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그 이름이 연우라꼬?"
"네에, 장연우입니다."
"다부아!"
"오메, 요 쪼꼬만 게 지 이름도 알아듣네."
등산객 태식은 히죽거리며 입을 떼었다.
제 이름을 알아듣는듯 답하는 아기의 모습이 너무나 귀엽게 느껴진 까닭이었다.
"하하하하, 아그가 아주 똑똑허구만, 그랴, 야가 몇살이라고 켔지?"
옆에 있던 그의 동생 태수 또한 웃으며 입을 떼었다.
"이제 18개월 됐습니다."
"뭐시여? 고작 그것 밖에 안됐어? 한 서너살은 먹은 줄 알았는디.."
태식은 눈을 동그랗게 뜬 채 되물었다.
덩치가 워낙 커 서너살은 되는 줄 알았건만 아직 두살도 채 안되었다.
실로 무서울 정도의 발육이 아닐 수 없었다.
"으따 형님, 어디 우리때랑 같은 줄 아쇼? 요즘 애들은 잘먹고 잘커서 다들 이쯤 커야."
"아녀, 우리 아들도 저만했을 때 쟈보다 한참은 작은 땅꼬맹이였어라."
"먹는 게 빈약해서 그런가 아녀? 분유 먹였담서."
"그게 차이가 있나?"
"당연히 차이가 있지비, 원래 분유라는 게 모유를 모방한건디."
"....듣기로는 별차이 없다고 하던디..."
"으따 정 못믿겠으면 직접 물어불면 되겄네, 젊은 동상,..야는 분유를 먹였당가? 아니믄 모유를 먹였당가?"
"모유를 먹였습니다."
"것보쇼! 내 말이 맞지 않소!"
"크으...그럼 우리 아들놈이 키가 작은 게 모유를 안먹여서 그렇구먼.."
태식은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다.
아들놈이 또래치고 영 키가 시원치 않았는데 전부 이유가 있는듯 하였다.
"둘째부터는 실수하지 말고 꼭 모유 맥이쇼."
"얌마, 나이가 마흔셋인데 둘째를 어떻게 가져!"
"으따, 우리 성님은 뭐 이리 약한 소리를 해야, 나이는 들더니 거시기도 물렁해졌소?"
"야이새기야! 애도 있는데 못하는 말이 없어야!"
"낄낄, 두살도 안된 아가 뭘 알겠소."
태수와 태식은 아옹다옹하며 다투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그 장난스러운 다툼을 바라본 선우는 부드러이 미소를 지었다.
정감 가득한 고향의 언어가 귓가에 파고들면 파고들 수록 고향의 돌아왔다는 사실을 새삼 체감이 되었다.
때문에 더 듣고 싶었다.
환향의 기쁨을 만끽하기 위해
꿈이 아닌 현실임을 체감하기 위해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멀지 않은 곳에 커다란 입구가 보이기 시작하였다.
어느새 완전히 하산하게 된 것이다.
"인제 다왔네."
"애까지 안아들고 내려오느라 고생했어라."
태수와 태식은 히죽거리며 입을 떼었다.
"도와주신 덕분입니다. 감사합니다."
선우는 가벼이 고개를 숙인 채 감사를 표하였다.
본래 무리와 떨어져 길잡이를 자처한 두 형제였다.
어찌 감사함을 느끼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제부터 혼자 하산하도록 하겠습니다."
길이 나왔으니 이동에는 큰 무리는 없었다.
비록 지리적인 위치가 지리산이긴 하지만 축지를 사용한다면 서울까지 한달음에 넘어갈 수 있을테니
"그래, 가보더라고, 좀더 밑에까지 데려다주고 싶긴한디....본대를 따라가려면 우리도 부지런히 따라가야혀서 말여."
태식은 면목없다는듯한 표정을 지은 채 입을 떼었다.
끝까지 데려다주지 못한 것에 대한 미안함을 느낀 까닭이었다.
"아닙니다. 저도 염치가 있지. 더는 폐를 끼칠 수는 없습니다."
