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녀가 왔으니."
눈부시게 아름다운 여인이 천천히 말을 이었다.
그리고 그 목소리는 모든 이들의 귓가에 선명히 울리기 시작하였다.
마치 옆에서 속삭이는 것처럼
".......아.."
"....아아아.."
이내 긴장과 공포만이 가득했던 병사들의 표정이 그대로 풀어지기 시작하였다.
귓가에 그녀의 목소리가 울린 순간
항거할 수 없는 존재를 마주하였다는 불안감과 확정된 죽음에 대한 공포가 눈녹듯 녹아내린 까닭이었다.
그저 안심이 되었다.
그녀가 내뱉은 단 한마디만으로도
"..........아아아아.."
이는 정천호 관양 또한 다를 바가 없었다.
그저 목소리가 울렸을 뿐이건만
모든 부정적인 감정이 눈녹듯 사라져버렸다.
그녀에 대한 알 수 없는 신뢰감이 마음의 불안을 모조리 날려버린 것이다.
'.....저 여인은.....대체..'
의문이 들었다.
대체 정체가 무엇이길래
그저 말 한마디만으로
수 많은 이들에게 안정과 평온을 전해줄 수 있다는 말인가
대체 정체가 무엇이길래
맹목적인 신뢰감을 준다는 말인가
쿠우우우우우웅
[크아아아아아아아!! 개같은 인간!!!]
그때 굉음성과 함께 천지가 진동을 하였다.
균형을 잃고 뒤로 넘어갔던 불가살이가 거대한 몸을 일으키기 시작한 것이다.
'....이상하다.'
관양은 이질감을 느꼈다.
저 재앙의 마물이 끈질기게도 몸을 일으키고 있는 상황이었다.
얼굴에 거대한 불꽃을 타올랐음에도 그새 회복하여 너무나 멀쩡한 모습으로 다시금 진격을 위한 준비를 하기 시작한 것이다.
원래라면 두려웠을 것이다.
너무 두려워 전신을 덜덜 떨며 불안감과 공포를 느꼈을 것이고
그 어떤 것도 소용없다는 사실에 크나큰 절망을 느꼈을 것이다.
원래대로라면 말이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두렵지가 않았다.
불안감과 공포가 대신 평온함이 느꼈졌고
절망 대신 안도감이 들었다.
눈앞에 여인이 존재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천군만마가 함께하는 든든함이 느껴지고 있는 것이다..
'.....신이 아닐까?'
관양은 감히 추측해보았다.
그녀가 정녕 신이 아닐까하고 말이다.
[가만두지 않겠다아아아!!]
그때 몸을 완전히 일으켜세운 불가살이가 분을 토해내기 시작하였다.
별안간 끔찍한 고통을 선사한 여인에 대한 분노가 차오른 까닭이었다.
부우우우우우우우웅
곧이어 거대한 풍압과 함께 거대한 발이 그대로 내질러지기 시작하였다
타탁
여인은 가벼이 발을 굴렸다.
그러자 그녀의 신형이 허공에 그대로 치솟더니 불가살이가 휘두른 발의 범위에서 완전히 벗어나게 되었다.
[멍청한 년! 공중에서 내 공격을 피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느냐!]
불가살이는 한껏 비웃음을 흘렸다.
그녀가 악수惡手를 뒀다는 생각이 든 까닭이었다.
허공에선 움직임이 제한될 수밖에 없었다.
필연적으로 공격을 허용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부우우우우우우웅
곧이어 불가살이는 흉악스러운 팔이 거침없이 휘두르기 시작하였다.
노리는 건 허공에 떠있는 멍청한 계집이었다.
"본녀가 그조차 생각지 못했을까?"
그 말에 여인이 가소롭다는듯한 표정을 지었다.
쭈우우욱
그다음 왼손을 불가살이의 가슴팍을 향해 쭈욱 뻗었다.
그리고 오른손으로 활시위를 거는듯한 시늉을 하였다.
화르르르르륵
그러자 창공보다 푸르른 청염靑炎이 시위가 당겨진 활의 형상으로 타오르기 시작하였다.
"우습게 보인듯하군."
여인은 싸늘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는 활시위를 가벼이 놓아버렸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
그 순간
어마어마한 화력이 쉴새없이 쏟아지기 시작하였다.
불가살이의 넓다란 가슴팍을 향해서
[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곧이어 고통으로 가득한 비명성이 울려퍼지기 시작하였다.
가죽을 넘어 속살까지 태워버리는 거대한 화력에 극심한 고통을 느끼기 시작한 것이다.
