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협지 안으로 들어와버렸다-1309화 (1,310/1,419)

"여보! 내 양말이 어딨지!?"

"밑에 서랍에!"

"어떤 서랍?"

"침대 밑에 서랍!"

"내 시계는?!"

"그건 책상 서랍에!"

"아, 여기있네!"

"여보여보! 파란 와이셔츠 못봤어?"

"그거 빨았어."

"아니 그걸 빨면 어떻게! 어제 산건데!"

"그럼 새옷을 빨아입어야지! 고대로 냅둬?"

"......그냥 입고 빨지."

"그럼 당신이 빨던가!"

"아니야, 잘했어....나 넥타이는?"

"옷장 밑 두번째 서랍!"

빨래감을 개고 있던 권순분 여사는 언성을 높이기 시작하였다.

하나부터 열까지 질문을 던지는 연쇄질문마인 남편에 대한 부아가 치밀어오른 까닭이었다.

양말과 넥타이처럼 같은 장소에 놓는 걸 어찌 아침마다 저렇게 매번 묻는다.

어찌 부아가 치밀어오르지 않을 수 있겠는가

"됐네."

출근을 준비하던 중년남자, 장광효는 히죽거리며 입을 떼었다.

아내의 열렬한 서포팅 덕택에 꽤나 이른 시간에 출근준비를 맞출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침은?"

"상 위에 차려놨어!"

말이 곱게 나올 리 없었다.

"반찬이 이거뿐이야? 나 고기먹고 싶은데......"

"당신 혈압 높잖아, 고기보단 채소를 많이 먹어야돼"

권순분 여사는 눈살을 찌푸렸다.

고혈압까지 있는 양반이 고기를 탐하다니

이는 빨리 죽게해달라고 고사를 지내는거나 다름이 없었다.

"아무리 그래도 순풀떼기밖에 없잖아?"

장광효는 채소무침을 대충 뒤적거리며 입을 떼었다.

"된장찌개에 고기 있어. 건져먹어."

"이것도 너무 적은데.."

찌개에 있는 고기는 순비계부위 투성이었다.

이런 건 진정한 단백질이라고 할 수 없는 것이다.

"안먹을거면 치우고."

권순분 여사는 눈살을 찌푸리며 상쪽으로 손을 뻗었다.

요 밉살맞은 남편의 밥상을 아예 치워버릴 요량이었다.

"아니, 누가 안먹는데?!"

장광효는 잽싸게 양팔로 상을 감쌌다.

본디 아침식사는 하루의 활기찬 시작이었다.

반찬이 마음에 안든다고 거를 수는 없는 것이다.

퍼억 퍼억 퍼억 퍼억

이내 장광효는 열정적으로 밥을 퍼먹기 시작하였다.

마치 걸신들린 사람처럼 말이다.

"에휴...."

그 모습에 권순분 여사는 가벼이 한숨을 내쉬었다.

결국 먹을거면 꼭 저렇게 불평불만을 토해낸다.

"나갈 때 전단지 들고가."

권순분 여사는 열정적으로 밥을 퍼먹는 남편을 바라보며 입을 떼었다.

"이미 챙겨뒀어."

"그건 또 안까먹었네?"

"....찾아야지, 아들."

장광효는 차분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촉새처럼 나불대며 불평불만을 쏟아낼 때와는 완전히 상반된 모습이었다.

".......늦겠어, 빨리 먹어."

권순분 여사는 한껏 가라앉은 목소리로 입을 떼었다.

3년 전 실종되었던 아들에 대한 언급에 마음이 한껏 가라앉은 까닭이었다.

덜그럭 덜그럭 덜그럭

그렇게 아파트에는 식기구가 부딪히는 소리만이 울려퍼질 뿐이었다.

쿵 쿵 쿵 쿵

그때 귓가로 쿵쿵 거리는 소리가 파고들기 시작하였다.

누군가 문을 두드리고 있는 것이다.

'...아침 일찍부터 누구지?'

권순분 여사는 의아함을 느꼈다.

이른 아침부터 찾아올 이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누구세요~"

철컥

끼이이이익

권순분 여사는 문고리를 잡고 천천히 문을 열어젖혔다.

"하마아아아~"

그 순간 깜찍하기 그지없는 목소리가 그녀들 반기기 시작하였다.

'아기?'

의아함을 느끼며 문을 완전히 열었다.

그리고 볼 수 있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너무나 귀여운 아기와 아기를 안고 있는 너무나도 익숙한 남자의 모습을

"..........."

