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은 하나의 재앙과도 같았다.
성벽을 훌쩍 뛰어넘는 거대한 크기.
천지를 뒤흔드는 땅울림을 만들어내는 걸음걸이
코끼리와 곰을 섞은듯한 기괴망측한 외형.
일기당천조차 당해내지 일수에 무력화시켜버린 강맹한 힘까지
그야말로 재앙
그 자체라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
'그것'을 정면으로 마주한 병사들과 무인들은 그대로 몸이 굳어버렸다.
지금껏 상대해왔던 마물들과는 궤를 달리하는 압도적인 존재의 등장에 넋이 그대로 나가버린 것이다.
대항할 의지도
도망갈 의지도
전부 지워져버렸다.
그들 머릿속에 남은 건 오직 경외감.
그 뿐이었다.
쿠우웅 쿠우우웅 쿠우우웅
곧이어 거대한 땅울림이 천지를 뒤흔들기 시작하였다.
재앙이 성벽을 향해 서서히 다가오고 있던 것이다.
"지금 뭣들 하는 것이냐! 당장 정신차려라!"
그 광경에 정신이 번쩍 든 정천호 관양이 병사들을 향해 고함을 내질렀다.
넋놓고 있을 시간따윈 없었다.
어떻게든 저 재앙을 멈춰서게 만들어야했다.
소중한 이들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용맹스러운 제국의 병사들이여! 활시위를 당겨라! 포신을 돌려라! 어떻게든 수성守城을 해야한다!"
관양은 고래고래 소리를 내지르기 시작하였다.
""알겠습니다!""
그러자 이내 넋놓고 있던 병사들이 정신차리더니 곧바로 답을 하였다.
그리고 그의 명을 충실히 이행하기 시작하였다.
활시위를 당기고
수많은 포신들을 일제히 돌려
성벽을 향해 걸어오는 재앙의 마물을 향해 겨누었다.
"격발하라!"
곧이어 관양을 격발을 명하였다.
그 순간 셀 수조차 없는 수많은 화살들과 포탄들이 거대한 괴물을 향해 일제히 쏟아지기 시작하였다.
콰아아앙 콰아아앙 콰아앙
귀를 찢는듯한 폭음이 사방에 울려퍼졌고 매캐한 연기가 재앙의 마물을 휘감기 시작하였다.
뚝
곧이어 성벽을 향하던 재앙의 마물이 걸음을 뚝하고 멈춰세웠다.
'통한다!'
그 모습에 정천호 관양은 눈을 빛냈다.
저 끔찍스러운 재앙의 마물이 주춤하게 되었다.
집중되는 포격을 도저히 견뎌내지 못한 것이다.
'이길 수 있어!'
그의 눈빛에는 희망이 감돌기 시작하였다.
"더! 더! 더! 퍼부어라! 모든 화력을 집중시켜 마물을 말살하라!!"
관양은 잔뜩 흥분한 채 고함을 내지르기 시작하였다.
""명을 받들겠습니다!""
그 명을 하달받은 병사들은 이구동성으로 답을 하였다.
그리고 화살과 포탄을 끊임없이 퍼붓기 시작하였다.
그 재앙의 마물을 쓰러뜨리고 말겠다는 의지를 불태운 채로 말이다.
그렇게 얼마나 화력을 집중시켰을까
스으으으으윽
집중포격을 당하던 재앙의 마물의 거대한 몸뚱이가 균형을 잃은듯 앞으로 넘어가기 시작하였다.
쿠우우우우우우우웅
이내 천지를 뒤흔드는 거대한 굉음과 진동이 사방에 퍼져나가기 시작하였다.
몸뚱아리가 완전히 넘어간 것이다.
"우리의 승리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관양은 큰소리로 외쳤다.
""와아아아아아아!!!""
그러자 곧이어 성벽에서는 커다란 함성이 울려퍼지기 시작하였다.
"우리가 이겼다아아아!!!!!!"
"일기당천조차 어찌 못했던 마물을 우리가 이겼어!!"
"재앙은 사라졌다!"
"이제 끝났어! 모든 게 끝났다고!"
"정천호 만세에에에!!! 관양 만세에에!"
병사들은 승리를 자축하기 시작하였다.
하나같이 기쁨 가득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이다.
그렇게 모두가 기뻐하던 그때였다.
쿠우우우우웅
다시금 대지가 울리기 시작하였다.
뚝
순간 승리를 자축하던 병사들이 귀신같이 입을 다물었다.
