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르르르르륵
거대한 흑염룡이 구영의 전신을 강하게 조이기 시작하였다.
[끄아아아악아아아아아악]
구영은 고통 어린 비명성을 내질렀다.
살갗을 파고드는 끔찍한 열기를 도저히 참을 수 없던 까닭이었다.
'...대체 어째서!?'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억겁의 시간동안 근원의 마기를 머금은 자신의 비늘과 가죽에는 그 어떤 공격도 무의미하였다.
그 어떤 힘으로 감히 상처입힐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이변이 일어났다.
절대적인 방호력을 갖춘 비늘과 가죽이 흑룡이 품고 있는 열기를 견디지 못하고 그대로 타들어가기 시작한 것이다.
어찌 이해할 수 있겠는가
어찌 믿을 수 있겠는가
[끄아아아아아아아악!!!! 제기랄!! 꺼져라! 꺼지란 말이다!]
휘이이이이이이잉
구영은 전신을 뒤틀며 강풍을 일으키기 시작하였다.
전신을 휘감은 흑염룡을 어떻게든 떼어내기 위함이었다.
화르르르르르르륵
하지만 오히려 역효과였다.
휘몰아친 강풍이 불길을 더욱더 거세게 만들어버린 것이다.
[빌어먹으으으으을!!!!]
이내 구영의 비명성이 더욱더 처절해지기 시작하였다.
************
"참으로 질긴 마물이로다, 본녀의 흑염룡을 저리 버텨내다니."
주현영의 눈살을 살짝 찡그린 채 입을 떼었다.
웬만한 금강석조차 일순간 녹여버리는 화력을 지니고 있는 흑염룡이었다.
그런 걸 저리도 멀쩡히 버텨내다니
참으로 질긴 마물이 아닐 수 없었다.
"불길이 시원치 않은 거 아니야?"
옆에 있던 북궁연은 히죽거리며 딴지를 걸었다.
"본녀의 불꽃을 약하지 않도다! 금강석조차 단번에 녹이는 화력을 지니고 있다는 말이다!"
주현영은 발끈하며 언성을 높였다.
가벼운 도발이었지만
무공에 대한 자부심 강한 주현영을 자극하기엔 충분한 까닭이었다.
"그렇게 강한데 왜 쟤는 안녹는데?"
북궁연은 손가락을 뻗어 몸을 뒤트는 구영을 가리켰다.
".......가죽과 비늘이 금강석보다 단단한 게 아닐듯하다.."
"그럼 쓸모 없는 거네."
".........이이익!"
주현영은 분한듯 그녀를 노려보았다.
은연중 맞수로 생각하던 북궁연의 독설에 자존심이 상한 것이다.
"그럼 어디 그대가 직접 해보거라! 얼마나 우위를 설 수 있을 지 궁금하구나!"
"당연히 즉살卽殺이지."
북궁연은 자신 어린 미소를 지은 채 말을 이었다.
그녀는 자신하였다.
자신의 대홍련大紅蓮이라면 저 미물따윈 얼마든지 죽일 수 있을 것이라고
"불꽃이나 거둬보렴, 이 언니가 친히 격의 차이를 보여줄테니까."
"흥, 어디 마음대로 해보거라. 본녀가 똑똑히 지켜볼테니."
주현영은 구영을 향해 가벼이 손짓을 하였다.
스르르르륵
그러자 구영을 휘감고 있던 흑염룡이 서서히 사그라들기 시작하였다
불꽃을 거둬들인 것이다.
[........하아....하아....하아...하아...하아.]
구영은 거칠게 숨을 몰아쉬기 시작하였다.
끊임없는 고통에 상당수 체력이 소진된듯한 모습이었다.
'낙승이네.'
북궁연은 천음빙백신공을 극성으로 운용하기 시작하였다.
휘이이이이이이이이잉
그러자 그녀 주위로 혹한의 한기가 담긴 설풍이 휘몰아치기 시작하였다.