권순분 여사의 몸은 그대로 굳고 말았다.

도저히 믿을 수 없는 광경이 펼쳐졌기 때문이었다.

3년 전 식은 치킨 한마리만 남겨둔 채 실종되었던 너무나 소중한 아들이 갓난 아기를 안아든 채 나타다니

이런 말도 안되는 광경을 어찌 믿을 수 있겠는가

".........어머니...안녕하세요."

그때 어색한 목소리가 울리기 시작하였다.

분명한 3년 전 실종되었던 아들의 목소리였다.

'이게..꿈이야...생시야..'

눈앞에 광경이 너무 비현실적인터라

모든 게 꿈처럼 느껴졌다.

너무 그리움에 사무쳐 헛것을 보는 게 아닐까라는 합리적 의심마저 들었다.

비비적 비비적 비비적

곧이어 권순분은 여사는 양손으로 눈을 몇 번이고 비볐다.

몇 번이고 스스로를 의심을 하면서 말이다.

".....그 오랜만이죠."

그때 다시금 꿈결같은 목소리가 다시금 파고들었다..

권순분 여사의 눈시울이 붉어지기 시작하였다.

아들.

너무나 소중한 아들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

진짜로 되돌아온 것이다.

"아들!"

와락

권순분 여사는 그대로 사랑하는 아들을 품에 안았다.

다시는 놓지 않겠다는듯이

"아들? 아들이라니?.."

뒤이어 밥을 퍼먹던 장광효가 다급히 달려왔다.

"아이고 선우야!"

그리고 양팔을 뻗어 그대로 감싸안았다.

언젠가는 돌아올 것이라

굳게 믿었던 너무나 사랑하는 아들을

".....다녀왔습니다."

선우는 해맑게 웃으며 인사를 하였다.

3년동안이나 자신만을 기다렸을 부모님을 바라보면서 말이다.

.

.

.

.

.

.

.

"어떻게 된거냐? 3년이 넘도록 어디서 뭘 한게야? 그 우스꽝스러운 옷은 뭐고? 아니 그보다  그 아기는 누군데 그렇게 꼭 껴안고 온 것이냐? 어디 아동모델이라도 납치한 게냐?"

극적인 가족상봉을 마친 후

선우의 아버지, 장광효는 특유의 촉새기질을 발휘해 짧은 시간내에 수많은 질문을 쏟아내기 시작하였다.

말많고 호기심많은 그에게 있어

3년만에 돌아온 아들은 호기심 덩어리였다.

어찌 입을 쉴 수 있으랴

"이 아이는 제 자식입니다....어머니와 아버지께서는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되셨어요."

".........."

".........."

순간 권순분과 장광효의 얼굴이 삽시간 굳어지기 시작하였다.

전혀 예상치 못한 선우의 폭탄 발언에 할 말을 잃어버린 것이다.

자식이라니?

할머니 할아버지가 되었다니?

저게 대체 무슨 소리란 말인가

".....장난을 치는 건..."

"당연히 아닙니다..어떻게 이런 장난을 치겠습니까?"

"허허허허..."

장광효는 허탈한 웃음을 흘리기 시작하였다.

너무 어이가 없어 웃음외에 다른 반응은 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

마찬가지로 권순분 여사 또한 별다른 반응을 할 수 없었다.

졸지에 할머니가 되었다는 사실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아들, 그간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해주겠니?"

이내 정신을 차린 권순분 여사는 조심스레 물음을 던졌다.

공백의 3년간 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그게...그러니까.."

선우는 한차례 심호흡한 뒤 설명을 하기 시작하였다.

고심 끝에 짜낸 최고의 시나리오를

***********

"그러니까 불법으로 체류한 조선족한테 납치당해서....중국에 이름 모를 섬에 팔려갔다고? 가서 주구장창 노역만 했고."

"그렇죠, 한 2m는 될법한 놈들이 겹겹이 둘러싸는데 도저히 빠져나갈 재간이 없더라구요."

"그러다가 운좋게 탈출한 뒤 중국에서 떠돌이 생활을 했다고?"

"네에, 한 2년은 돌아다녔을 거예요."

"그럼 아기 엄마는?"

"떠돌이 생활을 하다 만나게 된 여자가 있었어요...북궁연이라고....저희는 서로를 진심으로 사랑했고..사랑의 결실인 연우가 태어나게 되었죠.."

