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닥 토닥 토닥
선우는 버려진 자식의 등을 부드러이 토닥이기 시작하였다.
그녀가 감정을 잘 추스릴 수 있도록
훌쩍 훌쩍 훌쩍
그런 선우의 배려가 효과가 있던 것일까
펑펑 울며 설움을 쏟아내던 그녀가 서서히 진정하기 시작하였다.
"이제 진정이 좀 됐어?"
도리 도리 도리
버려진 자식은 고개를 도리질치기 시작하였다.
이대로 떨어지긴 싫었기 때문이었다.
"된 것 같은데?"
"흐으윽...으으극...흐그그극"
이내 버려진 자식은 억지로 눈물을 쥐여짜기 시작하였다.
어떻게든 붙여있으려는 수작이었다.
콩
"억지로 쥐여짜지 말고, 자꾸 울면 보기 안좋아."
선우는 가벼이 꿀밤을 먹이며 입을 떼었다.
".....울면 보기 안좋아?"
"응, 보기 안좋아."
"안울게!...다신 안울게!"
버려진 자식은 간신히 짜낸 눈물을 재빨리 훔치기 시작하였다.
좋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간 절교를 당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든 까닭이었다.
"그래, 그래, 착하네."
쓰담 쓰담 쓰담
그런 불안감을 인지한 선우는 그녀의 물결처럼 푸른 머리를 부드러이 쓰다듬어주었다.
마치 안심하라는듯이
"........헤헤헤헤..."
그 손길이 기분 좋았던 것일까
그녀는 헤픈 미소를 짓기 시작하였다.
'........귀엽네'
소녀스러움이 돋보이는 그녀의 해맑은 미소는 넋이 나갈정도로 귀여웠다.
'이렇게 귀여운 자식을 버리다니....해신도 제정신이 아니군.'
제정신이라면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치유되고 정화되는 이 아이를 버릴 수 있을 리 만무하지 않은가
그렇게 얼마나 응시하였을까
"왜 그렇게 쳐다봐아?"
그 시선에 의아함을 느낀 버려진 자식이 입을 떼었다.
"귀여워서."
"나, 귀여워?"
버려진 자식은 놀란듯 눈을 동그랗게 뜬 채 되물었다.
예쁘다니 영겁의 세월동안 단 한번도 듣지 못했던 말이었다.
의아함을 느낄 수 밖에 없었다.
"엄청 귀여워....깨물어 주고 싶을 정도로 말이야."
"...흐으으.....깨물리면..아플 것 같은데.....그치만....살살 깨물어준다면....해도 좋아!"
버려진 자식은 짐짓 고민하더니 이내 조심스레 가녀린 팔뚝을 내밀기 시작하였다.
어서 깨물라는듯이
".....하아."
선우는 실소를 머금었다.
순진무구한 그녀의 반응이 절로 재밌던 까닭이었다.
팔은 또 왜 내어준다는 말인가?
"안물거야, 팔 내려."
"..그냥...물어도 되는데....나 친구를 위해서라면...다 할 수 있어!"
버려진 자식은 앙증맞은 두 주먹을 와락 움켜쥔 채 입을 떼었다.
아빠 미소가 절로 나오는 모습이었다.
"친구는 무는거 아니야. 소중히 대해줘야지."
"그런거야?"
"응, 그런거야."
"알았어...그럼 팔 내릴게! 우린 친구니까...헤헤헤."
아무래도 버려진 자식은 친구라는 울림이 좋은듯 보였다.
입에 담는 것만으로도 저리 좋아하는 걸 보면 말이다.
'....그런데....자꾸 버려진 자식이라고 지칭하는 것도...좀 그렇네.'
문뜩 그녀를 가리키는 말이 거슬리기 시작하였다.
버려진 자식이라는 말 자체가 왠지 모르게 그녀를 조롱하는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분명 이름을 받지 못했다고 했었지?'
그녀는 실패작이라는 이유로 이름을 받지 못했다고 들었다.
버려진 자식이라는 지칭을 대체할 만한 호칭이 없는 것이다.
"친구야."
이내 고심하던 선우가 부드러이 그녀를 불렀다.
"웅웅! 나 친구야!"
