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협지 안으로 들어와버렸다-1234화 (1,235/1,419)

"선우야! 소개해주고 싶은 게 있어!"

요랑은 해맑은 미소를 지은 채 말을 이었다.

"어머, 마침 저도 소개하고 싶은 아이가 있답니다."

주소양은 고혹적인 웃음을 흘리며 입을 떼었다.

"소개?"

선우는 의아한듯 되물었다.

별안간 소개라니?

대체 누구를 말인가

"백월."

"농질."

요랑과 주소양은 동시에 입을 떼었다.

"처음 뵙겠습니다. 주인님. 모든 여우들의 왕, 농질이라고 합니다."

"나..나는요....백월이야요....구미호예요....지금은 꼬리가 하나밖에 없지만 다시 생겨요.."

그러자 근처에 있던 농질과 백월이 후다닥 달려와 공손히 인사를 건네었다.

새롭게 맞이할 주인님을 향해

"어...그래, 반가워."

선우는 떨떠름한 표정을 지은 채 인사를 받았다.

한눈에 봐도 인간이 아님을 인지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와락

그리고 말이 끝나기 무섭게 백월이 선우의 품속에 포옥 안겨들었다.

"어..어?!"

순간 선우는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갑작스러운 백월의 행동을 예상치 못한 까닭이었다.

"잘부탁드려요..주인님."

백월은 선우의 넓은 가슴팍에 얼굴을 파묻은 채 입을 떼었다.

"..그래...잘부탁해. 백월."

이내 선우는 부드러이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그녀의 뒷머리를 부드러이 쓰다듬어주기 시작하였다.

달라붙은 백월이 꽤나 귀엽게 느껴진 까닭이었다.

"헤헤헤헤.."

백월은 그 부드러운 손길이 기분 좋은지

장난스러운 웃음을 흘리기 시작하였다.

요랑은 그 광경을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기분 좋은 선우를 보니 백월을 애써 살려둔 보람이 있다는 생각이 든 까닭이었다.

"농질, 아무래도 분발해야겠어요, 이러다간 딸이 먼저 선우님의 은혜를 입겠어요."

주소양은 농질을 슬며시 타박하였다.

뭔가 백월의 애교에 자신의 훌륭한 육노예가 밀려났다는 생각이 든 까닭이었다.

"....노력하겠습니다..."

"네에, 많이 노력해주세요. 딸에게 밀려나면 어미로서 위엄이 말이 아니게 될테니까요."

주소양의 눈이 날카롭게 빛나기 시작하였다.

움찔

그 눈빛을 마주한 농질은 움찔하며 몸을 떨었다.

눈을 마주친  순간

알 수 없는 광기가 전신을 훑고 지나가버린 까닭이었다.

'가만두지 않을 거야.'

그리고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백월보다 예쁨을 받지 못한다면 주소양이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라는 걸

'......이겨야해.'

그녀는 다짐하였다.

최선을 다해 백월보다 많은 예쁨을 받겠다고

자신의 안위를 위해서 말이다.

********

산을 깎아 만든 커다란 연설장

수많은 인파들이 하나둘씩 모여들기 시작하였다.

새하얀 검신이 붉게 물들어질 정도로 수많은 학살을 자행하는 잔인한 검객집단, 혈검대.

요사스러운 요기로 뭇남성들을 유혹하고 정혈을 빨아먹는 마녀집단, 요월妖月

시마屍魔의 제자들로 구성되어있으며 역천의 비술로 시체들을 일으키며 죽음을 뿌리는 사술집단, 역천대

요인 암살을 주목적으로 창립된 마교 최고의 암살집단. 흑사黑蛇

기동력 하나만큼은 철갑기병대 못지 않다는 광야대까지

하나하나가 마교의 최정예라 해도 무방한 이들이었다.

이내 연설장 안을 가득 채운 마교 최정예들은 얌전히 시립한 채 조용히 자리를 지켰다.

마치 무언가를 기다리는 것처럼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저벅 저벅 저벅 저벅 저벅

멀지 않은 곳에서 발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하였다.

연설장 내 모든 이들이 시선이 발소리가 들려오는 곳으로 향하였다.

그리고 볼 수 있었다.

금빛의 용이 자수되어있는 검은 용포를 입은 냉혹한 인상의 남자를

천마天魔

만마의 주인이자

모든 마의 근원

그가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쿵 쿵 쿵 쿵 쿵

연설장 내에 모든 이들이 일제히 무릎을 꿇었다.

감히 서있을 수 없었다.

어찌 미천한 종이 위대한 만마의 주인 앞에 고개를 빳빳히 세울 수 있겠는가

말도 안되는 일이었다.

이내 단상 위에 올라선 천마가 걸음을 멈췄다.

그리고 무감정한 시선으로 연설장 내부를 천천히 훑었다.

그러자 땅에 무릎을 처박고 있는 수많은 교도들이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하였다.

"때가 되었다."

천마는 천천히 입을 떼었다.