이미 과할 정도의 호의를 받았다
더이상은 이쪽에서도 부담이리라
"폐는 무슨, 서로 돕고 사는거제."
태식은 손사래치며 입을 떼었다.
"그리고 이기 몇푼 안되지만..."
그리고 이내 품속에서 꾸깃한 오만원권 몇장을 꺼내들기 시작하였다.
"안주셔도 됩니다."
"아녀, 받어, 그래야 나의 마음이 편해."
"정말 괜찮습니다."
"서울까지 가려면 차비는 있어야할 거 아녀, 휴대폰도 지갑도 전부 잃어버렸담서!"
"...그러니까.."
"싸게 싸게 받어, 괜히 애까지 고생시키지 말고!"
태식은 선우의 손에 돈을 강제로 쥐여줬다.
"하지만.."
"이것은 나가 마음이 편하자고 하는 짓이니....돌려줄 생각일랑하지마소. 알갔어?"
태식은 단호하게 말을 내뱉었다.
"아따, 우리 성님 고집은 쇠심줄보다 질겨야...돌려줄 생각같은 건 안하는게 좋을겨."
태수는 옆에서 태식을 지원사격을 하였다.
그 말에 선우는 태식의 눈빛을 바라보았다.
단호한 그의 눈빛에는 타협의 의지 따위는 전혀 없었다.
"........감사히 받겠습니다."
결국 선우는 그저 감사를 표할 수밖에 없었다.
끝까지 호의를 베풀어준 두 형제에게 말이다.
"이제야 말을 잘듣는구먼 그래."
"이번에도 형님 고집이 이겼수."
태식과 태수는 싱글벙글 웃음을 지었다.
"연락처라도 넘겨주시겠습니까?....집에 돌아가면 입금해드리겠습니다."
"돈은 됐어야. 귀여운 아가 까까나 사먹여."
"마음만 받을텡게....싸게싸게 들어가더라고."
말을 마친 태식과 태수는 미련없이 뒤돌아가기 시작하였다.
그 뒷모습은 실로 훈훈하기 그지 없었다.
"감사합니다."
선우는 실로 오랜만에 한국인의 진한 정을 느끼며 부드러이 미소를 지었다.
역시 고향이 좋긴 좋았다.
.
.
.
.
.
"연우야, 기차타볼래?"
선우는 연우를 내려다보며 입을 떼었다.
빠르게 가려면 축지를 사용하는 게 낫겠지만 이왕 돈까지 받은 거 연우에게 보다 많은 것들을 구경시켜주고 싶었다.
자신이 살아왔던 고향의 모습을
"기..차아아?"
연우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난생처음 듣는 단어에 의문을 표하는 모습이었다.
"엄청 엄청 빠른 거야."
"빠라! 빠라!"
"어떻게 할래?"
"타! 타아아...타아아!"
"그래, 그럼 기차 타러가자."
선우는 연우를 품안에 꼬옥 안아든 채 기차역쪽으로 향하기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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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로롱 휘유우우...도로로롱...휘유우우우."
ktx 내부를 연신 구경하던 연우는 어느새 눈을 감은 채 귀여운 코골이를 하기 시작하였다.
그새 잠이 든 것이다.
"하긴 피곤할 만도 하지."
이해못할 바는 아니였다.
갓난 아기인 연우입장에선 오늘 하루가 무척이나 다사다난하게 느껴졌을테니 말이다.
'....편히 자려무나, 내 아들.'
우우우우웅
기막을 펼쳐 소음을 차단하였다.
이제 좀더 편히 잘 수 있으리라
'그나저나...이제 얼마 안남았네.'
대략 30분정도면 서울에 닿게 된다.
그리운 집으로 돌아가게 부모님을 만나게 되는 것이다.
'....많이 걱정했겠지?'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 무려 3년이나 실종되었다.
분명 걱정이 태산처럼 쌓여있었으리라
'....연우를 보면 많이 놀라겠지?'
필시 기겁할 것이다.
3년이나 실종되었던 아들이 손주를 안아든 채 되돌아온다면 말이다.