그러자 버려진 자식은 즉각적으로 답을 하였다.
무척이나 행복한 미소를 지은 채 말이다.
"혹시 널 부를만한 호칭이 있을까?"
"...호칭....나 그런 거 없는데.."
버려진 자식은 침울한 표정을 지었다.
태어나자마 실패작이라며 공허의 바다에 내던져진 그녀였다.
마땅한 호칭이 있을 리 만무하였다.
"곤란하네, 친구끼리는 서로 호칭으로 불러야하는데 말이야."
선우는 짐짓 곤란하다는듯 입을 떼었다.
".....어떻게 하지?...나는...나는 호칭이라는 거 없는데...아무도..지어주지 않았는데...."
버려진 자식은 잔뜩 불안한 표정을 지은 채 되물었다.
혹시라도 이름이 없다는 이유로 다시금 버려지는 건 아닐까라는 불안감이 든 까닭이었다.
"그래서 하는 말인데...혹시 실례가 안된다면 내가 네 이름을 지어줘도 될까?"
"내게...이름을?"
버려진 자식은 눈을 동그랗게 뜬 채 되물었다.
전혀 예상치 못한 말에 놀란듯한 모습이었다.
"응, 친구끼리는 호칭으로 불러야하니까."
선우는 고개를 주억거리며 입을 떼었다.
"괜찮을까?"
"괜찮아! 괜찮아! 괜찮아! 무조건 괜찮아! 갖고 싶어! 나! 나! 이름 갖고 싶어! 친구한테 이름으로 불리고 싶어!"
버려진 자식은 별빛과도 같은 눈을 반짝이며 다급히 답하였다.
이름이라니
어미조차 지어주지 않았던
영겁의 세월동안 갖지 못했던
마음 한구석에서 끊임없이 갈망하던
존재의 증명이라니
갖고 싶었다
너무 갖고 싶어
미칠 것만 같았다.
"그럼 허락한거다?"
"응응! 허락했어! 열개 아니 백개 지어줘!"
버려진 자식은 앙증맞은 열손가락을 쫙 편채 언성을 높였다.
"이름은 한개면 돼."
선우는 미소짓고는 가벼이 도리질쳤다.
아무래도 많으면 좋을 것 같다며 단순한 생각을 한 것 같았다.
"...하나는 너무 적지 않아?"
"대신 엄청 예쁘게 짓도록 할게."
"웅웅.....나 기대할게...예쁜 이름."
그녀의 눈빛에는 기대감이 서리기 시작하였다.
어떤 이름을 지어줄까
얼마나 예쁠까
여러모로 기대가 된 까닭이었다.
선우는 그런 그녀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그러자 그녀의 풍성한 머릿결과 맑은 눈빛이 유난히 시선을 끌기 시작하였다.
머릿결과 눈빛 모두 청명한 하늘 아래 드러난 바다의 물빛과 같은 색깔을 띄고 있었다.
".......청하靑河."
이내 선우는 떠올려지는 이름을 그대로 내뱉었다.
푸른 물빛의 머릿결과 눈동자를 보며 떠올린 이름
청하靑河
그녀를 표현하는데
이보다 어울리는 이름은 없으리라
"........청하靑河."
"....네 머리와 눈동자를 보면 바다의 푸른 물빛이 떠올라....그래서 청하라고 지었는데.....어때?"
"....바다가 푸른색이야? 검은색이 아니고?"
"내가 온 세상에서 물을 푸른 색이였어."
"....엄청 예쁘겠다.."
"응, 엄청 예뻐...마치 너처럼."
선우는 그녀의 머릿결을 가벼이 어루만져주었다.
와락
"..나..있잖아..너무..너무..너무..너무..마음에..들어...너무 좋아아."
곧이어 그녀가 선우의 품에 와락 안겨들었다.
"다행이네, 마음에 든다니."
선우는 미소를 지었다.
".....고마워...내게..이름을 지어줘서..정말..고마워....존재를 증명해줘서..정말..고마워어.."
버려진 아이, 아니 이제 청하가 된 소녀는 넓다란 가슴팍을 눈물로 적시며 감사하고 또 감사하였다.
자신에게 이름을 지어준 선우에게
잊혀졌던 자신의 존재를 증명해준 소중한 친구에게
"친구잖아?"
