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은 무자비하다.
아무런 전조조차 멋대로 뒤바뀌고 무너져내리며 항상 모든 생명체를 시험한다
멀쩡했던 숲이 용암이 치솟는 화산지대로 바뀌기도 하고
거대한 강물이 메말라 한순간에 사막으로 변하기도 한다.
건조한 사막이 늪지대로 변하기도 하며
깎아내린 절벽만 가득한 산들이 평지로 바뀌기한다.
그렇게 매번 자비없이 모습을 바뀌며 자연 속에 살아가는 모든 생명체들을 시험한다.
어디 한 번 살아남을 수 있겠느냐는듯이
어디 한 번 마음껏 발버둥쳐보라는듯이
그리고 이 무자비한 자연의 시험받는 생명체들은 선택을 해야한다.
도태되어 죽던가
적응하여 살아남던가
그렇다.
무자비한 자연 속에 살아가는 생명체에게 생존이란 곧 적응인 것이다
얼마나 더 받아들이고 익숙해지느냐
얼마나 유리하게 진화하느냐에 따라 생존률이 갈린다.
적응을 한다면 살아남아 군림하게 될 것이고
도태된다며 시체만 남아 적응한 자의 먹이가 될 것이다.
그것이 곧 자연의 법칙이자
거부할 수 없는 필연적인 순리.
마물들의 왕, 구영은 그 자연의 법칙에 그 어떤 생명체보다 순응한 존재였다.
영겁의 세월동안 무자비하게 변화하는 자연에 맞춰 끊임없이 적응하고 또 적응하였다.
용암이 치솟는 화산지대에서 살아남기 위해 내열성을 갖췄고
뼛속까지 시리게 만드는 혹한지대에서 살아남기 위해 내한성을 갖췄으며
깊고 끈적한 늪지대에서 갈퀴와 피부로 호흡을 하게 되었다.
거대한 돌덩이가 끊임없이 쏟아지는 곳에서 살아남기 위해 뼈마디와 가죽을 더욱더 두텁게 만들었고
새롭게 진화한 포식자들과 맞서기 위해 더욱더 강력한 이빨과 발톱을 얻었다.
자연에 맞서 끝없이 적응하고 또 적응하며 진화하였고 종국에는 완전생물체라고 칭해도 무색치 않는 절대적인 존재로 거듭나게 되었다.
그 어떤 환경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는 적응.
그 힘은 하나의 권능이 되었고
위기를 겪을 때마다 강해질 수 있는 원동력이 되어주었다.
마치 지금처럼 말이다.
용암보다 뜨거운 흑염룡의 열기
혹한지대보다 차가운 설풍의 냉기
그 모든 것들이 위기 그 자체였다.
급작스럽게 변화하는 자연 못지않은 강맹한 파괴력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버텨내는 것만으로도 끔찍하였고 괴성이 절로 튀어나왔으며 몸부림치며 발광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결국 견뎌내었고 끝내 적응까지 끝마치게 되었다.
한층 더 강해지게 된 것이다.
[크흐흐흐흐흐, 고맙다, 인간이여. 너희 힘이 나를 더욱더 강해지게 해주었다.]
구영은 극한의 위기를 선사해준 두 여인들에게 감사를 표하였다.
저 여인들덕택에 더욱더 강해질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게 되었다.
한층 더 완전생물에 가까워지게 된 것이다.
어찌 감사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곤란하도다."
주현영은 눈살을 찌푸렸다.
최고의 화력을 자랑하는 흑염룡이 전혀 통하지 않았다.
적응했다는 말이 거짓이 아닌 것이다.
"그러게, 꼴을 보아하니 내 설풍에도 적응해버린 것 같네."
북궁연은 마찬가지로 눈살을 잔뜩 찌푸린 채 말을 이었다.
말하는 꼬락서니를 보면
흑염룡뿐 아니라 설풍조차 적응해버린듯 하였다.
더 이상 쉽사리 얼려지지 않을 듯 싶었다.
".....더 강한 기술은 없는 것인가?"
주현영은 북궁연을 바라보며 입을 떼었다.
"남아있긴한데.....통할지는 모르겠네.."
아직 뼛속과 내장속까지 얼려버린다는 대홍련이라는 기술이 남아있긴 하였다.
