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찌...어찌..이런 일이..."
독고령은 경악스러운듯 눈을 동그랗게 뜬 채 멍허니 응시하였다.
어촌
절대적인 신격을 지닌 초월자.
해신이 만들어낸 거대한 모형정원.
어촌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그를 거스를 수 없다.
생명체들은 물론이고 토지와 목재, 바닷물, 공기, 기운까지도
오직 창조주인 해신이 정해놓은 법도에 따라 순응할 뿐인 것이다.
그런데 눈앞에 남자는 그 법도에 명백히 위배되는 짓을 저질렀다.
해신의 허락도 없이 모형정원의 세계에 멋대로 검을 반입시켜버린 것이다.
어찌 경악을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어찌 쉽사리 믿을 수 있겠는가
".......초월자."
이내 독고령은 더듬거리는 목소리로 입을 떼었다.
초월.
말도 안되는 소리지만
가능성은 그뿐이었다.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어 신격을 얻은 초월자가 아니라면 이런 기적을 선보일 수 없을테니까.
"잘아네."
선우는 흡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역시 영 머리가 안돌아가는 여자는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해신에게 전해, 만약 떠나는 길을 막는다면 베어버리겠다고 말이야."
선우는 흑야를 슬며시 내밀며 입을 떼었다.
"해신을...협박할 생각인가요!?"
"그저 협조를 바랄 뿐이야. 물론 거절한다면 무력적인 강행이 뒤따를 수도 있겠지만."
"그게 협박이잖아요!"
"말이 안통하는데 어떻게 하겠어? 난 순응하면서 이딴 비린내 나는 곳에 평생 살고 싶은 생각따윈 없어."
선우는 태연스레 반박을 하였다.
주지육림이나 다름없는 삶을 구가하고 있는 자신이었다.
그런데 이런 어둡고 축축하고 물비린내나는 곳에 뭣하러 남아있는다는 말인가
"그러니까 제대로 전해, 뒈지기 싫으면 처신 똑바로 하라고 말이야."
".....못해요."
"독고령이, 말대꾸?"
선우는 언짢은듯 눈살을 살짝 찌푸린 채 입을 떼었다.
까라면 깔 것이지
어디 감히 말대꾸를 한다는 말인가
"아무래도 보지털을 좀 뜯겨봐야 정신을 차리겠네."
왼손으로 움켜쥐는듯한 시늉을 하며 입을 떼었다.
"잠깐만요!..말대꾸가 아니에요!...그저 말을 전하는 게 불가능한 일이라는 말을 하고 싶은 것 뿐이라구요!"
독고령은 다급히 언성을 높이기 시작하였다.
이대로 가다간 강제로 제모가 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이 든 까닭이었다.
"말을 전하게 불가능하다고?"
"불가능해요!"
독고령을 즉각적으로 답을 하였다.
한치의 망설임조차 없이
"어째서지? 넌 해신이 직접 선택한 신녀가 아니던가?"
선우는 모르겠다는듯한 표정을 지은 채 되물었다.
여러모로 사짜 냄새가 농후하긴하지만 그녀는 엄연히 해신으로부터 인정받은 해신교의 신녀였다.
신에게 알현을 허락받은 유일한 인간이라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런 그녀가 말을 전하는 게 불가능하다니?
대체 저게 무슨 소리란 말인가
"....신과 영접이 가능한 유일한 존재라고는 하지만 전 그저 신내림만 전할 뿐, 알현을 하거나 대화를 하는 건 허락되지 않아요......다른 인간들이나 어인들에 비해 특별하다고는 하지만 해신의 입장에선 저 또한 하찮기 그지없는 인간에 불과하니까요."
독고령은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해신은 무척이나 권위적이고 엄격한 존재였다.
신녀라고는 하지만 하찮기 그지없는 인간따위에게 알현의 기회를 줄 리 만무하였다.
"말을 전할 수 없어요.....죄송해요."
"흐음...곤란하네, 설마 선전포고를 전달할 수 없을 줄이야."
선우는 꽤나 곤란하다는듯한 표정을 지었다.
호기롭게 검을 꺼내들고 선전포고를 하였건만
이게 전해질 수 없다니
참으로 곤란하기 그지없는 일이 아닐 수가 없었다.
