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저씨, 왜 이렇게 오래 걸려?"
70번 지원자, 이단역은 눈살을 찌푸린 채 입을 떼었다.
앞선 69번 지원자가 시험장으로 들어간 지 상당한 시간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나올 기색을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러게, 좀 많이 늦네. 무슨 일 있나?"
같은 헌터 학원 출신의 지원자, 이일용 또한 의문을 표하였다.
69번 지원자가 시험장에 들어간지 꽤나 오랜 시간이 지났기 때문이었다.
"이 아저씨, 오줌 지리고 기절한 거 아니야?"
뚱뚱한 인상의 남자, 한오돈이 장난스레 입을 떼었다.
"에이, 설마 그러겠어? 생긴 것만 보면 만만치 않게 생겼던데..게다가 학원 다니면서 몬스터 상대하는 거 연습했을 거 아니야?"
"아니, 설득력있어, 원래 실전이랑 연습은 다른 법이잖아, 학원에서 환영만 상대하다가 진짜 실물을 보고 기절할 수도 있지."
"그런가?"
"게다가 허접한 육체 강화 능력자잖아? 돌발상황이라도 생기면 뭐 대응이라도 제대로 하겠어?"
"....그것도 그렇네."
이일용은 수긍하듯 입을 떼었다.
확실히 틀린 말이 아니였다.
먼젓본에 알아본 바로 69번 지원자는 고령의 신체 강화 능력자였으니
"에이씨, 그럼 난 그 아저씨가 오줌 지린 곳에서 시험을 봐야하는 거야?"
이단역은 눈썹을 있는대로 찌푸린 채 인상을 썼다.
"운나쁘면 오줌이 아니라 똥까지 지렸을지도 모르지."
한오돈은 히죽거리며 입을 떼었다.
명백히 놀려먹을 의도가 다분한 모습이었다.
"아아...에반데.......화려한 루키의 데뷔 앞에 똥싸개의 등장이라니....임팩트에서 너무 밀리잖아!"
"좋게 생각해, 시험관들이 오히려 더 좋게 봐줄 지도 몰라, 폐급 각성자 바로 뒷차례니까 비교도 되고 말이야."
이일용은 길길히 날뛰는 이단에게 나름의 위로를 건네었다.
"폐급하고 비교해봤자지."
"그래도 없는 것보단 나을 걸? 난 오히려 부러워, 내 앞번도 69번 아저씨처럼 신체강화 능력자였으면 내가 돋보일 수 있었을텐데..."
"네 앞순서는 어떤 놈인데?"
"A21지구쪽 헌터학원 출신인던데?"
"거기 빡센놈들만 있는데..."
"그러니까 네가 부럽다고, 신체 강화 각성자 다음순서라면 기대치가 낮아진 시험관들한테 깊은 인상을 남길 수 있을 것 아니야?"
"....그것도 그렇네."
이단역은 수긍한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얘기를 듣다보니 그리 틀린 말이 아니란 생각이 든 까닭이었다.
빡센 놈들 때문에 기대치가 높아진 시험관들보단 폐급 각성자 때문에 기대치가 한껏 낮아진 시험관들에게 인상을 안겨주는 게 더욱더 쉬울테니
"대형 길드 들어가면 모른 척하기 없기다."
"걱정마, 이 형님이 대형길드에 스카웃되서 자리만 제대로 잡으면 너희들도 꼭 추천할테니까, 손발 잘맞는 녀석들이 있다고 말이야."
"역시 단역이가 통이 커."
"흐흐흐, 너만 믿는다."
세사람은 즐거운 망상을 하며 멍청한 웃음을 흘리기 시작하였다.
대형길드에 들어간다는 망상만으로 절로 웃음이 새어나온 까닭이었다.
그렇게 한창 바보처럼 웃던 그 때
쿠우우우우웅
갑작스레 땅이 진동하며 거칠게 뒤흔들리기 시작하였다.
"뭐..뭐야!?"
"지진!?"
"갑자기!?"