선우는 눈하나 깜빡이지 않고 자연스레 거짓을 내뱉기 시작하였다.

차원이동과 배경인 무협지라는 내용만 뺸다면 그리 틀린 말은 아니였기에 양심의 가책따위는 없었다.

"그럼 며늘아기는 지금은 어디있는데?"

장광효는 의문 어린 표정을 지은 채 물었다.

어디에도 며느리의 모습은 보이지 않은 까닭이었다.

"......잠깐 사정이 생겨서 한국에 들어오진 못했어요...하지만...조만간 들어오게 될 거예요."

재료를 수급하는 즉시 차원의 문을 열 심산이었다.

그때쯤 북궁연이 이곳에 오게된다면 정식으로 소개시켜줄 수 있으리라

"아들, 엄마는 이해가 안되는구나, 대체 무슨 사정이길래, 아직 18개월밖에 안된 아들을 맡긴 채 떠났는지 말이야."

18개월

한창 젖을 먹고 어머니의 지대한 관심이 필요할 나이였다.

그런데 그런 아기를 내버려두고 떠날 사정이라니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아이보다 중요한 사정이라는 게 어디 존재할 수 있겠는가

"이게...제가 불법체류자 신분이라서.....저와 연우의 중국내 체류가 허가되지 않았어요....그리고 연아 또한 비자를 발급받지 못해서...이렇게 됐네요."

선우는 머릿속에 소설 한편을 뚝딱 써내려갔다.

"....쯔쯧 피도 눈물도 없는 나라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18개월된 아기랑 어미를 생이별시키다니 말이야."

장광효를 가벼이 혀를 차기 시작하였다.

선우의 말을 전적으로 믿는듯한 모습이었다.

"그러게 말이에요, 어쩜 그렇게 자비가 없는지."

권순분 여사 또한 동의하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며늘아기와 손주를 생이별 시킨 중국에 대한 부아가 치밀어오른 까닭이었다.

"집사람도 비자를 발급받는대로 한국에 오게 될테니까 너무 걱정하지는 마세요."

"언제쯤 발급된다던?"

장광효는 의문 어린 표정을 지은 채 되물었다.

정확한 일시가 궁금하였기 때문이었다.

"그건 저도 확실히는.."

확답을 줄 수는 없었다.

시공려천외도법時空戾天外渡法을 실행하기 위해 필요한 재료들은 현대에서도 존귀하기 그지없는 것들 뿐이었다.

무일푼인 자신이 언제쯤 구할 수 있을 지는 예측할 수 없는 것이다.

"...연락은? 핸드폰 번호나 어디 주소지라도 받은 게 있어?"

"아니요, 떠돌이 생활을 하는지라..마땅한 주소지랄 게 없네요. 핸드폰도 마찬가지구요."

"아니, 무슨 21세기에 핸드폰이 없어!?"

장광효는 말도 안된다는듯한 표정을 지었다.

시골촌동네 노인네들도 뉴튜브로 트로트를 듣는 시대이다.

아무리 떠돌이 생활을 했다지만 핸드폰이 없다니?

"왜 애한테 소리를 질러!"

그때 잠자코 듣고 있던 권순분 여사가 빼액하고 소리를 질렀다.

멀쩡히 살아돌아온 것만으로도 감지덕지하거늘

어디 취조하듯 윽박을 지른다는 말인가

".....아니..너무 말이 안되니까.."

장광효는 깨갱하며 목소리를 낮췄다.

집안의 절대권력자인 권순분여사의 엄한 목소리에 주눅이 든 것이다.

"애가 그러면 그런 줄 알지! 무슨 말이 그렇게 많아? 착하디 착한 선우가 우리한테 거짓말할 애야?"

"....거짓말을 못하진..않은데.."

장광효는 기어가는 목소리로 입을 떼었다.

객관적으로 봤을 때 자신의 아들은 마냥 순수한 녀석은 아니였다.

시의적절하게 구라를 칠 깜냥을 가진 녀석인 것이다.

"....됐어, 더이상 토달지마! 애 압박하지말고! 윽박지르지도마!...."

물론 모성애로 가득 찬 권순분여사에게 그런 객관적이 판단이 들어먹힐 리는 없었다.

그저 사랑하는 아들을 두둔하고 윽박을 지를 뿐

'엄마 나이스.'

선우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안그래도 난감하던 차 적절한 서포트였다.

"......알았어..알았다구...왜 자꾸 소리를 질러...간담 떨어지게."

