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협지 안으로 들어와버렸다-1249화 (1,250/1,419)

'마물?!'

선우는 침중한 표정을 지은 채 물고기와 양서류를 섞은듯한 괴인들을 노려보았다.

적의를 보이고 달려드는 즉시 참살할 요량이었다.

그들은 그런 선우를 찬찬히 훑어보기 시작하였다.

마치 관찰을 하는 것처럼

그렇게 얼마나 서로를 응시하였을까

-아우욱 우우욱 우욱!

-우우욱 아우우욱 우욱!

곧이어 괴인들이 언성을 높이기 시작하였다..

저들만 알아들을 수 있는 괴이한 언어를 사용하면서

까닥 까닥

그리고 곧이어 연신 손짓과 발짓을 하였다.

마치 자신들을 따라오라는듯이

그다음 일제히 몸을 돌려 안쪽으로 걸어들어가기 시작하였다.

일말의 망설임없이 말이다.

'...어쩐다.'

일단 적의가 느껴지진 않았다.

자신을 해칠 의도는 없다는 증거일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생각없이 따라가기엔 뭔가 찝찝함이 들었다.

대체 뭘 믿고 외지에서 온 자신을 데려간다는 말인가

'.......혹시 그전에도 이곳으로 들어왔던 인간이 있던 건가?'

꽤 설득력 있는 가설이었다.

인간에게 익숙해진 것이라면 거부감이 크진 않을테니

'잘하면 독고령이 살아있을지도 모르겠어.'

선우는 눈을 빛냈다.

뜻하지 않게 희망이 생겼다.

검은 호수 밑 숨을 쉴 수 있는 공간과 우호적인 괴인들 태도를 미루어보면 독고령의 생존 가능성 또한 충분히 염두해볼 만하였으니

'.....일단 따라가보자.'

어차피 이곳에 홀로 있어봤자 할 수 있는 것 따윈 없었다.

차라리 그들을 따라 이곳에 대해 좀더 알아보는 게 나으리라

저벅 저벅 저벅

그렇게 선우는 괴인들의 뒤를 조심스레 따라가기 시작하였다.

기대감과 흥분을 간직한 채로 말이다.

.

.

.

.

.

.

철퍽 철퍽 철퍽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평평했던 대지는 물기로 질척거리는 흙더미로 변하기 시작하였다.

더불어 음산한 기운과 비린내가 점점 짙어지기 시작하였다.

불쾌감마저 느껴질 정도로 말이다.

'.....얼마나 가야하는 거지?'

꽤 깊은 곳까지 들어왔건만 좀처럼 끝이 보이지 않았다.

동굴의 깊이가 얼마나 깊은지

감조차 잡히지 않았다.

'저런 물갈퀴 같은 발로 잘도 걸어다니네.'

앞서가는 괴인들이 꽤나 대단하게 보였다.

저딴 물갈퀴로 이런 먼거리를 태연히 걸어다는 걸 보면 말이다.

그렇게 실없는 생각을 하던 차

저 멀리서 빛이 새어나오기 시작하였다.

그 순간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동굴의 끝자락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더욱더 빠르게 걸음을 서둘렀다.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이내 선우는 빛이 새어나오는 곳에 완전히 도달하게 되었다.

'......여긴?'

그 순간 눈을 동그랗게 뜰 수밖에 없었다.

꽤나 놀라운 광경이 눈앞에 펼쳐진 까닭이었다.

넓은 부지

그 안을 빽빽하게 채우고 있는 수많은 썩은 판자집들

중앙에 위치한 거대한 제단.

건물들사이 사시를 자유로이 오가고 있는 인간들

'마을!?'

그렇다.

괴인들이 안내한 곳은 마을이었다.

비록 황폐함과 음산함으로 가득 차 있긴 하지만

자신과 같은 인간들이 살고있는 마을

'대체..이게...'

선우는 믿기지 않는다는듯한 표정을 지었다.

이런 곳에 인간의 마을이 존재할 수 있다는 말인가

"이거 외지에서 귀한 손님이 오셨구만, 그래."

