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해요?"
독고령은 떨리는 목소리로 되물었다.
"그럼 가짜로 할까?"
"..그건 아니지만...."
막상 거사를 치르려니 망설임이 생겼다
여러모로 부담감이 느껴진 까닭이었다.
"...아닌거 알면 빨리 해, 시간 없다구."
탁 탁 탁
선우는 손목을 가벼이 두드리며 입을 떼었다.
이곳에 들어온지 벌써 만 하루가 지났다.
이정도면 태평한 요랑과 운설도 슬슬 자신을 걱정하기 시작할 것이다.
"........하지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라구요..."
독고령은 울상이 된 표정으로 입을 떼었다.
해신교에 완전히 미쳐있는 신도들을 속이고
이 세계의 유일신을 모독하는 일이었다.
어마어마한 부담감을 가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데 어찌 쉽사리 실행할 수 있겠는가
"정 하기 싫으면 안해도 돼."
선우는 나름 선심쓰듯 입을 떼었다.
"정말요?"
독고령은 눈을 동그랗게 뜬 채 되물었다.
의외였다.
이 무도한 남자가 왠일로 자신을 배려해준다는 말인가?
"정말이고 말고, 하기 싫다는데 내가 어떻게 강요를 하겠어?"
선우는 사람 좋은 미소를 띄운 채 입을 떼었다.
"......그럼 저는 안하는 걸로.."
"그래, 그렇게 해, 그냥 신전이 무너뜨리면 신도들의 비난과 원망이 모조리 너에게 향할테고 최악의 경우 해신의 분노까지 온전히 감당해야할테지만 개의치 않는다면야 말릴 생각 없어. 어차피 내 일도 아니니까."
선우는 살가운 미소를 지은 채 말을 이었다.
"............"
그 말을 들은 독고령의 안색이 창백해지기 시작하였다.
부담감에 잠시 잊고 있었던 또 다른 문제를 떠올린 까닭이었다.
"청하야, 신전 좀 무너뜨려줄 수 있어?"
"응! 할 수 있어! 선우 부탁이면 다할 수 있어!"
"잘됐다, 그럼 무너뜨려줄래? 돌가루만 흩날릴 수 있도록."
"응응! 나 노력할게! 기다려봐아아~"
청하는 앙증맞은 주먹을 높이 치켜올리기 시작하였다.
퍽이나 귀여운 모양새였지만 주먹에 담긴 힘은 귀여움을 넘어선 수준이었다.
거대한 신전따윈 단숨에 가루로 만들 진력이 깃들어있는 것이다.
"잠깐! 잠깐만요! 기다려주세요!"
독고령은 다급히 그녀를 만류하기 시작하였다.
이대로 내버려둘 순 없었다.
만약 신전이 무너진다면 모든 책임은 자신에게 전가되고 말 것이다.
이보다 최악일 수는 없었다.
"안돼, 선우가 부수랬어."
청하는 그녀를 가벼이 뿌리쳤다.
콰당
그러자 독고령은 저항할새도 없이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다.
초월에 다다른 청하의 힘을 도저히 감당치 못한 까닭이었다.
"할게요! 할게요! 명하신대로 수행할게요! 그러니까 지금 당장 부수지 말아주세요!"
독고령은 다급히 태세를 전환하였다.
"왜 안한다며?"
"생각이 바뀌었어요!"
홀로 모든 책임을 지는 것보단 청하를 내세워 책임을 전가하는 편이 더 나을 것이라는 얄팍한 계산의 결과였다.
"그래? 바뀌었어?"
"네에! 그러니까 잠시만 신전 파괴를 유예해주세요! 저 열심히 선동해볼테니까!"
"좋아, 한번 믿고 맡겨보지."
선우는 히죽거리며 입을 떼었다.
"청하야, 주먹 내려도 돼."
그리고 앙증맞은 주먹을 들어올린 채 멈춰있는 청하를 바라보았다.
"그래? 안부숴도 돼?"
"아아, 안해도 될 것 같아."
".....아쉬워..나...잘할 수 있는데.."
