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협지 안으로 들어와버렸다-1306화 (1,307/1,419)

제일 먼저 넓은 공터 중앙에 벼락맞은 대추나무, 벽조목을 배치한다.

으드득 으드득 으드득

그다음 오른쪽 주머니 속에 있는 순백색의 진주들 한움큼 쥔 채 그대로 으깨버린다.

완전히 가루가 될 때까지

사아아아아악

그리고 완전히 으깨어진 진주 가루를 흩뿌리며 진을 그린다.

처음에는 벽조목을 중심으로 반지름이 이장 정도되는 커다란 원을

그다음 그 원 안에 여섯개의 꼭지점을 가지고 있는 성형육각형星型六角形을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이내 커다란 원 안에는 자로 잰듯 반듯한 육각형이 자리잡게 되었다.

"각 끝점에 공물들을 놓아줘."

육각형을 그린 선우는 담담히 입을 떼었다.

그러자 이예설을 비롯한 다섯명의 이씨자매들이 각각 공물을 끌어안은 채 꼭지점을 이동하기 시작하였다.

주인님의 명을 충실히 수행하기 위해

"장강 교룡의 가죽을 놓았어요."

"무소의 뿔을 놓았어요."

"코끼리의 상아를 놓았어요."

"백호의 가죽을 놓았어요."

"백월님의 꼬리를 놓았어요."

"용의 비늘을 놓았어요."

이내 이씨자매들은 차분한 어조로 입을 떼었다.

재료들이 알맞게 자리를 잡은 것이다.

끄덕

선우는 가벼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러자 이씨 자매들은 그대로 뒤로 물러섰다.

방해가 되지 않기 위해

'이제 주문을 새긴다.'

이내 선우는 반대쪽 주머니에 있는 흑진주를 움켜쥐었다.

으드득 으드득 으드득

마찬가지로 가루가 될 때까지 으깬 뒤 넓다란 면부분에 글자를 새기기  시작하였다.

그 연원을 알 수 없는 기괴하기 짝이 없는 문자를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후우.."

이내 성형육각형에 모든 주문을 새긴 선우는 가벼이 한숨을 내쉬며 이마에 흐른 땀을 닦아내었다.

이제 지극히 조심해야할 구간은 지났다.

어느정도 마음을 놓아도 좋으리라

"요랑, 용액 좀 줄래?"

이내 땀을 전부 닦아낸 선우는 천천히 손을 뻗었다.

"여기있어."

그러자 옆쪽에서 대기하고 있던 요랑이 작은 옥병 하나를 건네주었다.

금, 은,, 홍옥, 청옥, 금강석 등 온갖 진귀한 보석들을 으깨만든 가루들과 고목 수액을 버무린 특수한 용액이었다.

옥병을 받아든 선우는 마개를 뽑았다.

촤아악 촤아악

그다음 중앙에 놓여있는 벽조목을 향해 그대로 흩뿌렸다.

그리고 교룡의 가죽, 무소의 뿔, 코끼리의 상아, 구미호의 꼬리, 용의 비늘, 백호의 가죽까지 순차적으로 적시기 시작하였다.

옥병 속 용액이 전부 떨어질 때까지

저벅 저벅 저벅

이내 모든 용액을 뿌린 선우는 뒤편으로 천천히 물러섰다.

그다음 자연기를 시공려천외진법時空戾天外陳法에 집중시키기 시작하였다.

우우우우우우우웅

그러자 이변이 일어나기 시작하였다.

시공려천외진법時空戾天外陳法이 찬란한 빛을 발하였다.

감히 가늠조차할 수 없는 거대한 기운을 내뿜으면서 말이다.

꿀꺽

선우를 비롯한 여인들은 침을 꿀꺽 삼켰다.

무언가 시작되려고 한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인지할 수 있던 까닭이었다.

찌지지직 찌지지지직

곧이어 무언가 찢어지는 소리와 함께 허공이 갈라지기 시작하였다.

공간이 그대로 찢어져버린 것이다.

'.....저곳이로군.'

선우는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찢어진 공간 속이 바로 차원을 잇는 통로라는 사실을

저곳으로 들어간다면 그리운 고향에 당도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이내 선우는 천천히 몸을 돌렸다.

그러자 여인들의 흔들리는 눈빛이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하였다.

그녀들도 알고 있는 것이다.