화아아아아아

그리고 그 한마디에 연설장 내부는 후끈 달아오르기 시작하였다.

마인들의 흥분과 열기가 서서히 퍼져나가기 시작한 것이다.

"그간 진실을 거부하는 이단들에 의해 얼마나 많은 핍박을 받았던가, 형제자매들을 무참히 잃게 되었고 춥디 추운 천산까지 내몰리게 되었으며 굶주리고 서로를 잡아먹는 비극까지 겪게 되었다. 수백년간 쉴새없이 탄압받고 비난을 받았고 진실된 신앙이 매번 거부되어왔다."

천마는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그러자 마인들의 열기가 더욱더 뜨거워지기 시작하였다.

탄압받았던 분노가 기운으로 승화되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지금 이순간부터 모든 건 역전될 것이다."

천마의 눈빛이 반짝이기 시작하였다.

"이제 핍박받는 주체는 중원의 모든 이단들이 될 것이다."

"그들은 굶주릴 것이고 추위에 떨게 될 것이다."

"그들은 썩고 메마를 것이다."

"그들은 영원한 죽음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진실된 신앙을 가진 너희들은 따스함과 배부름을 얻게 될 것이고 감히 상상조차 못했던 부귀를 누리게 될 것이다."

"내세뿐 아니라 현세조차 부귀를 누리며 행복의 굴레 속에서 영원히 살게될 것이다."

"나의 종들이여. 창궐하라."

천마는 담담한 어조로 입을 떼었다.

"저들의 비옥함은 본래 너희들의 것이다. 창궐하여 빼앗긴 것을 되찾아라. 모든 걸 순리대로 이루게 하라."

"내가 너희와 함께하나니."

천마는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마인들의 눈빛에는 광기 어리기 시작하였다.

그들에게 전쟁에 대한 두려움따윈 없었다.

위대한 신이 함께하거늘

어찌 두려움따위가 있을 수 있겠는가

그저 순리를 이루겠다는 신념만이 남아있을 뿐

그야말로 광신

그 자체였다.

***************

"혼자서 천산으로 가겠다구요!?"

옥령은 놀란듯 눈을 동그랗게 뜬 채 되물었다.

"응."

선우는 고개를 주억거리며 답하였다.

"안돼요."

옥령은 단호히 말을 내뱉었다.

적지로 홀로 들어가겠다니

어찌 허락할 수 있겠는가

"맞아, 갈거면 나도 같이가!"

요랑 또한 옥령의 말을 거들었다.

"본녀 또한 홀로 그곳에 가는 건 무리수라는 판단이든다. 반쪽이여."

"본디 하나보다 둘이 낫고 둘보단 여럿이 나은 법 아니겠어? 다같이 가자, 그 편이 안전할 거야."

주현영과 북궁연 또한 반대를 표하였다.

"아니, 너희들은 남아서 중원을 지켜줘."

선우는 고개를 좌우로 내저으며 입을 떼었다.

"중원은 충분히 안전하지 않은가요? 위협이 될만한 마물들을 모조리 전멸시키기도 하였고...."

주소양은 차분히 말을 이었다.

언제나 선우의 편이었던 그녀였지만 이번만큼은 마뜩치가 않았다.

선우를 못믿는 건 아니였지만 그렇다해서 적지로 홀로 보내고 싶은 마음은 없는 것이다.

"위협이 될만한 마물들은 전멸했지만 마인들은 아니잖아?"

선우는 차분히 그녀들을 설득하였다.

지금껏 침공을 자행한 건 대다수가 마경의 마물들이었다.

실질적인 마교의 전력은 모습조차 드러내지 않은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최전력이라고 할 수 있는 그녀들을 데려가는 건 악수 중에 악수였다.

"그렇다면 운설 선배님이라도 데려가시는 게 어떻습니까?...아무래도 부군 홀로 적지로 가시는 건 너무 위험하니..."

강하윤은 조심스레 의견을 내었다.

확실히 선우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아직 마교도들은 모습조차 드러내지 않았기에 마음 놓고 있기엔 일러도 너무 일렀다.

하지만 그렇다고 선우를 적지에 홀로 보낼 수는 없었다.

적어도 운설이라는 보험정도는 들어둬야하는 것이다.

"맞아요, 저랑 가도록 해요, 후배님. 중원은 다른 분들에게 맡기구요."

운설 또한 강하윤 의견에 동조하였다.

아직 마교의 전력이 남아있다고는 하지만 주전력은 이미 개박살이 난 상황이었다.

자신이 빠진다해도 충분히 감당할 수 있으리라

"아니요, 선배님도 남아서 중원을 지켜주세요."

선우는 고개를 좌우로 내저으며 거절을 표하였다

"어째서 혼자가겠다는 건가요? 이해할 수 없어요."

"맞아! 같이가면 더 안전하잖아!"

"혼자는 너무 위험해요!"

선우의 거듭대는 거절에 여인들이 언성을 높이기 시작하였다.

