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놈은 누구지?"
신녀는 싸늘한 눈빛을 반짝이며 물었다.
"장선우다, 바깥에서 왔지."
"오늘 어촌에 당도했다는 외지인이 당신이로군. 사람을 찾으러 들어왔다지?"
신녀는 눈빛이 가늘게 좁혀지기 시작하였다.
"귀가 밝네."
촌장에게만 넌지시 말했던 사실이었다.
그런데 설마 그런 자잘한 것까지 이미 알고 있을 줄이야.
"이곳에 본 신녀의 귀가 닿지 않는 곳은 없다.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지."
"과연 신녀다운 대단한 영향력이야. 마을 전체를 속속 꿰뚫는 정보망을 구축해놓을 줄이야."
선우는 태연자약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역시 사이비 종교 성녀 경력은 어디 안가나봐?"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군, 사이비 종교라니?"
신녀는 모르겠다는듯한 표정을 지은 채 입을 떼었다.
"시치미 뗄 것 없어, 네가 마교 성녀인 독고령이라는 건 이미 알고 있으니까."
"누구랑 헷깔린 건지는 모르겠지만 본녀는 해신교海神敎의 신녀다. 이는 제가 날때부터 정해진 진리이지."
신녀는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마교의 성녀따위가 아니란 말이다."
"하하하하하하."
그 말에 선우는 웃음을 터트렸다.
태연히 시치미를 떼는 모습이 꽤나 우습게 느껴진 까닭이었다.
독고령이라는 이름을 입에 담았을 때
그녀의 동공은 마치 지진이 난것처럼 흔들렸다.
더불어 심장 고동과 숨결은 가빠졌고 몸을 흠칫 떨기까지 하였다.
평정심조차 제대로 유지하지 못한 주제에
이제와서 시치미를 뚝 떼니 그저 우스울 수밖에 없었다.
"뭐가 그리 우습지?"
그 웃음에 신녀는 불쾌한듯 눈살을 찌푸렸다.
"눈에 뻔히 보이는 거짓말을 하는 게 우습네. 내가 그걸 믿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도 귀엽고."
"믿고 안믿고는 네놈의 자유다, 내게 당신을 설득할 필요따위는 없지."
신녀는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지금 중요한 건 당신이 금지禁地에 멋대로 발을 들여놓았다는 사실이다. 촌장에게 금기에 대해 분명 전해들었을 텐데?"
곧이어 신녀는 싸늘한 눈빛으로 선우를 노려보기 시작하였다.
"아아, 확실히 전해 듣긴했다, 신전엔 인간의 출입을 금한다고 했던가?"
촌장은 분명 입을 찢어버린다고 했었다.
"그렇다, 신이 기거하는 이곳에선 원죄를 지니고 있는 인간의 출입을 철저히 금하고 있다.. 그런데 네놈은 그 규율을 멋대로 어긴 것이다. 이는 백번죽여도 모자랄 중죄이다.."
"그래서 죽일 건가?"
"이제 막 입촌한 외지인이라는 것을 감안하여 본 신녀가 특별히 은혜를 베풀어주도록 하겠다. 만약 이대로 조용히 돌아간다면 더는 문제삼지 않도록 하지."
신녀는 선심쓰듯 말을 이었다.
"눈물겨운 은혜로군."
"은혜에 대한 감동의 눈물은 돌아가서 흘리도록 하거라, 원죄를 지닌 인간의 눈물로 신전을 더럽히고 싶지 않으니."
"그런데 아무래도 그 은혜를 받을 수는 없을 것 같네."
"....뭐라?"
"애초에 나 혼자 돌아갈 생각따윈 없거든."
선우는 담담한 어조로 말을 내뱉었다.
"난 너와 함께 갈 것이다. 독고령."
"...권주를 마다하고 벌주를 택할 셈인가?"
신녀는 눈살을 살짝 찌푸린 채 입을 떼었다.
은혜를 거부하는 그의 태도에 심기가 거슬린 까닭이었다.
"혼자 가야하는 권주라면 몇 번이고 마다하지."
