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협지 안으로 들어와버렸다-1310화 (1,311/1,419)

덜그럭 덜그럭 덜그럭

쭈우웁 쭈우웁 쭈우웁 쭈우웁

식기구가 달그럭거리는 소리와 젖병을 빠는 소리가 울려퍼졌다.

한창 배고팠던 선우와 연우의 열정적인 식사가 시작된 것이다.

"아들, 천천히 먹으렴, 그러다 체하겠어."

권순분 여사는 그 광경을 안쓰럽게 바라보았다.

선우의 식성을 보니 며칠은 굶은 사람처럼 느껴진 까닭이었다.

보옥같은 아들이 며칠을 굶었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아팠다.

"너무..우걱..맛있어서요...된장찌개...산나물..김치..너무 맛있어요..쩝 쩝 쩝."

선우는 감격을 느꼈다.

중원에서는 느껴볼 수 없었던 어머니의 손맛

그걸 직접 느끼니 도저히 손을 멈출 수 없었다.

그저 마음껏 퍼먹게 될 뿐인 것이다

"앞으로도 많이 많이 차려줄게, 우리 아들."

권순분 여사는 행복해하는 아들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감사합니다...어머니...우걱..우걱."

말을 마친 선우는 다시금 전투적인 식사를 이어가기 시작하였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하아....잘먹었다.."

통 통 통

밥그릇과 국그릇 반찬그릇까지 싹 다 비운 선우는 배를 두드렸다.

무척이나 포만감넘치는 식사였다.

"다부아아아.."

젖병을 완전히 비워버린 연우 또한 아비를 따라 올챙이 같은 배를 두드렸다.

실로 귀엽기 짝이 없는 모습이었다.

"후후후, 부자가 똑같네."

권순분 여사는 부드러이 미소를 지었다..

너무나 사랑하는 아들과 그런 아들을 쏙 닮은 손자에 대한 흐뭇함이 느껴진 까닭이었다.

"이제 가서 좀 쉬렴, 너도 연우도 여기까지오느라 많이 힘들었을테니까"

"아니에요, 제가 설거지할게요."

"그냥 들어가, 3년만에 돌아온 아들한테 설거지시키고 싶진 않으니까, 그리고  치렁치렁한 옷도 편한 걸로 갈아입고, 옷은 네 방에 그대로 있으니까."

권순분 여사는 흑룡포를 가리키며 입을 떼었다.

"....알겠어요."

선우는 연우를 안아든 채 천천히 자신의 방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편한 옷을 꺼내들기 시작하였다.

'매번 세탁하셨구나.'

옷은 특유의 섬유유연제 냄새를 풍기고 있었다.

분명 실종된 이후에도 주기적으로 옷을 빨았다는 증거이리라

'....언제나 내가 돌아오기를 기다리셨구나..'

괜스레 가슴이 뭉클해지는 걸 느꼈다.

그리고 속으로 깊게 다짐하였다.

되돌아온 이상

남부럽지 않은 효도를 해주겠다고

"아부아~"

이내 편한 옷으로 갈아입은 선우는 연우를 안아든 채 거실로 걸음을 옮겼다.

털썩

그리고 버릇처럼 소파에 자리를 잡았다.

그다음 리모컨으로 tv를 켰다.

몸에 배인 습관이 관성처럼 작용한 것이다.

이내 tv켜지고 화면에 사람들이 가득 채워지기 시작하였다.

'이건 아직도 안망했네.'

한창 핫했던 예능 런맨.

햇수로 3년반이 지났건만 아직도 망하지 않은듯 하였다.

"하하하하하..."

"꺄아아아~"

오히려 예전보다 더욱더 재밌게 느껴지는듯하였다.

웃음이 절로 나올 정도로 말이다.

그렇게 얼마나 tv에 집중하였을까

갑자기 화면이 전환되고 아나운서처럼 보이는 여자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긴급속보입니다! 지리산의 왕, 산왕이 잡혔다고 합니다! 자세한 소식은 현장에 나와있는 김대귀 기자 연결해서 전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김대귀 기자!]

[네에, 김대귀 기자입니다!]

[현장 상황은 어떤가요?]

[현재 현장은 축제나 다를 바 없는 분위기입니다! 지리산을 공포로 몰아넣었던 지리산의 왕이 잡혔다는 소식에 인근 마을 주민들은 물론이고 산왕에게 가족을 잃었던 유족들마저 기쁨의 눈물을 흘리고 있습니다!]

[산왕이 잡힌 게 사실인가요?]

[사실입니다, 현재 산왕의 시체가 저기 마을 입구쪽에 전시되어있는 상황입니다.]

기자가 가리는 키는 곳에는 네개의 다리가 기형적으로 꺾인 커다란 맷돼지의 시체가 혀를 빼물고 있었다.

저놈은 내가 손봐준 놈인데...'

아무래도 그놈이 기어이 죽음을 맞이한듯 싶었다.

'그나저나 유명한 놈이였나보네, 저렇게 별명까지 지어주고 뉴스가 타는 걸 보면..'

지리산의 왕

산왕이라니

고작 맷돼지따위가 별명도 참 거창하였다.