스으으윽
곧이어 북궁연은 구영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러자 휘몰아치던 설풍이 그대로 덮쳐들기 시작하였다.
[끄으으으윽...크으윽...으윽..]
그 설풍을 직접적으로 마주한 구영은 신음성을 흘리기 시작하였다.
설풍에 담긴 혹한의 한기가 가죽과 비늘을 뚫고 그대로 전해져온 까닭이었다.
'.....방심해선.안된다..'
한기에는 흑염룡黑炎龍과 마찬가지로 강렬한 의지가 담겨있었다.
결코 방심해선 안되는 것이다.
쩌어어어억
이내 구영은 아홉 아가리를 쩌억 벌리기 시작하였다.
불길을 내뿜어 한기를 몰아낼 심산이었다.
쩌저적 쩌저적
쩌저적 쩌저적
하지만 일은 뜻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아가리가 벌려진 채로 그대로 몸이 굳어가기 시작한 것이다.
'불...불길을 내뿜어야하는데!'
도저히 내뿜을 수 없었다.
허공에 떠다니는 자연기가 모여지지 않았다.
몸 뿐만 아니라 자연기조차 동결된 움직임을 멈춰서게된 것이다.
"불길은 더이상 내뿜을 수 없을거야."
그때 귓가로 차분한 목소리가 울리기 시작하였다.
설풍을 내뿜은 장본인, 북궁연의 목소리였다.
"이미 동결되었거든."
그녀는 담담한 어조로 입을 떼었다.
데굴 데굴 데굴
구영은 그런 그녀를 바라보며 열 여덟개의 눈동자를 쉴새없이 굴리기 시작하였다.
마치 어떻게 된 일인지 해명하라는듯이 말이다.
"어서오렴, 나의 얼어붙은 세계에."
북궁연은 그런 구영을 바라보며 고혹적인 미소를 흘리기 시작하였다.
냉혹하면서도 아름다운 이율배반적인 미소였다.
쩌저저적
쩌저저적
뚝
곧이어 구영의 데굴거리던 열 여덟개의 눈알을 일제히 움직임을 멈춰세웠다.
눈알까지 동결되어버린 것이다.
"어때? 격의 차이가 느껴져?"
구영이 완전히 얼어붙자 북궁연은 으쓱한 표정을 지은 채 되물었다.
내심 맞수로 생각하던 주현영에게 한방 먹였다는 생각이 든 까닭이었다.
"그저 얼어붙은 것뿐, 죽은 건 아니지 않더냐?"
주현영은 뾰루퉁한 표정을 지은 채 입을 떼었다.
아홉 머리의 용을 단번에 얼려버린 북궁연의 신위에
괜스레 기가 죽은 까닭이었다.
아무래도 못본 새 실력이 더욱더 늘어난듯 싶었다.
"소화, 인정 못하는 자세는 어른스럽지 않다구."
북궁연은 여유로운 미소를 흘리며 말을 이었다.
"........저 마물을 완전히 무너뜨린다면 본녀 또한 인정하겠노라."
"후후후후, 그렇게까지 말하면 어쩔 수 없네."
북궁연은 고운 손을 움켜쥐었다.
부우우웅
그리고는 얼어붙은 구영을 향해 주먹을 빠르게 뻗었다.
쇄애애애애애액
그러자 강맹한 권풍이 일더니 그대로 쏘아지기 시작하였다.
콰아아아앙
곧이어 권풍은 구영의 명치부근을 정확히 가격하였다.
쩌저저저적
쩌저저저적
그러자 얼어붙었던 구영의 몸이 서서히 금이 가기 시작하였다.
"어때? 이제 인정하겠어?"
북궁연은 주현영을 돌아보며 되물었다.
그녀의 입가에는 승자의 미소가 지어져있었다.
이정도라면 맞수인 주현영도 인정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든 까닭이었다.
