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협지 안으로 들어와버렸다-1307화 (1,308/1,419)

구름 한점없는 밤하늘.

번쩍

쇄애애애애애애애애액

어느순간 밤하늘이 번쩍이더니 무언가 맹렬한 기세로 추락하기 시작하였다.

운석이라고하기엔 너무나 작았고 유성이라고 하기엔 그 형태가 너무나 뚜렷한 무언가가

콰콰콰콰쾅

뒤이어 정체불명의 추락체는 대지에 그대로 꽂혀버렸고 그와동시에 커다란 폭음성과 함께 어마어마한 충격파가 퍼져나가며 천지를 뒤흔들기 시작하였다.

그 충격이 완전히 가실 때까지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쿨럭..쿨럭....쿨럭..."

추락체가 떨어진 곳에서 격렬한 기침소리가 울리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이내 피어오르던 모래먼지가 서서히 걷히며 추락체의의 형태가 드러나기 시작하였다

잔뜩 찌푸려진 시원스러운 얼굴

옹골찬 근육이 들어차있는 육체.

흙먼지로 가득한 묵빛의 용포.

그리고 품에 안겨있는 너무나 사랑스러운 아기.

차원을 넘어온 선우와 연우의 등장이었다.

"쿨럭...쿨럭....쿨럭.......연우야...괜찮아?"

선우는 연신 기침을 하며 천천히 입을 떼었다.

스스로 고통스러움에도 자식의 안위가 먼저 걱정이 된 까닭이었다.

"꺄하아아~"

연우는 방긋 웃으며 대답을 대신하였다

"후우우우...."

그 모습에 선우는 그제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차원을 넘어서는 순간

동원할 수 있는 모든 기운들을 연우에게 집중시켜 보호막을 만들었다.

그 어떤 충격도 감히 침범할 수 없도록

그럼에도 워낙 어린 나이인지라 걱정이 태산이었는데 다행히 보호막이 제 역할을 해준듯 하였다.

이렇게 방긋 웃으며 천사 같은 미소를 짓는 걸보면 말이다.

'그나저나 난감하네.....같이 넘어올 생각은 없었는데..'

선우는 짐짓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이렇게 같이 넘어올 생각은 아니였건만 일이 뜻대로 되지 않았다.

설마하니 의지에 반응하여 연우까지 끌고가버릴 줄은 상상도 못한 것이다.

'....연아가 엄청 걱정하겠는데...'

이제 막 걸음마를 뗀 1살 남짓한 아기가 어떤 힘이 작용하고 있을 지 모를 차원의 통로를 건너가버렸다.

어미인 북궁연 입장에서는 심각하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차원의 통로를 한번 더 열어서...연아를 데려오던가 해야겠어..'

겪어본 바로 차원의 통로에는 어떠한 간섭도 존재치 않았다.

차원이동 후 추락만 대비한다면 부인들은 물론이고 자식들까지 넘어온다해도 큰 문제는 없으리라

절레 절레

'아니....일단 여기가 원래 세계가 맞는지부터 확인해야한다.'

이내 선우는 고개를 좌우로 살짝 내저었다.

전후과 바뀌었다는 생각이 든 까닭이었다.

이곳이 지구인지 아닌지

만약 지구라면 그 시대적 배경은 무엇인지

뭐하나 명확한 게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부인과 자식들을 데려올 생각이라니

너무나 섣부른 판단이었다.

'....일단 탐색부터 하자...제대로된 세계로 넘어오게된건지.'

생각 정리를 끝낸 선우는 이내 주위를 두리번거리기 시작하였다.

마땅히 단서가 될만한 것을 찾기 위해

'.....일단 지구인 건 확실해...나무들도 꽤 익숙하고 무엇보다..북두칠성이 보이니까.'

문제는 이곳이 어떤 시대인지였다.

돌도끼로 매머들을 잡던 원시 혹은 고대인지

왕이있고 계급제가 있는 중세인지

일제강점기인 근대인지

원래 고향인 현대인지

도저히 알 수가 없었다.

주위에는 울창히 자라나있는 나무들만 보일 뿐

단서가 될만한 것따윈 전혀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하필 떨어져도 산에 떨어져서...'