말을 통하고 반응을 보여야 협상을 하던 협박을 하던 할 것이 아니던가
이건 뭐 아예 나가리나 다름이 없었다.
"...해신이 어촌에 강림했던 적은 지금껏 단 한번도 없던가?"
"지금껏.....한번도 없었어요....해신 입장에선 잘굴러가는 하위 세계에 구태여 내려올 필요성을 못 느꼈을테니까요."
"....말을 전할 수도 없고 만날 가능성도 희박하기 그지없다는 말이군."
".....아쉽지만 그래요."
독고령은 고개를 주억거리며 입을 떼었다.
"그렇다면 어쩔 수 없네."
선우는 흑야를 높게 치켜들기 시작하였다.
저 드높은 천장을 향해서
"지금...뭐하시는 건가요!?"
그 광경에 화들짝 놀란 독고령이 다급히 언성을 높였다.
저게 별안간 무슨 짓이란 말인가
"잘 굴러가고 있으니까, 강림하지 않는거라면 못 굴러가게 만들면 되는 거 아닐까?"
선우는 악의적인 미소를 띄운 채 입을 떼었다.
"설마.....!?"
"일단 신전부터 부수고 시작하지."
우우우우우웅
선우는 흑야에 내력을 집중시키기 시작하였다.
"잠깐..잠깐만요!"
그떄 독고령이 다급히 선우의 바짓가랑이를 붙잡기 시작하였다.
"놔아, 그러다 다친다."
선우는 점잖게 타이르듯 입을 떼었다
어서 비키라는 것처럼 말이다.
"부디 다시 한번...다시 한번 생각해주세요.."
독고령은 간곡히 애원하기 시작하였다.
"신전은 어촌의 주민들이 정신적인 쉼터같은 곳이예요! 이곳을 부순다면 다들 심각한 정신적 외상을 입게 될 거예요! 우울증에 걸려 모조리 자살할지도 모른다구요!"
어촌 주민들에게 있어
신전은 비단 신을 모시는 곳만이 아니였다.
언제나 변함없이 자리를 지켜온 기둥이자 정신적인 쉼터와도 같은 곳이었다.
그런 신전을 부순다면 모두 혼란과 절망에 빠져들게 될 것이다.
만에하나 신전 붕괴의 여파로 신도들이 죽어나가게 된다면
독고령 또한 책임을 피해가지 못할 것이다.
그녀는 신녀로서 신전을 지킬 의무를 가진 존재였으니.
"하지만 다른 방법이 없잖아? 관심을 가질 때까지 기다릴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들의 정신적인 쉼터를 박살내버리는 건 선우 또한 마뜩치 않지만 어쩔 수 없었다.
해신의 관심을 끌고 직접 마주하지 않는다면 평생 이곳에서 빠져나가지 못할테니
"신전은 나중에 멋들어지게 하나 지어줄게."
선우는 다시금 흑야를 하늘높이 들어올려다.
그리고 검끝에 온신경을 집중을 하기 시작하였다.
우우우우우우우우웅
그러자 검끝에서 극한의 압축된 강맹한 기운이 쉴새없이 일렁이기 시작하였다.
"잠깐! 잠깐만요! 다른 방법이 있어요! 신전을 부수지 않아도 해신의 이목을 끌 수 있는 방법이 있다구요!"
그 광경을 지켜보던 독고령은 그의 바짓가랑이를 더욱더 강하게 움켜쥔 채 다급히 소리를 내지르기 시작하였다.
"다른 방법?"
선우는 잠시 멈칫하고는 그녀를 내려다보며 되물었다.
"....네에, 그러니까 제발 신전을 부수지 말아주세요...."
"거짓말은 아니겠지?"
선우는 의심스럽다는듯한 표정을 지은 채 되물었다.
"제가 어떻게 당신에게 거짓말을 하겠어요? 무슨 체벌을 가할 줄 알고......."
그간 겪었던 수치스럽기 그지없는 조련을 통해 선우의 성격이 얼마나 지랄맞고 변태적인지 너무나 잘파악한 그녀였다.
그런데 어찌 섣불리 거짓말을 할 수 있겠는가
무슨 꼴을 당하려고
"좋아, 믿어주지."
