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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협지 안으로 들어와버렸다-1272화 (1,273/1,419)

신기제갈神機諸葛

세인들에게 제갈세가에 관해 묻는다면 하나같이 저리 대답할 것이다.

촉한의 승상 제갈량의 후예라고 불리우는 제갈세가의 인재들은 하나하나가 무림에서 손꼽힐 정도 뛰어난 지략을 가지고 있음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제갈가의 인재들은 학문은 물론이고 금기서화琴棋書畵는 물론이고 의복성상醫卜星相, 공예잡학工藝雜學, 무천종식貿遷種植과 같은 기예들은 물론이고 기관이나 진법, 용인술에 각종 전술까지 모두 통달해있었다.

가히 신기神機

그 자체라 칭해도 누구도 부정 못하리라

그렇다면 여기서 의문이 하나 들 것이다.

무림 최고의 인재는 제갈가의 후손들일까라는 의문이 말이다.

하마 그 물음을 들은 대다수는 고개를 내저을 것이다.

제갈가의 기재들이 하나같이 대단한 건 인정하지만 천하기재라고 불리기에는 분명히 손색이 있었다.

감탄할 정도로 지략이 뛰어난 대신 하나같이 허약한 체질을 타고난다는 명확한 단점을 지닌 까닭이었다.

본디 체질이란 무공 수위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였다.

제 이름조차 쓸 줄 모르는 돌대가리라고 해도 몸으로 직접 체득하게 만들면 고수가 될 수 있었지만

타고나길 허약한 체질이라면 무공의 한계가 명확해지기 때문이었다.

무림은 엄연히 강자존이자 힘의 논리로 지배적인 곳

그런 무림에서 제갈세가의 인재가 천하기재로서 우뚝서는 건 요원하기 그지없는 일이었다.

지략과 더불어 무공까지 완벽한 인재가 제갈가에서 나타

다는 건 무척이나 힘든 일이였으니

세인들은 입이 닳도록 말하였다.

제갈가에서 천하기재가 나올 일따윈 결코 없을 것이라고

그리고 제갈가 또한 암묵적으로 이에 동의하고 있었다.

제갈가의 피를 이은 이상

허약한 체질을 결코 벗어날 수 없었으니

하지만 어디에든 예외는 있는 법.

이십여 년전 정마대전에선

천하기재에 가까운 제갈가의 기재가 모습을 드러내게 되었다.

보는 이로 하여금 절로 감탄을 나오게 만드는 이지적이면서 아름다운 외견

수많은 마교도를 단번에 몰살시킬 정도로 강맹한 무력

마교제일지 마뇌조차 혀를 내두를 정도로 뛰어난 지략까지 갖춘 제갈가 최고의 기재.

제갈주경이 첫 출도를 하게 된 것이다.

그녀는 첫 출도라는 게 무색할 정도로 압도적인 공훈을 세웠고 종국에는 차기 군사라는 과부한 칭호로 불리우게 되었다.

고작 약관을 살짝 넘긴 어리디 어린 나이에 말이다.

그녀를 직접 마주한 이들은 입을 모아 말하였다.

제갈주경이야말로 천하기재로서 그릇을 갖춘 여인이라고

정마대전 이후 눈부시게 성장한 그녀가 무림의 판도를 뒤바꾸게 될 것이라고

하지만 모두의 그런 기대와 달리 정마대전 이후 그녀는 이재원과 혼인하여 현역에서 완전히 물러나게 되었다.

제갈가의 기재로서의 삶이 아닌 여인으로서의 삶을 선택한 것이다.

무림의 호사가들은 그녀의 선택에 아쉬움을 금치 못하였다.

무력뿐 아니라 지략마저 뛰어난 천하기재의 완성이 꺾여버렸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순수한 사랑에 찬사를 보내기도 하였다.

만약 본격적인 활동을 하게 되었다면

그녀는 정파무림의 중추적인 위치에 자리를 잡았을 게 자명하였기 때문이었다.

모든 영광을 뒤로 한 채

한 남자의 여자로서 종속되기를 선택한 것이다

어찌 순수한 사랑이라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래서 그 순수한 사랑이 아직도 퇴색되지 않았다...이 말인가?"

"그렇습니다....그 아이는 아직도 죽은 제 낭군을 밤마다 그리워하고 있습니다..실로 안타까운 일이지요."

제갈찬은 안타까움 가득한 표정을 지은 채 대꾸를 하였다.

"이재원이 한 일을 전부 알고 있을텐데? 아니면 아직도 내가 누명을 씌운 거라고 생각하는 건가?"

제갈주경은 자신에게 가장 큰 반발을 보였던 여자였다.

자신의 낭군이 그럴 리 없다며

무언가 크나큰 오해가 있는 게 분명하다며

누명을 씌워진 게 분명하다면서 말이다.

"....그건 아닐 겁니다...똑똑한 아이니...이재원에 관해선 이미 수긍하였을 것입니다."