"고집이 세군."
"원래 내가 고집불통이긴 해."
선우는 실실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 모양새가 여유로우면서도 얄밉기 그지없었다.
"그리 말한다면 본녀 또한 어쩔 수 없군."
신녀는 가느다란 손을 앞쪽으로 천천히 뻗었다.
[옭아매라.]
그리고 가벼이 내뱉었다.
휘이이이이이잉
그 순간 이변이 일어났다.
신전 주위를 부유하던 음험한 기운들이 모여들더니 선우의 전신을 단단히 옭아매기 시작한 것이다.
"....이건?"
선우는 살짝 놀란듯 눈을 치켜떴다.
강하게 전신을 옥죄는 음험한 기운에 놀라움을 느낀 까닭이었다.
설마 단전을 거치지 않은 기운따위가 곧바로 물리력을 행사할 줄이야.
"해신께 하사받은 권능이다."
신녀는 여유로운 미소를 지은 채 입을 떼었다.
옴짝달짝 못하는 선우의 모습에 통쾌함을 느낀 까닭이었다.
".....왜 여유로운가 했더니, 나름 믿는 구석이 있었나보네."
전신이 묶여진 선우는 이해했다는듯 입을 떼었다.
무방비한 상태에서 뒤를 잡혔음에도 그녀는 한없이 여유로웠다.
소리를 질러 광신도들을 부르지도 않았고
서둘러 옷을 챙겨입을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이제보니 이유가 있는 여유로움이었던듯 하였다.
이런 이질적인 힘을 사용하는 걸 보면 말이다.
"아무렴, 방비도 없이 침입자 앞에서 여유를 부렸을까?"
"역시 듣던대로 음험하네."
과연 당진설에게 전해들었던 그대로의 모습이었다.
"누구에게 뭘 어떻게 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난 독고령이 아니다, 그저 해신을 모시는 신녀일 뿐이지."
"진설이가 안부 전해달라더라."
순간 신녀의 이맛살이 사정없이 찌푸려지기 시작하였다.
마치 짜증과 분노가 머리끝까지 차오른 것처럼
"표정 좀 관리해, 너무 티나잖아?"
그 모습에 선우는 히죽거리며 입을 떼었다.
사정없이 일그러지는 그녀의 모습이 꽤나 우습게 느껴진 까닭이었다.
"......모르겠군....진설이라는 계집이..누군지"
그 말에 애써 신색을 회복한 신녀는 천천히 입을 떼었다.
"계집이라고 안했는데?"
선우는 히죽거리며 입을 떼었다.
일그러지는 가면이 꽤나 재밌게 느껴진 까닭이었다.
".....보통 그런 이름을 남자가 쓰진 않지.."
"추한 변명처럼 들리는 건 내 착각이려나?"
선우는 조롱기 어린 어투로 말을 이었다.
화아아아악
그 말에 신녀의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오르기 시작하였다.
마치 모욕을 당한 사람처럼
"......쓸데없는 말은 집어치워라! 네놈의 상황이 어떤지 모르는 것인가? 네놈은 금기를 어기고 내게 사로잡혔다! 여유롭게 지껄일 상황이 아니란 말이다!"
곧이어 신녀는 언성을 높이며 고함을 내지르기 시작하였다.
저 여유
너무나 태평한 태도가 너무나 마음에 들지 않았다.
지금이 어떤 상황이란 말인가
권능에 의해 전신을 옴싹달싹 못하는 상황이 아니던가
그런데 어찌 저리도 태평히 여유를 부린다는 말인가
"본 신녀가 마음만 먹으면 당장에라도 네놈의 명줄을 끊어버릴 수 있습니다. 그걸 원하는 것이냐?"
이곳에서 자신의 언령言令은 한계가 없었다
무엇이든 내뱉은대로 이뤄질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옭아맨 저놈의 명줄을 끊는 일이야 손뒤집는 것만큼 쉬운 일이라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해봐."
"뭐라!!?"
"할 수 있으면 어디 한번 해보라고. 물론 통하진 않겠지만."