하필 떨어진 곳이 산인터라 시대를 구분을 할만한 단서를 찾을 수 없었다.

어느시대든 자라나는 나무들은 엇비슷하였을테니.

'무작정 걸어야겠군.'

이게 최선일 것이다.

단서없이는 시대를 구별해낼 방도가 없으니

"가자, 연우야."

"아부아아~"

저벅 저벅 저벅

곧이어 선우는 연우를 품안에 꼬옥 안아든 채 천천히 걸음을 옮기기 시작하였다.

시대를 구별할 수 있는 단서를 찾아내기 위해

.

.

.

.

.

.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곧이어 선우는 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별안간 뜻하지 않은 불청객이 모습을 드러내었기 때문이었다.

3m는 족히 되보일 높이.

1톤 트럭만한 커다란 덩치.

그 커다란 몸뚱아리를 지탱하는 통나무만한 네개의 다리.

명검을 연상케하는 두개의 날카로운 엄니.

야성이 번들거리는 흉악스러운 눈빛

호랑이가 멸종된 대한민국 최상위 포식자.

멧돼지가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꾸에에에엑 꾸에엑 꾸에에에엑!

특유의 울음소리를 내지르면서 말이다.

"....엄청 크네."

멧돼지를 마주한 선우는 살짝 눈을 치켜떴다.

상식을 벗어날 정도로 거대한 멧돼지의 덩치가 꽤나 놀라웠기 때문이었다.

흔히들 말한다.

최전방에서 서식하며 짬밥을 주워먹은 멧돼지는 마티즈나 라보만큼 덩치가 크다고 말이다.

하지만 눈앞에 녀석은 마티즈나 라보수준이 아니였다.

적어도 1톤 트럭을 될법한 괴악스러운 덩치를 자랑하고 있는 것이다.

어찌 놀랍지 않을 수 있겠는가

'.....시대를 잘못 온거 아니야?'

살짝 걱정이 되었다.

혹여 매머드가 살던 원시시대로 거슬러온 건 아닐까하고 말이다.

".....아바..아바..대지...대지!"

그때 안겨있던 연우가 멧돼지를 향해 연신 손짓하기 시작하였다.

무척이나 해맑은 미소를 지은 채로 말이다.

"우리 연우, 똑똑하네, 돼지가 뭔지도 알아?"

선우는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돼지를 알아본 연우의 영특함에 절로 흐뭇함이 느껴진 까닭이었다.

자신을 닮아서 그런지는 몰라도 너무나 영특하고 사랑스러운 아이였다.

"대지!...대지! 마시쩌.....마시쩌!"

"하하하하, 그래 맛있는게 찾아왔네, 먹히려 온건가?"

선우는 웃음지으며 맞장구를 치기 시작하였다.

아들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실로 유쾌하기 그지없었다.

어쩜 이리도 귀엽고 깜찍하다는 말인가

꾸웨에에엑!

한편 두 부자에게 완전히 무시당한 멧돼지는 분노를 토해내기 시작하였다.

이 드넓은 산에서 자신은 왕이었다.

그저 걷는 것만으로

인간을 포함한 모든 짐승들은 숨을 죽여야했으며

자신의 눈에 띄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써야했다.

절대적인 힘의 상징이나 다름없는 것이다.

그런데 눈앞에 인간들은 그런 자신을 두고 저들끼리 낄낄거리기 시작하였다.

산왕山王인 자신따위는 존재따위는 전혀 대수롭지 않다는듯이 말이다.

자존심이 상하였다.

치욕스러웠고 분노가 치솟아올랐다.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상태에 도달한 것이다.

꾸에에에에에에에엑

쾅 쾅 쾅 쾅 쾅

곧이어 분노한 산왕山王은 통나무같은 네개의 다리를 바삐 움직이며 전력으로 돌진하기 시작하였다.

명검보다 날카로운 두개의 엄니를 하늘로 곧추세운 채로

그야말로 저돌맹진猪突猛進

그 자체라 해도 부족함이 없으리라

우둑 우둑 우두둑 우두둑

그때 이변이 일어났다.

