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협지 안으로 들어와버렸다-1237화 (1,238/1,419)

"객이 왔으면 응당 자리에서 일어나 환대를 해야지."

선우는 널부러진 천마의 잔해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안그래?"

스스스스스슥

그때 이변이 일어났다.

터져나간 잔해들이 소용돌이치며 하나둘씩 모여들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조각을 짜맞추듯 살점과 핏물 그리고 뼛조각들이 하나하나 맞춰져갔다.

마치 조물주가 인간을 조형하는 것처럼

이내 짜맞춰진 조각들은 하나의 형상을 이루게 되었다.

천마天魔

형체조차 남기지 않고 터져나간 이가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객이라...과연 주인의 목을 노리는 자를 객이라 칭할 수 있을까?"

천마는 우습다는듯 말을 내뱉었다.

대체 어느 객이 다짜고짜 주인의 몸을 터트려버린다는 말인가

"아무렴, 의도는 불순해도 이 드높은 천산까지 친히 널 찾아왔으니까."

선우는 담담히 말을 내뱉었다.

"아무래도 객에 대한 관념이 서로 다른 것 같군."

"그렇다면 네놈이 틀렸겠지. 내가 틀릴 일은 없을테니까."

"오만하구나."

"스승님께서는 말씀하셨지, 의지를 관철할 힘있다면 그건 오만이 아닌 자신이라고."

선우는 자신 어린 눈을 반짝이기 시작하였다.

"스승이라면 음양마를 말하는 건가?"

"그분말고 누가 있을 수 있겠어?"

"끔찍스럽구나, 스승뿐 아니라 제자마저 본좌의 대계를 방해하지 못해서 안달이 났으니 말이야."

"그러니까 거슬리지 않게 착하게 살았어야지."

"착함이라...그런 개념은 오직 인간에게만 적용되는 법이지."

천마는 무미건조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신은 그저 행할 뿐이다"

"그런 생각자체가 글러먹었다는 거야. 새끼야."

꽈아악

선우는 검을 강하게 움켜쥐었다.

수많은 이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주제에

어떠한 죄책감조차 없었다.

그저 행한다.

그저 신이기에

라는 말같지 않은 이유로 모든 걸 정당화한다.

어찌 화가 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분노하는구나."

그 모습에 천마는 신기하다는듯한 표정을 지었다.

인간을 초월하여 자신과 동등해진 자였다.

그런데 아직까지도 인간의 감정을 버리지 못하였다니?

신기할 수밖에 없었다.

"화가나니까."

"이상하구나, 어찌 초월하여 신선경에 다다른 자가 오욕칠정에 얽매인다는 말인가?"

"인간이니까."

"정녕 스스로를 인간이라고 생각하는가?"

"그럼 뭐라고 생각하는데?"

"넌 신의 영역에 다다른 자다. 어찌 인간과 같은 하위종과 동일시한다는 말인가?"

천마는 눈살을 살짝 찌푸린 채 말을 내뱉었다.

자신과 그는 인간을 초월하여 신의 영역에 들어선 자이다.

인간과 같은 하찮은 존재와는 격자체가 다른 것이다.

그런데 어찌 스스로를 인간과 동일시한다는 말인가.

"내 본질은 변하지 않았으니까."

선우는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한계를 초월하여 기적과도 같은 성취를 이룩하였다.

산을 뒤엎고 강을 범람시키고 폭풍을 일으킬 수 있는 재해와 같은 힘을 얻었다.

그의 말대로 신의 영역에 다다랐다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행할 수 없는 힘을 손에 넣게 되었으니

하지만 그렇다해도 자신이 인간이라는 본질은 변하지 않았다.

슬플 때 슬피 울고

기쁠 때 즐겁게 웃고

연인을 사랑하고

약자를 가여워하며 연민을 느낀다.

자신은 여전히 인간인 것이다.

"네놈, 완전히 초월하지 않았구나."

천마는 알겠다는듯 입을 떼었다.

그는 오욕칠정을 벗어나기 보단 품고가기를 택했던 것이다.

초월하여 신이 되기보단 인간으로 남기를 택한 것이다.

"위기가 있긴했지만 잘 극복했지."

자칫 감정마저 초월하여 그대로 등선해버릴 뻔하였다.

하지만 그리 하지 않았다.

끝까지 인간으로 남고 싶었기에

"이해할 수 없다. 어찌 신이 될 수 있는 기회를 한낱 오욕칠정에 얽매여 포기해버린다는 말인가?"

천마는 이해할 수 없다는듯한 표정을 지었다.

오욕칠정을 버렸다면 그는 온전한 신이 될 수 있었을 것이다.

지금과는 비교조차할 수 없는 힘을 얻게 될 수 있던 것이다.

그런데 어찌 그런 모든 기회를 저버리고 인간이 되기를 택했다는 말인가

천마의 관념으로는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무소불위의 신보다는 사랑하는 남편이고 아빠인게 좋거든."

선우는 히죽거리며 말을 이었다.