[산왕이라는 별명치고는 덩치가 너무 작은 것 같은데....정말 A급 마물인 산왕이 맞는 건가요?]

[산왕이 맞습니다. 먼젓번 산왕을 퇴치하다 부상을 입었던 전직 B급 헌터인 손석훈씨께서 직접 검증해주셨으니까요.]

[그렇다면 산왕을 잡은건 누구입니까?]

[거기에 대해선 KSO에서도 어떠한 답변도 하지 않은 상황입니다.]

[아직 알 수 없다는 말인가요?]

[그렇습니다. 이에 대해 일부기자들은 국민의 알권리를 침해하는 처사라는 목소리가 나오고....]

'저건 또 무슨 소리야?'

한창 뉴스를 보던 선우는 의아함을 느꼈다.

A급 마물이라니?

B급 헌터라니?

KOS라니?

뉴스에는 온통 영문모를 말 투성이었다.

"아이고, 산왕, 저놈이 이제야 잡혔나보네."

그때 한창 설거지를 하던 권순분 여사가 놀랍다는듯한 표정을 지었다.

".....아는 짐승이에요?"

"알다마다, 지리산 인근을 쑥대밭으로 만든 A급 마물이지 않니? "

"마물이요?...A급?"

"첫 출현당시에는 B급정도였는데 워낙 인명피해가 많아서 단기간에 등급 상향이 이뤄졌다고 하더구나."

권순분은 먼젓번 뉴스에서 봤던 내용을 그대로 들려주었다.

과연 해외에 있긴 있었던듯 하였다.

국내에서 가장 유명한 마물을 모를 정도면 말이다.

"그나저나 KSO 드디어 일을 하네, 세금만 낭비하는 줄 알았는데 말이야."

권순분 여사는 흡족스러운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영문을 모르겠어요.."

그 모습을 지켜보던 선우는 이해할 수 없다는듯한 표정을 지은 채 입을 떼었다.

"마물이란 게 대체 뭐죠? 헌터는 또 뭐구요?...KSO라뇨?...그건 또 무슨 단체죠?"

"마물에 대해서 몰라? 헌터에 대해서도 모르고?"

선우의 말에 권순분 여사는 되려 놀란듯 눈을 동그랗게 뜬 채 되물었다.

한국에 살지 않았으니 KSO라는 단체에 대해서는 모를 법 하였다.

하지만 마물과 헌터에 관한 건 세계 공통의 상식이 아니던가

"모르겠어요...그러니까 설명해주세요..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건지......."

선우의 눈빛이 한없이 진지해지기 시작하였다.

****************

대격변.

전 세계 동시에 게이트가 열리고 기존의 세상에 통용되던 모든 상식들이 뒤바뀌게된 거대한 혁명이 시작된 날을 지칭하는 말이다.

대격변 당시 전세계에는 수백개의 게이트가 열렸고 전설이나 신화 속에서나 볼법한 괴수들이 쏟아져나왔으며 수많은 인명피해를 야기시켰다.

헌터라는 대괴수전문 사냥꾼이 있는 현재와는 달리 그 당시에는 현대 무기로 대항할 수밖에 없던 까닭이었다.

게이트를 너머 현대로 쏟아졌던 괴수들은 기본적으로 마력이라는 이질적인 힘을 두르고 있었고 그 이질적인 힘은 현대무기들을 완전히 무력화시켜버렸다.

지대공 미사일을 마구잡이로 쏘아보내도 괴수들의 살갗 하나 훼손시키지 못한 것이다.

인명피해가 극심한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수순이리라

하지만 다행히 인류는 멸망하지 않았다.

특별한 능력을 각성한 각성자라는 존재덕분이었다.

그들은 초자연적인 힘을 이용하여 괴수들을 토벌하였고 결국 인류를 존속시키데 지대한 공헌을 세우게 되었다.

"허어.."

어머니로부터 모든 설명을 전해들은 선우는 어이없다는듯한 표정을 지은 채 헛웃음을 내뱉었다.

'.....무협지에서 탈출했더니...이젠 헌터물이냐?'

처음엔 무협지 속이더니

이제는 현대판타지 속 세계란다.

실로 기구한 인생이 아닐 수 없었다.

'....어쩐지 자연기의 농도가 짙더라.'

사실 집으로 오는 와중에도 미심쩍은 부분이 없던 것은 아니였다.

현대는 이상할 정도로 자연기의 농도가 짙었다.

중원의 배는 될 정도로 말이다.

또한 역마다 중무장한 군인들이 대기를 하고 있었다.

그게 전부 현대판타지로 변한 현대의 영향이었던듯 하였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게이트에 빠졌다가 귀환했다고 말할걸..'

현대에 이런 말도 안되는 일이 일어났다면 자신이 다른 차원에 떨어졌다는 말도 충분히 신빙성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마누라들의 존재도,  실종될 수밖에 없던 이유도, 연락을 하지 못했던 이유도 전부 설명할 수 있었을테니 말이다.

'......나중에 제대로 말하자..'