장광효는 결국 강제적으로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너무나 사랑하는 아내지만 화가 나면 실로 호랑이보다 무서웠다.

가정의 평화를 위해선 이쯤에서 물러나는 게 가장 현명한 판단이리라

"그보다 당신 안늦었어? 출근이 아홉시잖아?"

시계는 8시4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명백한 지각인 것이다.

"아니, 아들이 살아돌아왔는데! 지금 출근이 중요해?!"

"중요해! 엄청 중요해! 입이 두개나 늘었는데 더 열심히 벌어야지!"

권순분은 언성을 높이기 시작하였다.

아들에게 불편한 질문만 하는 장광효를 빨리 쫓아낼 요량이었다.

"...빨리 출근해!"

"하지만...나 아직 손주도..못 안아봤는데.."

"갔다와서 안아보면 되잖아! 빨리 가!"

"....알았어..알았다구.."

장광효는 시무룩한 표정을 지은 채 입을 떼었다.

눈에 넣어도 아플 것 같지 않은 손주를 안아보지 못했다는 박탈감이 든 까닭이었다.

"연우야, 할애비가 올 때 장난감 이따시만큼 사오마."

장광효는 너무나 사랑스러운 손주를 바라보며 과장되게 손을 벌렸다.

"꺄하아~ 하부~하부! 하부!"

연우는 꺄르륵거리며 웃기 시작하였다.

"방금 들었어? 방금 할아버지라고!"

"빨리 가!"

권순분 여사는 그런 장광효를 강제로 등떠밀었다.

곧이어 문이 닫히고 장광효는 강제로 출근하게 되었다.

"무슨 말이 저렇게 많은지.."

장광효를 내보낸 권순분은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원래 수다를 좋아하시잖아요? 전 오히려 기뻤어요, 오랜만에 말많은 아버지를 볼 수 있어서."

선우는 부드러이 미소를 지었다.

말많은 아버지의 모습

전과 크게 바뀐 게 없어 오히려 정감이 가고 좋았다.

"엄마는?"

"사실 아버지보단 어머니를 다시보게 된게 더 좋았어요."

선우는 장난스레 속삭이기 시작하였다.

"후후후후...그래, 그래야지."

그 말에 권순분 여사는 흡족스러운 미소를 흘렸다.

속이 뻔히 보이는 말이지만 그리 싫지는 않은 까닭이었다.

"아들."

이내 권순분 여사는 미소를 지우고 사뭇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말씀하세요."

"엄마는 네가 그간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중요치 않단다. 우리 사랑하는 아들이 지금 내 눈앞에 멀쩡히 살아돌아왔다는 게 중요하지."

권순분 여사는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그러니까 무언가 말하기 싫은 게 있다면 구태여 머리를 쥐어짜서 이래저래 기워붙이듯 말할 필요는 없단다. 그냥 네가 내킬대 말해도 되고 영영 말하지 않아도 돼, 엄마는 따로 네가 묻지도 궁금해하지도 않을테니까 알았지?."

".......알겠어요...그렇게 할게요."

선우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어머니의 따스한 배려에 감사함을 느끼면서 말이다.

"그보다 밥은 먹었니?"

"아니요, 못먹었어요. 어머니 된장찌개 먹고 싶어요."

"그래, 그럼 바로 차려줄게. 연우는 어떻게 할까?"

"연우는 따로 분유를 사왔어요, 그거 먹이면 될 거예요."

선우는 품속에서 작은 분유통과 젖병을 건네었다.

오기전에 들렀던 마트에서 사온 녀석이었다.

"그래, 그럼 우리 연우도 할미가 맘마 준비해줄게요~"

"맘마~맘마~ 하마아아!"

연우는 해맑게 웃으며 입을 떼었다.

"아들! 들었니? 방금 할머니라고 한거!?"

권순분 여사는 호들갑을 떨며 언성을 높였다.

자신의 말을 알아듣는듯한 손주의 모습에 기쁨이 차오른 까닭이었다.

"네에, 저도 들었어요."

"한번 더 해볼래? 할머니. 할머니. 할머니?"

"하마아아~ 하마아아 하마아!"

"아이고, 우리 연우 아주 똑똑해요~"

권순분 여사는 연우를 안아들었다.

"둥가 둥가 둥가."

그리고 좌우로 흔들며 바이킹을 태워주기 시작하였다.

"꺄하아아~"

곧이어 연우의 웃음소리가 집안에 가득 울리기 시작하였다.

실로 화목하기 그지없는 광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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