'이래저래 변명거리를 생각해놔야겠네.'
되돌아간다면 많은 질문을 받게 될 것이다.
유야무야 넘기기 위해선 변명거리를 미리 생각해둘 필요가 있었다.
차원을 넘어 무림에 떨어졌다는 말을 곧이곧대로 할 수는 없는 노릇이였으니
'애초에 믿지도 않을 것 같기도 하고.'
자신이 생각해봐도 꿈과 같은 일이었다.
사실대로 말한다면 분명 정신병원 입원을 고려하리라
'...돌아가기 전에 얼굴도 원래대로 바꿔야지.'
초월경에 다다르고 장삼과 영혼이 동화되며 외모 또한 묘하게 합쳐지고 말았다.
기존의 자신과 비교조차할 수 없을 정도로 잘생겨진 것이다.
이런 얼굴이라면 부모님도 못알아보시리라
'축융공으로 손 좀 봐야겠어.'
얼굴부분만 손보면 문제없을 것이다.
육신은 운동을 하였다고 대충 둘러대면 될테니
'할 게 많네.'
그래도 싫지는 않았다.
귀찮음보다는 만남의 기쁨이 더 컸으니
그렇게 선우는 웃으며 시간을 보냈다.
한시라도 빨리 집에 닿을 수 있기를
고대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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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수능력본부
통칭 KSO 전남지부장
김광현은 눈살을 잔뜩 찌푸린 채 산을 타기 시작하였다.
별안간 자신을 호출한 부지부장 서광필의 행태에 분노가 차오른 까닭이었다.
어찌 이런 이른 새벽부터 호출을 한다는 말인가
"염병할 새끼, 별것도 아니기만 해봐, 넌 뒤졌다."
일단 와봐야할 것 같다는 말만 남긴 채 전화를 끊었다.
무슨 일로 불려지는 지 알 수 없는 상태인 것이다.
자연히 부아가 차오를 수밖에 없었다.
거절할 기회조차 잃었으니
'제발 별일 아니여라...존나 굴리게.'
속으로 간절히 빌었다.
부디 별일 아니기를
광필이를 합법적으로 조질 수 있기를
그렇게 간절히 빌면서 걸음을 옮기니
어느새 광필이 찍어준 위치까지 순식간에 도달하게 되었다.
"허어..."
그렇게 당도한 순간 김광현은 헛웃음을 내뱉었다.
도저히 믿을 수 없는 광경이 눈앞에 펼쳐졌기 때문이었다.
3m는 족히 넘어서는 높이
1톤 트럭을 넘어서는 거대한 덩치
수천미터 거리에 있는 냄새조차 구별해낼 수 있는 커다란 콧구멍
명검을 연상케하는 날카로운 어금니
기형적인 방향으로 꺾여져있는 네개의 다리.
'산왕이..확실하다.'
모습을 확인한 순간
확신할 수 있었다.
눈앞에 널부러져있는 맷돼지가 먹이사슬 최상위의 위치한 반달곰조차 한끼 식사거리로 전락시켜버리는 지리산의 흉악스러운 지배자라는 사실을
'어떻게....저놈이..이렇게.'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타고난 용력과 비상한 두뇌를 감당할 길이 없어 지리산을 쑥대밭으로 만들고 있다는 것을 알고있음에도 방치할 수밖에 없었던 놈이.
A급 헌터들조차 학을 떼고 도망다니기 바빴던 흉악스러운 놈이
이렇게 기이한 모습을 한 채 널부러져있다니
어찌 이런 광경을 쉽사리 믿을 수 있겠는가?
그렇게 멍하니 산왕을 응시하던 차였다.
"지부장님 오셨습니까!"
우렁찬 목소리가 귓가로 파고들기 시작하였다.
부지부장 서광필의 목소리였다.
"이거 어떻게 된거야?"
"보시는 것과 같습니다."
"설마 네가 잡은 거야?"
김광현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그에게 물었다.
"그럴리가요."