선우는 태연자약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대신 실패한다면 상응한 대가를 치뤄야할 거야."
그리고 오만한 미소를 짓기 시작하였다.
명백히 그녀를 무시하는 것처럼 말이다.
"이런 오만방자한!"
우우우우우우웅
곧이어 음험한 기운들이 신녀의 가녀린 손 주위로 맹렬히 모여들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이내 그녀의 손에는 칠흑과도 같은 나선의 송곳이 자리를 잡았다.
쇄애애애애애액
그녀는 망설임없이 송곳을 내질렀다.
저 건방진 외지인에게 마땅한 심판을 내리기 위해
그리고 선우는 그 광경을 그저 가만히 지켜보았다.
날아드는 나선의 송곳이 자신의 가슴에 닿을 때까지
콰아아아앙
이내 송곳과 가슴팍이 정면으로 충돌하였고 그 순간 충격파와 함께 굉음성이 퍼지기 시작하였다.
"아으윽!"
콰당
그와 함께 신녀가 옅은 신음을 흘리며 그대로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다.
충돌로부터 전해져온 충격파를 도저히 견딜 수 없던 까닭이었다.
"말했잖아, 통하지 않는다고."
선우는 바닥에 나자빠진 신녀를 바라보며 입을 떼었다.
".....어떻게..?"
신녀는 이해할 수 없다는듯한 표정을 지었다.
분명 나선의 송곳이 심장을 가슴을 직격하였다.
원래라면 살가죽을 뚫고 근육을 헤집으며 심장에 닿아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어찌 쇳덩이와 충돌한 것과 같은 충격파가 그대로 전해질 수 있다는 말인가
"내 육신을 꿰뚫기엔 네 격이 너무 떨어지거든."
초월하여 신격을 획득한 이후 금강불괴보다 단단한 육신을 이룩한 자신이었다.
깨달음조차 없는 힘으로 상처를 입힐 수 있을 리 만무하였다.
"....웃기지마! 그저 잠시 방심한 것 뿐이야! 제대로 한다면.."
"몇 번을 해도 똑같아, 네가 가진 격으로는 말이야."
선우는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물론 더는 기회도 없을 거고 말야."
선우는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그 순간 그를 옭아매고 있던 기운들이 일시에 해소가 되었다.
마치 처음부터 존재치 않았던 것처럼
"아..아니!?'
그 광경에 신녀의 눈이 휘둥그레지기 시작하였다.
눈앞에 광경을 도저히 믿을 수 없던 까닭이었다.
어찌 저리도 가벼이 자신의 권능을 떨처낸다는 말인가
저벅 저벅 저벅
그렇게 넋놓고 있던 사이
그는 지체없이 걸음을 옮기고 또 옮겼다.
금방에라도 자신에게 다가올 거처럼
[멈춰라!] [멈춰라!] [멈춰라!]
신녀는 몇번이고 몇번이고 언령을 외쳤다.
다가오는 그를 어떻게든 멈춰서기 위해
하지만 아무리 용을 써도 소용없는 일이었다.
음험한 기운들이 아무리 강하게 전신을 옥죄어도 너무나 쉽사리 기운들을 떨쳐버린 까닭이었다.
마치 연기를 흩어버린 것처럼 말이다.
"얌전히 당해주는 건 한번까지야."
어느새 코앞까지 도달한 남자가 입을 떼었다.
무척이나 사악한 미소를 지은 채 말이다.
".......이단! 이단이다! 이단이 신성한 곳을 침범하였다!!!"
신녀는 다급히 언성을 높이며 도움을 청하기 시작하였다.
혼자선 감당할 수 없는 존재라는 걸 인지할 수 있던 까닭이었다.
"이단! 이단이란 말이다!!"
하지만 아무리 소리를 질러도 달려오는 이는 하나도 없었다.
그저 공허한 울림만이 욕탕을 가득 채울 뿐인 것이다.
'대체..어째서!?'
의문이 들었다.
어인들의 청각은 인간의 수십배에 다다랐다.