"인정못하겠도다."
주현영은 담담히 답하였다.
"정말 고집이 세네."
북궁연은 눈살을 찌푸렸다.
결과가 명약관화거늘
어찌 인정치 못한다는 말인가
"하지만 저리도 멀쩡한데, 어찌 본녀가 인정하겠는가?"
주현영은 손가락을 쭉 뻗은 채 입을 떼었다.
"응?"
휘익
순간 북궁연은 의아한듯한 표정을 짓더니 그대로 고개를 돌렸다.
투투투투툭
투투투투툭
그러자 떨어져내리는 얼음뭉치 속에서 너무나 멀쩡한 구영의 모습이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하였다.
내부까지 얼어붙었던 게 아니였던 것이다.
"............."
그 모습에 북궁연은 말을 잃고 말았다.
한껏 의기양양했던 게 부끄러웠기 떄문이었다.
"다시 말해보거라, 무슨 차이? 언니?"
주현영은 히죽거리며 그런 북궁연을 속내를 긁어대기 시작하였다.
무척이나 재밌다는듯한 표정을 지은 채로 말이다.
와락
북궁연의 안면이 와락 찌푸려지기 시작하였다.
*************
[대단하구나...실로 대단해..]
전신을 휘감았던 냉기를 몰아낸 구영은 담담히 말을 내뱉었다.
[인간따위가 이리도 강해질 수 있다니 말이야.]
연약하기 짝이 없는 인간주제에
초월에 다다라 의지만으로 기적을 일으키는 경지에 이르게 되었고 마물들의 왕이자 마경의 지배자인 자신을 몰아세우기까지 하였다.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저들의 강함을
"이제와서 후회해도 늦었도다. 본녀의 백성을 상하게 한 죄는 죽음올 갚아야할터이니."
주현영은 싸늘한 눈빛으로 답해주었다.
그의 인정따윈 조금조차 기쁘지 않았다.
곧 불타없어질 놈의 감탄따위가 뭐가 중요하겠는가
[후회? 나 구영이? 크하하하하 우스운 말이로구나!!]
구영은 호탕하게 웃음을 터트렸다.
[착각하지마라, 인간이여, 그저 사냥감에 불과한 너희를, 상대할만한 애송이로 격상시켜준 것에 불과하니!]
구영은 싸늘한 눈빛으로 두 여인을 노려보며 말을 내뱉었다.
영겁의 시간을 살아온 구영에게
백년조차 못사는 인간따위는 한없이 초라하고 연약한 존재에 불과하였다.
아무리 힘을 키워도 일방적으로 사냥을 당하는 피식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였던 것이다.
그런데 아무래도 그 생각을 고쳐야할듯 싶었다.
연약한 피식자가 아닌 상대할만한 포식자로서 말이다.
"허세를 부리네, 꼼짝없이 당했던 주제에 말이야"
북궁연은 피식거리며 웃음을 흘렸다,
자신의 설풍과 주현영의 불꽃에 맥을 못추고 당했던 놈이었다.
그런 놈이 인정 어쩌고 상대할 만한 애송이 어쩌고 지껄이는 꼴을 보니 절로 웃음이 나왔다.
뭔 말도 안되는 허세란 말인가
[허세라 생각하는가? 그렇다면 너희의 패배이다! 격차조차 모르는 애송이는 결코 마물의 왕을 뛰어넘을 수 없으니!]
구영은 언성을 높이며 고함을 내질렀다.
"저놈도 누구처럼 격차를 좋아하는 것처럼 보이도다."
그 말을 들은 주현영은 비꼬듯 말을 내뱉었다.
"시끄러워."
북궁연은 일갈하였다.
괜스레 민망함이 치솟은 까닭이었다.
"얼음땡이는 쓸모가 없는 것 같으니 본녀가 직접 나서도록 하겠도다."
화르르르르륵
주현영은 구영을 향해 왼손을 뻗었다.