이별의 시간이 찾아왔음을

이제 머지않아 작별을 고해야한다는 사실을

".........하고 싶은 말이 많은데.....몇시진을 쏟아내도 부족할 정도로 정말 많은데....많이 줄여야할 것 같아...시간이 많지 않거든..."

일각

모두에게 작별을 고하기엔 너무나 짧은 시간.

하지만 그럼에도 행해야했다.

지금이 아니라면 언제 볼 수 있을 지 기약할 수 없으니

"옥령은 널 만난 건 내 인생 최고의 행운이야....네가 없었다면 난 이렇게 멀쩡히 살아있을 수 없었을 거야..고마워 그리고 사랑해."

옥령에게 가벼이 입을 맞추었다.

"서윤아, 넌 내 누이이자 친구이자 연인이야....물론 은인이기도 하고...네가 아니였다면 난 날개조차 펴지못한 채 그대로 추락했을 거야...그 은혜 평생토록 되새기며 사랑으로 보답할게."

이번엔 당서윤에게 입을 맞추었다.

"요랑, 너 내게 여동생 같은 존재였어, 어리광 부리고 떼쓰고...싸우는 거 모두 게 내겐 더없이 재밌고 유쾌한 기억들이었어. 네가 없었다면 꽤나 삭막한 삶을 보냈을 지도 몰라..고마워..내게 와줘서..그리고 사랑해.."

그다음은 요랑이었다.

"소양, 비록 첫 만남은 썩 유쾌하진 못했지만 온전히 마음을 주고 끝까지 내 편이 되어줘서 고마워, 내가 원수를 갚을 수 있었던 건 네 몫이 가장 클거야. 진심으로 고 마워, 그리고 사랑해."

주소양의 입술에 가벼이 입을 맞추었다.

"그리고 이렇게 사랑스러운 아이들을 건강히 낳아줘서 정말 고마워."

쪽 쪽

그다음 그녀의 품안에 안겨있는 쌍둥이의 뺨에 가벼이 입을 맞추었다.

"현영, 널 처음봤을 때 난 네가 현세에 강림한 여신인 줄 알았어, 너무 아름다워서..도저히 인간일 거라고는 생각 못할 정도였거든....지금도 마찬가지야, 눈을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떨릴 정도로 아름답고 사랑스러워."

이내 주현영의 입술에 입을 맞추었다.

"선영이를 내게 선물해줘서 진심으로 고마워."

그다음 그녀 품에 안긴 이선영의 뺨에 가벼이 입을 맞추었다.

"선배님 아니 운설, 네가 없었다면 난 천마를 이기지 못했을 거야..소중한 사람들을 잃었을 수도 있지..넌 내게 은혜같은 여자야...네가 있기에 용기를 낼 수 있었고 내게 있기에 나아갈 수 있었으니까.....언제나 사랑할게.."

이내 운설의 입술에 입을 맞추었다.

"진설아, 넌 내 인생 최고로 나쁜년이였어..게다가..요즘 비자금 따로 해먹고 있다더라? 역시 사람은 변하지 않는 것 같네....적당히 해처먹어, 작열독에 절여지기 싫으면.."

"소란아, 너 근래 도박장을 뺸질나게 드나든다며? 다리 몽둥이 부러뜨리기 전에 그만해, 만약 갔다와서 내 귀에 또 그런 소리 들리면 각오해."

그렇게 선우는 차례대로 작별인사를 건네며 여인들에게 입을 맞추었다.

최대한 간결하게

최대한 진실된 마음을 꾹꾹 눌러담아서 말이다..

"독고령, 넌.."

선우는 그녀의 머리를 쥐어박았다.

"악! 왜요!"

독고령은 반발하며 언성을 높였다.

다른 여인들은 모두 쓰다듬어주고 입을 맞춰주었건만 어찌 자신만 머리를 쥐어박는단 말인가

"너 요즘 사이비 종교같은 거 만들고 있다며?"

뜨끔

뜨끔한 독고령의 동공이 쉴새없이 흔들리기 시작하였다.

비밀리에 추진했던 사업을 어찌 알고 있다는 말인가

"좋은 말할 때 해산시켜."

"...그...엄청 심각한 건 아니예요..그냥 취미 같은 거라서..걱정하지 않으셔도.."

"해산해."

선우는 단호하게 입을 떼었다.

저 타고난 선동꾼이 무슨 짓을 벌이는 건 사양이었다.

취미가 되었든 직업이 되었든 말이다.

"......네에."

독고령은 시무룩한 표정을 지은 채 입을 떼었다.

