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협지 안으로 들어와버렸다-1270화 (1,271/1,419)

"소개해주고 싶은 사람이 있어."

선우는 천천히 시선을 돌렸다.

그러자 요랑과 운설의 시선 또한 그대로 따르기 시작하였다.

그 순간 그녀들은 마주할 수 있었다.

상반된 매력을 품고 있는 두명의 여인을

"...독고령이라고 합니다......과거 신교의 성녀였습니다."

위험한 분위기를 풍기는 고혹적인 여인, 독고령은 꽤나 공손하게 스스로를 소개하였다.

눈앞에 두 여인이 장선우의 부인이라는 걸 미리 전해들은 탓에 말본새가 절로 조신해진 것이다.

"난....청하야! 반가워어어~?"

푸른 바다를 연상시키는 진청색 머리결의 아리따운 소녀.

해신의 버려진 자식, 청하는 활짝 웃으며 양손을 이리저리 흔들기 시작하였다.

그녀는 은근한 기대를 품고 있었다.

새로운 친구를 갖게 될지도 모른다는 꿈같은 기대를

"........네에...안녕하세요...그런데 청하 소저께선 누구신가요?"

"....난 요랑이야!...근데 넌 누구야?"

한편 요랑과 운설는 당혹스러움을 느꼈다.

별안간 모습을 드러낸 청하의 존재에 의문이 든 까닭이었다.

"나 청하! 선우가 이름 지어줬어! 그리고 친구 모집 중이야!"

청하는 고개를 주억거리며 대꾸를 하였다.

그리고 그 대답은 그녀들을 더욱더 의문에 빠지게 만들었다.

선우가 이름을 지어줬다니

어버이도 아니거늘

어찌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다는 말인가

이내 두 여인은 시선을 선우쪽으로 돌렸다.

설명을 요구하는듯한 눈빛을 한 채로

"간단히 설명하자면 그녀는 반신이야."

풀어놓고보면 이래저래 설명할 게 많았다.

일단 축약해서 설명하는 게 이해가 빠를 것이다.

"신의 권능을 이어받은 존재지."

".....신의 권능을 이어받은..존재?"

"....권속과 같은 건가요?"

운설은 의문 어린 표정을 지은 채 되물었다.

"아아, 비슷한 개념이야."

선우는 고개를 주억거리며 입을 떼었다.

신의 분신 또한 결국 신에게 종속된 존재인 법이었다.

그러니 권속과 크게 다르지 않다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런데 어째서..후배님과..?"

운설은 이해할 수 없다는듯한 표정을 지은 채 되물었다.

"친구하기로 했거든."

그녀에게 약조를 하였다.

친구가 되어주겠다고

절대 외롭게 하지 않겠다고

많은 친구들을 소개시켜주겠다고

"....설명이 너무 부족하다고 생각지 않나요?"

"맞아....뭔가 생략이 너무 많이 됐잖아! 그렇게 말하면 못알아듣는다구!"

운설과 요랑은 불만 어린 표정을 지은 채 입을 떼었다.

"...자세한 이야기는 내려가면서 해줄게.....사흘이나 굶어서 그런지 배가 많이 고프거든."

선우는 주린 배를 살며시 어루만지며 말을 이었다.

비린 음식이 맞지 않아

사흘간 꼼짝없이 굶고 지냈던 그였다.

속이 허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요랑과 운설은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사흘이나 굶었다는 사람을 앞에 두고 추궁을 이어갈 순 없었던 탓이었다.

*********

"청하, 많이 힘들었지?"

꼬옥

선우의 이야기를 들은 요랑은 여린 청하의 몸을 꼬옥 안아주었다.

오랫동안 방치된 채 외로이 살아왔던 그녀의 삶이 너무나 안타깝고 애처로웠기 때문이었다.

더불어 선우로부터 이름을 받고 새로운 삶을 살게 되었다는 것에 대한 동질감이 느껴지기도 하였다.

"....괜찮아! 이제 혼자가 아닌 걸! 선우도 있고! 고령이도 있고!...또 또 친구가 많이 생길테니까!"

청하는 고개를 내저으며 말을 이었다.

외롭고 슬프고 힘들었지만

이제는 괜찮았다.

더는 홀로 지낼 필요 없으니

더는 외로이 시간을 보내지 않을테니

선우가 친구가 되어줄테니

더욱더 많은 친구들이 생길테니

"나도 청하랑 친구가 되고 싶어!"

"정말? 정말!?"

청하는 눈을 동그랗게 뜬 채 되물었다.