세 사람은 당혹스러운듯한 표정을 지었다.
몸이 뒤흔들릴 정도의 지진이라니
태어나 처음 느껴보는 거대한 진동이었다.
절로 당혹스러움을 느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콰콰콰콰쾅
곧이어 무언가 부숴지는 소리가 귓가를 강타하였다.
세 사람의 시선은 자연스레 그 소리를 따라 움직였다.
시험장 위쪽 하늘을 향해
""............!?""
그 순간 세 사람의 눈은 화등잔만하게 커질 수밖에 없었다.
도저히 믿을 수 없는 광경이 눈앞에 펼쳐진 까닭이었다.
하늘에 치솟아있는 거대한 뿔들
용암이 서려있는 듯 붉게 빛나는 커다란 눈깔.
아파트조차 귀엽게 만드는 커다란 아가리
아가리 사이에 박혀있는 투박하고 거대한 이빨.
산조차 씹어먹어버릴듯 발달한 거대한 턱
마치 강철 갑옷처럼 촘촘히 뒤덮혀있는 두터운 비늘
게이트 너머에 존재할지도 모른다는 가설은 있었지만 지금껏 발견된 적 없는 환상종.
보는 것만으로도 오금이 저리는 흉악스러운 존재.
"......드래곤.."
이단역은 감히 그 존재에 입에 담았다.
드래곤.
등급조차 매겨지지 않았던 대괴수가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저..저게...대체."
"꿈이겠지..꿈일거야..."
한오돈과 이일용은 쉴새없이 눈을 비비기 시작하였다.
자신들이 잘못 본게 분명하다면서
시력에 영향이 있는 게 분명하다면서
하지만 아무리 눈을 비벼도 눈앞에 펼쳐진 상황은 변하지 않았다.
고층빌딩을 연상시키는 거대한 덩치를 가진 드래곤이 불타고있는 거대한 날개를 펄럭이며 하늘에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CG아니지?...그치?"
"환영일 수도 있어...제발..그렇다고 말해줘."
"멍청아...환영이면 어떻게 시험장 지붕을 부숴!?"
"....그럼 진짜? 진짜 드래곤이라고?"
"말도 안돼.."
"대체 이게 어떻게 된거지?"
"모형은 아닌 것 같고.."
".....헌터 시험장에 게이트가 열린 건가?"
"설마.."
"뭔지 모르겠지만 일단 파랑새에 올려야겠어."
"나도 아웃스타에.."
헌터학원 삼인조뿐만 아니라 시험장 바깥에서 대기하고 있던 지원자들 또한 의문을 표하였다.
갑작스럽게 등장한 환상의 대괴수의 존재를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대격변 이후 3년 6개월동안 단한번도 모습을 내보이지 않은 존재였다.
그런데 어찌 이렇게 별안간 모습을 드러낸다는 말인가
그렇게 모두가 벙진 표정을 짓고 있을 때
-크롸롸롸롸롸롸롸롸~!!!!!!!!!!!!!!
창공에 자리잡고 있던 거대한 드래곤이 위협적인 울음을 토해내기 시작하였다.
"진짜다! 진짜 드래곤이 나타났다고!!!"
"게이트가 열린거야!"
"제기랄 왜 하필 헌터시험장에!""
"으아아아아아아!!!"
"도망쳐어어어어어!!!"
곧이어 사방이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하였다.
***************
-크롸롸롸롸롸롸롸롸!!!!!!!!!!!
창곳에 치솟은 거대한 드래곤의 흉악스러운 울음을 토해내기 시작하였다.
'덩치가 생각보다 크네.'
소환진에서 대가리만 튀어나와 있었을 때만해도 그리 크게 와닿지 않았건만
몸뚱아리까지 튀어나와버리니 상상이상의 덩치를 체감할 수 있었다.
당가의 애완동물, 용용이의 서너배는 될듯 싶었다.
'수준은 용용이보다 살짝 위인가?'
대충 느껴지는 기운만 따지면 화경 최상위에 동등한 힘을 갖추고 있는 용용이정도는 가뿐히 넘어선듯 하였다.