천리밖에서 들려오는 잎사귀 떨어지는 소리조차 들을 정도로 잘발달된 청력을 갖춘 존재인 것이다.
그런데 어찌 달려오지 않는다는 말인가
어찌 자신의 청을 무시한다는 말인가
"소리 질러도 소용없어. 어차피 안들릴테니까."
그때 선우는 히죽거리며 입을 떼었다.
"대체...무슨 짓을 한 것이냐!"
"욕탕 전체에 기막을 깔아뒀거든."
"말도 안되는 소리! 이곳에선 내력을 사용할 수 없다! 그런데 기막이라니!"
신녀는 말도 안된다는듯한 표정을 지은 채 언성을 높였다.
해신의 영역인 어촌에선 현계의 기운따위는 결코 사용할 수 없었다.
해신이 직접 정한 법도에 위배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찌 내력을 이용해 기막을 펼칠 수 있다는 말인가
"되던데?"
선우는 대수롭지 않게 답하였다.
자연기를 끌어올 수는 없지만 품고 있는 기운을 사용하는 건 충분히 가능하였다.
"그..그런 말도 안되는.."
신녀는 여전히 믿기지 않는다는듯한 표정을 지은 채 읊조리기 시작하였다.
도저히 믿을 수 없던 까닭이었다.
"그러니까 목 아프게 소리지르지말고, 얌전히 있으라고."
"...대체...내게 뭘할 생각이지?"
"상응한 대가를 받을 생각이다.."
"대가?"
"내 목숨을 노린 대가 말이야."
선우는 담담히 말을 이었다.
"본 신녀를 죽일 셈인가?"
신녀는 떨리는 눈동자로 그를 응시하며 입을 떼었다.
"걱정마, 죽이거나 그러진 않을테니까."
선우는 손사래치며 말을 이었다.
죽이다니 말도안되는 일이었다.
현대 회귀에 실마리를 지니고 있는 그녀를 어찌 죽이겠는가
"대신 거짓말을 하는 버릇만 살짝 고쳐주지."
"버릇을 고친다? 본녀의 버릇을?"
그 말에 신녀는 어이없다는듯한 표정을 지었다.
나이도 한참 어린 놈이
감히 누구의 버릇을 고친다는 말인가
'첫사랑만 성공했어도 너같은 아들이 있었을 것이다.'
한껏 코웃음을 치며 한마디 쏘아부치고 싶었지만 신녀는 가만히 입을 다물었다
구태여 저 무도한 놈을 자극할 필요는 없었다.
"왜, 못할 것 같아?
"어디 고칠 수 있다면 마음대로 해보거라. 본녀는 피하지도 숨지도 빌지도 않을테니"
그녀는 당당히 언성을 높였다.
'그래, 장단을 맞춰주다 기회를 엿보자.'
어떤 식으로 버릇을 고칠 생각인지는 모르겠지만 어느정도 장단을 맞춰줄 요량이었다.
빠져나가 도움을 청할 기회를 엿보기 위해
"시원스러워서 마음에 드네."
그 말에 선우는 흡족스러운듯 미소를 지었다.
그다음 신을 벗고 천천히 맨발을 들어올리기 시작하였다.
"발은 왜 들어올리는 거지?"
그녀는 의아한듯 되물었다.
대체 뭘하려고
신까지 벗어가며 발을 들어올린단 말인가
"이렇게 하려고."
선우는 싱긋 미소 지었다.
꽈아아아악
그리고 적나라하게 드러나있는 그녀의 아랫도리를 망설임없이 짓밟아버렸다.
"아아아아악!!!...이..이게 무슨.."
"마침 밟기 좋게 벌려져있더라고."
보지를 짓밟은 선우는 히죽거리며 입을 떼었다.
꾸우욱 꾸우욱 꾸우욱
그리고 더욱더 힘을 주어 연신 비비기 시작하였다.
"아아악!...그만..그만..그마아아안!!!!"
곧이어 신녀의 비명성이 욕탕에 울리기 시작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