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협지 안으로 들어와버렸다-1269화 (1,270/1,419)

스윽 스으윽 스으으윽

요랑은 고운 손가락을 뻗어 땅바닥을 이리저리 휘저으며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였다.

그저 마음 가는대로

그저 손이 가는대로

그리고 또 그리며 창작에 열중하였다.

나름 진지한 표정을 지은 채로

그렇게 얼마나 창작에 몰두하였을까

"운설아! 이거 봐봐! 완성했어!"

요랑은 호들갑 떨며 운설을 향해 파닥거리며 손짓하기 시작하였다.

드디어 전설적인 화백 장승요도 울고 갈 불후의 명작이 완성된 것이다.

"드디어 완성인가요?"

저벅 저벅

멀지 않은 곳에서 명상에 빠져있던 운설이 천천히 걸음을 옮겨왔다.

그리고 땅바닥에 그려진 요랑의 작품을 말없이 감상하기 시작하였다.

"어때?"

요랑은 기대 어린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입을 떼었다.

누가봐도 감탄을 바라는듯한 모습이었다.

"요랑님...대단해요...."

그리고 그 기대에 부응하듯 운설은 감탄 어린 어투로 입을 떼었다.

땅바닥이라는 한계에도 불구하고 꽤나 멋진 작품이 눈앞에 드러난 까닭이었다.

"대단해? 정말 대단해?"

"네에, 엄청 대단해요. 그림 하나하나가 생동감이 넘쳐흘러서 그런지 몰라도 실제 마주한 것 같은 착각마저 느껴질 정도예요."

"헤헤헤헤헤."

그녀의 칭찬에 요랑의 표정이 한껏 풀어지기 시작하였다.

"특히 여기 지옥에서 갓 탈출한 마귀 부분은 반선인 저조차 흠칫함을 느낄 정도예요, 그림으로 이런 묘사가 가능하다니......"

운설은 진심으로 감탄하였다.

고작 땅바닥에 그린 그림으로 소름을 돋게 만들다니

가히 악마적인 재능이라 칭해도 부족함이 없으리라

"......그거 마귀 아닌데.."

".......네에?"

"마귀 아니고..선우야.."

요랑은 잔뜩 시무룩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을 덧붙였다.

운설이 지목한 건 마귀가 아니였다.

너무나 사랑하는 정인

선우를 묘사한 것이다.

'어딜 봐도 마귀인데!?'

운설은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어딜봐도 마귀이거늘

대체 어디가 선우란 말인가

"아아아아, 제가 잘못 가리켰네요, 그건 후배님이 맞죠....저렇게 늠름한 모습이 마귀일 리 없죠...후후후....제가 지목한 건 그 옆에 있는 괴물이랍니다."

커다란 아가리를 쩌억 벌리고 있는 한층 더 끔찍스러운 괴물.

저건 누가봐도 마귀였다,

"그건......옥령이야."

"....그럼 이건.."

이번엔 반대쪽에 있는 흉측스러운 젖을 지니고 있는 괴물을 가리켰다.

누가봐도 지옥에서 올라온 마귀의 모양새였다.

".....그건...소양이."

"............"

".....가족들 그린 거야."

운설은 입을 닫을 수밖에 없었다.

이미 수습하기엔 너무 멀리왔다는 생각이 든 까닭이었다.

그렇게 얼마나 침묵이 이어졌을까

"저....죄송해요...요랑님."

이내 운설이 민망한듯 얼굴을 붉히며 사과를 하였다.

괜스레 미안한 마음이 느껴진 까닭이었다.

"...거기서 사과하는 게 더 비참하거든?"

요랑은 도끼눈을 뜬 채 대꾸하였다.

사과를 하니 괜스레 부아가 치밀어오른 까닭이었다.

"다시 그릴 거야! 이번에는 엄청 잘그릴 거니까! 각오하는 게 좋아!"

"다시 그리는 것도 좋긴한데...오늘은 이만 하산하는 게 어떤가요?"

"하산? 벌써?"

"벌써라뇨, 저렇게 해가 뉘엿뉘엿한데."

운설은 지평선 너머로 차츰 넘어가는 해를 가리키며 입을 떼었다.

"....그러네."

요랑은 수긍한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확실히 조금 있으며 해가 완전히 떨어질 것만 같았다.