귓가로 늙그수레한 목소리가 파고들기 시작하였다.

시선을 돌리니 눈이 튀어나오고 마빡이 넓은 노인이 기분 나쁜 미소를 흘리며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당신은...누구십니까?"

선우는 긴장 어린 표정을 지은 채 되물었다.

"끌끌, 난 서량일세, 이 어촌의 촌장이지."

"......어촌? 이곳이 어촌이란 말씀입니까?"

"물고기를 잡고 주식으로 삼으니 어촌이라고 볼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끌끌"

"....동굴 속에 어촌이라니...모순적이군요."

"세상사가 전부 순리대로 흐르는 건 아니니까."

"....궁금한 게 많습니다."

"그렇겠지, 이곳에 처음 온 이들은 전부 그리 했으니."

촌장은 익숙하다는듯한 표정을 지은 채 입을 떼었다.

"역시 제가 처음이 아니군요."

"아무래도 얘기가 길어질 것 같군, 그래."

촌장은 히죽거리며 말을 이었다.

"일단 날 따라오게, 차라도 한잔 내어주겠네."

그리고 몸을 돌려 걸음을 옮기기 시작하였다.

선우는 그런 촌장의 뒤를 천천히 따라갔다.

의문 가득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이다.

**************

"이 마을은 이름은 진로眞路일세. 길을 잃은 자들이 설립한 어촌이지."

"길을 잃은 자들이라하면.....설마?"

"모두 자네처럼 이곳에 끌려온 외지인들일세."

촌장은 고개를 살짝 주억거리며 입을 떼었다.

".....허어."

선우는 헛웃음을 내뱉었다.

자신이 처음이 아니란 건 알고 있었지만 설마하니 마을을 이룰 정도로 많은 이들이 검은 호수에 몸을 날렸을 줄은 전혀 예상치 못한 까닭이었다.

"반응을 보니 꽤나 놀란듯하구먼."

촌장은 히죽거리며 말을 이었다.

"솔직히 그렇습니다. 마을을 이룰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단장애에 몸을 내던졌을 줄은 상상도 못했으니까요. "

"이곳으로 통하는 문은 단장애 밑에만 있는 게 아닐세. 수많은 곳에 각각 다른 형태로 존재하고 있지. 그러니 마을을 이루는 것도 불가능한 일은 아닐세, 매해 수많은 이들이 이곳으로 유입되니."

촌장은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참으로 신비로운 곳이군요. 이곳은."

알 수는 없지만 신기한 힘이 작용하는 곳인듯 하였다.

수많은 곳에 유입통로를 만들놓은 걸 보면 말이다.

"끌끌, 축복받은 곳이지."

"....그 물고기와 양서류를 닮은듯한 괴인들은 무엇입니까?"

"그들은 태초부터 이곳에 살고 있던 주민들일세."

"태초부터..말입니까?"

"그들이 조상들께 흔쾌히 땅을 내어준 덕에 이렇듯 마을을 이룩하며 살 수 있었지."

".....생긴 거와는 달리 상냥한 분들이군요."

"생긴 거만 보면 대량햑살에 더 어울리는 놈들이긴하지. 홀홀"

촌장은 재밌다는듯한 웃음을 터트리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외견만 보고 속단해선 안되네, 보기완 달리 무척이나 따스한 놈들이니."

"그렇습니까?"

"물속을 자유로이 유영하며 물고기들을 몰아주거나 쓸만한 걸  주워와주기도 한다네, 어쩌면 우리 삶엔 없어서는 안될 중요한 자들이지."

"그렇군요."

선우는 수긍한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확실히 그런 역할이라면 이들에겐 없어서는 안될 존재이리라

"그것보다 자네는 어쩌다 단장애에 뛰어내리게 되었는가? 뭔가 사연이 있지 않고서야 그곳에 뛰어내릴 것 같지 않은데 말이야."

"전 사람을 찾기위해서 입니다."

"사람을 찾으러 이런 곳까지?"