선우는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눈빛을 보면 거짓은 아닌 것 같았기에 일단 들어볼 가치는 있어보였다.
"그럼 말해봐, 어떻게 해신의 이목을 끌 수 있다는 거지."
선우는 차분히 가라앉은 눈빛으로 그녀를 응시하며 물었다.
이목을 끌 수 있는 구체적인 방안에서 대해서
"......해신의 자식을 죽인다면...해신의 이목을 끌 수 있을 거예요."
"해신의 자식? 이곳에 그런 존재가 있던가?"
선우는 의문 어린 표정을 지은 채 되물었다.
".....네에, 비록 비참히 버려지긴 했지만.....이 세상에는 엄연히 해신에게 신성을 받은 이가 존재하고 있어요."
"버려졌다고? 그게 무슨 말이지?"
선우는 의혹이 더욱더 짙어지기 시작하였다.
말을 할 수록 의문이 더욱더 중첩되는 기분이 든 까닭이었다.
"......얘기가 길어지긴 하겠지만...당신에게는..전부 말하는 편이 나을 것 같네요.......후우우.."
그 눈빛을 마주한 독고령은 가벼이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부터 할 이야기는 오직 신녀만이 알고 있는 비사 중에 비사였다.
말을 꺼내는데 상당한 각오가 필요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아주 오래전....처음 이세상이 창조되었을 때, 해신海神은 자신을 그대로 본따 만든 분신을 만들고자했어요, 바쁜 자신을 대신하여 세상을 조율해줄 존재가 필요하였기 때문이었죠."
이내 독고령은 차분한 어조로 말을 잇기 시작하였다.
"스스로 갈비뼈를 뜯어내고 형태를 잡고 생명과 권능을 불어넣어 한명의 자식을 만들어냈죠.......하지만...무슨 이유에서인지...태어난 자식은 해신이 바라던 조율자로서 권능을 제대로 이어받지 못했어요.....소위 말하는 실패작이었던 셈이죠."
"실패작...."
"...해신은 스스로 실패작을 만들어냈다는 사실에 크게 분노했어요........절대적인 신성에 금이 간다고 여겼기 때문이었죠....때문에 실패작을 만들어냈다는 사실 자체를 은폐하고자 했어요......."
"은폐라면?"
"기록말살형."
독고령은 담담한 표정을 지은 채 입을 떼었다.
"해신은 이 세계에 존재하는 자식에 대한 모든 기록들을 전부 지워버렸어요. 마치 처음부터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말이에요."
".....버려졌군."
"맞아요....해신의 자식은 무참히 버려졌어요.....제 어미에게 이름조차 제대로 받지 못한 채로.."
"...참 끔찍한 새끼네...제 자식을 그따위로 버리다니 말이야."
선우는 눈살을 살짝 찌푸린 채 입을 떼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자식들의 아비로서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어찌 실패했다하여 제 자식을 그리 무참히 버릴 수 있다는 말인가
참으로 끔찍한 인성이 아닐 수 없었다.
"말했다시피 해신은 너무나 권위적이면서도 엄격한 존재예요, 그렇기에 실패작따위는 용납할 수 없었죠...스스로 낳은 자식이라고 해도 말이에요."
".....그렇게 비참하게 만들바엔 차라리 죽이는 게 낫지 않겠어?"
"해신은 버려진 자식의 존재를 반면교사로 삼았어요...두고두고 기억해내며...다시는 실패를 잊지 않도록 말이에요."
"......어미가 아니라 원수라도 그리 하진 않겠다."
"......인간의 관점으로 본다면 신을 평생 이해할 순 없을거예요."
그녀 또한 이해가 안되는 건 마찬가지였지만 구태애 머리 아프게 파고들진 않았다.
아무리 고민해도 신의 행동을 이해할 수 있을 리 만무할테니
"이야기를 듣고보니 왜 네가 버려진 자식을 죽이라는 지 알겠군.....그런 비사가 품고 있는 자식을 죽인다면 관심을 갖기 싫어도 갖을 수 밖에 없을테니까 말이야."
선우는 차분한 어조로 말을 잇기 시작하였다.
반면교사로 삼기위해
구태여 살려둔 치부였다.