".....결국 오늘도 선우가...안왔네."

요랑은 실망스럽다는듯한 표정을 지은 채 입을 떼었다.

선우가 단장애 밑으로 사라진 지

벌써 사흘이 지났건만

금방 온다던 말이 무색하게 영 돌아올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절로 실망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저기 있잖아...혹시..혹시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닐까?."

물론 이성적으로는 그럴 리 없다는 걸 너무나 잘알고 있었다.

초월하여 신격마저 갖게된 선우를 해할 수 있는 이가 존재할 리 만무하였으니

하지만 좀처럼 이성적으로 생각할 수 없었다.

선우는 그녀에게 너무나 소중한 존재였으니

염려의 감정이 앞설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건 아닐거예요."

운설은 고개를 좌우로 내저으며 단박에 부정을 하였다.

결코 그럴 리 없다는듯이

"어떻게 확신해? 혹시 모르는 거잖아?"

요랑은 이해할 수 없다는듯 그녀에게 되물었다.

대체 무슨 자신으로 저리 단호하게 부정할 수 있다는 말인가

일말의 가능성조차 용납할 수 없다는듯이

"만약 후배님이 위기에 처했다면 제가 곧바로 알 수 있었을 거예요. 저와 후배님은 영혼이 이어진 사이니까요."

"영혼이 이어졌다고?"

요랑은 모르겠다는듯 되물었다.

영혼이 이어졌다니

저게 대체 무슨 소리란 말인가

"물론 형태만 그런 거고 제대로 말하자면 제가  후배님께 권속으로서 종속되었다는 표현이 맞을 거예요."

"권속?"

"초월에 다다른 이는 스스로의 신격을 부여하여 현계에 뜻을 전하는 사도를 임명할 수 있거든요...그걸 권속이라고 불러요."

"...그래서...영혼이 이어졌다고 한거구나."

요랑은 이해했다는듯한 표정을 지었다.

"네에, 영혼이 이어진 상태가 아니라면 신격을 부여할 수 없을테니까요."

운설은 고개를 주억거리며 입을 떼었다.

"그럼 어쩌다 권속이 된거야?"

"제가 후배님께 부탁했어요. 권속으로 삼아달라구요."

"어째서?!"

"소중한 이들에 대한 기억과 감정을 잃고 싶지 않았거든요."

"기억과..감정/"

"요랑님도 아시다시피 전 지금 신선경에 한발자국 걸쳐있는 상태에요....불현듯 찾아온 깨달음에 꼼짝없이 등선을 할지도 모를 아주 위험한 상황이였던 거죠."

운설은 차분한 어조로 상황을 설명하기 시작하였다.

현경과 신선경

둘 중 가까운 쪽을 고르라면 주저없이 신선경을 고를 것이다.

선우를 비롯한 여인들과 함께 생활하며 깨달음이 비약적으로 상승한 탓에

말그대로 등선을 코앞에 둘 정도로 높은 경지에 다다르게 되었다.

불현듯 찾아올 깨달음에 그대로 등선할 지도 모를 위태로운 상황에 처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권속으로 삼아달라고 했던거예요....후배님에게 종속된 이상 그의 허락없이는 멋대로 등선할 수 없을테니까요. "

떄문에 보험이 필요하였다.

불현듯 찾아올 등선 막아줄 선우의 권속이라는 든든한 보험 말이다.

"그런데 등선은 자력으로 뿌리칠 수 있지 않아? 선우도 그렇게 했다고 들었는데..."

의아함이 들었다.

듣기로 등선은 스스로 거부할 수 있다고 들었다.

선우 또한 등선의 순간

스스로 뿌리치고 현계에 남았다고 하였다.

그런데 뭣하러 저런 번거로운 짓을 한다는 말인가

"등선을 자력으로 뿌리치는 건 불가능에 가까워요."

운설은 고개를 내저으며 말을 이었다.

"등선의 때가 찾아온 순간 오욕칠정을 비롯한 감정은 물론이고 소중한 이들에 대한 미련까지 전부 사라지고 오직 깨달음에 대한 충만함만이 남게 되거든요."

신선이 된다는 건

실로 무서운 일이었다.