이제와서 지금껏 한 말이 전부 거짓말이라고 하기엔 뭔가 뻘쭘하였다.

훗날 부인들을 직접 데리고와서 직접 설명하는 게 가장 좋은 선택일 것 같았다.

그게 좀더 설득력이 있을테니 말이다.

'...그나저나...어째서..세상이 이렇게 변한 거지?....무협지 속에서 떨어진거야....'고3 이세계로 가다'의 작가라는 원흉이 있으니까...어라?'

순간 머릿속이 번뜩였다.

원흉이라고 될만한 존재가 스쳐지나갔기 때문이었다.

자신을 제놈이 만들어낸 무협지 속으로 떨어뜨렸던 원흉

고3 무림에 가다의 저자.

월검현.

'일단 그 새끼부터 찾아야한다.'

하위차원을 만들내고 차원 이동을 멋대로 시킬 정도의 존재라면 적어도 주신급의 힘을 가진 존재일 것이다.

그리고 그 정도 힘을 가진 놈이라면 충분히 가능할 것이다.

평범했던 세계를 현대판타지로 만들어버리는 게 말이다.

'넌 찾으면 뒈졌다.'

선우는 살벌하게 눈을 반짝였다.

***********

타타타탁 타타타탁

오랜만에 컴퓨터 앞에 앉아 키보드를 두드렸다.

일련의 사태에 관련이 있을 만한 존재.

'고3 무림에 가다' 작가 월검현을 찾기 위함이었다.

'뭐야, 왜 안나와?'

하지만 아무리 검색해도 월검현이라는 작가의 프로필은 나오지 않았다.

프로필뿐만 아니였다.

고3 무림에 가다라는 소설 또한 세상에 존재치 않았다.

마치 처음부터 집필따위는 되지 않았던 것처럼 존재자체가 사라져버린 것이다.

'대체...이게..'

선우는 당혹스러움을 느꼈다.

메인 연재사이트에서도

런칭되어있던 수많은 플랫폼에도

고3 무림에 가다는 보이지 않았다.

어찌 당황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책을 내린 건가?...하지만 그렇다해도 텍본이나 스캔본같은 거라도 남았을텐데?'

세상에는 저작권따위는 개나줘버린 좆버러지같은 거지새끼들이 존재한다.

바로 작가의 책을 스캔하고 텍스트로 만들어 포인트로 변환시키는 거지새끼들

그들은 남의 창작물에 멋대로 기생하여 수많은 거지새끼들의 관심과 환대를 즐기는 정신병자들이었다.

제아무리 고3 무림에 가다라는 소설이 지뢰같은 작품이라도 그 정신병자들이 지나칠 리 만무하였다.

'......말도 안돼...이렇게까지 흔적을 지우는 게 가능하다고?'

실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이렇게까지 깔끔하게 모든 데이터의 흔적을 지워버렸으니 말이다.

"어머니, 휴대폰 좀 빌려주세요."

이내 선우는 연우를 돌봐주고 있던 권순분 여사에게 재빨리 손을 내밀었다.

"어쩐 일로?"

"급히 전화할 때가 있어서요."

선우는 냉큼 핸드폰을 받아들었다.

그리고 곧바로 방으로 들어가 플랫폼 대표번호에 전화를 걸기 시작하였다.

-네에, 스토리 본능을 깨우는 웹소설계의 선두주자, 노벨아라입니다.

-웹소설이 꿈꾸는 세상, 조피아입니다!

-웹소설의 천국, 글세상 문카오입니다!

-웹소설은 투스토리, 투스토리입니다!

-책들의 군주, 로드북스입니다!

-오늘은 블루데이! 미스블루입니다!

-책들의숲, 북코브라입니다!

-톡쏘는 소설들의 향연, 톡사이다입니다!

-고3 무림에 가다라는 소설이요?

-작가는 월검현 작가님이시구요?

-잠시만요, 금방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아쉽게도 고3 무림에 가다라는 소설에 대한 기록이 존재하지 않네요.

-제목을 잘못 알고 계신 게 아닐런지.

-아예 런칭이 된 기록자체가 없어요.

-이거 아예 존재하지 않는 소설이에요.

-착각하신 게 아닌지, 다시 한번 확인 부탁드립니다.

노벨아라, 조피아, 문카오, 로드북스, 투스토리, 미스블루, 북코브라, 톡사이다 등

대형 플랫폼부터 중소플랫폼까지 모조리 전화해 문의했지만 돌아온 대답은 한결 같았다.

'고3, 무림에 가다'라는 소설이 런칭된 기록이 없다는 말

월검현이라는 작가는 등록되어있지 않다는 말

제목을 다시 확인해달라는 말.

'....빌어먹을.'

수많은 확인 전화 끝에 선우는 결국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고3, 무림에 가다라는 소설이 존재하지 않다는 사실을

월검현에 대한 모든 흔적이 지워져있다는 사실을.

'대체 네놈은 누구냐.....월검현.'

스스로에 대한 기록을 세상에 완전히 말소할 수 있는 존재.

월검현의 정체는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이내 선우의 미간에는 고심 가득한 주름이 박히기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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