서광필은 피식 웃음을 흘리며 대꾸를 하였다.
A급 헌터조차 못잡는 괴물은 일개 국가직 헌터따위가 잡다니
농담도 이런 농담이 없었다.
".....그럼 누가 잡은 건데?"
"그걸 알 수가 없습니다."
서광필은 고개를 내저으며 입을 떼었다.
"왜 몰라? 흔적이 있을 거 아니야?"
모든 싸움에는 흔적이 남기 마련이었다.
그런데 어찌 알 수 없다는 말을 씨부린다는 말인가
"그게.........흔적이 전혀 없습니다."
"뭐라고!?"
"그저 산왕의 네개의 다리가 일방적으로 꺾여졌을 뿐...그 어떤 저항의 흔적도 찾을 수 없었습니다."
"그게 말이 돼? 저놈이 어서 꺾어주세요~ 하고 몸을 대주기라도 해줬다는 거야?"
"......다른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게 뭔데?"
"몸을 대주는 것 마냥 일방적으로 농락당한 겁니다."
"광필아, 저놈 산왕이다."
"저도 잘알고 있습니다."
"잘 알고 있는 놈이 그런 말도 안되는 말을 해!? 저놈 잡겠다고 죽은 A급 헌터가 몇명인지 알아!?"
"세명이 죽고 열다섯이 부상당한 줄 압니다."
"그래, 도합 열여덟명의 A급 헌터를 사상자를 만들어버린 놈이다, 그런 놈이 일방적으로 당했다고? 그걸 나보고 믿으라는 거야!?"
".....믿기 어려우실테지만...그외에는 도저히 설명할 길이.."
서광필은 면목없다는듯한 표정을 지었다.
"내가 직접 보겠다."
김광현은 곧바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하였다.
아무래도 직접 확인하지 않고는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뚝
이내 산왕의 코앞에 도달한 김광현은 산왕의 전신을 샅샅히 훑기 시작하였다.
'염병......진짜네..'
그리고 이내 김광현은 눈살을 찌푸렸다.
서광필의 말이 사실이었기 떄문이었다.
네개의 다리가 기형적으로 꺾여졌음에도 어떠한 저항의 흔적이 없었다.
핏물 하나 묻어있지 않았고
살점 하나 보이지 않았다.
그 말인즉슨 압도적인 힘앞에 농락당했다는 말과 일맥상통하였다.
'그런 일방적인 싸움이 가능한 존재가...대한민국에 있던가?'
단언컨대 없었다.
산왕山王을 상대로 일방적인 농락이 가능한 존재라면 적어도 S급으로 분류될 정도의 힘을 가졌다는 뜻이다.
그리고 현재 대한민국에는 그 정도 수준의 힘을 가진 이는 존재치 않았다.
산왕의 팔다리가 일방적으로 꺾여진 것 자체가 말이 안되는 상황인 것이다.
"광필아."
이내 고심하던 김광현이 부지부장을 불렀다.
"말씀하십시오, 지부장님."
"비상이다...당장 본부에 지원 요청해."
"지원 요청이라뇨?!"
"산왕을 농락했다는 건 적어도 S급에 준하는 힘을 가졌다는 존재가 나타났다는 말이다. 그게 만약 사람이라면 잘 구슬리면 되겠지만 산왕을 대체할 새로운 마물이라면 골치가 아파져. 당장 대비해야한다."
모든 작전은 최악을 염두해둬야하는 법이었다.
그래야만 민간의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을테니 말이다.
"그러니까 토달지말고 당장 꺼져."
"알겠습니다!"
서광필은 우렁차게 답을 하였다.
그리고 재빨리 걸음을 옮기기 시작하였다.
그도 상황의 심각성을 충분히 인지할 수 있던 까닭이었다.
'.....하아...이왕이면 새로운 영웅이었으면 좋겠는데 말이지..'
마물은 끔찍하지만 새로운 영웅은 언제나 환영이었다.
정부의 말도 안되는 병크로 최악의 인재난을 겪고 있는 대한민국에서라면 더더욱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