"어리석구나, 어리석어, 결국 시간이 지나면 모든 건 무의미해지기 마련인 것을 그딴 것에 얽매여 기회를 날려버리다니."

"유한하니까 의미가 있는거야. 지나간건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테니까."

인간은 불완전하다.

선계의 신선들처럼 영원히 살 수도 없으며

감정에 지배되어 어리석은 선택을 반복하고

작은 사고에도 목숨이 오락가락할 정도로 미약하다.

하지만 모순적이게도 불완전하기에 인간을 행복할 수 있었다.

완전해지기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삶의 의미를 찾게 되고

수많은 추억을 쌓게되며

비로소 행복해질 수 있으니

그렇기에 후회따윈 없었다.

만약 시간을 되돌린다해도 자신은 망설임없이 같은 선택을 할 것이다.

신이 아닌 인간으로서 남기를

"후회할 것이다. 고작 그정도 힘에 만족했다는 것을"

천마는 싸늘한 어조로 말을 내뱉었다.

만약 그가 초월하였다면 지금과는 비교조차할 수 없는 힘을 얻었을 것이다.

어쩌면 자신은 물론이고 선계의 신선들조차 넘어서는 최강의 투선이 되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렇기에 천마는 확신하였다.

언젠가는 후회할 것이라고

언젠가는 과거의 자신을 찢어발기고 싶을 정도로 원망할 것이라고

"힘은 이정도면 충분해."

선우는 태연히 말을 받았다.

"내 소중한 것들을 지킬 정도는 되니까."

큰힘은 필요 없었다.

그저 자신의 울타리 안에 있는 소중한 이들을 지킬 정도면 충분하였다.

"역시 나와는 관념이 다르군."

천마는 읇조리듯 말을 이었다.

"내 눈에는 부족함이 넘쳐흐르는 것처럼 보이는구나. 필멸자여."

"그렇다면 이번에도 네놈이 틀렸겠지. 불멸자."

선우는 히죽거리며 입을 떼었다.

"부족한 건 네놈일테니까."

"오욕칠정조차 벗어나지 못한 네놈이 날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물론."

"오만하다."

"말했잖아, 자신이라고."

우우우우우우우웅

선우의 주위로 어마어마한 기운이 일렁이기 시작하였다.

정제되지 않은 본연의 자연기들이 그의 의지를 따라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솨아아아아아아아

천마 또한 음험하고 사악한 기운을 내뿜기 시작하였다.

최초로 만들어진 최악의 힘

근원의 마기를 말이다.

곧이어 두 기운들이 정면으로 충돌하였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앙

그러자 거대한 충격파와 함께 만마전 전체가 뒤흔들리기 시작하였다.

*********

찰나와도 같은 공방이 오고가기 시작하였다.

검을 내지르고

주먹으로 받아내고

발을 차올리고

무릎으로 막아내고

검자루를 내리찍고

팔꿈치로 튕겨내었다.

초식따윈 없었다.

무초승유초의 경지에 다다른 두 초월자에겐

모든 움직임이 초식이 되었으니

그렇게 얼마나 공방이 오고갔을까

스걱

절단음이 울려퍼지기 시작하였다.

데구르르르르

곧이어 머리 하나 바닥을 구르기 시작하였다

선우의 검이 천마의 목을 그대로 베어버린 것이다.

콰지직 콰지직

선우는 망설임없이 머리를 짓밟아 터트렸다.

스스스스슥

그러자 이변이 일어났다.

터져버린 잔해들이 다시금 모여들기 시작한 것이다.

'꺼져라.'

선우는 의지를 발현하였다.

잔해들이 다시는 모여들지 못하도록

하지만 소용없는 짓이었다.

아무리 의지를 발현해도 한 번 시작한 복원을 멈출 수 없던 것이다.

"매서운 일검이었다. 미처 반응치 못하였군."

이내 머리를 복원시킨 천마가 담담히 입을 떼었다.

전혀 아무렇지 않다는듯이 말이다.

"이정도로는 죽지 않는 건가."

"본좌는 불멸이다. 죽을 리 만무하지 않은가?"

천마는 히죽거리며 입을 떼었다.

멸할 수 없기에

불멸不滅라고 불리우며

이해할 수 없기에

불가해不可解라고 불리우는 자신이었다.

고작 목이 달아난 것 정도로 죽일 리 만무하였다.

"방법을 바꿔야겠네."

선우는 검을 천천히 늘어뜨렸다.

그리고 살의를 집중시키기 시작하였다.

눈앞에 있는 천마를 죽이고 말겠다는 진득한 살의를

스스스스스스슥

그러자 선우 주위로 소름끼치는 살기가 일렁이기 시작하였다.

"호오."

천마는 감탄했단듯 그 광경을 바라보았다.

상상을 초월하는 강맹한 살의에 대한 감탄이 절로 터져나온 것이다.

곧이어 일렁이는 살기들이 검신을 모여들기 시작하였다.

그러자 검신이 칠흑보다 어둡게 물들어가기 시작하였다.