별안간 산왕의 육중한 몸을 지탱하던 네 개의 다리가 기형적인 방향으로 꺾여져버린 것이다.

꾸웨에에에에에에에엑!!!!

이내 산왕의 입에선 고통 어린 괴성이 터져나왔다.

콰아아아아아앙

그와 함께 지탱할 다리를 잃은 산왕의 몸뚱아리는 그대로 땅에 처박혀버렸다.

"어딜 들이받아? 연우도 있는데."

선우는 짜증 어린 눈빛으로 코앞에 나자빠진 산왕을 노려보았다.

연우가 곁에 있는데 공격을 감행하다니

이는 일백번 고쳐죽어도 할말없는 중죄이리라

꾸이익...꾸에에엑..꾸이이익...꾸이잇.

그때 산왕이 애처롭게 울부짖었다.

확연한 수준차이를 느끼고 목숨을 구걸하기 시작한 것이다.

제발 살려달라고

부디 목숨만큼은 보존시켜달라고

"죽어라 달려들 땐 언제고 이젠 불쌍한 척하네, 에라이 짐승 새끼야."

퍼어억

선우는 어이없다는듯 산왕을 쳐다보더니 이내 가벼이 발길질을 하였다.

실로 짐승다운 새끼가 아닐수 없었다.

'뭐 됐어, 어차피 죽일 생각은 없었으니까.'

불가항력이긴 하지만 먼저 영역을 침범한 건 이쪽이였다

저놈에게도 나름 명분이 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게다가 연우 교육상 좋지도 않기도 하니까..'

한 생명이 절명하는 광경을 연우에게 보여주고 싶진 않았다.

아직은 죽음을 알기엔 너무나 어린 나이였으니

'저정도 부상이면 알아서 죽겠지, 뭐.'

야생은 치명상을 떠안은 채 버텨낼 수 있을정도로 호락호락한 곳이 아니였다.

저렇게 네개의 다리가 동시에 꺾여진 상태라면 얼마 못가 죽어버리고 마리라

"다음부턴 상대 잘보고 덤벼라."

선우는 나름의 조언을 건네주었다.

그리고 한치의 망설임없이 그대로 지나쳐가기 시작하였다.

"바바.......대지이이.."

연우는 조막만한 손을 흔들며 인사를 하였다.

별안간 땅 위에 엎드린 멧돼지를 향해

이내 숲속에는 팔다리가 꺾인 집채만한 멧돼지만이 홀로 남게 되었다.

.

.

.

.

'...다른 시대로 넘어온 걸지도 몰라.'

한창 걷던 선우는 고심 어린 표정을 지었다.

집채만한 멧돼지.

이는 현대에서는 볼 수 없는 덩치였다.

고대의 짐승이거나 중세의 영물이 아니라면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존재인 것이다.

때문에 걱정이 되었다.

혹시라도 현대가 아닌 다른 시대에 넘어온 게 아닐까하고 말이다.

그렇게 한창 걱정하던 찰나

흠칫

순간 선우는 가벼이 몸을 떨었다

넓게 퍼트려놨던 기감에 명백한 사람의 기척을 감지한 까닭이었다.

'북동쪽!'

선우는 눈을 빛냈다.

그리고는 한치의 망설임없이 걸음을 옮기기 시작하였다.

한시라도 빨리 사람과 마주하기 위해

'......이제 알 수 있어.'

인간의 존재는 곧 시대를 최고의 단서였다.

그저 대화를 나누는 것만으로

행색을 보는 것만으로

수많은 정보들을 유추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제발..제발..제발..'

선우는 속으로 간절히 빌며 이동하고 또 이동하였다.

부디 이곳이 현대이기를

이왕이면 대한민국이기를

간절히 빌면서 말이다.

그렇게 얼마나 걸음을 옮겼을까

이내 시야에는 사람의 형태가 점점 선명해지기 시작하였다.

길다란 챙모자.

커다란 백팩

알록달록한 스판재질의 유명메이커 옷

땅을 짚고 있는 지팡이

형태가 선명해질 수록 선우의 눈시울은 적셔지기 시작하였다.

저 복장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알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등산객

그것도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의 등산객이었다.

