나쁜 말했어?"

"하부아아아..."

다시금 고개를 절레 절레 내저었다.

그리고 휴대폰을 선우에게 다시금 건네주었다.

"할아버지가 아니야?"

선우는 의아한듯한 표정을 지은 채 휴대폰을 넘겨받았다.

"여보세요....아...네에..아들인데요.....예에?...아버지가 거기를 왜?......아..네에...네에...네에.....네에!?...뭔가 잘못된 게....네에....알겠습니다...지금 바로 갈게요."

곧이어 선우는 심각한 표정을 지은 채 휴대폰을 끊었다.

그리고 급하게 옷을 챙겨입기 시작하였다.

"아들, 무슨 일이니?"

권순분 여사는 의아한듯한 표정을 지은 채 어머니께 되물었다.

심상치 않은 아들의 모습에 의문이 든 까닭이었다.

"잠시 나갔다와야할 것 같아요."

선우는 담담한 어조로 입을 떼었다.

"아빠한테 무슨 일 생긴거니?"

"별일 아니에요, 약간 오해가 생긴 것 같아요."

"무슨 일인데?"

"일단 갔다와서 말씀드릴게요. 어머니. 지금 많이 급해가지고."

말을 마친 선우는 곧바로 바깥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곧이어 선우가 나가고 권순분 여사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대체 무슨 일이길래 저리도 심각한 표정으로 길을 나선다는 말인가

'별일 아니여야할텐데..'

그녀의 표정에는 걱정이 서리기 시작하였다.

***********

'아버지가 폭행 및 강간미수라고?'

바깥으로 나온 선우를 눈살을 찌푸렸다.

경찰이 불러준 말도 안되는 죄목이 이해가 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범죄를 저지르기엔 너무나 소심하고 착한 아버지였다.

그런 아버지가 강간미수 현행범으로 체포되다니?

말도 안되는 개소리였다.

'누군지 모르지만 헛수작을 부리는 거라면 가만히 안둔다.'

선우는 살의 어린 눈동자를 반짝였다.

다른 건 다 참아도 가족을 건드는 건 참을 수 없었다.

만약 불손한 의도로 누명을 씌운 거라면 그 대가를 톡톡히 치르게 해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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