"정말이고 말고! 우리 친하게 지내자! 같이 당과도 먹고 전병도 먹고! 용용이도 태워줄게!"

"좋아! 너무 좋아!...헤헤헤헤헤"

청하는 행복한 미소를 지은 채 입을 떼었다.

당과가 무엇인지

전병이 무엇인지

용용이가 무엇인지는 알지 못했지만

그저 행복하였다.

새로운 친구와 함께한다는 사실만으로도 말이다.

그렇게 요랑과 청하는 진한 포옹을 하며 훈훈한 분위기를 자아내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선우와 운설은 그런 두 여인을 흐뭇하게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마음마저 절로 훈훈해졌기 때문이었다.

'........독고가 성씨인데.'

한편은 그 광경을 지켜보던 독고령은 입술을 살짝 삐죽거렸다.

고령이는 대체 뉘집 자식을 칭하는 명칭이란 말인가

하지만 감히 불만을 표할 수는 없었다.

그녀는 감히 쳐다보는 것조차 송구스러운 위대한 존재였으니

막말로 당장 이름을 갈아버리라해도 잠자코 수긍할 수밖에 없으리라

"그나저나 대단하긴 하네요."

그때 잠자코 있던 운설이 독고령을 바라보며 입을 떼었다.

"마교에서 성녀로서 추앙받던 분이 차원을 옮겨서도 신녀로 추앙받는 걸 보면 말이에요."

그녀는 독고령의 지극히 권력지향적인 처세술에 순순하게 감탄을 하였다.

설마하니 다른 차원에서조차 추앙을 받으며 살줄이야.

절로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기술직의 장점이죠, 어딜 가든 밥 굶고 살 걱정은 없거든요.

선우는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은 채 입을 떼었다.

"저도 굶지 않으려면 뭐든 익히든가 해야겠어요. 독고 소저에게 배울까요?"

"선배님은 그릇이 안됩니다, 타고나길 뻔뻔하고 악독하고 사악한 년만 가능한 기술이거든."

"확실히 그런 조건이면 많이 힘들 것 같네요...전 타고나길 겸손하고 근면성실하며 착하디 착한 여자니까요."

"......보통 자기 입으로 그렇게 말하던가요?"

"요즘은 자기주장시대잖아요?"

"이미 겸손은 물건너간 것 같습니다."

"그럼 근면성실에 착한 여자만 하도록 할게요."

선우와 운설은 실없는 대화를 하며 낄낄거리기 시작하였다.

'.........적어도 없는데서 욕해...'

물론 그 실없는 대화의 주체인 독고령은 웃을 수 없었다.

대놓고 앞담화를 하는 걸 어찌 동조해줄 수 있겠는가

으드득

그저 이를 갈며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속을 가라앉힐 뿐이었다.

"그래서 후배님은 어떻게 그곳에서 빠져나온건가요? 조우하게 된 해신에게 허락을 받은 건가요?"

이내 운설은 궁금하다는듯 되물었다.

다른 차원으로 이동한 것과 청하와 독고령이 얽힌 이야기를 전해듣긴 하였지만 정작 탈출에 관해선 전해듣지 못한 까닭이었다.

"아니, 허락받지 못했어, 한번 손아귀에 들어온건 절대 놓아주지 않겠다고 하더라구."

선우는 고개를 좌우로 내저으며 말을 이었다.

해신은 탐욕의 화신과 같은 존재였다.

어떤 존재도 모형정원에서 빠져나가는 걸 용납치 못하였다.

"그럼 어떻게?"

운설은 의아한듯 되물었다.

"후드려 팼어."

".....네에?"

운설은 멍청한 표정을 지은 채 되물었다.

순간 자신이 잘못들은게 아니라는 착각이 든 까닭이었다.

"좋게 말로하려고 했는데....영 협조해주지 않더라고."

"....그래서..창조신을...?"

"아아, 반죽여놓으니까 그제서야 말을 듣더라고."

물론 조교라는 비사가 남아있긴 하였지만

구태여 언급하진 않았다.

일하러 가서 여자나 꼬셨다는 오명을 쓰고 싶진 않았기에

".......그게..가능일인가요?"

운설은 믿기지 않는다는듯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창조신이라는 게 무엇이란 말인가

신선의 위계따윈 아득히 초월하는

신들 중에서도 최상위 위계를 가진 존재가 아니던가

그런 존재를 이제 막 신격을 얻게된 선우가 후두려팼다니?

반쯤 죽여 말을 듣게 만들다니?