하지만 이게 통할지는 미지수였다.
이미 상당한 냉기 내성을 가지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본녀 또한 마찬가지도다. 흑염룡을 뛰어넘는 기술이 있긴 하지만 내열성이 어느정도 갖춘터라 통할지 의문이로다."
주현영은 동의하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녀 또한 아직 최후의 한수가 남아있었다.
염황炎皇
창시자의 이름을 딴 최고의 기술.
하지만 마찬가지로 통할지는 미지수였다.
이미 충분한 화염 내성을 갖추고 있었으니.
"첫 타에 승부를 볼 생각을 했어야했는데.."
"맞도다, 여유를 부리다 낭패를 맞이하게 되었도다."
"그러니까 처음부터 쓰지, 왜 간을 봤어?"
북궁연은 가벼이 주현영을 타박하였다.
"이걸 본녀 탓을 한다고!? 그대도 최후의 한수를 꽁꽁 숨겨두지 않았는가!"
주현영은 억울하다는듯 항변을 하였다.
최후의 한수를 아껴둔 건 북궁연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어찌 자신을 타박한다는 말인가
"원래 무림인은 자신의 삼푼정도는 숨기는 법이야."
"본녀 또한 마찬가지다!"
"너는 무림인이 아니라 황족이잖아? 엄연히 다른 게 아닐까?"
"다를 것 없다! 본디 자신을 숨기는 건 제왕학에서도 엄연히 존재하는 일이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야, 지금 중요한 건 어떻게 맞서느냐지."
북궁연은 자연스레 화제를 전환하였다.
딱히 반박할 말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말돌리지말거라! 그대는 꼭 불리하면 말을 돌리는 버릇이 있도다!"
물론 주현영은 그런 화제전환을 용납하지 않았다.
타박할 건 다 타박해놓고 불리하니까 말을 돌리다니
비열한 화법이었다.
꼭 짚고 넘어가야하는 것이다.
그렇게 두 여인은 아옹다옹하기 시작하였다.
그녀들에게는 비상식적인 신위를 내보인 구영에 대한 두려움따윈 전혀 보이지 않았다.
[허허, 저년들이 우리를 무시하는구나.]
용머리 중 하나가 허탈한 웃음을 흘렸다.
어떤 공격도 통하지 않는 위용을 내보였음에도 전혀 두려워하는 기색이 없었다.
오히려 자신들따위는 안중에 없다는 저희들끼리 다투기까지 하였다.
어찌 허탈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저년들한테 두려움같은 게 없는건가?]
또다른 용머리 중 하나가 어이없다는듯 입을 떼었다.
[정신이 돌아버린 거지. 소위 말하는 현실도피! 우리가 두렵지 않을 리 없잖아?]
두려움을 몰고오는 존재이자
모든 생명체들의 상위 호환인 자신들이었다.
그런 자신들이 두렵지 않을 리 없었다.
필시 두려움에 현실을 부정하는 것이리라
[그렇다면 현실을 알려줘야겠구나.]
중앙쪽에 위치한 우두머리 용이 입을 떼었다.
그 또한 자존심이 상한 건 매한가지였기 때문이었다.
자신들따윈 안중에도 없는 저년들에 대한 부아가 치밀어오른 까닭이었다.
일반적으로 자신의 위대함을 마주한 생물체들의 반응은 일반적으로 두가지였다.
두려워하거나 경외하거나
아니면 둘다거나
그런데 눈앞에 있는 계집들은 일반적인 반응과는 전혀 달랐다.
자신따윈 안중에도 없다는듯 저들끼리 떠들고 있는 것이다.
자존심이 상하였다.
지금것 언제고 이런 대우를 받아보았겠는가
단언컨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 어떤 존재도 자신을 무시했던 적이 없는 것이다.
쩌어어어어억
구영은 아홉 아가리를 쩌억 벌렸다.
사아아악
사아아악
자연기의 입자들이 입 안에 빠르게 모여들기 시작하였다.
숨결을 내뱉을 요량이었다.
닿는 즉시 필멸을 선사하는 아홉 용의 숨결을
[나는 구영, 피할 수 없고, 꺾을 수 없는 파괴자, 만물의 종결자, 내가 바로 대격변이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곧이어 아홉 개의 숨결이 일제히 쏟아지기 시작하였다.