"조금 이따 마음껏 부수게 해줄게, 그때까지 참을 수 있지?"
"응! 청하 참을 수 있어!"
청하는 배시시 웃으며 주먹을 내렸다.
영겁의 세월조차 견뎌왔던 그녀였다.
잠시의 기다림따윈 아무것도 아니리라
"자아, 이제 유예시켜줬으니까. 일해."
뻥
선우는 발로 독고령의 커다란 엉덩이를 뻥 차버렸다.
"하으으으윽!"
철푸덕
독고령은 그 힘을 견디지 못하고 그대로 나자빠지고 말았다.
'.....나쁜 새끼.'
독고령은 도끼눈을 뜨기 시작하였다.
다행히 풍만한 가슴이 완충제 역할을 다치진 않았지만 부아가 치밀어오른 까닭이었다.
어찌 저리도 무례하고 폭력적이란 말인가
"혹시 불만이 있어?"
"아니요.....불만같은 거 없어요!"
제발 저린 독고령은 다급히 고개를 내저으며 부정을 하였다.
느낀 바를 사실대로 토로할 정도로 어리숙하지 않은 그녀였다.
"얼굴 표정이 안좋은데?"
"...원래 이렇게 생겨서...종종...오해 받아요.."
"하긴 네가 예쁘긴한데 인상이 좀 표독스럽긴하지."
선우는 수긍한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개같은 새끼.'
속으로 욕지거리가 절로 내뱉어졌다.
"제가 그런 말을 자주 듣긴한답니다."
물론 내뱉어지는 말과 표정은 속내와는 정반대였지만 말이다.
"칭찬아닌데?"
'나도 알아!'
하나하나 마음에 들지 않는 남자였다.
"저어, 그럼 이제 슬슬 시작해도 될까요?"
곧이어 독고령은 화제를 전환하였다.
더 끌어봤자 조롱만 당할 것 같았다.
"그래, 기대하지."
선우는 고개를 주억거리며 입을 떼었다.
선뜻 나서준다는데 어찌 말릴 수 있겠는가
"후우우.."
그의 허락에 독고령은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저벅 저벅 저벅 저벅
그다음 천천히 앞으로 걸어나가기 시작하였다.
모든 어촌민들이 우러러보는 중앙 제단을 향해
'..이렇게 부담되는 자리였던가?'
이내 제단 앞에 선 독고령의 안색은 한층 더 어두워지기 시작하였다.
매일매일 올라섰던 이 자리가 지금만큼은 너무 부담이 되었고 어려웠다.
광기 어린 믿음으로 가득 차있는 신도들을 앞에서 신성 모독을 해야한다는 중압감이 너무나 크게 느껴진 것이다.
'.....하지만 해야해.'
이미 주사위는 던져졌다.
이 제단 위에 올라선 이상 무를 수 있는 방법따윈 존재치 않는 것이다.
'.....그래, 기왕 이렇게 된거 최선을 다해 날조하는 거야.'
곧이어 독고령은 재빨리 신색을 회복시키기 시작하였다.
어차피 해야한다면 최선을 다할 생각이다.
어설픈 거짓말처럼 설득력 없는 것도 없을테니
'우으으읍'
독고령은 잠시 숨을 참았다.
그러자 새하얀 피부가 빨갛게 달아오르기 시작하였다.
마치 흥분으로 상기가 된 것처럼
"만물을 창조하신 위대한 해신의 신도들은 들어라!"
그리고 큰소리로 언성을 높이기 시작하였다.
그러자 모든 광신도들의 이목이 그녀에게 집중되기 시작하였다.
"우리를 굽어살피던 위대한 해신께서 본 신녀에게 신언을 내리셨다!"