"선우, 당신의 힘을 의심하는 건 아니예요. 당신은 중원에 있는 그 누구보다 강대한 사람이니까요. 하지만 그렇다해도 마교에 홀로 보낼 수는 없어요. 너무 위험해요. 이번에도 진 속에 꼼짝없이 갇혀있지 않았던가요? 아무리 강해도 예상 못하는 변수에 맥없이 당할 수 있는 법이에요. 그러니 부디 한 명이라도 좋으니 누군가와 동행해주세요."

옥령은 차분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그를 못믿는 건 아니다.

아니 누구보다 그를 믿는다.

하지만 이번에 경우가 달라도 너무 달랐다.

바로 앞전에 기괴막측한 진법에 빠져 헤매지 않았던가

그런 기괴막측한 사술이 더 없을 것이라 장담할 수 없었다.

더구나 천마 또한 인신공양을 통해 더욱더 강맹한 힘을 얻지 않았던가

"미안해, 옥령.."

하지만 선우는 여전히 거절을 표하였다.

"무슨 다른 이유라도 있는 건가요?"

"위험해서, 너무 위험해서 너희들과는 함께 갈 수 없어."

선우는 침중한 표정을 지은 채 입을 떼었다.

"위험하니까 함께 가자는..."

"피부로 느껴지고 있어."

선우는 그녀의 말을 끊고 말을 이었다.

"천마가 얼마나 강해졌는지 말이야."

그리고 심각한 표정을 짓기 시작하였다.

"그놈, 엄청나게 강해졌어."

원래 이정도는 아니였다.

고전은 하겠지만 무난히 이길 수 있을 수준.

딱 그정도의 힘이었다.

하지만 진에 갇혀있는 사이

천마의 힘은 한층 더 강해졌고

이제는 승부를 장담할 수 없을 정도의 힘이 느껴지기 시작하였다.

목숨을 걸어야할 지경에 이르게 된 것이다.

그렇기에 함께 갈 수 없었다.

누군가를 지키면서 싸울 수 있는 상대가 아니였으니

"누군가를 지키면서 싸울만한 상대가 아니야."

선우는 담담히 말을 내뱉었다.

그러자 반발하던 여인들 모두 일제히 입을 다물었다.

직접적으로 말은 하진 않았지만 방해가 된다는 말이었다.

자존심이 상하지만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이미 격이 다른 강자로서 성장한 선우가 하는 말이였으니

"그러니까 모두들 이해해줬으면 좋겠어....홀로 천마와 맞서는 게 최선이라는 걸."

"..........."

".........."

여인들은 대답이 없었다.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가슴으로는 도무지 그를 떠나보낼 수가 없던 까닭이었다.

선우 또한 그 심정을 알기에 별다른 말을 할 수 없었다.

무슨 말을 하든 불안해할 거라는 걸 너무나 잘알기에

그렇게 얼마나 침묵이 이어졌을까

"....약속해주세요."

이내 잠자코 있던 옥령이 천천히 입을 떼었다.

"절대...절대 죽지 않겠다고."

그녀는 물기 젖은 눈빛으로 선우를 응시하며 입을 떼었다.

"죽지 않는 걸로는 부족해! 사지도 멀쩡히 돌아와야해!"

"사지도 부족하다, 잘생긴 얼굴이 성해야하느니라, 잘생긴 얼굴을 자식들에게 멀쩡히 보여야하지 않겠는가?"

"튼실한 근육 또한 잃어선 안돼, 얼마나 듬직하고 보기 좋은데."

"아랫도리도 웬만해선 보호해주세요, 물론 없어진다해도 사지가 멀쩡하다면 즐길 방법은 충분하긴 하지만...."

"부군의 멋들어진 머리털도 잃어선 안됩니다. 윤기 넘치는 모습은 제게 언제나 설레임을 전해준답니다."

여인들은 하나둘씩 말을 거들기 시작하였다.

종합하자면 어떠한 피해도 없이 몸성히 돌아오라는 말이었다.

아무래도 살아돌아오는 것만으로는 부족한듯 보였다.

그 말에 선우는 부드러이 미소 지었다.

그녀들의 걱정 어린 말에서 자신에 대한 진한 애정을 그대로 느낄 수 있던 까닭이었다.

'....난 정말 행복하구나.'

선우는 생각하였다.

지금 자신은 세상 그 누구보다 행복한 사람일 것이라고.

분에 넘치는 사랑을 이리도 한가득 받는데

어찌 행복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약속할게, 몸 성히 살아서 돌아오겠다고."

선우는 웃으며 약속하였다.

결코 패하지 않을 것이라고

결코 죽지 않을 것이라고

그 미소를 마주하며 여인들 또한 부드러이 미소를 지었다.

차오르는 불안감 애써 억누르면서 말이다.

그렇게 선우는 사랑하는 정인들의 배웅을 받으며 길을 떠나게 되었다.

대적자.

천마가 있는 천산을 향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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