모든 욕심과 감정

소중한 이들에 대한 기억마저

희미해져 인간이 아닌 존재로 변모해버린다는 걸 의미하였으니

"그런 상황에서 자력으로 등선을 뿌리친다는 건 불가능한 일에 가까워요, 그렇게 심지가 굳은 후배님조차 음양마 선배님이 아니였으면 그대로 등선했을 거예요."

"그렇구나.."

요랑은 납득했다는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확실히 그런 이유라면 권속이 될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까 절 믿고 안심하세요, 후배님은 지금 너무나 멀쩡하답니다."

운설은 부드러이 미소 지으며 요랑을 안심시켜주었다.

"....응, 믿을게!

요랑은 고개를 주억거리며 입을 떼었다.

그녀의 표정은 한결 밝아져있었다.

물밀듯 차오르던 염려가 완전히 가신 까닭이었다.

"근데 운설아, 왜 권속이라는 거 지금까지 안말한거야? 처음부터 말했으면 이렇게 걱정하진 않았을텐데!"

이내 활기를 되찾은 요랑은 타박하듯 장난스레 말을 내뱉었다.

그런 중요 사실을 꼭꼭 숨기고 있다니

능구렁이도 이런 능구렁이가 없었다.

"........민망해서요."

운설은 얼굴을 살짝 붉히며 말을 이었다.

"뭔가..종속되었다고..하면..그....엄청..이상하게..들릴..것 같기도하고....뭐랄까..야릇한?...야한?..아니 민망하게..들리기도 하고....비록 제가 후배님의 정인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도사로서....종속되었다는 표현을 쓰게 못할 짓 같기도 해서.."

운설은 고개를 푹 숙인 채 양 검지를 이리저리 꼼지락거리며 말을 이었다.

"운설이는 변태구나."

요랑은 간단명료하게 말을 내뱉었다.

"어째서 결론이 그렇게 나는건가요!?"

"종속이라는 단어 가지고 이렇게 야한 상상을 하잖아. 도사가 아니라 변태야."

"그런게 아니라구요....그저..어감이..좀 그렇기도 하니까.."

"변태 변태 변태 변태 변태."

요랑은 히죽거리며 말장난을 치기 시작하였다.

"아니예요! 아니라니까요!?"

운설은 얼굴을 잔뜩 붉히며 반박하고 또 반박하였다.

"아니긴, 속옷도 이렇게 야하잖아?"

쭈우욱

요랑은 운설의 치맛단을 들춰올리며 입을 떼었다.

그곳에는 도사라고 하기엔 꽤나 도전적인 모양의 야릇한 속옷이 그녀의 아랫도리를 감싸고 있었다.

"꺄아악!"

운설은 재빨리 치맛단을 아래로 내렸다.

그리고 요랑을 향해 발을 차올렸다.

데구르르르

요랑은 가벼이 몸을 굴러 그녀의 발길질을 여유롭게 피하였다.

"내가 볼땐 운설은 등선 못할 거야, 이렇게 정욕이 넘치는데 어떻게 등선하겠어?"

어느새 멀찍이 거리를 벌린 요랑은 장난스레 말을 이었다.

"요랑님!"

운설은 그런 요랑을 향해 내달리기 시작하였다.

당장에라도 혼구녕을 내줄 듯이

"와아아~ 변태가 쫓아온다~"

요랑은 히죽거리며 재빨리 도망가기 시작하였다.

"변태 아니라구요!"

운설은 잔뜩 얼굴을 붉힌 채 요랑의 뒤를 쫓아가기 시작하였다.

.

.

.

.

"거기서요!"

"서면 혼낼 거잖아!"

"혼날 짓을 하셨잖아요!"

"여자끼리 치마 좀 들춰 볼 수도 있지!"

"전 없어요!"

"좀생이!"

두 여인의 추격전은 꽤나 진지하였다.

요랑은 절대 잡히지 않겠다는듯이 내달렸고

운설은 기필코 잡고 말겠다는듯 속력을 높였다.

한치의 양보없는 추격전이 펼쳐진 것이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저도 이제 안참아요!"

타탁

이내 운설은 가벼이 발을 놀렸다.

파팟

그러자 그녀의 신형이 흔적조차없이 완전히 사라져버렸다.

마치 처음부터 존재치 않았던 것처럼

"에?"

그 광경에 요랑은 넋을 놓아버렸다.