그다음 떨리는 눈빛으로 앞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볼 수 있었다.
쿠우우우우웅
네 발로 걸어오고 있는 마물의 모습을.
"빌어처먹을! 다시금 화력을 집중시켜라!"
그 모습에 관양은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고함을 내질렀다.
쓰러뜨린 게 아니였다.
그저 이족 보행에서 사족 보행으로 전환되었을 뿐인 것이다.
콰아아앙 콰아아앙 콰아아아앙
병사들은 그 명령에 따라 다시금 화력 집중시키기 시작하였다.
이번에야말로 제대로 끝장내버리고 말겠다고 굳게 다짐한 채로 말이다.
쩌어어어어어억
그 순간 재앙의 마물이 이상행동을 보였다.
커다란을 아가리를 하늘에 닿을듯 쩌억 벌리고는 모든 포격을 입으로 받아내기 시작한 것이다.
"멍청한 놈!"
그 광경에 관양은 코웃음 쳤다.
두터운 가죽으로 꽁꽁 감춰도 모자랄 판국에 아가리를 벌려 속살을 드러내다니?
참으로 멍청한 놈이 아닐 수 없었다.
"아가리를 향해! 집중포격하라! 속살을 작살내버려라!"
관양은 다시금 명을 내렸고 병사들은 훌륭히 그 명을 수행하였다.
모든 화력이 마물의 아가리에 집중되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게 한창 화력이 집중되 던 그 때였다.
'.....응?'
관양은 이질감을 느꼈다.
안그래도 거대한 마물의 크기가 미묘하게 커진 것 같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그럴리가..'
말도 안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안그래도 성벽보다 몇 배는 거대한 놈이었다.
그런 놈이 어찌 더 커질 수 있다는 말인가
말도 안되는 일이었다.
휙 휙
잡념으로 가득한 머리를 가벼이 털었다.
그리고 안력을 집중하기 시작하였다.
자신의 착각에 불과하다는 확신을 얻기 위해
'....저..저런..!?'
그 순간 관양의 눈이 화등잔만하게 커지기 시작하였다.
의심이 확신이 되는 광경을 직접 목도한 까닭이었다.
"멈춰라! 당장 포격을 멈춰라!!!"
곧이어 관양은 다급히 포격 중지 명령을 내리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그 명령에 병사들은 의문 어린 표정을 지었다.
이리도 일방적으로 몰아붙이고 있거늘
어찌 포격을 중지하라는 말인가
"저놈은 화살과 포탄을 먹이 삼아 덩치를 키우고 있다! 우리가 저놈의 힘을 키워주고 있다는 말이다! 당장 멈춰라! 더는 우를 범하지 말란 말이다!"
저놈은 포탄과 화살을 먹이로 삼고 있었다.
이족 보행에서 사족 보행으로 태세를 전환한 것도
포탄과 화살을 수월히 먹기 위함이었던 것이다.
관양의 말에 화들짝 놀란 병사들은 다급히 포격을 중지시켰다.
그의 말대로 더는 우를 범할 수 없던 까닭이었다.
[아쉽구나.]
그 순간 거대한 울림이 사방에 퍼지기 시작하였다.
관양을 비롯한 병사들은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저 울림의 정체가 눈앞에 있는 재앙의 마물이라는 사실을
[좀더 늦게 눈치채면 좋았을텐데 말야.]
재앙의 마물은 아쉬운듯한 어투로 말하였다.
입 안까지 배달오는 먹이의 부재에 진한 아쉬움이 느껴진 까닭이었다.
[뭐, 어쩔 수 없지. 귀찮지만 직접 골라먹는 수밖에]
쿠우우우웅 쿠우우우웅
곧이어 재앙의 마물이 성벽을 향해 거대한 몸뚱아리를 천천히 옮기기 시작하였다.
"..정천호....어떻게...어떻게 해야합니까?"
"저희는 어떻게 해야하는 겁니까?"
"부디 명령을 내려주십시오! 정천호!"
병사들은 관양을 바라보며 다급히 물었다.
도저히 알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점점 다가오고 있는 재앙에 어떻게 대처해야하는지
어떤 행동을 해야하는 지
"..............."
하지만 관양은 어떠한 답도 할 수 없었다.
그 또한 뭘 어떻게 해야할 지 도저히 감을 잡을 수 없던 까닭이었다.
포탄과 화살마저 먹이로 삼는 저 괴물을 대체 어찌해야한다는 말인가
대체 무슨 수를 써야 막을 수 있다는 말인가
알 수 없었다.