명확한 증거는 물론이고 증인의 자백까지 받아낸 상황이었다.

이리 명확한 정황을 부정할 수 있을 리 만무하였다.

"그럼 이재원이 저지른 짓을 전부 알고 있으면서도 사랑하고 있다는 거야?"

"........그렇습니다."

"미쳤군."

선우는 단호하게 말을 내뱉었다.

이재원.

그는 그간 영웅이라는 가면을 쓴 채간 셀수조차 없이 많은 여인들을 간살하였던 위선자였다.

그런 본색을 알고도 어찌 아직까지도 그를 사랑할 수 있다는 말인가

".....미쳤다해도...어쩔 수 없는 게 ...사랑의 감정이 아니겠습니까?...아마 그 아이도 알 것입니다...이재원이 도저히 씻을 수 없는 죄를 저질렀다는 것을.....죽음외에는 그 죄를 물을 방법이 도저히 없었다는 것을 말입니다."

명가의 후예로서

정의란게 무엇인지

의협이라는 게 무엇인지

누구보다 잘알고 있을 그녀였다.

그러니 이재원의 죽음에는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그의 죄악은 죽음조차 관대하게 느껴질 정도로 끔찍하고 참혹하였으니

"하지만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가슴 속에 화인처럼 남아있는 그 강렬한 감정이 쉬이 가라앉혀지지 않는 거겠지요."

"어리석어."

이러니 저러니 해도

이미 떠나간 사람이었다.

끙끙거리며 붙들고 있어봤자

제 감정만 깎아먹을 뿐인 것이다.

"어리석지요..참으로 어리석지요...그러니 사랑이라는 게 실로 무서운 것입니다...그 총명한 아이를 이리도 어리석게 만들어버리니 말입니다."

제갈찬은 씁쓸한듯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아마 그녀 또한 고통스러울 것이다.

이성적으로 생각한다면 너무나 명확한 해답을

사랑이라는 감정이 가로 막아 혼란을 야기하니

그렇기에 안타까웠다.

사랑이라는 감정에 매몰되어 고통받는 여동생이

곧이어 제갈찬이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머리를 처박기 시작하였다.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말이다.

".......열병과도 같은 사랑에 빠져있는 그 아이에게...그 보석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는 없는 소중한 물건일 것입니다...부디.......만약 강제하려든다면..그 아이는 자결을 하려들테지요...."

"전하....만약. 전하께서..원하신다면..평생을 바쳐..그와 비슷한 보석을...찾아내겠습니다...혹은.제갈가의 전재산을 끌어다써서라도...구입토록 하겠습니다.....그러니..부디..부디...그 아이의 남아있는 마지막 행복을..빼앗지..말아주시옵소서...."

제갈찬은 머리를 땅에 처박은 채 애원을 하였다.

의천맹의 총군사라는 직위도

신기제갈의 수장이라는 위치도

남자로서 태어난 자부심과 자존심따위는 전부 내버린 채로

여동생을 너무나 사랑하는 오라비로서

그에게 부탁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곤란한데.'

그 진심을 알기에

선우는 선뜻 곤란함을 표하지 못하였다.

자신에게는 진마정이 꼭 필요하였다.

현대의 실존여부를 확인하기 위해서

현대로 귀환할 방도를 찾기 위해서

하지만 그렇다고 제갈찬의 부탁을 선뜻 거절하기가 어려웠다.

그가 어떤 마음으로 무릎을 꿇고 머리를 처박고 있을 지 알 수 있었기에

여동생을 사랑하는 그의 진심을 너무나 잘알 수 있었기에

"제갈찬."

이내 고민하던 선우가 입을 떼었다.

"네 부탁은 들어줄 수 없다. 내겐 진마정이 필요하니."

그리고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아아.."

제갈찬의 표정이 절망으로 물들기 시작하였다.

그는 무림의 절대자였다.

하고자한다면 못이룰 것 없는 절대적인 존재.

그가 필요하다면

진마정은 그의 손에 들어가게 될 것이다.

소중한 동생이 상처를 입건 자결을 하건 말이다.

그러니 절망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가 자신의 부탁을 거절한 이상

남겨진 결말은 잔인한 비극일 수밖에 없을테니

"하지만 그렇다하여 여동생을 위해 무거운 무릎을 꿇은 네 진심을 퇴색시키고 싶지 않아...더불어 제갈주경이라는 여자가 사랑이라는 열병에 빠져 스스로 망치는 모습 또한 보고싶지 않아."

선우는 차분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한 남자의 진심을 무시하고 싶지 않았다.

한 여자의 순정을 짓밟고 싶지 않았다.

"그러니 모두가 행복할 수 있는 결말을 선택토록 하겠다."

"............모두가..행복할 수 있는..결말..말입니까?"

제갈찬은 멍청한 표정을 지은 채 되물었다.

그 똑똑한 머리로도 도저히 예상할 수 없던 까닭이었다.