'잘하면 백월급일지도 모르겠군.'
초월하여 한계를 뛰어넘은 막강한 구미호이자 마경의 지배자 중 하나였던 백월.
잘하면 그녀와 동등할지도 몰랐다.
'뭐, 직접 확인해보면 알겠지.'
가볍게 주먹을 움켜쥐었다.
일단 골통부터 그대로 후려칠 요량이었다.
그렇게 위쪽으로 튀어오르려던 그때
덥석
서구적인 외모와 체형 가진 아름다운 여인.
레이첼이 선우의 멱살을 거칠게 움켜쥐었다.
"어떻게 할거야! 미친놈아아!! 너때문에 다 죽게 생겼잖아아!!!"
그리고 눈물과 콧물로 잔뜩 더럽혀진 얼굴로 선우를 노려보며 고함을 내질렀다.
이 미친놈이 도발한 까닭에 모든 게 끝났다는 생각이 든 까닭이었다
"그냥 입닥치고 있었으면 됐잖아요! 그럼 우리가 전부 해결했을텐데! 저놈을 역소환시킬 수 있었을텐데!"
이유린 또한 분노로 가득한 표정을 지은 채 언성을 높였다.
그냥 살짝만 밀어넣어도 헤프닝정도로 끝날 수 있는 사건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대형 사고로 일을 키워버리다니
절로 분노가 치솟을 수밖에 없었다.
"네놈은 헌터 자격도 없는 놈이다! 제 수준도 모르고 나대다가 일을 이따위로 키우다니!"
임재진은 거칠게 고함을 내지르기 시작하였다.
그 또한 사태를 이 지경으로 만든 원흉으로 선우를 지목하고 있는 것이다.
"그만! 그만하게! 이제와서 그자를 탓해봤자, 바뀌는 건 없어!"
마동필은 선우를 압박하는 시험관들을 향해 소리를 내질렀다.
이미 벌어진 일이었다.
이제와서 시시비비를 가려봤자 아무 소용 없는 것이다.
"....적어도 한방 먹일래요!...아니면 속이라도 후련하게!"
레이첼은 멱살을 더욱더 높이 들어올리고 앙증맞은 주먹을 뒤흔들며 선우를 위협하기 시작하였다.
당장에라도 머리통을 후려칠 것처럼
"그건 나중에 해도 늦지 않아! 지금은 저 드래곤의 처리가 우선이다!"
"그치만.."
"레이첼!"
마동필은 싸늘하게 그녀를 노려보기 시작하였다.
".......알았다구요."
레이첼은 그대로 멱살을 놔버렸다.
"너 운좋은 줄 알아."
그리고 선우의 귓가에 대고 속삭이기 시작하였다.
나름대로 적의를 가득히 담아서 말이다.
'귀엽네.'
물론 선우는 속으로 코웃음을 쳤지만 말이다.
"드래곤이 모습을 완전히 모습을 드러낸 이상, 머지 않아 지원이 올 것이다. 우리 역할은 지원이 올때까지 드래곤을 견제하며 민간인 피해를 최대한 줄이는 거다."
마동필은 차분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저게 견제가 되는 덩치예요?"
"그래도 해야지, 우리가 안하면 누가 하겠어? 빌어먹을."
"...짜증나..짜증나...진짜 짜증나!"
시험관들은 짜증을 토로하면서도 무기를 움켜쥐기 시작하였다.
너무나 무섭고 두려웠지만 모두 물러섬이 없었다.
사명
나라를 수호하고 시민들의 안전을 지키겠다는 헌터로서의 사명에 최선을 다할 요량인 것이다.
"자네는 서둘러 도망가도록 하게, 이제 이곳은 격전지로 변하게 될터이니."
이내 마동필은 선우에게 대피를 권하였다.
재수없게 말려들었다간 죽음을 면치 못할 것이란 생각이 든 까닭이었다.
"빨리가! 이 재수없는 놈아!"