저 단호한 태도를 감히 거스를 수 없던 까닭이었다.

"그래, 착하네."

선우는 그런 그녀의 머릿결을 부드러이 쓰다듬어주었다.

츄으읍

그리고 가벼이 입을 맞춰주었다.

그러자 시무룩했던 그녀의 표정이 한결 밝아지기 시작하였다.

선우의 입맞춤에 서운했던 감정이 씻은듯 사라진 것이다.

애정표현을 마친 선우는 이내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백설을 닮은 한명의 아름다운 여인과 그녀의 손을 잡고 있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너무나 사랑스러운 아기가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하였다.

북궁연과 연우였다.

"연아...."

선우가 천천히 말을 이으려고 하던 그때였다.

츄으으으읍

어느새 지척까지 다가온 북궁연이 선우의 입술에 입을 맞추었다.

무척이나 진하게

"우우웁..!?"

선우는 당혹스러운듯한 표정을 지었다.

나름 준비해둔 작별인사를 건네기도 전에 이게 무슨 짓이란 말인가

츄으으읍 츄으으읍 츄으으읍

츄르르릅 츄르르릅 츄르릅

할짝 할짝 할짝 할짝

하지만 북궁연은 그런 선우의 당혹스러움에도 아무렇지 않다는듯 더욱더 적극적으로 진한 입맞춤을 나누기 시작하였다.

뒷목을 부여잡고 혀까지 넣은 채로 말이다.

선우는 그 움직임에 동조하여 혀를 내밀기 시작하였다.

그렇게 얼마나 진한 입맞춤이 이어졌을까

츄와아아아아.

두 사람의 입술이 서서히 떼어지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그 사이로 투명한 타액의 실이 길게 이어졌다.

얼마나 진한 입맞춤을 나눴을 지 짐작해볼 수 있는 모습이었다.

"작별인사는 이걸로 받을게."

북궁연은 요염한 미소를 지은 채 입을 떼었다.

"역시...넌 뜨거운 여자야...북궁연."

선우는 히죽거리며 입을 떼었다.

빙공을 익혔다는 게 의심이 들 정도로 뜨거운 여자였다.

이리 가슴 속에 뜨거운 열정을 품고 있으니 말이다.

"아부부우우..우부부우.."

그렇게 히죽거리던 그때 연우가 안아달라는듯 양손을 뻗기 시작하였다.

"웃차."

선우는 손을 뻗어 연우를 안아들었다.

"아바아..아바아..아빠.."

"그래, 아빠야...연우 아빠.."

선우는 진한 미소를 지었다.

이제는 발음이 제법 정확해진 아들의 성장에 절로 기분이 좋아진 까닭이었다.

"아빠, 금방 다녀올게, 연우야."

"아바...가?"

"응, 가야돼."

"으디....가아?"

"조금 먼곳으로 가게됐어."

"나두! 나두! 나두!"

연우는 양손을 쉴새없이 파닥거리기 시작하였다.

"미안, 연우야, 이번엔 아빠 혼자가야돼, 연우는 다음에 같이 가자."

"다으메?"

"응, 다음에."

"시져! 가치 가아아...아빠...가치 가아아.."

연우는 떼를 쓰기 시작하였다.

너무나 사랑하는 아버지와 헤어진다는 건 너무나 슬픈 일이었다.

그럴 바엔 차라리 같이 가고 싶었다.

아빠와 함께하고 싶은 것이다.

"미안해, 연우야, 그럴 수는 없어."

선우는 고개를 좌우로 내저었다.

아들의 마음을 모르는 것은 아니였으니

아직 차원 통로는 검증되지 않은 공간이었다.

연약한 아기의 육신이 버텨낼 수 있을 지 가늠할 수 없는 곳인 것이다.

그런 곳에 어찌 사랑하는 자식과 함께할 수 있겠는가

말도 안되는 일이었다.

"가치..가아아아...가치..가아아아아..!!"

연우는 눈물을 보이며 떼를 쓰기 시작하였다.

원체 조숙한 아이라 웬만해선 떼를 쓰지않는 아이건만 이번만큼은 기를 쓰고 떼를 쓰기 시작하였다.

아마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번 이별이 얼마나 길어질 지 알 수 없다는 것을

"내게 달랠게, 그만 가봐."

북궁연은 손을 뻗어 연우를 들어올렸다.

가뜩이나 시간이 없는 선우를 곤란하게 할 수 없던 까닭이었다.

"부탁할게..."