도저히 마땅한 방도르 떠올릴 수 없는 것이다.
쿠우우웅 쿠우우웅 쿠우우웅
그렇게 혼란에 빠져있던 사이
어느새 마물은 성벽 코앞까지 도달하게 되었다.
[결국 자포자기한 것인가? 인간이란 어찌 그리도 나약하고 연약한 건지 모르겠구나.]
마물은 한심하다는듯한 어투로 말을 이었다.
쩌어어어어어억
그리고 거대한 아가리를 크게 벌리기 시작하였다.
성벽을 단번에 집어삼킬 요량이었다.
덜 덜 덜 덜
성벽 위에 서있던 관양과 병사들은 대항의 의지조차 잃은 채 벌벌 떨 뿐이었다.
도저히 방도가 없었다.
저 한낱 인간이 어찌 재앙에 맞설 수 있다는 말인가
무리였다.
나약한 인간이 할 수 있는 것따윈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약속된 죽음을 받아들이는 것 외엔
그 무엇도 말이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그 순간 포격따위는 비교조차할 수 없는 거대한 폭음이 울려퍼지기 시작하였다.
기우뚱
그리고 아가리를 벌리고 있던 마물의 몸이 균형을 잃은듯 기우뚱하더니 서서히 옆으로 넘어가기 시작하였다.
쿠우우우우우우우웅
곧이어 마물의 거대한 몸뚱아리가 완전히 넘어갔고 거대한 지진 사방에 울려퍼지기 시작하였다.
관양과 병사들의 눈이 화등잔만하게 커지기 시작하였다.
눈앞에 펼쳐진 믿을 수 없는 광경에 경악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이란 말인가
쇄애애애액
타타타탁
그때 바람을 꿰뚫는 소리와 함께 한 남자가 쓰러진 마물의 위에 모습을 드러내었다.
여기저기 들어차 있는 옹골찬 근육.
칠척 장신의 거대한 체구
부리부리한 눈매를 가진 중년인
"일기당천!?"
그 모습에 관양과 병사들은 다시금 경악을 하였다.
짓뭉개져 죽은 줄 알았던 권왕拳王 언중기가 다시금 모습을 나타내다니
어찌 경악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와아아! 일기당천이 우리를 구하였다!"
"마물따위는 단숨에 쓰러뜨렸다!"
곧이어 신색을 회복한 병사들이 환호를 하기 시작하였다.
어찌 생존하였는지는 모르겠지만 희망이 생겼다.
저 절대고수가 다시금 합세하게 되었으니 말이다.
"시끄럽다!"
언중기는 그런 병사들을 바라보며 크게 일갈하였다.
뚝
그러자 환호하던 이들의 입이 꾹 다물어지고 말았다.
일갈과 함께 퍼진 중후한 내력에 기가 죽어버린 까닭이었다.
"한심하다! 어찌 인간이 미물따위에게 굴복하여 죽음을 기다린다는 말인가!"
곧이어 언중기는 병사들을 노려보며 크게 꾸짖기 시작하였다.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모든 걸 내려놓고 죽음만을 기다리는 그들이
투쟁따윈 아무렇지 않게 포기해버리는 그들이
싸우기도 전 패배부터 해버린 그들이 말이다.
"어찌 투쟁을 포기하는가! 어찌 싸우기도 전에 패배부터하는가! 어찌 그리 연약하고 나약하다는 말에 모욕감조차 느끼지 않는다는 말인가!"
언중기는 열변을 토해내기 시작하였다.
한낱 마물따위에게 인간의 가능성이 부정당해버렸다.
연약한 존재로 규정되어버린 것이다.
그런데 어찌 수치심과 모욕감을 느끼지 않을 수 있다는 말인가
"수십 만의 백성들이 너희들만을 믿고 있다! 그런데 어찌 그 믿음을 배반하는가!"
언중기의 말이 더욱더 고조되기 시작하였다.
"너희들은 쓰레기다!"
"..............."
언중기의 꾸짖음에 병사들은 고개를 축 숙였다.
무어라 반박할 말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의 말대로 투쟁을 포기했고 믿음을 배반해버렸다.
제국을 수호하는 병사들로서 해서는 안될 짓을 해버린 것이다.
그런데 대체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는가
"빌어먹을 놈들!"
휘익
곧이어 언중기는 고개를 돌려버렸다.