아팠다.
너무 아파 비명을 내지르지 않고는 도저히 배길 수가 없었다.
주르르르륵
이내 불가살이의 거체가 뒤편으로 쉴새없이 밀려나기 시작하였다.
상상이상으로 강맹한 화력에 수 만근에 다다르는 육중한 몸마저 버텨낼 수 없던 것이다.
그렇게 얼마나 뒤편으로 밀려났을까
치솟던 불길이 점점 사그라들기 시작하였다.
쿠우우웅
그와 동시에 불가살이는 그대로 바닥에 한쪽 무릎을 꿇고 말았다.
강맹한 화력에 상당한 피해를 입은 까닭이었다.
"꽤나 억센 거죽을 뒤집어쓰고 있구나. 마물이여"
그 모습을 지켜보던 여인은 감탄했다는듯한 어투로 입을 떼었다.
청염靑炎은 그녀가 내뿜을 수 있는 불꽃 중에서도 수위에 드는 강함을 품고있는 불꽃이었다.
그런 불꽃에 장기간 노출되었음에도 고작 한쪽 무릎을 꿇는 게 다라니
어찌 감탄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렇게 한창 감탄을 하고 있을 때
[.......넌...누구지?]
어느새 정신을 차린 불가살이가 의문을 표하였다.
대체 정체가 무엇이냐고
대체 정체가 무엇이길래 이렇게까지 자신을 몰아세울 수 있는지 말이다.
"예의가 없도다. 이름을 물을 때는 스스로 밝히는 게 우선이 아니던가?"
여인은 짐짓 엄한 표정을 지은 채 꾸짖듯 말을 이었다.
[난 마물들의 왕조차 죽일 수 없었던 불사의 존재이자 쇠를 먹는 재앙의 마물! 불가살이다! 네년의 이름은 무엇이냐!]
"주현영."
여인, 주현영은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혹은 능소화라고 불리우고 있도다. 하지만 구태여 기억할 필요는 없다."
그리고 홍옥과도 같은 적안을 반짝이기 시작하였다.
"그리 오래 볼 사이는 아닌듯하니."
[건방진 년! 고작 무릎 한쪽 꿇린 것 정도로 오만하기 그지없게 구는구나!]
불가살이는 언성을 높이며 고함을 내지르기 시작하였다.
살짝 뒤편으로 밀려난 것뿐이었다.
고작 한쪽 무릎을 꿇은 것뿐이었다.
그런데 어찌 벌써부터 승자인냥 건방을 떤다는 말인가.
오만방자하기 그지없었다.
"단어 선택이 잘못되었도다. 미물이여."
주현영은 차분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오만이라는 건 약자의 입에서 오르내릴 단어가 아니다."
[지금 날 약자라 여기는 것이냐!?!]
"아쉽게도 강자처럼은 보이지 않구나."
[크아아아아아악! 이 주제도 모르는 년이이이!!]
곧이어 불가살이는 발작하듯 고함을 내지르기 시작하였다.
속에서 열화와 같은 분노가 들끓은 까닭이었다.
가벼운 도발에 불과하였지만
그 도발은 불가살이의 자존심을 무참히 짓밟아버렸다.
약자라는 울림이
강자로서 평생을 살아온 그에게 더할나위없는 모욕처럼 느껴진 까닭이었다.
감히 누구에게 약자를 지칭한다는 말인가
[가만두지 않겠다아아아!!!]
쩌어어어억
이내 불가살이는 거대한 아가리를 하늘에 닿을 듯 쩌억 벌리기 시작하였다.
위이이이잉
그러자 하늘에 닿을듯 벌려진 커다란 아가리 속에 어마어마한 기운들이 휘몰아치기 시작하였다.
더불어 셀 수조차 없이 많은 철조각들이 함께 모여들었다.
먼젓번에 쏘아보냈던 흉악스러운 철의 집합체가 다시금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호오.."
그 모습을 마주한 주현영의 눈빛에 이채가 띄었다.
깨달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자신을 이곳까지 한달음에 달려오게 만들었던 강맹한 기운의 정체를 말이다.
"참으로 강맹하도다. 지금껏 수많은 강자들과 자웅을 겨뤘지만 이정도까지 압축된 힘을 마주한 건 손에 꼽을 정도로 적었다. 필시 네놈이 낼 수 있는 최대의 전력이겠지."
주현영은 차분한 어조로 말을 잇기 시작하였다.
"본래라면 기쁘게 공격을 받았을 것이다. 전력을 다해 부딪쳐오는 상대만큼 본녀를 흥분케하는 존재도 없었으니....."
