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협지 안으로 들어와버렸다-1305화 (1,306/1,419)

품 속에서 작은 거울을 꺼내들었다.

덜컥

그리고 탁자 위에 가벼이 올려놓았다.

그러자 여인들의 시선이 거울에 쏠리기 시작하였다.

천외의 세계를 엿볼 수 있다고 전해지는 신비로운 거울

만화경의 등장에 호기심을 감추지 못한 것이다.

"그럼 시작한다?"

선우는 그런 여인들을 둘러보며 의중을 물었다.

끄덕 끄덕 끄덕 끄덕

너도나도 할 것 없이 연신 고개를 주억거렸다.

"좋아."

곧이어 선우는 만화경 위로 부드리어 손을 올렸다.

그다음 상서로운 선계의 기운, 선기仙氣를 흘리기 시작하였다.

선기가 만화경 전체를 완전히 감쌀 수 있도록

덜그럭 덜그럭 덜그럭

그러자 탁자 위 올려진 만화경이 쉴새없이 떨리기 시작하였다.

우우우우우우우웅

더불어 공명음을 내며 광채를 뿜어내었다.

방을 전부 감쌀 정도로 찬란한 광채를

그리고 어느 순간 이변이 일어났다.

탁자 위에 있던 만화경이 서서히 공중으로 떠오르기 시작한 것이다.

이내 방안에 있는 모든 이들의 시선의 공중에 떠오른 만화경을 따라갔다.

그리고 얌전히 기다렸다.

저 상서로운 광채를 뿜어내는 신비로운 거울에 천외가 비춰지기를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만화경에서 뿜어져나오던 상서로운 빛이 그대로 끊겨졌다.

파아앗

그와 동시에 거울 속에 무언가 비춰지기 시작하였다.

고대하고 고대하던 순간이 찾아온 것이다.

꿀꺽

모든 이가 침을 꿀꺽 삼키며 더욱더 눈을 부릅떴다.

어떠한 장면도 놓치지 않겠다는듯이

파아아아아앗

곧이어 거울 속에 초점이 완전히 잡혔다.

그리고 새로운 세계가 눈앞에 펼쳐졌다.

창공을 헤치며 날아가는 강철의 괴조

하늘에 닿을듯 치솟아있는 높다란 건물들

대로변을 가득 메운 발없는 마차의 무리

어두컴컴한 지하를 빛나는 두눈깔로 비추며 내달리는 강철 이무기

중원과는 궤를 달리하는 개성적인 복장들

개방적인 노출로 무장한 수 많은 여인들

시공려천외도법時空戾天外渡法에 묘사된 천외의 모습이 눈앞에 펼쳐지기 시작한 것이다.

"...거짓이..아니였어...정말....천외는 실존하는 거였어."

"...와아아...신기해...건물이 엄청 엄청 높아아.."

"이거 보세요. 마차에 발이 달려있지 않아요. 모양도 무척 세련되었어요."

"...이 이무기의 속도가 어마어마하도다.....신투조차 이보다 빠르진 못할 것이다."

"어머, 남사스러워라...어쩜.....말 만한 처녀가...저리 배꼽과 가슴골 저리 드러내는지..."

"그래도 옷은..되게 예뻐보여요."

"뭐가 세련되어보이기도 하구.."

"신기한 걸 먹고 있어, 빨간국물에 꼬불꼬불하고 노란 국수라니...뭘까 이게? 되게 맛있게 먹는데.."

"곳곳에 글자가 새겨져있는데..무슨 글자인지 모르겠어.....천외 세계의 언어인건가?"

여인들은 만화경에 비춰진 천외의 세계를 바라보며 눈을 반짝이기 시작하였다.

하나같이 호기심을 자극하는 것들 투성이었다.

절로 의문을 표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한국어."

그때 잠자코 천외 세계를 지켜보던 선우가 천천히 입을 떼었다.

그 말에 만화경에 집중하고 있던 여인들의 시선이 선우쪽으로 향하였다.

"저건 한국어야....내 고향의 언어지."

".....저건 라면이야.....면을 기름에 튀기고...얼큰한 맛이 일품이지."

"다양하고 개방적인 복장은 현대의 풍조야.....현대인들은 남의 시선을 의식하기보단 자신의 개성을 중시하거든."

"저 이무기는 지하철이라는 거야.....지하통로를 달리는 길다란 이동수단이지."

"저 발없는 마차들은 자동차라는 거야.....마력이 아닌 화력을 이용해 대로를 달리는 이동수단이지."

"저 높다란 건물들은 빌딩이야, 현대의 발달된 건축공법으로 만들어낸 결과물이지."

선우는 그녀들의 물음들을 차근차근 설명하기 시작하였다.