그런 말도 안되는 일을 쉽사리 믿을 수 있을 리 만무하였다.

"되더라고."

선우 또한 이게 얼마나 말도 안되는 일인지

알고 있었다.

어찌보면 이제 막 걸음마를 뗀 아이가 성인 남자를 일방적으로 쥐어팬 것과 다를 바 없을테니 말이다.

하지만 그렇다고해서 부정할 수는 없었다.

이 말도 안되는 일은

엄연히 실제로 일어난 현실이었으니

".........후배님은....대체 어떤 존재인건가요?...신선인건가요?...아니면 신인건가요?..아니면 또 다른 무언가 인가요?....이제는 도저히 모르겠어요....."

그 한계가 어디까지인지

어디까지 강해질 수 있는지

대체 어떤 존재인건지 알 수 없었다.

그는 이미 인지를 넘어선 규격외의 존재가 되어버렸으니

"나도 날 모르겠어."

선우는 쓴웃음을 지으며 동의하였다.

인간을 초월한 것도 모잘라

이제는 창조신까지 때려잡는 경지에 다다르게 되었다.

그 한계의 끝은 어디인지

스스로 어떤 존재인지

그 자신 또한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인간인걸까

신선인 걸까

창조신이 되어버린 걸까

아니면 그 무엇도 아닌 규격외의 존재인걸까

"선우는 선우인거야!"

그때 요랑을 끌어안은 채 장난치던 청하가 언성을 높였다.

장난치면서도 귀를 쫑긋 세우고 들은건 전부 들은 모양이었다.

"청하가 맞아! 우리는 선우가 선우라는 것만 알면 돼...너무 복잡하게 생각하지마, 운설아."

요랑 또한 동의하듯 말을 덧붙였다.

창조신 위에 있고

"..........하긴 그게 제일 중요하긴 하죠."

그 해맑은 말에 운설은 살포시 웃으며 동의를 표하였다.

따지고보면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 없는 문제였다.

그가 인간이건 신선이건  창조신이건

그저 사랑하는 연인이자

소중한 정인인 장선우라는 남자 자체로 받아들이면 될테니 말이다.

"너무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을 게요, 제게도 후배님은 후배님이에요."

운설은 예쁜 미소를 지은 채 입을 떼었다.

"그렇게 생각해줘서 고마워."

선우는 마주보며 미소 지었다.

혹여라도 거리감을 느끼게 되는 건 아닐까하고 내심 걱정했건만 노파심이었던듯 하였다.

이렇게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주는 걸 보면 말이다.

이내 다시금 분위기가 절로 훈훈해지기 시작하였다.

'아오, 오글거려...우우욱.....'

한편 그 훈훈한 분위기에 적응 못한 독고령은 속으로 헛구역질을 하였다.

애정 넘치는 상황에 적응하기엔 그녀는 너무 메말랐던 까닭이었다.

*************

서책 하나가 바닥에 탁자 위에 놓여졌다.

"....이건?"

독고령은 의아한듯한 표정을 지은 채 입을 떼었다.

다짜고짜 불러서 서책을 던져주니

당혹스러움을 느낀 것이다.

"그게 바로 내가 널 데리러 간 이유야."

선우는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그리고 그 말을 들은 독고령은 서책을 향해 살며시 눈을 흘겼다.

[시공려천외도법時空戾天外渡法]

"....시공간을 비틀어..하늘 밖으로 나가는 방법?"

독고령의 표정에 당혹스러움이 서리기 시작하였다.

서책에는 꽤나 황당한 제목이 쓰여져있던 까닭이었다.

시공을 비틀어 하늘 밖으로 나간다니?

요즘 사이비들도 저 따위로 허황되게 교리를 짜진 않을 것이다.

"읽어봐."

선우는 당황스러워하는 그녀의 반응에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저 읽으라고 명할 뿐.

".......네에."

독고령은 순순히 명을 받들었다.

원래라면 이런 허황된 서책따윈 불쏘시개로 써버렸을테지만

창조신마저 후두려팬 괴물의 명이었다.

온전히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다.

'대충 훑어야지.'

촤르르르

그녀는 빠르게 서책을 넘기며 속독하기 시작하였다.

글자 하나하나를 정성들여 읽을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 까닭이었다.

펄럭 펄럭 펄럭

하지만 이내 그녀는 현저히 느려진 속도로 서책을 넘기기 시작하였다.

읽으면 읽을 수록 묘하게 설득되는 주장과 근거에 절로 빠져들기 시작한 까닭이었다.

그렇게 얼마나 읽었을까

곧이어 그녀가 책을 완전히 덮어버렸다.