"맞아, 우리 친구야...소중한 친구야...헤헤헤헤"
청하는 기쁘게 웃었다.
"내 이름은 청하야! 너는 이름이 뭐야?"
이내 청하는 선우를 바라보며 대뜸 물었다.
생각해보니 그의 이름을 묻지 않았다는 걸 떠올린 까닭이었다.
"선우, 장선우야. 잘부탁해. 청하."
"응응! 선우! 선우! 선우! 절대 잊지 않을게! 평생 기억할게!
청하는 해맑은 미소를 지었다.
************
"......그러니까..저분이...버려진 자식이라는 건가요?"
독고령은 손가락 끝으로 선우의 옆에 찰싹 붙어있는 소녀를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청하!!"
청하는 독고령의 말을 끝나기 언성을 높였다
"네에?"
"내 이름은 청하야! 버려진 자식이 아니라!"
이제 자신이 더 이상 버려진 자식 같은 게 아니였다.
청하라는 존재를 증명하는 호칭이 갖고 있는 것이다.
"아...네에, 청하님이시군요."
독고령은 떨떠름한 표정을 짓으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눈치껏 구색을 맞추는 게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 까닭이었다.
성숙했던 첫 인상과 달리 어린 소녀의 모습을 하고 있긴하지만 그녀가 자신이 알던 초월자라는 사실은 변함없었으니
"헤헤헤, 맞아, 나 청하야, 까먹으면 안돼~ 알았지?"
청하는 해맑게 웃으며 입을 떼었다.
"네에...절대 절대 잊지 않을게요."
독고령은 식은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말을 이었다.
해맑게 웃으며 말하긴 하지만 왠지 모를 압박감이 전신에 그대로 전해진 까닭이었다.
"헤헤헤헤, 착하다. 착해."
청하는 천천히 손을 뻗었다.
그리고 독고령을 귀엽다는듯 부드러이 쓰다듬기 시작하였다.
선우가 자신을 칭찬해줬던 것처럼
"............감사합니다."
하지만 독고령은 차마 그 손길을 거부할 수 없었다.
겉으로는 소녀에 불과하지만 그 정체가 신의 분신이라는 걸 너무나 잘알기에
"그만 쓰다듬어."
그 광경을 지켜보던 선우는 가벼이 웃으며 청하를 제지하였다.
"왜에에? 이렇게 칭찬하는 거 아니야?"
"그건 친한 사람들끼리 하는 거야....넌 쟤랑 초면이잖아?"
"초면일 때 그러면 안돼."
"왜에에?"
"불편해하거든."
선우는 담담한 어조로 입을 떼었다.
"우우웅, 그렇구나, 미안해. 내가 실수했어.."
청하는 수긍한듯 고개를 주억거리고는 독고령에게 곧바로 사과를 하였다.
그녀의 심기를 건드렸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 까닭이었다.
"전...전 괜찮아요, 개의치 않으셔도 돼요."
독고령은 다급히 손사래치기 시작하였다.
초월자의 사죄라니
황송해도 너무 황송한 일이었다.
"그럼 사과 받아주는 거지?"
"네에....그렇게 할게요."
"헤헤헤헤, 다행이다."
청하는 다시금 해맑은 미소를 지었다.
미움 받을 일이 없다는 생각을 하니 절로 기분이 좋아진 까닭이었다.
"저기....그런데.."
이내 잠자코 있던 독고령이 천천히 운을 떼기 시작하였다.
그러자 선우와 청하의 이목이 그녀에게 쏠리기 시작하였다.
"두분은 어떻게..그렇게 친해지신 거죠?....분명..죽일듯이 싸웠던 것 같은데.."
독고령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분명 천지를 뒤흔들 정도로 공방이 오고갔고
누가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의 치열한 격전을 벌이지 않았던가
그런데 어찌 이리 고목나무에 붙어있는 매미처럼
딱 붙어있을 정도로 친밀한 사이로 변모했다는 말인가
"친구 됐어!"
"친구됐거든."
두 사람은 말이 끝나기 무섭게 동시에 답을 하였다.
"......친구..인건가요?"
"응!"
"그래."