저게 대체 무슨 일이란 말인가

덥석

그 순간

뒷목쪽에서 강한 압력이 전해지기 시작하였다.

"잡았다!"

어느새 지척까지 다가온 운설이 그녀를 뒷목을 붙잡은 것이다.

"반...반칙이야! 축지를 쓰는 게 어딨어!"

"말했잖아요? 진심으로 한다구요!!"

"잠깐..잠깐만! 잘못했어!!"

이내 운설과 요랑은 이리저리 뒤엉키며 엎치락 뒤치락 몸싸움을 하기 시작하였다.

그렇게 얼마나 몸싸움이 이어졌을까

이내 운설이 요랑의 몸에 완전히 올라타는 형국이 되었다.

"각오하시는 게 좋아요."

운설은 꽤나 비장한 눈빛으로 그녀를 응시하며 입을 떼었다.

"이이익...이.....왜 이렇게..무거워!...운설은 돼지야!'"

요랑은 벗어나기 위해 안간힘을 썼지만 소용이 없는 짓이었다.

자신을 깔아뭉개고 있는 운설의 몸을 도저히 떨쳐낼 수 없던 것이다.

"내력으로 짓누르는 거예요! 살이 쩌서 그런게 아니라구요!"

"몰라 몰라! 돼지 돼지!"

"역시 말로는 안되겠네요"

운설은 가느다란 열손가락 경건하게 쫙 펼쳤다.

간질 간질 간질 간질

그리고 요랑의 겨드랑이와 옆구리를 비롯한 온몸 구석구석을 간질이기 시작하였다.

맹렬하기 그지없는 기세로

"하하하하하하핫...하하하하핫...아하하하!..간지러워어어!!...하하하하하!"

요랑은 함박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예민한 피부를 가진 탓에 간지러움이 더욱더 크게 느껴진 까닭이었다.

"이각은 간지럽힐 거예요. 각오하세요!"

"하하하하하! 안돼!...하하하하하! 안돼에에에!"

요랑은 애원하였다.

이각이라니

그정도로 간지럽힌다면 눈물샘조차 말라버리고 말 것이다.

"하하하하하하하! 하하하하하하하!"

하지만 운설에게 자비란 없었고

요랑은 그저 무방비하게 간질여질 수밖에 없었다.

치마를 들춰버린 죄의 댓가로

그렇게 요랑의 명랑한 웃음소리가 검은 호수 전체에 널리 퍼져나가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일각정도 지날 때쯤

"너희 되게 재밌게 논다?

너무나 익숙한 목소리가 그녀들의 귓가에 파고들기 시작하였다.

간지럽히던 운설과

원없이 웃어대던 요랑은 동시에 표정을 굳히고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볼 수 있었다.

어이없다는듯 자신들을 바라보고 있는 한 명의 남자를

"살짝 서운한데?...내 걱정은 안한거야?"

사흘이나 행방불명되었던 남자.

너무나 소중하고 사랑스러운 남자.

선우의 등장이었다.

"후에에엥~!! 선우야아아~~!"

곧이어 요랑이 선우를 향해 득달같이 달려들었다.

"왜 이렇게 늦게 온거야!!...걱정했잖아! 이 바보야!"

그리고 그의 넓은 가슴에 얼굴을 파묻고 훌쩍이기 시작하였다.

쓰담 쓰담 쓰담

선우는 그런 요랑의 뒷머리를 부드러이 쓰다듬어주기 시작하였다.

"이계 여행은 즐거우셨나요? 후배님"

운설은 그런 선우를 바라보며 부드러이 미소를 지었다.

요랑만큼 격하진 않았지만

그녀 또한 선우의 귀환을 반기는 분위기였다.

"알고 있었어?"

"연결되어있으니까요."

운설은 방긋 웃어보이며 입을 떼었다.

"그런 것도 알 수 있을 줄 몰랐네."

권속이라는 게 꽤나 좋은 기능이 탑재하고 있는듯 하였다.

이렇게 위치 파악도 가능한 걸 보면 말이다.

"즐거웠어."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좋다고 할 수 있었다.

귀환의 실마리인 독고령을 붙잡을 수 있었고

뜻하지 않은 인연도 맺을 수 있었으니

"그리고 너희들에게 소개해주고 싶은 사람이 있어."

이내 선우는 고개를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함께 차원을 건너온 여인들을 향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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