화르르르르륵
그녀 주위로 새빨간 적색의 불길이 치솟기 시작하였다.
"하지만...지금은 그리 기쁘지 않구나."
곧이어 불길이 더욱더 거세게 타오르며 노랗게 물들어가기 시작하였다.
"한계를 넘어 초월에 다다른 본녀조차 긴장이 절로 될 정도로 강맹한 힘이다."
주현영은 담담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화르르르르르르르륵
더불어 불길이 점점 백설처럼 새하얗게 물들어가기 시작하였다.
"그 강맹한 힘으로 누구를 향해 쏘아보냈더냐?"
그녀가 분노하였다.
더불어 새하얗게 물들여진 불길이 점점 새파랗게 물들어가기 시작하였다.
가장 뜨거운 불꽃
청염靑炎 그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것이다.
"그 강맹한 힘으로 감히 누구의 백성을 해하려했다는 말이더냐!"
곧이어 주현영은 분노로 가득 찬 일갈을 내질렀다.
화아아아아아아아악
그 순간
청염이 칠흑과도 같은 어둠으로 물들어가기 시작하였다.
"용서할 수 없도다! 감히 위대한 제국의 백성을! 고귀한 폐하의 자식들을! 본녀의 형제자매들을! 해하려들다니!"
이내 주현영은 왼손을 하늘 높이 치켜들기 시작하였다.
화르르르르르르르륵
콰아아아아아
그러자 칠흑과도 같은 불꽃이 맹렬한 기세로 타오르며 하늘 위로 솟구쳐올랐다.
그리고 솟구쳐오른 칠흑과도 같은 불꽃이 하나의 형상을 만들기 시작하였다.
사슴의 뿔을 연상시키는 두개의 커다란 뿔들
부리부리한 눈빛
커다랗게 벌려진 아가리
그 속에 돋아난 삐쭉 삐죽한 이빨들
드넓은 창공을 뒤덮을 정도로 두텁고 커다란 몸뚱아리
이 모든 게 하나로 결합되며
하나의 흉악스러운 존재가 완성되었다.
세상을 뒤엎을정도로 거대하고 흉폭하기 짝이 없는 신화 속의 괴물.
흑염룡黑炎龍이 말이다.
"네놈은 한낱 미물의 신분으로 위대한 제국의 백성들을 해하려든 씻을 수 없는 중죄를 지었다! 이는 골백번 죽는다해도 도저히 갚을 수 없는 죄이니라!"
주현영은 싸늘한 눈빛으로 불가살이를 노려보며 고함을 내질렀다.
"그러니 그 죗값은 가장 고통스럽고 끔찍한 죽음으로 갚도록 하라!"
화아아아아아아아아악
곧이어 창공을 뒤덮은 거대한 흑염룡黑炎龍이 쇄도하기 시작하였다.
아가리를 쩌억 벌리고 있는 불가살이를 향해서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
불가살이는 쇄도하는 흑염룡을 향해 전력을 담은 금강철포金强鐵砲를 쏟아붓기 시작하였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앙
곧이어 주현영의 흑염룡黑炎龍과 불가살이의 금강철포金强鐵砲가 정면으로 충돌하였고 거대한 충격파가 온사방에 퍼져나가며 천지를 진동시키기 시작하였다.
그렇게 얼마나 충돌이 이어졌을까
주르르륵
주르르륵
불가살이의 거대한 거체가 뒤편으로 서서히 밀려나기 시작하였다.
전력을 담은 금강철포金强鐵砲가 주현영의 흑염룡黑炎龍에 압도당하기 시작한 것이다.
'제기랄...제기랄....제기랄!!'
불가살이는 쉴새없이 욕지거리를 내뱉기 시작하였다.
이러다간 저 흉악스러운 불길에 휩싸여버리고 말것이다.
다시금 끔찍한 고통에 몸부림치게 되는 것이다.
'그럴 순 없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불가살이는 전력을 다해 금강철포金强鐵砲를 내뿜고 또 내뿜었다.
어떻게든 쇄도하는 흑염룡을 무마시키기 위해
하지만 소용없는 짓이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흑염룡은 오히려 세를 불리며 덩치를 더욱더 키워갔기 때문이었다.
마치 무한한 화력을 지니고 있는 것처럼
이내 금강철포가 점점 검게 물들기 시작하였다.
흑염룡이 점점 잠식해가고 있는 것이다.
'안돼..안돼..안돼에에에에!'