"....내 고향이 맞아...저곳이 바로 내가 나고자란 곳....대한민국이야."

선우는 눈시울을 붉히기 시작하였다.

자신이 나고 자랐던 근원이 되는 곳

돌아갈 수 있을 것이라는 기약조차 할 수 없던 곳

그저 마음 속으로만 간직하고있던 고향의 모습을 실제로 마주하니 더할나위없는 감동이 차오른 까닭이었다.

"앗! 선우 운다! 동네사람들 여기 봐봐! 선우가 울고 있어어!"

그 광경에 요랑이 요란스럽게 언성을 높였다.

"그러게요, 기쁜 날 울고 있네요, 우리 사랑하는 낭군님은 우는 것보다 웃는 게 더 어울리는데 말이죠."

"전 우는 모습도 매력적이라고 생각해요...가슴 속에 모성애가..자극되거든요..하아...꼬옥 안아주고 싶어요."

"어머니는 항상 안아주고 싶어하시잖아요.."

"그치만...너무 사랑스러운 걸?"

"울지마..선우야아....네가 울면..청하도 마음이 아퍼어어.."

"행복한 날이잖아요? 그러니까 같이 웃어요, 후배님."

"제가 먼저 웃을까요? 헤헤헤헤...히히히히...하하하하하!"

"백월아, 마치 주인님을 조롱하는 것처럼 들리는구나. 자중하려무나."

".....억울해요..놀리는 거 아닌데..."

"의도가 좋다고 결과마저 좋은 건 아닌 법."

"이럴 땐 그저 조용히 있는 게 약이란다...꿈쩍말고 조용히 있는 게 좋아."

"알겠어요..농질님. 입다물게요.우우웁!"

여인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한마디식 건네며 분위기를 환기시켰다.

어색해할 선우를 위한 저마다의 배려였다.

".....그래, 웃어야지...기쁜 날인데....우는 것보단..웃는 게 어울리지."

선우는 눈가를 닦아내며 미소를 지었다.

그녀들의 세심한 배려를 인지할 수 있던 까닭이었다.

과연 여복은 하나는 정말 넘치는듯 하였다.

이리도 사랑스럽고 배려심 깊은 여인들을 만나게 되었으니 말이다.

"저곳이 내 고향이야! 천외의 세계가 원래 있던 내 세계라고! 이제 돌아갈 수 있게 된 거야! 부모님도 친구들도 전부 만날 수 있게 거라고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곧이어 선우는 호쾌한 웃음을 터트리기 시작하였다.

무척이나 행복한 표정을 지은 채

그리고 그의 여인들도 따라 부드러이 미소 짓었다.

남편의 행복에 공감하면서 말이다.

이내 방안에는 훈훈한 분위기가 가득 메워지기 시작하였다.

.

.

.

.

.

"선우야, 그런데 천외는 언제 넘을 거야?"

한껏 격앙된 분위기가 진정되고 요랑은 의문 어린 표정을 지은 채 물었다.

"시공려천외도법時空戾天外渡法을 구성하는 재료들이 구해지는대로 곧바로 넘어갈 생각이야."

"오래 걸릴 것 같아?"

"길어봐야 한달정도일 거야, 화정이라는 특수한 재료가 필요했던 만화경과 달리 시공려천외도법時空戾天外渡法을 구성하는 재료들은 돈만 있으면 충분히 구할 수 있는 것들이거든."

화정이 필요했던 만화경과는 달리

시공려천외도법時空戾天外渡法의 재료들은 돈만 있다면 충분히 구할 수 있는 것들이었다.

돈은 넘치도록 많았던 선우에게 있어선 공수 난이도가 실로 낮을 수밖에 없었다.

"와아아...그럼 생각보다 금방 넘어갈 수 있겠네!"

"아마 그럴거야."

선우는 고개를 주억거리며 입을 떼었다.

"히히히....넘어가면 라면이라는 거 먹어봐야지...만화경 속에 비춰졌던 사람들이 엄청 맛있게 먹었거든."

"나도 나도 먹을래!"

청하가 얼른 손을 들어 동조하였다.

그녀 또한 라면이라는 걸 꽤나 인상 깊게 봤던 까닭이었다.

"저는 천외의 옷을 입어보고 싶어요. 워낙 예쁜게 많아서...."

"예설! 그런 불신한 옷을 입겠다니! 어미가 허락할 것 같더냐!"

"어머니도 가시게요!?"

"당연한 말을 되묻는구나, 천외가 선우님의 고향이 맞다면 필시 시부모님이 계실터, 손자손녀를 직접 안겨드려야하지 않겠니?"