마음같아선 무어라 더 꾸짖고 싶었지만 아쉽게도 시간이 없었다.
지금은 눈앞에 있는 마물을 끝장내는데 집중해야하는 것이다.
전력을 다한 일격이었지만
아마 이정도로 죽지 않았을 것이다.
마물이 내뿜고 있는 기운은 상상을 초월하였으니
제대로된 결정타가 필요하였다.
완전히 박살내기 위해선
꽈아아아아악
이내 언중기는 돌덩이같은 양주먹을 강하게 움켜쥐었다.
콰아아아아아아앙
그리고 전력을 다해 옆구리를 후려쳐버렸다.
콰아아아아아앙
몇 번이고 몇 번이고
호흡조차 잊었다
숨이 차오를 때까지
심장이 터질 때까지
근육이 비명을 내지를 때까지
손발에 힘이 빠져 후들거릴 때까지
내력이 반절이상 소진될 때까지
내지르고 또 내질렀다.
이 끔찍스러운 재앙에게 최후를 선사하기 위해
그렇게 얼마나 주먹을 내질렀을까
"하아....하아...하아...하아...하아."
언중기는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덜 덜 덜 덜
더불어 전신이 가늘게 떨리기 시작하였다.
한계까지 다다른 연격에 강건한 신체조차 지쳐버린 것이다.
'...죽은 건가?'
일단 몸뚱아리는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마치 죽음을 맞이한 것처럼
하지만 확신은 들지 않았다.
오히려 불안감만 증폭될 뿐
[이제 전부 끝난 것인가?]
그때 마물의 목소리가 사방에 울려퍼지기 시작하였다.
예상대로 멀쩡히 살아있던 것이다.
와락
언중기는 눈살을 찌푸렸다.
내력을 반절이나 소진했건만 아직도 이리 멀쩡하다니
짜증이 절로 치솟아오를 수밖에 없었다.
"짜증날 정도로 단단한 몸뚱이구나. 마물."
[너도 인간치곤 꽤나 강골이더구나. 물론 그래봤자 인간에 불과하지만 말야.]
".........그리 멀쩡한데 왜 가만히 맞아준 건지?"
[ 내 나름의 배려이다. 가진 모든 걸 쏟아부어야 후회 없지 죽지 않겠느냐? 물론 절망 또한 극대화된다는 부작용이 있긴 하지만 말이야.]
"악취미로군."
[본디 마물들은 성격이 나쁜 법이지. 크흐흐흐]
마물은 즐겁다는듯 웃음을 흘렸다.
스으으으으으윽
그다음 거대한 몸을 서서히 일으켜세우기 시작하였다.
그 위에 서있던 언중기는 재빨리 몸을 날려 거리를 벌렸다.
그리고 양주먹을 들어올린 채 전투 태세를 취하였다.
언제고 달려들 수 있도록 말이다.
[이제 할만큼 하지 않았던가?]
"그걸 정하는 건 이몸이다."
[넘을 수 없는 격차를 몸소 느꼈을텐데? 넌 무방비한 내게 그 어떠한 피해조차 입히지 못하였다. 더 이상의 저항은 무의미하다.]
"무의미한지 아닌지는 직접 해보기전까지는 모르는 법이지."
꽈아아악
언중기는 더욱더 강하게 주먹을 움켜쥐기 시작하였다.
[용맹한 건지 멍청한 건지. 모를 놈이로구나.]
마물은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수많은 인간들을 만났지만 이처럼 특이한 인간은 또 처음이었다.
격차를 충분히 체감하였음에도 끝까지 저항을 하려들다니 말이다.
[한 가지 확실한 건 네놈이 그리 싫지 않구나. 저딴 나약한 놈들과는 달리 말이야. 원한다면 살려주겠다. 어찌하겠느냐?]
"최선을 다해야할 것이다. 마물. 안그러면 죽는 건 네놈이 될테니까."
언중기는 이빨을 내보이며 으르렁거리기 시작하였다.
명백한 거절이었다.
[수치스러운 생존 대신 명예로운 죽음을 택한 것인가? 예상을 빗나가지 않는 놈이군. 크흐흐흐]
마물은 재밌다는듯 웃음을 지었다.
어차피 거절할 줄 알고 있었다.
이런 놈이 고작 목숨따위에 연연하진 않을테니
[좋다. 그렇다면 나 또한 최선을 다하도록 하지. 네놈이 원하는대로 말이야.]
곧이어 마물은 서서히 발을 들어올리기 시작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