"해신님이 이르시되 자기 형상 곧 해신님의 형상대로 하나의 분신을 만들어 바다와 땅을 비롯한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선지자로 하여금 너희들에게 복을 주어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게 만드시니 이제 너희는 칠흑과도 같은 어둠이 아닌 푸른빛의 바다와 푸른 하늘 속에 충만함과 풍족함을 누리며 영생을 살게만드리라 하시니라"
"그녀는 보이지 아니하는 해신님의 형상이시요.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나신 이시니. 만물이 그녀에게서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 보이는 것들 보이지 않는 것들을 비롯한 모든 것들이 그녀로 말미암고 그녀를 위해 창조 되었으니 친히 만물의 으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리라!"
독고령의 음성을 점점 고조되기 시작하였다.
마치 감정이 북받친 사람처럼
"소개하겠다! 해신님의 힘을 그대로 이어받은 딸이자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친히 강림하신 위대한 해신님의 분신! 청하님이시다!"
그리고는 곧바로 몸을 돌려 뒤쪽을 가리켰다.
우우우우우웅
그러자 제단 뒤편에서 한명의 소녀가 허공에서 날아들기 시작하였다.
푸른 물빛의 머리칼과 눈동자
신이 조형했다해도 과언이 아닌 예술적인 이목구비
전신에서 흘러나오는 은은한 신성까지
허공에 떠 있는 소녀를 마주한 신도들은 누구 하나 독고령의 말에 의심을 품지 못하였다.
그 신격마저 느껴지는 아름다움과 성스러운 분위기
그리고 자유로이 공중에 떠있는 하나의 기적이 그녀에 대한 신뢰를 한층 더 배가시켜준 까닭이었다.
"나 곧 나는 해신이라 나 외에 구원자는 없느니라."
"다른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위해 내가 직접 너희를 찾아왔노라"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어머니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어머니께서 내게 주시는 자는 다 내게로 올것이요.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어 쫓지 아니하리라!"
청하는 근엄 어린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그러자 그 목소리가 어촌 전체에 울리기 시작하였다.
"오오오오...구세주여."
"오오오...구원자여.."
"오오오....위대한 해신의 분신이여."
털썩 털썩 털썩
수많은 인간들이 무릎을 꿇은 채 고개를 처박았다.
감히 마주할 수 없던 까닭이었다.
구원을 위해 친히 찾아온 위대한 해신의 분신
"아오오옼 오오옼 오오옼"
"우에에엨 에에엨 에케켘
"우가차챀 우가칵"
거룩함을 느끼는 건 어인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들 또한 인간들과 다를 바 없이 무릎을 꿇은 채 그저 머리만 처박았다.
"내가 구원을 위해 이곳에 온 이상 너희들은 수많은 것들을 없애야할 것이다!"
"쓸데없는 허영심, 화를 부르는 욕심, 시기하는 질투심, 쏟아내는 분노, 색욕, 나태, 식탐.......그리고 마지막으로 이곳, 해신님을 모시는 신전까지 모조리 폐기하라!"
"진정한 믿음은 장소에 구애되지 않는 법! 나 곧 구원의 사도가 온 이상 이 세상 전체가 신전이니라! 더는 장소에 국한되는 어리석은 일은 벌이지 말도록 하라!"
청하의 목소리가 쩌렁쩌렁하게 울리기 시작하였다.
"세상 전체가..신전?"
"믿음은 장소에 국한되지 않다니..."
"아아아아.......구원자여."
"아오오옼...오오옼..."
"오옼..오오오옼.."
이내 광신도들은 킁 깨달음을 얻었다는듯한 표정을 지었다.
구구절절 맞는 말에 도저히 정신을 차릴 수 없던 까닭이었다.
"부숴야해....신전을 부숴야..해."
"믿음을 증명해야해...해신에 대한 믿음을."
"우우웈 쿠우우웈"
"아우우웈 아우우웈"
이내 하나둘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철기구들을 홀린듯 신전으로 향하기 시작하였다.
위대한 선지자의 말에 따르기 위해
자신들의 진정한 믿음을 증명하기 위해
"해신에 대한 너희들의 정성을 증명하라! 해신루야海神慺也!"
이내 청하는 선우로부터 전해들었던 의미불명의 말을 내뱉었다.
"해신루야!"
"해신루야!"