그러자 검은 불길이 빠르게 치솟오더니 이내 맹렬한 기세로 쏘아지기 시작하였다.
화르르르르르륵
[끄아아아아아아악!]
그러자 구영은 다시금 흑염에 둘러쌓이게 되었고 고통 어린 비명성을 내지르기 시작하였다.
"어떻게 된 것이냐? 바뀐 게 전혀 없지 않더냐? 대체 격차가 어디있다는 말인가?"
주현영은 괴성을 내지르는 구영을 어이없다는듯 바라보며 말을 내뱉었다.
그리 오만하게 굴더니 막상 흑염에 둘러싸이니 전과 별반 다를 바가 없었다.
똑같이 괴성을 토해내고 몸부림을 치기 시작한 것이다.
의문이 들었다.
대체 무슨 자신으로 그리 오만한 말을 지껄였던 것인지
[끄으으으윽!...끄으으으으윽...끄아아아악!]
구영은 그런 주현영의 물음에 대답할 겨를조차 없었다.
끊임없이 파고드는 열기를 버텨내는 것만으로도 온신경을 집중해야했기 때문이었다.
주현영과 북궁연은 그런 구영의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불길이 비늘과 가죽을 뚫고 속살까지 파고들기를 기다리면서 말이다.
그렇게 얼마나 기다렸을까
이변이 일어났다.
[끄으으윽...으으윽...으으윽..으윽]
몸부림을 치고 괴성 내지르며 고통을 토로하던 구영이 조용히 신음성을 흘리기 시작하였다.
'......더는 몸부림치지 않아?'
그 모습에 주현영은 의아함을 느꼈다.
화력이 더욱더 커진 것에 비해 반응이 건조하게 변해버렸기 때문이었다.
마치 버틸만한 것처럼 말이다.
그렇게 한창 의아함을 느끼고 있을 때
뚝
어느새 구영은 모든 움직임을 멈춰버렸다.
더는 비명을 지르지 않았고
더는 신음성을 흘리지 않았다.
몸부림치지도 않았으며
불길을 끄기 위해 발광을 하지도 않았다.
그저 흑염黑炎에 휘감긴 채 담담한 시선으로 그녀들을 내려다보고 있을 뿐인 것이다.
"아니!?"
"어떻게!?"
그 모습에 주현영과 북궁연은 당혹스러움을 느꼈다.
흑염黑炎
홍염과 백염 청염을 넘어선 최강이자 죽을 때까지 꺼지지 않는 저주스러운 불꽃.
닿는 것만으로도 피륙따위는 단숨에 소멸되는 불꽃을 구영은 너무나 여유로이 견디고 있었다.
마치 대수롭지 않다는듯이 말이다.
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이란 말인가
[예상보다 강력하기에 '적응' 하는데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인간이여, 자부심을 갖도록 하라, 그대는 나 구영이 인정한 강자이니라.]
구영은 담담한 눈빛으로 두 여인을 내려다보며 말을 이었다.
"그걸...적응했다고?"
"말도 안돼.."
두 여인의 눈빛에는 불신이 어리기 시작하였다.
흑염의 위력을 너무나 잘알고 있는 두 여인이었다.
그런 걸 적응하다니
그런 말도 안되는 일이 가능할 리 없지 않은가
[그 말도 안되는 일을 해냈기에 비로소 영겁의 세월을 버텨내고 절대자로서 군림한 것이다. 인간이여.]
구영은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적응
영겁의 세월을 버티게 해준 원동력
수없이 버텨내고 적응하였기에
지금의 자신이 존재할 수 있었다.
마물들의 왕은 날 때부터 왕이 아니었다.
영겁의 세월동안 스스로 완성된 왕인 것이다.
[이제는 느껴지는가? 나와 너희들 사이에 있는 격의 차이가.]
구영의 열 여덟개의 눈동자가 일제히 반짝이기 시작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