"저도 시부모님께 찾아뵙고 인사를 드리고 싶네요, 너무나 소중한 낭군님을 낳아주신 분이잖아요?..깊은 감사를 표하고 싶어요...며느리로서 말이에요. "

"그런 이유라면 본녀 또한 가겠다....선영이를 안겨드리고 싶도다."

"바쁜 군주님께서 구태여 뭣하러 가려고, 그냥 중원에서 기다리고 있는 게 어때?"

북궁연은 히죽거리며 딴지를 걸었다.

"흥,  혼자 뒤쳐지는 것은 참을 수 없도다. 본녀는 가장 사랑받는 며느리가 될 것이다."

"네 고지식함을 알면 시부모님도 치를 떨껄?"

"오히려 그대의 야만적임을 놀라워하시며 거리를 둘 것이다."

"말 다했어?"

"다 못했도다. 더 해줄 수도 있다!"

"당가는 당분간 언니께 맡기도록 할게요."

"맡기다니? 무슨 소리를 하는 지 모르겠구나, 나도 따라갈 생각이란다."

"언니께선 참으로 꿈이 야무지시군요. 제가 그걸 허락할 리 만무하지 않나요?"

당서윤은 차가운 미소를 흘리며 입을 떼었다.

"..........가게 해다오....주인님의 부모님께 인사를 올려야하기도 하고.....천외의 세계에 가보고 싶단다."

"안돼요, 저와 언니가 동시에 빠진다면 여러모로 당가에는 혼란이 야기될테니까요."

"그럼 네가 빠지면 되지 않느냐?"

"전 시부모님을 뵈어야하거든요. 곧 태어날 아기의 태동도 들려드리구요.."

"...다른 방도를 생각해다오.."

"싫어요. 남으세요. 이는 가주로서의 명령이에요."

"나쁜 년!"

"언니만 할까요?"

모두가 들뜨기 시작하였다.

천외라는 미지의 세계

너무나 사랑하는 선우의 고향.

그곳으로 향한다는 생각을 하니 절로 기대와 흥분이 치솟은 것이다.

"할 말이 있어."

그 광경을 지켜보던 선우가 담담한 어조로 입을 떼었다.

그러자 각자 떠들고 있던 여인들의 시선이 선우에게 쏠리기 시작하였다.

"천외에는 혼자 넘어갈 생각이야."

말이 끝나기 무섭게 여인들의 눈빛이 휘둥그레지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항의를 하거나 불복의 뜻을 비치는 이는 없었다.

납득 가능한 이유를 설명해줄 때까지 그저 얌전히 기다릴 뿐

"아직 제대로된 검증이 되지 않은 진법이야. 제대로 된 시범조차 안해보고 너희들과 함께할 수는 없어....그것도 아이들까지 데리고 말이야.."

선우는 단호한 표정을 지었다.

만화경을 통해 현대의 모습을 확인하긴 하였지만 그렇다고 그게 시공려천외도법時空戾天外渡法을 완벽히 검증한 건 아니였다.

시공려천외도법時空戾天外渡法이 제대로 작동하리라는 보장이 없는 것이다.

실로 위험한 모험.

그런 모험에 어찌 사랑하는 부인들과 자식을 동참시킨다는 말인가

말도 안되는 일이었다.

"위험한 건 선우도 마찬가지잖아요?"

"만약 그대로 넘어갔다가 못 돌아오면 어떻게 해?"

"....나도 갈래! 나도 갈거야! 선우없는 중원은 살기 싫어!"

"아이들을 생각하라..나의 반쪽이여....그렇게 위험하다면.차라리 시도치 않는게 낫지 않겠는가?"

자연히 반발이 이어졌다.

사랑하는 정인이 홀로 위험을 감당하는 것을 두고볼 수 없던 까닭이었다.

"내 걱정은 안 해도 돼, 만약 진이 잘못된다고 해도 어떻게든 돌아올 수 있을테니까."

선우는 확신 어린 표정을 지은 채 입을 떼었다.

"그걸 어떻게 확신하는거죠?"

옥령은 의문 어린 표정을 지은 채 되물었다.

"차원에 관련된 전문가에게 자문을 구했거든."

"전문가요?"

"그런 사람이 있었어요?"

모두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런 전문가의 존재는 난생처음 들어보았기 때문이었다.

"사람은 아니야, 신이지."

"아..."

"설마.."

"어머니!"

청하가 큰소리로 외쳤다.

선우가 직접 신이라고 지칭할 만한 이는 그녀의 어머니, 해신외는 없다는 판단이 든 까닭이었다.

"맞아, 이곳에 오기 전 해신을 찾아갔었어, 그리고 이

시공려천외도법時空戾天外渡法의 검증을 부탁했지."

선우는 차분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그리고 검증 결과 진법에는 전혀 문제가 없다고 하더라."