살검殺劍

죽이고자하는 의지가 가득 담긴

최초의 심검心劍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그리도 본좌를 죽이고 싶더냐?"

천마는 가벼이 웃었다.

"물론."

선우는 가벼이 발을 굴렸다.

그러자 신형이 그대로 쏘아지기 시작하였다.

휘익

천마는 그런 선우를 향해 가벼이 손짓하였다.

파스스스스슥

그러자 땅이 치솟아 그의 정면을 가로막기 시작하였다.

흐름을 비틀어버리는 호교무공

건곤대나이의 묘리였다.

콰콰콰콰쾅

선우는 망설임없이 검을 내질러 치솟은 땅을 부숴버렸다.

그리고 잠자코 자신을 응시하는 천마를 향해 검을 내질렀다.

죽여버리고 말겠다는 의지를 가득 담은 채

푸우욱

곧이어 칠흑보다 어두운 살검殺劍이 천마의 심장을 단숨에 꿰뚫어버렸다.

미처 대처조차 못한 것이다.

"꽤나 아프구나.....필멸자여....고통이 느껴져..."

천마는 입가에 피를 흘리며 웃음 지었다.

죽이고자하는 의지가 내장을 좀먹으며 상당한 고통을 전해주었다.

"하지만 본좌를 죽이기엔 부족해."

천마는 검게 물들여진 손을 들어올렸다.

그리고 망설임없이 그대로 휘둘렀다.

콰아아아앙

"크윽..."

주르르르륵

가슴을 적중당한 선우는 지체없이 뒤편으로 밀려나기 시작하였다.

강맹한 일격을 두 다리로는 도저히 버텨낼 수 없던 까닭이었다.

"쿨럭."

선우는 곧이어 죽은 피를 토해내었다.

아무래도 속이 살짝 뒤틀린듯 하였다.

"단단하구나, 죽일 기세로 내려쳤거늘."

천마는 그런 선우를 감탄을 하였다.

가슴을 꿰뚫어버릴 기세로 내리찍었건만 저리 멀쩡하다니

육신의 튼튼함만으로는 이미 자신을 뛰어넘은듯 보였다.

"귀찮을 정도로 질긴 생명력이네."

선우는 입가에 흐른 피를 닦아내며 입을 떼었다.

몸을 터트려도

목을 잘라도

머리를 짓이겨도

심장을 꿰뚫어도 천마는 죽지 않았다.

오히려 우습다는듯 몸을 복원시키며 반격을 가하는 것이다.

귀찮을 정도로 질긴 생명력이 아닐 수 없었다.

"포기하고 싶다면 그리해도 된다."

"그럴 리가."

선우는 우습다는듯 입을 떼며 검을 강하게 움켜쥐었다.

그리고 온신경을 오직 검 하나에 집중을 하기 시작하였다.

우우우우우우우우우웅

그러자 그의 주위로 웅장한 기운들이 일렁였다.

그리고 그 웅장한 기운들은 검신에 집약되기 시작하였다.

압축되고 또 압축되며

담을 수 있는 최대의 힘이 담기고 또 담기기 시작하였다.

솨아아아아아아아아

곧이어 검신이 눈부실 정도로 빛나기 시작하였다.

마치 찬란한 태양처럼

".....말도 안되는 짓을 하는구나...필멸자여.....설마하니 마음의 검을 두개나 벼리다니"

천마는 어이없다는듯한 표정을 지었다.

본디 심검이라는 건 오직 하나의 염원을 의지로 세워 검으로 벼리는 일이었다.

아무리 재능이 뛰어나다해도 복수의 심검을 가질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런데 눈앞에 저놈은 달랐다.

살의로 가득 찬 의지의 검뿐만 아니라

또다른 검을 선보인 것이다.

어찌 경악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내 마음이 좀 복잡해서 말이야."

선우는 담담히 말을 내뱉었다.

빙의를 통해 장삼과 하나가 된 자신이었다.

아마 두 개의 심검이 가질 수 있었던 건 그 여파였을 것이다.

장삼은 복수를 위한 검을 세웠고

그리고 자신은 지키기 위한 검을 세웠으니

"그 음양마조차 빛을 바래질 정도의 재능이로다."

천마는 감탄하였다.

두 개의 심검이라니

유래가 없는 역대급 재능이었다.

어찌 감탄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역시 네놈을 이자리에서 죽여야겠다. 살려둔다면 언젠고 인간의 한계를 벗어나 본좌를 위협하게 될테니."

천마는 살의 어린 눈동자를 반짝였다.

이놈은 위험하였다.

언제고 초월할 재능을 갖추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이 자리에서 죽여야했다.

현세를 지배하는 유일한 신이 되기 위해서

"해보던가."

선우는 자세를 낮추고 검자루를 강하게 움켜쥐었다.

"불가능하겠지만."

그리고 한치의 망설임없이 검을 휘둘렀다.

그 순간 찬란한 빛이 일시에 쏟아지기 시작하였다.

저 오만히 서있는 천마를 향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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