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르르르르
신전의 잔해들이 파헤쳐지며 무언가 맹렬한 기세로 치솟기 시작하였다.
나무 기둥따윈 비교조차 안되는 커다란 네 개의 커다란 손가락
그 네개의 손가락 사이사이 연결되어 있는 옅은 막
하늘에 닿을듯 치솟아있는 거대한 기둥
기둥 표면에 촘촘히 돋아나있는 셀수조차 없이 많은 비늘들
'팔?'
그렇다.
눈앞에 드러난 건 거대한 팔의 형상이었다.
그것도 비늘로 뒤덮여있는 흉측스러운 어인의 팔
"신이 강림하셨다!"
"우리의 유일신께서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었다!"
"우우우! 경배하라! 우우우! 찬양하라!"
"해신님이여~ 오 나의 해신님이여~"
"아오오옼 오오옼 오오옼 아옼!"
"우오오옼 우오오옼 오옼 오옼!"
"우가차차! 우가차아아!"
그 팔을 영접한 어촌의 인간들과 어인들을 일제히 찬양을 하기 시작하였다.
신의 강림
바라마지 않던 기적이 눈앞에 일어났다는 사실에 모두가 열광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콰지지지직
하지만 그 광기 어린 찬양은 얼마지 않아 끊기고 말았다.
하늘 높이 치솟아있던 팔이 신전 근처에 있던 신도 하나를 완전히 짜부려뜨렸기 때문이었다.
마치 개미를 짓눌러죽이는 것처럼
".........."
".........."
순간 광기로 가득했던 장내가 쥐죽은듯 조용해지기 시작하였다.
갑작스러운 신도의 죽음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던 까닭이었다.
어찌 구원을 위해 내려온다던 해신이 누구보다 열성적인 신도를 찌부러뜨릴 수 있다는 말인가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과연 위대한 해신님! 진정한 믿음을 가진 이와 아닌 이를 구별하시는구나! 모두 두려워말거라! 방금 죽은 놈은 해신님에 대한 일말의 불신을 가진 놈이었을 것이다! 죽어 마땅한 놈이기에 기꺼이 신벌이 내려진 것이란 말이다!"
신관 하나가 언성을 높이기 시작하였다.
사람을 죽인 해신을 비난하는데 대신 죽은 이를 비난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래! 그놈이 잘못된 게 분명하다!"
"죽어 마땅한 이단이다!"
"믿음이 함께하는 한 해신께서 우리를 해할 리 없다!"
"노래하세! 찬양의 노래로 우리의 주신! 해신님을 찬양하세!"
"아오옼!~ 오오옼~ 아아아아옼~!"
"우오오옼 우와아앜 아아앜!"
곧이어 그 언변에 넘어간 신도들이 다시금을 해신을 찬양하기 시작하였다.
그 크신 해신님의 사랑~
그 크신 해신님의 사랑 말로다 형용 못하네~
저 높고 높은 별을 넘어 이 낮고 낮은 땅위에
죄범한 영혼을 구하려 그 딸을........
콰지지직
그때 가장 열성적으로 찬송가를 부르던 신관의 몸이 납작하게 짜부라지며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절명하였다.
믿음이 부족하다며 욕보였던 신도와 같은 꼴로 죽음을 맞이하게 된 것이다.
".........."
".........."
열성적으로 찬양하던 이들이 사이에서는 다시금 무거운 침묵이 흐르기 시작하였다.
신실함만으로 따진다면 신녀에게 조차 비견된다던 신관이 죽음을 맞이하였다.
어찌 침묵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우르르르르
콰콰콰쾅
그때 신전 잔해들이 폭발하며 사방에 비산하기 시작하였다.
우우우우우우웅
그와 동시에 대지마저 쉴새없이 진동을 하였다.
무언가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콰지지지직
곧이어 땅이 갈라지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그 틈에서 마치 태산처럼 거대한 무언가가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하였다.
평원을 연상케하는 광활한 이마.
