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거 미친 새끼 아니야?'
드래곤은 실로 경악을 금치 못하였다.
말같지도 않은 제안에 황당함마저 느껴진 까닭이었다.
자신이 누구란 말인가
태초의 용이자 대륙을 군림하고 있는 일곱 지배자 중 하나인 용족의 군주가 아니던가
그런 자신을 애완동물 취급하겠다니?
미친놈이 아니고서야
그딴 정신 나간 발상을 할 리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 대답이 없어? 애완동물하기 싫어?"
드래곤이 말이 없자 선우는 천천히 입을 떼었다.
-....저 아무리 그래도 애완동물은 좀..
드래곤은 머쓱한 어투로 말을 이었다.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금은보화를 넘겨줄 수도 있었다.
기괴하면서도 신비로운 힘을 가진 아티펙트를 모조리 넘겨줄 수도 있었다.
역사에 길이 남았던 수많은 초인들의 유산들을 그대로 넘겨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애완동물 취급만큼은 도저히 용인할 수 없었다.
영겁의 세월동안 절대자로서 군림해온 자신이 어찌 그런 하찮을 취급을 감내한다는 말인가?
말도 안되는 소리였다.
"아까 분명 모든 하겠다고 하지 않았나?"
-잘 모르시겠지만 게이트 너머에선 제가 나름 추앙받고 있는 존재거든요...그런데 여기서 애완동물 취급을 받거나 그러면 아무래도 제 위신에 금이 가기도..할 것 같고...게다가 할 일도 엄청 많아서요.....먹던 오우거도 마저 먹고 레어청소도 해야해서...
"혓바닥이 기네, 그래서 결론은 못하겠다고?"
-네에...아무래도 어렵지 않을까 싶네요....대신 다른 걸로 대체하도록 하겠습니다!..그 금은보화라던가...아니면 대륙에서 이름난 마법이나 검술같은 걸 가르쳐드리도록 하겠습니다...그게 아니면 아티펙트라도 넘겨드릴까요?
"아니, 됐어."
선우는 머리 위쪽으로 수도手刀를 들어올렸다.
우우우우우우웅
그리고 흉흉하기 그지없는 기운을 집약시키기 시작하였다.
-에에!? 잠깐만요...지금 뭐하시는!?
"애완동물하기 싫다며?"
-그렇다고 다짜고짜 죽이려고 하는 게 어딨어요!
"선행조건이 충족안됐잖아? 그럼 죽이는 게 맞지 않아? 내가 무조건 살려준다고 한 것도 아니고 말이야."
-다른 조건을 제시해주신다면!
"필요없어, 금은보화는 스스로 모으면 그만이고 어떤 마술이나 검술도 내겐 전부 허접하고 하찮아, 아티펙트는 관심없고 말이야."
선우는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애완동물로 키울 게 아니면 널 살려둘 메리트따윈 전혀 없다는 말이지."
-....그런...
"고통없이 보내줄게, 시체는 잘 해체해줄테니까. 걱정말고"
버릴 데가 없는 용의 시체였다.
고강도의 비늘부터 시작해 튼튼하기 그지없는 뼈와 질긴 가죽
마니아층에게 잘팔릴 것 같은 살점까지
이녀석을 죽여 시체만 내다팔아도 부자가되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리라
-시체를 왜 해체해요! 명복을 빌어준다면서요! 잘 묻어준다면서요!
"마음이 바뀌었어, 생각해보니 죽어서 묻히면 어차피 거름이 되는 거 아니야? 그럴 바엔 좀더 세상을 아름답게 하기 위해 쓰이는 게 낫지 않겠어?"
-하나도 안아름다워요!
"도마뱀 관점에선 그렇겠지, 근데 인간 관점에선 무척이나 아름다운 일이거든."
선우는 히죽거리며 입을 떼었다.
그리고 수도를 더욱더 높이 치켜들기 시작하였다.
'죽어..이러다 죽고 말아.'
그 순간 드래곤의 머릿속에 맹렬히 회전하기 시작하였다.
죽음이 임박하였다는 걸 본능적으로 인지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싫어...죽기 싫어어...'