그러자 광신도들은 일제히 괴성을 내지르며 맹렬한 기세로 내달리기 시작하였다.
저 드높은 신전을 부숴버리기 위해
콰아앙 콰아앙 콰아앙 콰아아앙
곧이어 격렬한 굉음성이 사방에 울려퍼졌다.
더불어 굳건했던 신전이 서서히 해체되기 시작하였다.
누구보다 독실한 신자들에 의해서 말이다.
.
.
.
.
.
.
"나 잘했어? 응? 응?"
어느새 근엄한 표정을 풀어버린 청하는 기대감 가득한 표정을 지은 채 되물었다.
선우와 독고령이 불러준 말을 단 한 구절도 틀리지 않았다.
말실수를 전혀 하지 않은 것이다.
칭찬을 바란다해도 결코 욕심이 아니리라
"아주 잘했어."
쓰담 쓰담 쓰담
선우는 그런 그녀를 귀엽다는듯 바라보며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녀는 기대이상으로 잘해주었다.
근엄한 표정은 물론이고 목소리에 위엄까지 내보이며 좌중을 휘어잡아버렸으니 말이다.
"헤헤헤헤헤.."
청하는 헤픈 웃음을 흘리며 몸을 배배 꼬았다.
칭찬이라는 건 몇 번을 들어도 달콤하기 그지없었다.
".....저 그런데 괜찮을까요?..이렇게 해도."
그때 독고령이 불안한듯한 눈빛으로 서서히 무너져내리고 있는 신전을 바라보며 입을 떼었다.
신도들을 선동하여 신전을 자체적으로 해체시키게 만들었다는 사실이 못내 마음에 걸린 까닭이었다.
"잘만 선동해놓고 이제와서 무슨 소리야?"
선우는 어이없다는듯 그녀에게 되물었다.
기가막힌 선동과 날조를 선보인 그녀였다.
그런데 어찌 이제와서 약한 소리란 말인가
"....선동할 때는 괜찮았는데.....막상 해체되는 걸 보니까.....해서는 안될 최악의 선택을 한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어서.."
선동과 날조를 할 때는 몸이 절로 반응하였다.
평생해왔던 짓이기에 거부감 없이 잘처리할 수 있던 것이다.
그런데 막상 신전이 해체되는 걸 보니 불안감이 물밀듯 차올랐다.
이러다간 정말 해신을 강림시킬지도 모른다는 생각마저 드는 것이다.
"겁이 많네."
"최악의 경우....해신이 강림할 수 있다구요!...그리고 만약..정말 그렇게 된다면 세상이 멸망해버릴 거예요."
독고령은 창백해진 얼굴로 더듬거리며 말을 이었다.
한눈에 봐도 공포로 가득한 모습이었다.
"그럼 난 최악의 경우를 바래야겠네."
선우는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뭐라구요!?"
"애초에 내 목표는 그 아줌마를 강림시키는 일이거든."
선우는 싸늘한 눈빛을 반짝이며 입을 떼었다.
"죽고 싶어 환장했어요!? 해신은 청하님과는 차원이 다르다구요! 세상을 창조할 정도로 완전한 신격을 갖추신 분이라구요!"
"나도 알아, 웬만한 초월자랑은 비교조차 안될 정도로 강하다는거."
선우는 수긍한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분명 강할 것이다.
어설프게 카피하긴 했지만 하나의 세계를 창조한 권능을 지닌 존재였으니
"그런데 이상하게 질 것 같지가 않네."
선우는 현묘하기 그지없는 눈빛을 반짝였다.
콰르르르르르르
그때 굳건히 자리를 지켜던 신전이 와르르 무너져내리기 시작하였다.
우우우우우우우우웅
더불어 무너진 신전 주위에서 불쾌하고 끈적한 기운이 폭발하듯 치솟기 시작하였다.
-감히 나의 신전을 부수다니!!!!!!!!!
곧이어 귀를 찢는듯한 괴성이 울려퍼지기 시작하였다.
"왔나보네."
그 괴성에 선우는 환한 미소를 지었다.
마치 반가워죽겠다는듯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