세상 만물이 담겨져있는 커다란 눈깔
돌풍을 일으키는 두개의 커다란 콧구멍
세상을 집어삼킬듯 쩌억 벌려진 아가리
그 아가리 속 징그러울 정도로 촘촘히 박혀있는 날카로운 이빨들
산성액이 흘러나오고 있는 커다란 네 개의 젖
태산과 같은 덩치를 굳건히 지탱하는 커다란 두 다리
덜 덜 덜 덜 덜 덜
그 모습을 마주한 모든 신도들은 도망치는 것조차 잊은 채 제자리에서 덜떨 떨기 시작하였다.
모습을 드러낸 존재를 확인한 순간 깨달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기록 속에 묘사된 해신이 진정으로 강림하였다는 사실을
부우우우우우우우웅
그때 다시금 거대한 해신의 팔이 맹렬한 기세로 휘둘러지기 시작하였다.
그리고는 넋을 놓고 있던 신도들의 육신을 무자비하게 터트리기 시작하였다.
"신...신이 노하셨다!"
"도망..도망쳐어어어!!"
"이러다간 죽고 말것이다!"
신전을 모여있던 수많은 신도들이 우왕좌왕하며 흩어지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커다란 해신의 팔은 그런 그들을 향해 무자비하게 휘둘러졌다.
단 한명도 놓치지 않겠다는듯이
"꺄아아아아악!"
"아아아아악!"
"끄아아아악!"
"아오오오오옼 오오옼!!!!!"
"우오오오옼! 오오오옼!!!"
곧이어 어촌은 생지옥과도 같은 아비규환이 펼쳐지기 시작하였다.
그들의 찬양해마지 않던 유일신에 의해
*******
"끄아아아아아악!"
"아아아아아악!"
"살려..살려어엌!!!"
덜 덜 덜 덜 덜
독고령은 전신을 덜덜 떨기 시작하였다.
눈앞에 펼쳐진 생지옥과도 같은 광경에 두려움이 물밀듯 차오른 까닭이었다.
그녀가 두려운 건 학살 현장 그 자체가 아니였다.
마교의 마귀들의 잔인성은 이보다 더하면 더했지 결코 덜하진 않았으니
진정 두려운 건
저 절대적인 존재 앞에선
그 무엇 하나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무력감이었다.
오만할 정도로 자신감에 차있던 자신이건만
저 위대한 존재 앞에선 개미 새끼만도 못한 하찮고 무가치한 존재에 불과하였다.
저 위대한 존재가 죽음을 정하면 그대로 순응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데 어찌 무력감을 느끼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런데 두렵지 않을 수 있겠는가
'......장선우...그 남자도 두려워할까?'
문뜩 궁금증이 들었다.
세상의 왕인 것마냥 자신만만해하던 그 남자.
해신조차 두렵지 않다면 오만했던 그 남자.
장선우는 과연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까?
독고령은 은근한 기대를 품으며 슬쩍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꽤나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는 선우를 마주할 수 있었다.
'결국 네놈도 항거할 수 없는 힘을 가진 위대한 존재에게 압도당하였구나.'
독고령은 노골적으로 실망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결국 저 오만한 남자 또한 자신과 마찬가지로 해신의 위용에 압도당했다 느낀 까닭이었다.
'........네놈도 결국 태생적인 한계는 넘지 못하였구나.
인고의 노력을 통해 초월에 다다르긴 하였지만 그래봤자 그의 태생은 인간에 불과하였다.
날 때부터 초월자로서 군림한 해신에게는 비할 바가 못되는 것이다.
'....이젠 모두 끝이야.'
독고령은 자포자기 하였다.
유일한 희망마저 완전히 꺾이고 말았다.
이제 자신이 살 수 있는 건 그저 예정된 죽음을 기다리는 것뿐이리라
"......독고령."
그때 귓가로 떨리는 목소리로 파고들기 시작하였다.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던 장선우가 자신을 부른 것이다.
"말씀하세요."
독고령은 담담한 어조로 입을 떼었다.
사과를 할까?
반성을 할까?
아니면 해신께 용서를 구하자고 할까?
"저게 해신 맞아?"
선우는 손가락으로 학살을 자행하고 있는 태산과도 같은 존재를 가리키며 입을 떼었다.
"......맞아요...저분이 바로 이 세계의 창조주이자 유일신, 해신님이세요."