이대로 있다간 죽고 말 것이다.
저 미친놈은 정녕 자신을 애완동물로 만드는 것 외엔 관심이 없는 것 같으니
'하지만 애완동물이 되고 싶지 않아...나 드래곤이라고! 태초의 용이자 대륙의 일곱 지배자 중 하나인 용족들의 군주라고!!!'
그렇다고 애완동물이 되고 싶지는 않았다.
용족들의 군주로서의 자존심이 도저히 허락지 않는 까닭이었다.
공포로서 세상에 군림하던 자신이 폭력에 굴복하여 하찮은 인간의 애완동물로 전락한다면 얼마나 많은 이들이 비웃겠는가
도저히 용인할 수 없는 것이다.
'어떻게 하지..난 어떻게 해야...'
드래곤은 고심하고 또 고심하였다.
목숨과 자존심
둘중 무엇을 포기할 것인지
"잘 가라."
부우우우우웅
곧이어 선우는 흉흉한 기세가 내포되어있는 수도手刀를 섬전처럼 내려치기 시작하였다.
약속했던대로 고통없이 단칼에 보내주기 위함이었다.'
'죽기 싫어어!!'
섬전처럼 쏘아지는 죽음의 그림자를 감지한 드래곤은 결정을 끝마칠 수 있었다.
현재 자신에게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깨달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할게요! 할게요! 애완동물! 애완동물 시켜주세요오오!!!!
그것은 바로 목숨.
살아있어야 자존심도 부릴 수 있다는 진리를 깨달은 것이다.
뚝
순간 내려쳐지던 손날이 그대로 멈춰섰다.
"하기 싫다며?"
-갑자기 하고 싶어졌어요! 너무 하고 싶어졌어요!
"위신이 떨어진다며?"
-당장 죽게 생겼는데 위신이 무슨 소용이겠어요? 그냥 없이 살게요.
"그래?"
-목숨만 보존해주세요! 애완동물이고 친구고 뭐든 다할게요!
드래곤은 필사적으로 매달리기 시작하였다.
어렵사리 잡은 생명의 끈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어떻게든 살아남고 싶은 것이다.
"좋아, 수용해주지, 진정성이 느껴지네."
선우는 히죽거리며 입을 떼었다.
이제야 제 위치를 찾은 것 같아 흡족스러웠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절대 실망시키지 않겠습니다!
"훌륭한 마음가짐이야, 좋은 애완 드래곤이 되겠어"
선우는 히죽거리며 입을 떼었다.
'애시드브레스에 절여질 새끼.'
드래곤은 속으로 욕지거리를 삼켰다.
벌써부터 애완 동물취급하는 모습에 절로 부아가 차오른 까닭이었다.
-최고의 애완 드래곤이 될게요!
물론 내뱉는 말은 속마음과는 전혀 상반되었다.
저 미친놈에게 괜한 꼬투리를 잡히고 싶지 않았으니
그렇게 대륙 전체를 벌벌 떨게 만들었던 용족들의 군주는
한 남자의 애완 드래곤으로 완전히 전락해버리고 말았다.
실로 비극적인 일이 아닐 수 없었다.
************
"소리가 완전히 멈췄군."
시험관 마동필은 드래곤이 처박혀진 구덩이쪽을 침중한 표정으로 바라보며 입을 떼었다.
어느 순간부터 드래곤의 머리통을 짓밟던 타격음이 완전히 사라져버린 까닭이었다.
"드래곤을 죽인 걸까?"
레이첼은 의문 어린 표정을 지었다.
완전히 끝장낸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 까닭이었다.
"아니면 되려 당했을 지도 모르지."
임재진은 시니컬하게 입을 떼었다.
"....확인해봐야하는 거 아닐까요?"
이유린은 슬쩍 의견을 내비쳤다.
드래곤의 몸뚱아리가 땅속에 처박힌 이상.
격전의 결과를 도무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네가 가, 난 안갈래."
레이첼은 곧바로 한발을 뺐다.