그런 존재를 외인이 죽인다면 관심을 가지고 싶어도 가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해신에 입장에선 명백한 신의 의지를 대놓고 거스른 불경한 자일 수밖에 없을테니
"........아마, 신전 붕괴 못지 않은 파급력을 가지게 될 거예요..."
어찌보면 신전 붕괴와 동급의 분노를 사게 될지도 모를 일이었다.
두 행위 모두 해신의 심기를 대놓고 자극하는 행위였으니
"확실히 그렇겠지...그런데 영 내키지 않네."
"........어째서죠?"
"불쌍해서. 실패작이라고 버려진 녀석이 어미때문에 죽음까지 맞이한다면 얼마나 불쌍하겠어?"
"......버려진 자식은 어미인 해신에 의해 죽음보다 비참한 삶을 영위하고 있어요...차라리 당신의 손으로 안식을 주는 게 더 나은 삶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거예요."
독고령은 필사적으로 선우를 설득하기 시작하였다.
버려진 자식에게 더 감정이입을 했다간 그냥 신전을 무너뜨려버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 까닭이었다.
"그런걸까?"
"기록말살형에 처해진 버려진 자식을 기억하는 이는 이 세상에 아무도 없어요. 영겁에 가까운 세월동안 완전히 잊혀진 채 홀로 죽지 못한 삶을 살아온거죠.....그런 삶이라면 차라리 영원한 안식을 맞이하는 게 행복하지 않겠어요?"
".......확실히 그럴지도 모르겠네."
선우는 고개를 주억거리며 입을 떼었다.
확실히 틀린 말이 아니란 생각이 든 까닭이었다.
'.....됐어!'
그 모습에 독고령은 쾌재를 불렀다.
다행히도 신전이 무너져내릴 일은 없을듯 싶었다.
만일의 경우 책임질 일따윈 발생하지 않는 것이다.
어찌 기쁘지 않을 수 있겠는가
"하지만 혹시 모르니까, 버려진 자식에게 직접 물어보도록 하지."
".....어떤걸요?"
"죽고 싶은지 아닌지 말이야."
".......만약 죽기 싫다면 어쩌시려구요?"
"말해 뭐해, 신전을 무너뜨려야지. 건축물따위가 목숨을 대신할 수 있을 리 없잖아?"
선우는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신전을 무너뜨리면 어촌 주민들이 정신적 외상에.."
"건물 하나 무너진다고 걸릴 우울증을 내가 왜 배려해줘? 다시 지으라고 하던가"
선우는 태연스레 대꾸 하였다.
생각해보면 사람 잡아먹는 광신도 새끼들을 배려해줄 의무 따윈 없었다.
그냥 좆대로 해도 비난할 이는 아무도 없는 것이다.
"......그치만.."
"토달지마, 당장 부숴버리기 전에."
"............"
독고령은 그대로 입을 다물었다.
최악의 상황은 웬만하면 면하고 싶던 까닭이었다.
"좋아, 그럼 이제 말해봐, 버려진 자식은 어디에 있지?"
선우는 고요하기 그지없는 눈빛으로 독고령을 마주하며 입을 떼었다.
"..........공허의 바다.....해신의 버려진 자식은 그곳에 있어요."
"듣는 것만으로도 음울하기 짝이 없는 이름이네."
선우는 혀를 가벼이 찼다.
안그래도 우울한 비사를 가진 녀석이 머무르는 곳도 참으로 음울하기 그지없었다.
"안내해."
퍼어억
선우는 독고령의 풍만한 엉덩이를 발로 차며 말을 이었다.
"아으윽......말로해요."
독고령은 원망 가득한 눈빛으로 선우를 살짝 흘기며 걷어차인 커다란 엉덩이 매만지기 시작하였다.
정말 무도함이 하늘에 치솟을 정도로 끔찍할 남자가 아닐 수 없었다.
"눈 예쁘게 떠라, 더 맞기 싫으면."
"......따라오세요."
하지만 이내 독고령은 흘기던 눈을 내리깔며 걸음을 재촉하기 시작하였다.
이러니 저러니해도 갑을관계는 명확하였다.
잠자코 수긍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스르르륵
선우는 무형잠영술로 신형을 감춘 채 독고령의 뒤를 따르기 시작하였다.
그녀의 실룩이는 엉덩이에 집중을 한 채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