"........믿을 수 없네."
"그 심정 이해해요, 저라도 믿을 수 없을테니까요."
신을 마주한다는 건 좀처럼 믿기지 않는 일이었다.
그들은 인간의 인지를 벗어난 존재였으니
"하지만...아무리 그래도 저건 너무 하잖아?"
"......너무하다고...생각해도 소용없어요.....신이란 본디 날때부터 불합리한 존재이니."
독고령은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너무하다
말도 안된다.
반칙이다
수많은 불평을 토로해도 소용없었다.
본디 신이란 인간의 인지를 벗어나 불합리 그 자체였으니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나 도저히 이해할 수 없어....대체 어디가 청하랑 닮았다는거지?"
"이해하려고 하지 마세요...신이란 존재는 저희가..이해할 수 있는 존재가....네에?"
"분명 청하는 해신의 모습을 본따 만들었다고 하지 않았어? 그런데 대체 저 징그러운 게 우리 귀여운 청하를 어디 닮았다는거지?"
선우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듯한 표정을 지은 채 반문하였다.
청하는 인세에 다시 없을 정도로 아름답고 깜찍스러운 모습을 하고 있는 여신이었다.
그런데 대체 저 흉측스러운 괴물과 어디가 닮았다는 말인가
".........너무하다고 한게.....해신의 외모였어요?"
독고령은 황당하다는듯한 표정을 지은 채 되물었다.
"그것보다 너무한 게 뭐가 있겠어?"
선우는 뭘 당연한 걸 묻느냐는듯 입을 떼었다.
"압도적인 위용에..겁을 집어먹거나..그런 게 아니구요?"
"생긴 게 살벌하긴 한데 무서울 정도는 아닌데?"
선우는 태연스레 대꾸를 하였다.
꿈에 나올까
무서운 외양을 하고 있긴하지만 지레 겁을 집어먹을 정도는 아니였다.
"..........."
독고령은 어이없다는듯 그를 바라보았다.
해신이 강림하여 세상을 멸망시키고 있건만 이리도 한가로이 외모 품평이나 하고 있다니
이걸 미친놈이라고 해야하는지
대범한 미친놈이라고 해야할지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미친거는 확실해.'
하지만 한가지는 확신할 수 있었다.
제정신이 아닌 놈이라는 건 분명하다는 사실을
그렇게 멍청한 표정을 짓고 있던 그때였다.
"...선..선우야.."
그때 떨리는 목소리가 울리기 시작하였다.
시선을 돌리니 핏기가 싹 가신 창백한 얼굴로 양팔을 교차로 감싸쥔 채 덜덜 떠는 청하의 모습이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하였다.
너무나 해맑던 때와는 상반된 모습이었다.
"청하야, 괜찮아?"
선우는 걱정스럽다는듯 입을 떼었다.
방금까지는 멀쩡했던 그녀가 별안간 상태가 나빠지니 걱정이 앞선 까닭이었다.
"어머니...어머니가..왔어."
"진짜 엄마가 맞나보네."
선우는 수긍한듯 입을 떼었다.
전혀 믿기진 않지만 진정 해신이 맞는듯하였다.
"...나...나..무서워.....혼나면..어떻게 하지?....또 버려지면..어떻게 하지?.....너희들을 잃으면 어떻게 하지?"
그녀는 떨리는 목소리로 불안을 토로하기 시작하였다.
모든 게 무서웠다.
자신을 비참하게 버렸던 어미에게
또다시 버려질까봐
기껏 사귄 소중한 친구들을
어미 손에 다시금 잃게될까봐
"청하야...일단 진정.."
"무서워...무서워...무서워...나 느낄 수 있어..어머니가...지금 얼마나 분노하고 있는지...얼마나...독하게 마음을 먹고 있는지..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전부 죽일거야.....자신을 거역한 세상을 완전히...부숴버리고.....폐기시켜버릴거야......모든 걸...전부..없애버릴거야....그리고..또다시..나만 남겨둘거야...아무도 없는 허무虛無의 세계 속에 외톨이로 만들어버릴거야...흐으윽...혼자는 싫어...혼자가 되고 싶지 않아.....너희를 잃고 싶지 않아....흐윽...흐윽...윽.."