"..........납득이 되면서도...납득가지 않는..미묘한 이유네요."
독고령은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어떻게 친구가 되었는지 의문이 해소가 되지 않은 까닭이었다.
하지만 구태여 묻진 않았다.
친구라는 것에 이유를 다는 구질구질한 사람처럼 보이고 싶지 않은 까닭이었다.
".....저기...선우님...한가지만 더 질문드려도 될까요?"
"말해."
선우는 태연스레 답을 하였다.
질문 한두개 받아주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였다.
"........청하님과 친구가 되었는데....해신님은..어떻게 부르죠?"
그녀는 짐짓 심각한 표정을 지은 채 되물었다.
원래 계획은 버려진 자식을 죽여 해신의 이목을 끄는 것이었다.
버려진 자식
청하와 친구가 된 이상
완전히 물거품이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어떻게 하긴, 신전을 부숴야지."
선우는 대수롭지 않다는듯 입을 떼었다.
청하를 죽일 생각이 눈꼽만큼도 없는 이상
애초에 선택지는 하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런 일을 했다간......무고한 사람들에게 어마어마한 피해가..."
"그건 걱정 안해도 돼. 청하가 도와줄거거든. 그치?"
선우는 청하를 내려다보며 물었다.
"응! 내가 도와줄게!"
청하는 일말의 망설임없이 즉각적으로 답을 하였다.
생에 처음 갖게된
가장 소중한 친구의 부탁이었다.
눈알과 심장을 내어달라고해도
고민조차 하지 않으리라
".......어쩌시려구요?"
독고령은 이해가지 않는다는듯한 표정을 지은 채 되물었다.
어촌을 지탱하는 커다란 기둥이라고 볼 수 있는 신전
그걸 잃게될 어촌민들에게 청하가 뭘 어떻게 해줄 수 있다는 말인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어촌민들에게 해신을 영접할 기회를 줄 생각이야."
"해신을 영접할 기회를요?"
"그래, 해신이 눈앞에 있는 신전따위가 무너져내린다고 눈에 들어오기나 하겠어?"
"그러니까 해신을 어떻게.....설마...청하님에게!?"
순간 독고령은 눈을 동그렇게 뜬 채 되물었다.
짜맞춰진 조각이 머릿속에 맞춰진 까닭이었다.
"아아, 사칭시킬거다."
선우는 히죽거리며 입을 떼었다.
"그건 신성모독이예요!"
"잘 생각해봐, 사칭이라고는 하지만 청하는 해신을 본따서 만들었으니까, 반쯤은 해신이라해도 무방하지 않을까?"
"전혀 달라요!"
독고령은 필사적으로 딴지를 걸었다.
감히 신을 사칭하려들다니
대체 어디까지 막장으로 갈 생각이란 말인가
"달라도 상관없어, 어촌민들만 속이면 되니까."
"분명 해신이 노하실 거예요!"
"어차피 해신이랑은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어. 청하라는 이름을 지어주고 친구를 먹은 것부터가 선전포고라고."
선우는 태연스레 말을 이었다.
기록말살형에
모두에게 잊혀진 존재로 살아야할 청하에게
존재의 증명이라고 할 수 있는 이름을 지어주는 건 물론이고 친구가 되어주기까지 하였다.
이는 명백히 해신의 뜻을 거스르는 일이었다.
이제와서 사칭따위가 두려울 리 만무하였다.
"그러니까 토달지말고 제대로 협조해, 험한꼴 당하기 싫으면 말이야."
선우는 꽤나 위협적인 눈빛으로 그녀를 노려보며 으름장을 놓았다.
"............."
그리고 그 으름장에 독고령은 대꾸조차 할 수 없었다.
자신의 힘으로는 폭주하는 눈앞의 남자를 도저히 막을 수 없음을 인지한 까닭이었다.
무슨 말을 하든 되려 자신만 괴로워지리라
'......최악의 경우...저만큼은 살게해주세요..'
이내 독고령은 속으로 간절히 빌었다.
다 죽더라도 자신만큼은 정상참작하여 살려달라고 말이다.
그렇게 빌며 독고령은 다시금 길안내를 하기 시작하였다.
곧 무너져내릴 신전을 향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