에베레스트라도 오를 기세로 중무장한 채 뒷산에 오르는 이는 대한민국의 등산객밖에 없었으니

그리고 저들이 있다는 건

자신이 내딛고 있는 이곳이 대한민국의 땅이라는 것을 의미하였다.

제대로 돌아오게 된 것이다.

그리운 나의 고향에

"저기! 길 좀 묻겠습니다! 어르신들!"

어느새 지척까지 다가온 선우는 큰소리로 그들을 불렀다.

흥분과 기쁨으로 가득 찬 표정을 지은 채 말이다.

**********

"아이고, 젊은 사람이 어쩌다....이런 산골짜기에 왔다냐...그것도 이런 요런 핏덩이까지 데리고 말여."

"...그게 잠깐 산책을 하다...길을 잃어서...여태 해맸습니다."

"아부와아아."

연우는 동의한다는듯 추임새를 넣었다.

"산을 무시하니께 그려, 산이 을매나 무서운데. 아무런 준비도 없이 오는겨! 이렇게 만반의 준비를 해야제!"

탁 탁

옆에 있던 중년 남자가 등산 스틱으로 바닥을 콕콕 찌르며 입을 떼었다.

"그러게 말입니다, 제가 산을 얕봐도 너무 얕본 것 같습니다."

선우는 면목없다는듯한 표정을 지은 채 입을 떼었다.

"알면 됐어야...그래도 몸성히 돌아왔응께, 잘된 거 아녀, 산왕을 마주한 것도 아니고 말야."

"산왕이요?"

선우는 모르겠다는듯 입을 떼었다.

"으따, 그런 것도 모르고 지리산에 올랐당가? 지리산의 주인인 멧돼지 말여, 집채만한 게 사람까지 해친다니께!"

"아....그렇군요."

아무래도 아까 다리를 분질러놓은 놈의 정체가 산왕이라는 놈인듯 싶었다.

"운 좋은 줄 알여, 잘못하다간 삼도천 건널 뻔했을께."

"조상님께 감사해야겠군요."

"그랴그랴 조상신께서 도우셨응께."

중년 남자는 동의하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나저나 자네랑 아가 옷이 무척이나 특이하구마이, 혹여 중국인이나 조선족이당가?"

곧이어 옆에 있던 중년 여자가 입을 떼었다.

"아...그건 아니고..중국쪽에서 좀 오래 살다와서요."

4년 반정도 살았으니

오래살았다면 오래살았다고 볼 수 있었다.

"그보다 시간을 좀 볼 수 있을까요?...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영 가늠이 안돼서.."

"그럴만도 허제, 산이 있으면 시간이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 모르니께."

중년 남자는 동의하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리고 선우에게 휴대폰을 건네기 시작하였다.

직접 확인하라는듯한 제스처였다.

"감사합니다."

선우는 고개를 살짝 숙였다.

그리고 곧바로 휴대폰을 받아들었다.

'...과연 며칠일까.'

두근 두근 두근 두근

절로 긴장이 되었고 심장이 쿵쾅거리기 시작하였다.

고작 날짜와 시간을 확인하는 것 뿐인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꾸욱

이내 선우는 우측부에 위치한 버튼을 꾸욱 눌렀다.

파앗

그러자 화면이 켜지며 검은 숫자들이 눈에 들어왔다.

'............'

그리고 선우의 눈빛이 꽤나 심각해지기 시작하였다.

화면에 적힌 숫자는 2024년 3월 23일였다.

자신이 무림에 떨어졌던 2020년 7월 10일에서 3년 6개월가량이 지난 시점인 것이다.

'.....하지만 내가 무림에서 실질적으로 보낸 시간은 4년 6개월이다.'

그말인즉슨

두 차원간 시간의 축이 서로 다르다는 것을 의미하였다.

이쪽의 시간보다 무림의 시간이 더욱더 빠르게 흐르고 있는 것이다.

'....일났군.'

선우의 표정이 난감함이 서리기 시작하였다.

아무래도 여인들의 기다림이 이쪽이 생각하는 것보다 좀더 길어질듯 싶었다.

벌어진 시간의 축만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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