어설프게나마 힘을 이어받았기에 알 수 있었다.
해신의 확고한 의지를
그렇기에 너무나 두려웠다.
이대로라면 소중한 친구들을 잃고 또다시 외톨이가 되어버릴테니까
덥석
그때 부드러운 온기가 그녀의 양뺨에 전해지기 시작하였다.
"진정하고 날봐, 청하."
청하의 뺨을 감싸쥔 선우는 담담한 어조로 입을 떼었다.
"네가 생각하는 그런 일따윈 일어나지 않을거야."
"......그치만....그치만..어머니가.."
"날 믿어, 결코 널 혼자두지 않을테니까."
선우는 올곧은 눈빛으로 그녀를 응시하며 입을 떼었다.
"우린 살아남을 거고, 바깥으로 나갈거야. 그리고 더욱더 많은 친구들을 만나 행복하게 살아가게 될거야."
"......더 많은 친구....행복.."
"맹세할게, 그러니까 울지말고 잠시만 기다려줘....그렇게 할 수 있지?"
"......응...믿을게....나는...나는 선우의 친구니까.."
청하는 눈가에 맺힌 눈물을 거칠게 닦아내며 입을 떼었다.
너무나 소중한 친구의 맹세였다.
어찌 신뢰치 않을 수 있겠는가
"착하다."
그 모습에 선우는 부드러이 미소를 지으며 그녀의 바다와 같은 푸른 머릿결을 부드러이 쓰다듬어주었다.
두려움을 꾹 참는 그녀의 모습이 실로 기특하기 그지없었다.
"독고령."
"..네..네에!"
선우의 부름에 멍때리고 있던 독고령은 부리케나 답을 하였다.
"옆에서 잘 돌봐줘."
선우는 청하를 눈짓하며 입을 떼었다.
"......당신은...어떻게 하시게요?"
"어떻게 하긴, 뭘 어떻게? "
선우는 당연한 걸 되묻냐는듯한 표정을 지었다.
흐름상 자신이 할 일은 한가지였다.
"저 변덕스러운 아줌마를 족치러가야지."
선우는 허공을 향해 손을 뻗었다.
쩌저저저적
그 순간 공간이 갈라지며 한자루 아름다운 검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하였다.
지상 최악의 마검
흑야黑夜가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잘 달래라, 만약 또 울면 네가 나한테 맞아."
선우는 독고령을 향해 단단히 경고를 하였다.
"그건..너무 불합당..!"
휘익
선우는 그녀의 항변따위는 사뿐히 무시한 채 몸을 돌렸다.
들을 가치따윈 없다는듯이
쇄애애애애액
그리고 빛살과도 같은 속도로 쏘아지기 시작하였다.
저 태산과도 같은 해신을 향해
"일단 가볍게 인사라도 나누자고."
곧이어 내달리던 선우는 흑야를 가벼이 움켜쥐었다.
우우우우우우우웅
그러자 검신에 칠흑과도 같은 묵빛으로 물들여지기 시작하였다.
극한으로 압축된 음양조화기에 죽이고자하는 진득한 살의를 담아 하나의 검을 완성시킨 것이다.
휘이이이익
이내 선우는 망설임없이 검을 휘둘렀다.
서거거거걱
그 순간 이변이 일어났다.
기괴한 절단음이 어촌 전체에 울려퍼지기 시작한 것이다.
쿠우우우우우우우웅
더불어 귀를 찢는듯한 굉음성과 진동이 사방에 퍼져나가기 시작하였다.
-끄아아아아아아아아아
곧이어 고통으로 가득한 찬 기괴한 비명이 사방에 울려퍼지기 시작하였다.
-이 미천한 필멸자따위가!!!!!!!!!!!!
너무나 흉측스럽고 기괴한 존재.
해신은 절단된 오른 어깨죽지를 붙잡은 채 괴성을 내지르기 시작하였다.
"반갑다, 해신海神."
선우는 그런 해신을 향해 가벼이 손을 흔들었다.
아무래도 자신의 인사가 꽤나 마음에 든듯한 모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