"그럼 다같이 가도 상관없는 거 아니야?"

"맞아요, 해신께서 직접 검증한 거라면...분명 안전할 테니까."

여인들은 의아함을 내비쳤다.

진법 자체에 문제없다면 다같이 넘어가면 되는 게 아니던가

어찌 홀로 가겠다는 말을 한다는 말인가

"문제는 차원을 넘어설 때의 압력이야."

선우는 차분한 어조로 말을 잇기 시작하였다.

"압력이 어느정도로 상정될지 가늠이 안된다고 하더라구,....신의 경지에 다다른 내 육신은 버텨낼 수 있겠지만 인간의 육신으로는 버텨낼 수 있을 지 없을 지 모르겠다고 하더라구."

"......그래서.."

"먼저 넘어가보겠다고.."

선우의 말에 여인들은 그제서야 납득된다는듯한 표정을 지었다.

어째서 그가 홀로 넘어갈 생각을 하였는지 이해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차원을 넘어설 때의 압력을 먼저 확인해볼게...그리고 만약 인간의 육신이 견딜만한 압력이라면 후에 너희들을 함께 가자. 하늘 바깥의 세상으로."

".........."

"..........."

여인들은 노골적으로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어쩔 수 없는 이유였기에 차마 불복할 수는 없었지만 실망감을 도저히 감출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내 침울한 분위기가 형성되기 시작하였다.

"금방 돌아올거지?"

그때 요랑이 천천히 입을 떼었다.

"당연하지, 견딜만한 압력이라면 곧바로 재료를 공수해서 되돌아오도록 할게."

"안돌아오면 안돼."

"물론이지, 이곳이 이제 내 고향이나 다름없는 곳인걸?"

"...약속한 거야..엄청 예쁜 인간들이 유혹해도...고향이 너무 편해도..안돌아오면 안돼....절대 여기 잊으면 안돼..우리들을 잊으면 안돼...알았지?"

"어떻게 잊을 수 있겠어? 내 가장 소중한 가족들을.......꼭 약속할게 절대 잊지 않겠다고....금방 되돌아오겠다고."

선우는 굳게 약속하였다.

중원은 제2의 고향과도 같은 곳이었다.

소중한 이들이 살아숨쉬는 터전이기도 하였다.

이런 곳을 어찌 잊으려

어찌 모른 척 안돌아올 수 있으랴

"믿을게. 선우야."

요랑은 해맑은 미소를 지었다.

다른 여인들 또한 말없이 고개를 가벼이 주억거렸다.

모두 요랑과 마찬가지로 암묵적인 동의를 표한 것이다.

선우는 그 신뢰에 보답하듯 환하게 미소를 지었다.

*******************

쿵 쿵 쿵 쿵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귓가에 울리기 시작하였다.

'이 아침에 누구지?'

권순분 여사는 의아함을 느꼈다.

이른 아침부터 문을 두드릴 만한 이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누구세요~"

철컥

끼이이익

개폐 장치를 누르고 서서히 문을 열어젖히기 시작하였다.

"하마아아아~~"

그러자 귀여운 옹알이가 그녀를 반기기 시작하였다.

'아기!?'

가장 눈에 들어온 건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너무나 귀여운 아기였다.

누군가 아기를 안아든 채 집을 방문한 것이다.

'누구지?'

서서히 시선을 올렸다.

아기를 안고 있는 이의 정체를 파악하기 위해

그리고 시선을 완전히 들어올린 순간

권순분 여사는 그대로 굳어버릴 수밖에 없었다.

도저히 믿을 수 없는 광경이 눈앞에 펼쳐진 까닭이었다.

"...어머니.....안녕하세요.."

3년 전에 실종되었던 하나뿐인 아들이

문앞에 식은 치킨 한마리만 남겨둔 채 사라진 너무나 소중한 아들이

너무나 멀쩡한 모습으로 자신을 바라본 채 인사를 건넨 것이다.

'꿈..?...꿈인 건가?...내가 헛것을 보고 있는 건가!?'

너무 비현실적인지라

모든 게 꿈처럼 느껴졌다.

3년 전 실종되었던 아들이 아기를 안아든 채 방문을 하다니

말도 안되는 일이었다.

비비적 비비적 비비적

눈을 몇 번이고 비볐다.

눈앞에 드러난 것이 현실인지 확인하기 위해

"...그...오랜만이죠?"

그때 꿈같던 아들이 천천히 입을 떼었다.

"아들!!"

와락

권순분 여사는 그대로 달려들어 아들을 얼싸안았다.

꿈이 아니였다.

진짜로 되돌아온 것이다.

3년 전 행방불명되었던 아들이 말이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