화아아아아아아아아악
얼마 지나지 않아 흑염룡이 금강철포를 완전히 집어삼켜버렸다.
"끄아아아아아아아아악!!!!!!"
그리고 불가살이는 처절한 비명성을 내지르기 시작하였다.
가죽과 속살까지 파고드는 끔찍한 작열통에 몸부림을 치면서 말이다.
이내 불가살이의 상체는 연소된 채 완전히 사라져버렸다.
검은 잿가루만 남긴 채로 말이다.
*************
"와아아아아아아!!"
"우리의 승리다아아아!!"
"저 괴물을 물리쳤다!"
불가살이가 완전히 연소되는 과정을 지켜보던 병사들과 무인들은 일제히 함성을 내지르기 시작하였다.
저 재앙과도 같은 마물을 완전히 끝장내버렸다는 사실에 더할 나위없는 기쁨이 차오른 까닭이었다.
이제 더는 목숨의 위협을 받지 않아도 되고
이제 더는 막중한 책임감에 짓눌려 목숨을 초개처럼 버리지 않아도 된다.
모든 게 끝난 것이다.
어찌 기쁘지 아니할 수 있겠는가
그렇게 병사들은 환호하고 또 환호하기 시작하였다.
기쁨이 완전히 가실 때까지
또각 또각 또각 또각
그리고 주현영은 그 환호를 뒤로 한 채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하였다.
바닥에 널부러져있는 언중기가 있는 곳을 향해.
덥석
이내 언중기의 코앞에 도달한 그녀는 잠시 맥문을 쥐었다.
'....살아있어.'
그리고 느낄 수 있었다.
미약한 박동을
그 강맹한 공격을 정면으로 받아내었음에도 여전히 끈질기게 목숨을 연명하고 있는 것이다.
우우우우우우우우웅
곧이어 그녀는 맥문을 통해 잠시 기운을 불어넣기 시작하였다.
의원에게 내보이기 앞서 응급조치를 해둘 요량이었다.
더는 기력이 쇠하지 않도록
그렇게 얼마나 기운을 불어넣었을까
추우우우욱
이내 언중기가 평온한듯한 표정을 지었다.
더불어 전신에 잔뜩 들어가 있던 힘이 쭉 풀리며 추욱 늘어지기 시작하였다.
몸의 긴장이 풀리고 활력이 돋기 시작한 것이다.
'이정도면 어느정도 임시방편은 될 것이다.'
가벼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의지를 담아 몸속에 생명의 불씨를 불어넣었다.
이정도라면 의원에게 내보일 때까지는 쉽사리 죽지는 않으리라
그렇게 한창 안심하고 있을 때였다.
오싹
갑자기 등골에 오싹한 기운이 스쳐지나가기 시작하였다.
휘익
그 불쾌한 감촉에 주현영은 표정을 굳힌 채 재빨리 고개를 돌렸다.
그 오싹함의 정체를 파악하기 위해
그 순간 그녀의 눈이 화등잔만하게 커지기 시작하였다.
전혀 예상치 못한 광경이 눈앞에 펼쳐진 까닭이었다.
꿈틀 꿈틀 꿈틀
하반신이 징그러울정도로 꿈틀거리기 시작하였다.
그리고는 점점 위로 솟구치며 형태를 이루기 시작하였다.
코끼리와 같은 길쭉한 코
흉악스러운 이빨들
곰을 연상시키는 두텁고 거대한 상반신
두텁고 흉측한 앞발까지
모든 게 하나가 되어
불가살이라는 존재를 이루기 시작하였다.
불타없어진 몸을 완전히 수복해버린 것이다.
"............."
주현영은 눈에 띄게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설마하니 저런식으로 손쉽게 몸을 수복시킬줄은 전혀 예상치 못한 까닭이었다.
[말했을텐데? 마물의 왕들조차 죽이지 못했던 불사의 존재. 그게 바로 이 몸! 불가살이不可殺伊라고 말이야!]
불가살이는 언성을 높이며 고함을 내지르기 시작하였다.
[비록 화력에서 앞선다고는 하나 넌 날 죽이지 못한다! 얼마나 불태우든 몇 번이고 수복시켜버릴테니 말이야! 크하하하하하하하]
불가살이不可殺伊
말그대로 죽일 수 없는 존재
그 존재가 스스로의 권능을 드러내었다.
흥겨운 웃음을 터트리면서 말이다.
와락
그 웃음을 마주한 주현영은 눈살을 와락 찌푸렸다.
아무래도 일이 꽤나 귀찮아질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