"제겐 꽤나 소중한 사람이거든요."

현대 귀환의 실마리를 쥐고 있는 여자였다.

절실하고 소중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잘 찾아온 것 같네, 이곳이라면 자네가 찾는 이가 있을 수도 있을 걸세, 검은 호수에 빠진 자들은 모조리 이곳으로 유입되어버리니 말이야. 그게 시체든 살아있는 인간이든 말이야."

"웬만해선 살아 숨쉬고 있었으면 좋겠데 말이죠."

"장담할 수는 없네, 익사하거나 내장이 터져 죽는 경우도 왕왕하니 말이야."

"그런 끔찍한 일은 없기를 바래야겠군요."

"혹여 이름이 무엇인지 말해줄 수 있겠는가? 내 마을내에선 모르는 이가 없으니 분명 도움이 될 걸세."

"제가 찾는 건........"

부우우우우우우우웅

선우는 말을 끝까지 잇지 못하였다.

갑자기 뱃고둥과 같은 거대한 울림이 사방이 울려퍼지기 시작한 까닭이었다.

"아아아, 벌써 시간이 되었나보군."

그 울림에 촌장은 천천히 몸을 일으켜세우기 시작하였다.

".....이게 대체..무슨 소리입니까?"

"예배의 시작을 알리는 소리를 일세."

"예배의 시작이요?"

"그래, 우리들의 진실된 신을 찬양하고 경배하는 시간이지. 홀홀"

촌장은 기분 나쁜 미소를 흘리기 시작하였다.

"어떤가? 자네도 구경을 한번 해볼텐가? 생소하지만 꽤나 재밌는 경험이 될걸세. 물론 거절해도 상관은 없지만 말이야."

".......따라가겠습니다."

거절해도 상관없다고 하긴 했지만

촌장의 눈빛에는 묘한 기대감이 서려있었다.

만약 거절했다면 지금과 같은 원만한 협조를 구할 수 없으리라

"클클 잘생각했네."

.

.

.

.

밖으로 나오니 남녀노소 가릴 것없이 수 많은 사람들이 마을 중앙에 있는 거대한 제단을 향한 채 물기 가득한 진흙더미에 머리를 처박고 있었다.

그리고 엎드린 사람들 사이에는 물고기와 양서류를 닮은 괴인들이 망부석처럼 꼿꼿히 서있었다.

마치 그들을 감시하는 것처럼

이질적이면서도 껄끄러운 분위기가 아닐 수 없었다.

"이건.."

"모두 각자의 역할에 맞게 신을 경배하는 중일세."

촌장은 담담한 어조로 입을 떼었다.

"인간은 머리를 땅에 처박아야하나보군요."

"죄인으로 태어난 인간은 감히 신을 마주할 수 없기 때문일세"

"신께서 인간이 죄를 지은 채 태어났답니까?"

"교리상 모든 인간은 죄인일세, 신의 은혜와 축복을 몰라보고 거짓된 신을 찬양하며 신의 아들을 죽이는 만행까지 저질렀으니"

'..많이 들어본 설정인데.'

선우는 의구심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

알고 있는 종교와 꽤나 유사한 설정처럼 느껴진 까닭이었다.

"저도 머리를 처박아야하는 것입니까?"

"자네는 신을 믿지 않으니 구태여 강요치 않겠네, 그저 머리만 숙이도록 하게나."

철푸덕

말을 마친 촌장은 질퍽거리는 흙더미 속에 머리를 처박았다.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로 말이다.

선우는 그들을 따라 살짝 묵념하듯 고개를 숙였다.

내키진 않으나 나름 마을의 규율을 존중해줄 요량이었다.

[태초에 진정한 신께서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진정한 신께서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이었고 어둠이 있으라 하시니 어둠이 생겼났도디]

[신께선 빛을 낮이라고 부르시고 어둠을 밤이라 불러 세상을 구분지었도다!]

[신께서 천하의 물을 한 곳에 모이고 뭍이 드러나라 하시니 그대로 뇌니라!]