".....어째서...선우님께서 차원까지 넘나들며 저를 데리러오셨는지...이해가 되네요."

독고령은 차분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선우님께선 천외의 존재를 확인하기 위해 만화경萬華鏡을 만들 심산인거죠?"

그녀의 눈빛이 별빛처럼 빛나기 시작하였다.

영악할 정도로 똑똑한 그녀였기에 파악할 수 있었다.

선우가 위험까지 감수하며 자신을 데리러 온 이유에 대해서

"호오..거기까지 파악한건가?"

선우는 놀랍다는듯 입을 떼었다.

설마 서책 한권으로 의도까지 파악할 줄은 예상치 못한 까닭이었다.

"서책 속에서 저와 연관될 만한 게 만화경밖에 없더군요."

"만화경을 만드는 재료를 알고 있던가?"

"애초에 지금껏 중원에 등장한 만화경들은 모두 신교에서 출하된 것들이예요, 그걸 성녀인 제가 모를 리가 없죠."

"그런 비사가 있는지 몰랐군."

"신교 내에서도 극비로 취급된 정보예요, 모르는 게 당연해요."

독고령은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선우님께서 원하는 건 화정이죠? 오직 성녀만이 타오르게 할 수 있다는 성화聖火의 결정."

"맞아, 내가 원하는 건 화정이다."

선우는 흡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요점을 속속히 파악하고 있으니

진행이 흡족스러울 정도로 시원스러웠다.

과연 당진설이 경계할 만큼 영악한 년이 맞는듯하였다.

"화정으로 만화경을 만들어 천외의 실존 여부를 확인할 생각이다. 그러니까 협력해라, 참고로 거부권따윈 없다."

선우는 날카로운 눈빛으로 그녀를 노려보며 으름장을 놓았다.

거절따윈 허용치 않겠다는듯이 말이다.

"애초에 거부할 생각은 없었어요, 제 생사여탈권이 누구에게 있는지 너무나 잘알고 있으니까요."

"좋은 태도다, 오래 살겠어."

선우는 만족스럽다는듯 입을 떼었다.

"성화를 피우기 위해선 몇 가지 재료가 필요해요. 벼락 맞은 대추나무 한 그루, 백년이상 묵은 화리의 내단, 화산지대에서만 자란다는 자양열초 스무근,  대략 백근정도 되는 곤철 한덩이......그리고.....신교의 신물인 진마정眞魔精이 필요해요."

"진마정眞魔精?

선우는 의아한듯 되물었다.

"네에, 성화를 피우기 위한 것들 중 가장 중요한 재료예요..다른 것들은 비스무리한 걸로 대체할 수 있지만 진마정만큼은 결코 대체할 수 없거든요."

진마정은

그 어떤 걸로도 대체할 수 없는

성화의 핵심 재료였다.

무조건적으로 구해야하는 것이다.

"뒤져서 찾으려면.........한 세월 걸리겠군."

선우는 난감하다는듯한 표정을 지었다.

주춧돌 하나 남기지 않고 모조리 박살나버린 마교였다.

그곳에서 신물을 찾아야한다니

어찌 난감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구태여 마교의 터전을 뒤적거리실 필요없어요. 어디있는지 제가 알고 있으니까요"

독고령은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그래? 잘됐네, 또 지연되는 줄 알고 식겁했는데 말이야."

선우는 반색을 하였다.

어디 있는지 알고 있다면 구태여 고생할 필요 없었다.

정당한 값을 치르고 당당히 요구하면 될 일일테니

선우는 입가에 진한 미소가 지었다.

일일 술술 풀리는 게 꽤나 흡족한 까닭이었다.

"그래서 어디에 있는데?"

"형주"

독고령은 담담한 표정을 지은 채 입을 떼었다.

"그곳에 진마정을 갖고 있는 여자가 살고 있답니다."

"그 여자가 누구지?"

"아마 선우님께서도 잘아시는 분일거예요. 이재원을 직접 처죽인 이상 연관이 없을래야 없을 수 없는 분일테니까요."

"......이재원과 연관된 형주에 사는 여자?"

선우는 아리송한 표정을 지은 채 머리를 굴리기 시작하였다.

"아.."

그리고 이내 떠올릴 수 있었다.

독고령이 말한 조건에 완벽히 부합하는 한명의 여인을

'.....어째서?'

이내 선우는 믿기지 않는다는듯한 표정을 지었다.

어찌 그 여자가 마교의 신물을 가지고 있을 수 있다는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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