"어서가세요, 당신까지 챙겨줄 여유는 없어요."
"너 새끼, 죽지마라, 나중에 내가 패죽이게!"
다른 시험관들 또한 선우에게 대피를 권하였다.
말은 거칠었지만 그들의 마음은 하나였다.
약자 보호.
약자인 선우가 다치는 걸 보고 싶지 않은 것이다.
"죄송하지만 그럴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이대로 가면 시험장 이탈로 시험에서 떨어지게 될테니까요."
선우는 고개를 가벼이 내저으며 입을 떼었다.
"뭐, 임마!?"
"뭔 말같지 않은 소리야! 이러다간 너 죽는다고!"
"장난칠 때가 아니네, 어서 가란 말일세!"
"지금 헌터 시험이 중요하냐? 이 바보야! 눈치 없어? 사태 파악 안돼!?"
시험관들은 눈살을 잔뜩 찌푸린 채 언성을 높였다.
목숨이 왔다갔다하는 판국에 헌터 시험 걱정이라니
이거 완전 미친놈이 아니던가
"저한텐 중요해서 말입니다, 이래저래 돈이 필요하기도 하고 다음 시험까지 본가에 빌붙어서 마냥 놀고 있을 수는 없거든요."
그간 걱정끼친 것도 미안해 죽겠는데
애까지 데려온 채 백수짓이라니
부모님께 도저히 못할 짓이었다.
아들된 도리로서 어찌 그리 할 수 있겠는가
"고작 그딴 이유로 죽을 생각이야!? 너 바보야? 병신이냐고!"
"죽을 생각따윈 없습니다. 그저 오늘 헌터 자격증을 딸 생각 뿐이지."
"그게 죽겠다는 거잖아! 저딴 걸 어떻게 잡아!!! 저건 재앙이라고! 너 따위가 감당할 수 있을 리 없잖아!!"
레이첼은 창공에 자리잡고 있는 거대한 드래곤을 가리키며 언성을 높였다.
저건 하나의 재앙에 가까웠다.
인간이 감당할 수 있을 리 만무한 것이다.
"백문이불여일견百聞不如一見."
선우는 담담한 어조로 입을 떼었다.
"백번 듣는 것보단 직접 한번 보는 게 더 나은 법이지."
그리고 곧이어 부드러이 미소를 지었다.
"그게 뭔 개소리.."
타타탁
레이첼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선우는 가벼이 발을 굴렸다.
파팟
그 순간 그의 신형이 온데간데없이 그대로 사라져버렸다.
마치 처음부터 존재치 않았던 것처럼
"뭐..뭐야?!"
"아니!?"
"...이게 어떻게!?"
시험관들은 경악하며 이리저리 고개를 돌리기 시작하였다.
별안간 모습을 감춘 그를 찾기 위해
하지만 어디에도 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연기처럼 홀연히 사라져버린 것이다.
시험관들은 얼빠진 표정을 지었다.
대체 어디로 사라진 거라는 말인가
그렇게 모두가 당혹스러움을 느끼고 있을 때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고막을 강타하는 거대한 충격음이 사방에 울려퍼지기 시작하였다.
"으으윽..."
"아으으윽!!"
"크으윽!"
시험관들은 모두가 고통 어린 표정을 지은 채 양쪽귀를 움켜쥐기 시작하였다.
고막을 울리는 거대한 충격음을 도저히 견딜 수 없던 까닭이었다.
그렇게 모두가 고통스러워하던 그때
-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찢는듯한 괴성이 사방에 울려퍼지기 시작하였다.
'.....저....목소리는...'
'드래곤의 목소리?'
'위..위쪽!'
목소리의 주인을 알아차린 시험관들은 일제히 위를 올려다보았다.
그리고 볼 수 있었다.
-끄아아아아아아아악!!
비명을 내지르며 바닥으로 추락하고 있는 거대한 드래곤의 모습을.
'저게 왜 떨여져!?!?'
시험관들의 눈빛은 하나같이 경악으로 물들기 시작하였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이란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