궁금함이 치솟긴 하였지만 직접 확인할 용기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넌 기대도 안했어."
이유린은 눈살을 찌푸린 채 대꾸하였다.
언제나 느끼는 거지만 초치는 데 일가견있는 년이었다.
".....내가 확인하지."
그때 마동필이 슬쩍 앞으로 나서며 입을 떼었다.
대응을 위해서라도 구덩이 안쪽을 미리 확인하는 게 나을 것이란 판단이 든 까닭이었다.
"같이 가죠."
곧이어 임재진이 앞쪽으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하였다.
"저도 갈게요."
이유린 또한 앞서가는 그들의 뒤를 따랐다.
"........이씨."
그 광경에 레이첼은 짜증을 내며 천천히 뒤따르기 시작하였다.
도저히 혼자만 쏙 빠질 분위기가 아니였기 때문이었다.
이내 네명의 시험관은 잔뜩 긴장한 표정을 지은 채 구덩이쪽으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하였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뚝
약속이라도 한듯 네 사람의 걸음이 동시에 멈춰섰다.
뻥 뚫려있는 구덩이 코앞까지 도달한 것이다.
"엄청 깊다아아.."
구덩이를 지근거리에서 본 레이첼은 감탄을 하였다.
상상이상으로 깊은 구덩이의 깊이가 절로 놀라웠기 때문이었다.
"......밑이 보이지 않는군."
"대체 어디까지 파고든건지...원.."
"인간의 힘으로 이런 게 가능하다니.."
이유린은 놀랍다는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저 짓밟는 것만으로 이렇게 깊고 깊은 구덩이를 만들어버리다니
이정도면 재해라해도 무방한 힘이라고 칭한다해도 부족함이 없을 것 같았다.
그렇게 모든 시험관들이 경악을 금치 못하던 그때였다.
쿠쿠쿵 쿠쿠쿵 쿠쿠쿠쿵 쿠쿠쿵
구덩이 안쪽에서 알 수 없는 굉음성이 울려퍼졌다.
쿠우우우웅
더불어 대지가 격렬히 진동을 하기 시작하였다.
"뭐..뭐야!?"
"뒤로 물러서! 뭔가 심상치 않은 일이 일어난다!"
갑작스러운 이변을 감지한 시험관들은 재빨리 뒤로 물러서기 시작하였다.
무언가 심상치 않은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쩌저저적 쩌저저적 쩌저적
후두두둑 후두두두둑
그리고 그 직감은 절묘하게 들어맞았다.
구덩이를 중심으로 땅이 갈라지더니 그대로 무너져내리기 시작한 것이다.
시험관들은 멀찍이 떨어진 채 그 이변을 그저 바라볼 뿐이었다.
불안한듯한 눈빛으로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펄럭 펄럭 펄럭 펄럭
그들의 귓가로 익숙한 소리가 파고들기 시작하였다.
날개짓 소리
그것도 창공을 울리던 거대한 날개짓 소리가 구덩이쪽에서 들려오기 시작한 것이다.
'69번 지원자가...진 건가?!'
'죽는 거야? 이제 다 끝난거야!?'
'...최악의 상황만은 오지 않기를 바랬겄만.'
'죽어도 싸우다 죽겠다!'
모두가 비장한 표정으로 전열을 정비하던 그 순간
"어?"
"...아니!?"
"....저..건.."
구덩이 위로 익숙한 이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하였다.
재앙급 위험도를 가진 미지의 존재와 감히 대등하게 겨룰 수 있었던 규격외의 강자.
드래곤을 일방적으로 짓밟아 거대한 구덩이를 만들어버린 장본인.
69번 지원자.
장선우가 너무나 멀쩡히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그것도 죽일듯이 싸웠던 드래곤의 정수리에 올라탄 채로 말이다.
"마침 모두 남아계셨군요, 여쭤볼 게 있었는데 말입니다. "
모습을 드러낸 선우는 부드러이 미소를 지은 채 입을 떼었다.
읊조리는듯 말하고 있음에도 그 목소리는 옆에서 속삭이는 것처럼 너무나 선명히 귓가에 파고들었다.