선우는 울고 있는 연우의 이마에 가벼이 입을 맞췄다.

그리고 천천히 차원의 통로쪽으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하였다.

"흐아아아아앙!...가치..가아아...가치..가아아...흐아아아앙...아빠아아아.....아빠아아아...아바아아아!!!"

하지만 이내 걸음을 멈춰세울 수밖에 없었다.

아비를 애타게 찾는 연우의 울음소리가 발목을 움켜쥔 까닭이었다.

이대로는 마음이 쓰여 도저히 갈 수가 없었다.

어찌 저 사랑스러운 자식을 두고 그저 훌쩍 떠날 수 있다는 말인가

어찌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자식에게 이별의 상처를 준다는 말인가.

이내 진법 코앞에서 걸음을 멈춰선 선우가 몸을 돌렸다.

"연우를 잠깐만 건네주겠어? 아무래도 이대로는 못갈 것 같아."

선우는 손을 뻗은 뒤 입을 떼었다.

북궁연은 말없이 그런 선우를 향해 연우를 건네주었다.

"아바...아바....아바...빠아아아아.."

선우의 품에 안긴 연우는 넓다란 가슴팍에 그대로 머리를 파묻기 시작하였다.

절대 떨어지지 않겠다는듯이

"연우야....아빠 가야 돼...."

"가치...가치...가치.."

"같이 갈 수 없어...위험할지도 모르거든...엄청 아야할지도 몰라...연우는 아야하고 싶어?"

"아야 시져어어.."

"아야는 싫지? 그러니까 같이 갈 수 없어."

"........우우웅..."

연우는 고심 어린 표정을 지었다.

아야는 싫었다.

하지만 이별 또한 싫었다.

18개월 인생 최대 고비가 찾아온 것이다.

"마이..아야야?"

"엄청 엄청 아플 수 있어."

선우는 과장된 표정으로 겁을 주었다.

연우가 단념할 수 있도록

"히이이잉.."

연우는 울상을 지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형국이었기 때문이었다.

이별은 싫으면 고통이 찾아오고

고통이 싫으면 이별이 찾아오다니

그야말로 진퇴양난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아바..아야...해?"

곧이어 연우는 천천히 입을 떼었다.

그 아픈 곳에 사랑하는 아빠가 들어간다고 생각하니 문뜩 걱정이 치솟은 까닭이었다.

끄덕 끄덕 끄덕

"아빠는 괜찮아, 세상에서 가장 강한 사람이거든...세상 그 어떤 것도 아빠를 해칠 수 없어...그러니까 우리 연우는 걱정 안해도 돼..아빠는 아야 안해."

"아야...아네?"

"안해."

".........아바...아바...."

"응, 말해, 우리 아들."

"....빠이..빠이...와아아.."

포옥

연우는 선우의 가슴에 머리를 부비며 입을 떼었다.

"당연하지....우리 사랑하는 아들이 기다리는데.... 빨리 갔다와야지."

꼬옥

선우는 그런 연우를 부드러이 안아주었다.

연우가 안심할 수 있도록

"아바...사댱해에에에.."

쪼오옥

곧이어 연우가 선우의 볼에 입을 맞추었다.

"......아빠도 연우를 많이 많이 사랑해."

선우는 울컥 차오르는 마음을 애써 진정시키며 미소 지었다.

그리고 천천히 연우를 앞쪽으로 밀어내기 시작하였다.

어미인 북궁연에게 건네주기 위해

"뺘..뺘..뺘."

연우는 조막만한 손을 연신 흔들었다.

마치 작별인사를 하듯

'헤어지기...싫어어...같이 가고 싶어어..'

그 모습에 선우는 생각하였다.

이대로 헤어지기 싫다고

저 사랑하는 아들과 함께하고 싶다고

솨아아아아아아아아아

그 순간 시공려천외진법時空戾天外陳法이 그 의지에 반응하였다.

어마어마한 빛을 내뿜으며 선우와 연우를 감싸기 시작한 것이다.

"연우야아아!!!"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느낀 북궁연은 다급히 손을 뻗었다.

어떻게든 연우를 낚아채기 위해

휘익

하지만 그녀의 손은 허공을 가를 뿐이었다.

눈앞에 있던 모든 것들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기 때문이었다.

선우도

품에 안겨있던 연우도 모두 말이다.

마치 처음 존재치 않았던 것처럼

그 광경을 목도한 북궁연의 얼굴에는 절망의 빛이 어리기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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