[이내 뭍을 땅이라 부르시고 물을 바다라 불러 세상을 구분하였도다!]

[신께서 가라사대 바다야말로 생명의 근원이자 창조의 원천이리라!]

[경배하라! 위대한 신을! 바다의 아버지이자 생명의 어머니인 위대한 신을!]

중앙 제단쪽에서 웅장한 울림이 울려퍼지기 시작하였다.

-아우우욱 우우욱 우우욱!

-아우우욱! 우욱 우욱! 우우욱!

-아아악 아아악 아우우욱!

-얄리 얄리 얄라셩 얄랴

-이레레으레레 으레레레 이에레레

-호로로로롤 로로롤롤 호로로로롤

-헤르래이르래구리수레허고이

곧이어 괴인들과 인간들이 알 수 없는 언어를 지껄이며 전신을 부르르 떨기 시작하였다.

마치 신을 영접한 것처럼 말이다.

'.....여름 성경학교에 온 것 같네.'

선우는 눈살을 찌푸렸다.

과거 충격적이었던 기억이 머릿속을 스쳐간 까닭이었다.

친구를 따라 멋모르고 따라갔던 여름성경 학교

밤마다 일어나는 예배와 알 수 없는 방언을 지껄이는 친구들과 어른들

어린 나이에 교회에 학을 떼게 되었던 나름의 트라우마가 좀더 괴이하게 펼쳐진 것이다.

눈살을 절로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저벅 저벅 저벅 저벅

누군가 제단 위로 천천히 올라가기 시작하였다.

풍성하면서도 찰랑이는 머릿결

표독스러운 인상을 주는 날카로운 눈매.

날세운 명검처럼 날카로운 콧대.

백옥보다 새하얀 피부

도톰하면서도 매혹적인 붉은 입술.

폭발적인 몸매가 그대로 드러나는 찰 달라붙는 길다란 흑의

치마 사이로 보이는 탄탄한 허벅지와 늘씬한 다리

음험한 이곳의 주민들과는 전혀 다른 느낌의 여인

'.........아.'

그 여인을 본 순간 선우는 넋을 잃고 말았다.

쓰레기 더미 속에서 피어난 한송이의 꽃을 보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위대한 신께서 본 신녀에게 말씀하셨다."

이내 제단 중앙에 선 여인은 천천히 입을 떼었다.

"거짓된 신을 섬기는 자가 있다면 그게 형제나 친구 이웃이건 상관없이 쫓아내고 돌로 처죽여라!"

-아우우욱 우우우욱 우우욱

-아우우우욱 우우욱 우욱!

"세상에 신은 오직 하나뿐이며 그 사실을 부정하는 자는 모두 악귀이자 세상을 파멸시키는 이단이다!"

"모든 이단을 멸하고! 어리석은 자들에게 신의 깨달음을 전도하여 찬양토록 만들라!!"

-찬양하라! 찬양토록 하라!

-이단을 멸하라! 멸하라!

"비록 지금은 이 어두컴컴한 동굴 속에 웅크리고 있지만 머지 않아 우리는 세상 밖으로 나갈 것이다!"

여인은 언성을 높이며 열변을 토해내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압도적인 폭력과 학살을 통해 진정한 신이 누구인지를 깨닫도록 할 것이다!"

-아우우우욱 우우우욱 우우욱!!

-아우우욱 우우욱 우우욱 우욱!

-알리 알리 알랴셩 얄라라라리요

-히레으헤레이리헤으 헤이흐레에

모든 괴인들과 인간들은 감명 받은듯 눈물까지 흘리며 방언을 내뱉기 시작하였다.

가히 광신의 현장이라해도 이상치 않은 모습이었다.

'저년이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선우는 눈을 반짝였다.

예사롭지 않은 선동 솜씨와 당진설을 연상케하는 표독스러운 눈매를 본 순간 확신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저 자칭하는 신녀라는 여인이 바로

자신이 찾던 그 여자.

마교의 성녀 독고령이라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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