오직 주현영과 북궁연만을 멸해버리겠다는듯한 기세로
"지금 바쁜 거 안보이는가?"
"눈치가 없네."
주현영과 북궁연은 동시에 눈살을 찌푸렸다.
그리고 쏘아지는 숨결을 향해 고운 손을 뻗었다.
화르르르르륵
쩌저저저저적
그러자 불길과 설풍이 치솟으며 그대로 용의 숨결을 뒤덮기 시작하였다.
파아앗
그러자 쏘아지던 숨결이 순식간에 해소되며 흔적도 없이 흩어져버렸다.
마치 세상에 처음부터 존재치 않았던 것처럼
[아니!?]
구영의 눈이 휘둥그레지기 시작하였다.
필멸을 선사하는 숨결이었다.
하등생물체 따위가 버틸 수 있는 게 아닌 것이다.
그런데 이리 쉽사리 해소시켜버리다니
"적응을 해도 공격이 강해진 건 아닌가보네."
북궁연은 가벼이 손을 털며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어찌보면 당연하다 볼 수 있도다, 적응은 살아남기 위한 방도, 방호력은 비상식적으로 발달할 수 있으나 그 갖고있는 힘은 짧은 시간 큰 변화를 내보일 수 없는 법이니."
주현영은 차분한 어조로 말을 내뱉었다.
[숨결이 통하지 않는다면 짓밟아버리면 죽이면 될 일이다!!]
구영은 거대한 몸을 일으켜세웠다
그러자 커다란 몸뚱아리와 그걸 지탱하는 두개의 다리
길다란 꼬리
흉악스러운 앞발이 그대로 드러나기 시작하였다.
쿵 쿵 쿵 쿵 쿵
곧이어 구영이 커다란 발을 빠르게 옮기기 시작하였다.
짓밟아버릴듯한 기세로
주현영과 북궁연은 재빨리 몸을 내뺐다.
비록 숨결을 해소시킬 순 있지만
저 육중한 몸을 막을 방도따윈 없었다.
그저 몸을 내빼는 것외엔 말이다.
쿠우우웅 쿠우우웅 쿠우우웅
[크하하하하하! 자신을 어디가고! 몸을 내빼는 것이냐! 겁을 집어먹은 것이냐!]
구영은 길다란 꼬리를 휘두르고 마구잡이 짓밟으며 난동을 부리기 시작하였다.
가히 재앙이라고 해도 무색치 않을 모습이었다.
"그만두거라! 도시가 파괴되지 않더냐!"
그 난동에 참지 못한 주현영이 언성 높이며 일갈하였다.
화르르르륵
그리고 검은 불길이 쏘아보내기 시작하였다.
[크하하하하하하하하! 이런 건 이제 통하지 않는단 말이다!]
검은 불길에 휘감겨진 구영은 웃음지었다.
이제 이런 검은 불길따윈 전혀 두렵지 않았다.
적응을 끝마친 자신에게 이런 화력따윈 온천수처럼 뜨듯하기 그지없었기 때문이었다.
"멈춰!"
그때 몸을 내빼던 북궁연 또한 손을 뻗어 설풍을 쏘아보냈다.
쩌저저적
그러자 구영의 커다란 발이 급속도로 냉동되기 시작하였다.
[이 또한 소용없기는 매한가지다!]
콰지지직
하지만 이내 구영은 가벼이 발을 털어 냉기를 순식간에 뿌리쳐버렸다.
[너희들이 할 수 있는 것따윈 아무것도 없다! 크하하하하하하]
구영은 자신하였다.
자신의 진격을 막을 수 있는 것 따윈 아무것도 없을 것이라고
어떤 공격도 통하지 않는데
어찌 막을 수 있겠는가
어불성설 그 자체였다.
콰아앙 콰아앙 콰아앙 콰아앙
그렇게 구영은 부수고 또 부수기 시작하였다.
눈앞에 있는 모든 것들을
".....아무래도 이대론 안되겠도다. 저대로 냅두다간 대피소까지 닿게 될 것이다."
주현영은 심각하기 그지없는 표정을 지었다.
잔뜩 흥분한 구영은 어느새 자신들따위는 안중에도 없다는듯 무시하며 진격을 하기 시작하였다.