지금 상황에서도 모두가 행복할 수 있는 결말이라니

그런 것따위가 존재할 수 있을 리 만무하지 않은가

"본디 아픈 사랑은 새로운 사랑으로 잊는 법."

선우는 올곧은 눈빛으로 제갈찬을 응시하며 말을 이었다.

"제갈주경이 오직 나만을 사랑토록 하겠다."

그리고 선언하듯 말을 내뱉었다.

"....에에에?"

그 말을 들은 제갈찬의 눈빛이 화등잔만하게 커지기 시작하였다.

오직 그만을 사랑토록 하겠다니

저게 대체 무슨 소리란 말인가?

"...경아를.....유혹하겠다는..말씀이십니까?"

"뭐, 그렇다고 할 수 있지."

"..........전하..농이 지나치십니다."

질 나쁜 농담이었다.

사랑에 시달린 채 고통을 받고 있는 아이를 꼬시겠다니?

만약 그가 아닌 다른 이가 저런 말을 했더라면

다짜고짜 검을 뽑아들어 목을 꿰뚫어버렸으리

"농이 아니다. 난 진심이다."

선우는 한치의 흔들림없는 눈빛을 반짝이며 입을 떼었다.

그 눈빛 속에서 거짓따윈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말도 안됩니다!"

그 진심을 깨달은  제갈찬은 언성을 높였다.

말도 안되는 소리였다.

제갈주경 입장에서 선우는 너무나 사랑하는 낭군을 죽인 원수나 다름이 없었다.

그런데 어찌  그런 그녀를 유혹할 수 있다는 말인가

"말이 될지 안될지는 해보기 전까지는 모르는게 아니겠어?"

도전조차 하지 않는다면

가능성은 완벽히 0이였다.

도저해보지 않고는 무엇하나 이룰 수 있는 게 아닌 것이다.

"......혹여...강제로...겁박을 생각하고..계신건..?"

제갈찬은 짐짓 불안한듯한 표정을 지은 채 물었다.

혹여 겁박하는 건 아닐까라는 불안감이 든 까닭이었다.

"내가 그런 무도한 놈으로 보여?"

와락

선우는 눈살을 찌푸린 채 되물었다.

자신이 무뢰배도 아닌 것을

어찌 그런 무례한 짓을 저지른다는 말인가

"......그건...아니지만...아무리 생각해도..어떻게...전하께서..그 아이를.."

제갈찬은 당혹스러운듯한 표정을 지은 채 되물었다.

"그건 내가 알아서 할 일이니..넌 그냥 수락하고 협조만 하면 돼."

"수락..할 수 없습니다...혹시라도..아이가..상처를 받게된다면.."

"강제로 빼앗기고 자결케하는 것보단 이쪽이 좀더 나은 선택지일텐데?"

"....그렇긴 하지만.."

제갈찬은 선뜻 수락할 수 없었다.

그의 시도가 오히려 역효과를 만들어버릴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 까닭이었다.

"그 총명한 여자를 언제까지 멍청하게 살도록 내버려두려고? 평생토록 이재원만 그리고 살게 냅두려고?"

산 사람이 죽은 사람을 그리며 사는 것만큼 멍청한 일도 없었다.

사무친 그리움은 극심한 우울을 낳게 할 것이고

극심한 우울은 결국 산자를 죽음에 이르게 만들테니.

".............."

"기다림은 감정을 곪게만들 뿐이다, 정말로 사랑한다면 한탄하며 슬퍼하기보단 결단을 내리란 말이다!"

기다림은 능사가 아니였다.

아닌 건 머리채를 쥐여뜯어서라도

말려야한다.

그게 가족이고

오빠의 존재일 것이다.

"......모르겠습니다...이게 과연..옳은 선택인지..이게..과연..최선일지.."

확신할 수 없었다.

과연 선우의 제안을 수락하는 게 옳은 선택인건지

이게 정녕 최선의 선택인건지

혹시라도 잘못된 선택을 하는 게 아닌지

"옳은 선택도, 최선도 아닐 수 있다...하지만 한가지..더 나쁜 선택은 아니라것만큼은 내가 보증하지."

선우는 확고한 눈빛으로 그를 마주하며 말을 이었다.

"............"

그 말에 제갈찬은 입을 다문 채 침묵을 하였다.

고심에 빠져들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제갈찬은 다시금 머리를 처박았다.

"......부탁드리겠습니다....전하..........부디..여동생을...제 여동생을..구원해주소서..."

결국 수락키로 결정한 것이다.

"좋아, 내 최선을 다하지."

선우는 고개를 주억거리며 답하였다.

그리고 다짐하였다.

말그대로 최선을 다해 꼬시겠다고

머릿속에서 이재원따위는 완전히 잊혀지게 만들어주겠다고

'어디 한번 해보자구.'

곧이어 선우의 눈빛이 열망으로 이글거리기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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