"만약 2차 시험에서 나타난 괴수를 길들일 경우 시험은 어떻게 되는 겁니까?"
"괴수를....길들여요?..그..그게 무슨.."
이유린은 멍청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을 더듬었다.
저게 별안간 무슨 소리란 말인가
"이녀석, 길들였거든요."
선우는 손가락으로 발 아래있는 드래곤을 가리키며 입을 떼었다.
"?!?!?!"
"?!?!?!"
순간 시험관들의 눈알이 튀어나올듯 커지기 시작하였다.
도저히 믿을 수 없는 비현실적인 말에 모두가 경악을 금치 못한 것이다.
드래곤을 길들이다니?
그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리란 말인가
"그...그게 정녕 사실입니까?"
곧이어 제일 먼저 정신차린 마동필이 더듬거리며 그에게 물었다.
"예에, 사실입니다. 뭣하면 증거도 보여드릴 수 있습니다."
말을 마친 선우는 그대로 뛰어올라 땅에 착지를 하였다.
"야, 손."
그다음 천천히 손을 들어올렸다.
그러자 드래곤이 거대하기 짝이 없는 흉악스러운 손을 그대로 내밀었다.
선우의 손바닥이 닿을 수 있도록
"빵"
곧이어 선우는 검지 손가락을 뻗어 총모양으로 만들어 총을 쏘는 시늉을 하였다.
-크아아아악!! 크아아아악! 아아악!
그러자 드래곤은 고통스럽다는듯 괴성을 내지르기 시작하였다.
마치 정말 총에 맞은 것처럼 말이다.
"벌러덩."
쿠우우우우우웅
말이 끝나기 무섭게 드래곤이 거대한 지진을 일으키며 그대로 드러누워버렸다.
그리고 양다리와 양팔을 쭉 편 채 무방비하게 배를 드러내었다.
그 몰골은 위엄 넘치는 드래곤이라기보단 동네 똥개와 같았다.
"어때요? 이제 좀 믿을 수 있겠어요?"
끄덕 끄덕 끄덕 끄덕
시험관들은 말없이 고개를 주억거릴 뿐이었다.
너무 기가막히고 경악스러워 도저히 말을 내뱉을 수 없던 까닭이었다.
그저 넋을 놓은 채 고개를 주억거릴 뿐
"그럼 이럴 경우 어떻게 되는 겁니까? 죽이진 않고 그냥 길들였는데."
"......테이밍과 관련 각성 능력자일 경우...2차시험에서 괴수를 길들였을 경우 합격으로 처리하고 있어요...."
그 물음에 이유린이 차분히 답을 이었다.
"그럼 길들여진 괴수는 어떻게 되는 겁니까?"
"......규정상 길들여진 괴수는 온전히 테이머의 소관이에요...살처분을 할 수도 있고.....그대로 데려가 키울 수도 있고 말이에요."
"잘됐군요, 마침 정이 들어서 헤어지기 싫던 차였는데 말입니다."
선우는 진한 미소를 지은 채 입을 떼었다.
"이녀석은 제가 데려가 키우도록 하겠습니다. 후에 오해가 없도록 적절한 조치 부탁드리겠습니다."
휘익
말을 마친 선우는 그대로 몸을 돌렸다.
그리고 그대로 뛰어올라 드래곤의 정수리에 올라타버렸다.
"그럼 일주일 뒤 헌터연수원에서 뵙도록 하겠습니다."
투욱
선우는 가벼이 발을 굴렸다.
크롸롸롸롸롸롸롸롸롸롸
그러자 드래곤은 특유의 웅장한 하울링을 내뱉기 시작하였다.
펄럭 펄럭 펄럭 펄럭
그리고 불길에 휘감겨져있는 거대한 양날개를 거침없이 휘두르기 시작하였다.
이내 선우와 드래곤 모두 저 멀리 지평선 너머로 완전히 사라져버렸다.
시험관들을 비롯한 지원자들은 그 경악스러운 광경을 그저 멍하니 바라볼 뿐이었다.
하나같이 넋이 나간 표정을 지은 채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