도시를 파괴가 주목적이라는듯이 말이다.
이대로 가다간 사람들이 모여있는 대피소까지 닿을 것만 같았다.
"어쩌려고?"
"염황炎皇을 쓸 것이다."
극양염황마공의 비기
염황炎皇
그게 아니라면 저 마물을 막을 수 없었다.
"그러니 그대도 숨기고 있는 걸 가감없이 사용하도록 하라."
주현영은 담담한 시선으로 북궁연은 바라보며 입을 떼었다.
지금은 서로 전력을 숨기며 간이나 볼 때가 아니였다.
최선을 다해 저 마물을 필멸해야하는 것이다.
"만약 우리의 비기까지 적응해버리면 어떻게 하지?"
북궁연은 걱정 어린 표정을 지은 채 되물었다.
비정상적인 적응을 보았던터라
내심 걱정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하도록 하자구나, 어찌 구더기가 무서워 장을 못담그겠는가?"
"그것도 그렇네."
북궁연은 동의하였다.
확실히 멍청히 서있는 것보단 뭐라도 해보는 게 나을 것 같았다.
우우우우우우우우웅
우우우우우우우우웅
곧이어 두 여인은 각각 극양염황마공과 천음빙백신공을 극성으로 운용하기 시작하였다.
최후의 비기로 필멸을 선사하기 위함이었다.
"잠깐 멈춰봐! 애들아!"
그때 어디선가 그들을 만류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주현영과 북궁연은 익숙한 목소리를 따라 일제히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그녀들의 눈이 화등잔만하게 커지기 시작하였다.
********
콰아아아앙
커다란 전각의 머리가 순식간에 날아가버렸다.
휘두른 앞발에 담겨진 거력을 감당치 못한 까닭이었다.
와르르륵
짓밟힌 건물이 폭삭 주저앉았고 휘둘러진 꼬리에 수많은 상가들이 줄지어 무너져내렸다.
가히 재해라고 칭해도 무색한 존재가 서녕 전체를 파괴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제 날 말리는 걸 포기하는 것이더냐? 인간이여! 크하하하하!]
구영은 흥겹게 웃음을 터트렸다.
도시를 파괴하면 할 수록 되려 몸이 달아올라 달려든 년들이 이제는 모습조차 보이지 않았다.
마치 모든 걸 포기한 것처럼 말이다.
[크하하하하하하하하!]
결국 자신이 이긴 것이다.
저 초월에 다다른 위대한 존재조차
자신을 어찌할 수 없는 것이다.
어찌 흥겹지 않을 수 있겠는가
[너희들의 세상을 파괴하여 완전생물이란 게 무엇인지를 실감토록 해주마!]
그렇게 한창 구영이 흥겨운 파괴를 이어가던 그때였다.
번뜩
무언가 익숙하면서 거슬리는 기운이 느껴지기 시작하였다.
감지 능력으로는 타의를 추종을 불허하는 용머리 하나가 무언가 불길함을 느낀 것이다.
[꺼으으으으윽!!!!]
콰아아아아아앙
그때 구영의 상체가 그대로 앞으로 쏠렸다.
거대한 충격이 뱃가죽에 그대로 파고든 까닭이었다.
구영은 열 여덟개의 눈알을 일제히 아래로 향하였다.
"안녕?"
그러자 뱃가죽에 주먹을 처박고 있는 계집이 인사를 건네었다.
그 여인은 익숙한 냄새를 풍기고 있었다.
어디서 맡아봄직한 냄새를.
[......인면..지주...]
이내 구영은 떠올릴 수 있었다.
결코 잊을 수 없는 거미 마물의 냄새를
"늙다리가 기억력은 좋네."
뱃가죽에 주먹을 처박은 장본인
인면지주 요랑은 히죽거리며 말을 받았다.
벌써 수백년이 지났건만 아직도 기억하고 있을 줄이야.
의외였다.
저 오만한 마물이 이미 멸족해버린 자신의 종족을 기억하고 있을 줄이야.
[복수를 위해..찾아온 것이냐?]
"아니."
요랑은 고개를 살짝 내저었다.
"소중한 걸 지키기 위해서 왔어."
그녀의 눈빛이 더할 나위 없이 빛나기 시작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