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협지 안으로 들어와버렸다-1199화 (1,200/1,419)

청해 과락시

과락시는 청해성 남서쪽에 위치해있는 도시로, 비교적 낙후된 청해성 내에서도 그 입지가 상당히 높은 곳이었다.

사천과 인접하고 있다는 지리적 특성탓에 과락시의 발달시킨 까닭이었다.

사천을 거쳐가는 상단들이 청해로 진출하기 위해선 필연적으로 과락시를 지나칠 수밖에 없었는데

중소 규모의 상단들은 중간 휴식처로 과락시를 애용하였다.

사천에 비해 상대적으로 합리적인 물가와 질좋은 유흥 시설이 그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까닭이었다.

돈많은 상단들의 유입은 자연히 과락시의 발달을 불러일으켰고

과락시는 문화적으로 낙후된 청해내에서 가장 세련된 도시로 꼽히게 되었다.

활기 넘치는 유행의 중심지

그곳이 바로 과락시였다.

휘이이이이잉

그런 과락시에 을씨년스러운 바람이 스쳐지나갔다.

더불어 무거운 침묵이 도시 전체를 에워싸기 시작하였다.

평소의 활기넘치는 모습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들뜬 얼굴로 시끄럽게 떠들어댄 상인들도

목이 터져라 소리를 지르며 호객을 하던 장사꾼도

축제와도 같은 분위기를 즐기던 아이들도

속살을 드러내며 객을 유혹하던 기녀들도

그저 머물렀던 흔적만 남긴 채 자취를 완전히 감춰버린 것이다.

"과락의 지역민들은 모두 대피하였습니까?"

과락시로 지원을 나온 아미제일창, 불허사태는 담담한 어투로 입을 떼었다.

"청사 한쪽에 마련된 대피소로 이동시켰다. 그 주위로는 이천의 병사들이 지키고 있지. 안전할 것이다. 그러니 개의치 말도록 하라."

묵빛 갑옷을 입고 있는 청해의 위지휘사 감흥은 담담한 어조로 입을 떼었다.

무려 이천에 다다르는 병사가 대피소를 지키고 있었다.

아무리 괴악스러운 상대라도 쉽사리 뚫어내지는 못할 것이다.

"아미의 전력을 몇 몇 더 보태겠습니다."

불허사태는 차분한 어조로 입을 떼었다.

"개방 또한 마찬가지외다."

개방의 장로, 구걸개는 그녀의 말에 동조하며 말을 이었다.

"이천의 병사가 미덥지 못하다는 소리인가?"

위지사사 감흥은 눈살을 살짝 찌푸렸다.

잘 훈련된 관군 이천이라면

대피소를 지키기엔 차고넘치는 병력이건만 어찌 손을 더 보탤 생각을 한다는 말인가

"그런뜻이 아닙니다. 그저 일반적인 병력만으로 마물들을 감당할 수 없다고 사료되기 때문입니다."

"그게 못미덥다는 말이 아닌가?"

감흥은 불쾌하다는듯한 어투로 말을 내뱉었다.

"마물들 중엔 환술과 사술을 부리는 괴악스러운 이들이 존재합니다. 그들을 일반적인 병사들이 감당하기엔 상당히 무리가 될 것입니다."

불허 사태는 공손한 어투로 말을 이었다.

이천의 병력이 대단하긴 하였지만 그래봤자 무공을 익히지 않은 일반인에 불과하였다.

환술과 사술에 특화된 마물을 만날 경우

고전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본관의 병사들은 강인한 정신력과 굳건한 마음을 지닌 용사들이다! 한낱 마물의 환술이나 사술에 농락당할 성 싶더냐!"

짜증 어린 표정을 지은 채 감흥은 언성을 높였다.

군부에 대한 자부심이 가득한 그였다.

병사들의 능력을 의심하는 발언에 불쾌함을 느낄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하지만 위지휘사, 만일의 경우를..."

불허사태는 난감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전쟁에선 만일의 경우를 대비해야했다.

자칫 잘못했다간 되돌릴 수 없는 인명피해가 날 게 분명하였으니.

"만일 따윈 없을 것이다!, 그러니 아미와 개방은 그저 눈앞에 적만을 신경쓰도록 하라!"

하지만 감흥은 단호하기 그지없었다.

불허와 구걸개의 의견을 받아들일 생각따윈 전혀 없는 것이다.

"..........알겠습니다."

".....그리 하겠소이다."

그 깐깐함에 불허와 구걸개는 어쩔 수 없다는듯한 표정을 지은 채 입을 떼었다.

"상부의 명에 그대들과 어쩔 수 없이 협업을 하긴 하지만 결코 내 우위에 서거나 동등하려 들지마라, 그대들과 난 엄연한 격차가 있으니 알겠는가?"

감흥은 무거운 표정을 지은 채 경고하듯 말을 내뱉었다.

""명심하겠습니다.""

"크흐음."

두 사람의 공손한 태도에 감흥은 가벼이 헛기침을 한 번 내뱉었다.

주도권을 잡았다는 생각에 흡족스러움이 느껴진 까닭이었다.

"그럼 알아서 일들보게, 난 잠시 병사들을 독려하고 올테니."

휘이익

곧이어 감흥은 미련없이 몸을 돌렸다.

그다음 빠르게 걸음을 떼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그가 저 멀리 사라진 순간

"저 쌍놈의 새끼."

뒷모습을 지켜보던 구걸개는 거침없이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구걸개, 말이 심합니다."

불허사태는 그를 만류하였다.

"저 새끼가 짜증나게 하지 않는가? 뭐? 강인한 정신력과 굳건한 마음을 가져서 괜찮다고? 지랄하네. 정순한 내공을 쌓은 무인조차 버틸 수 있을 지 없을 지 모르는 걸 제놈들이 어떻게 버텨? 염병할 새끼."

구걸개는 짜증 가득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환술과 사술은 정순한 내공을 쌓은 무인들조차 버거워하는 요사스러운 기술이었다.

일반적인 병사들이 감당할 수 있는 게 아닌 것이다.

"저거 저 새끼, 주도권잡으려고 저러는 거야. 공동전선에서 공로가 줄어들까봐 견제하는 거라고, 게다가 뭐? 병사들을 독려한다고? 까고 있네, 안전한 후방가서 꿀이나 빨라는 걸 누가 모를 줄 아나? 염병할 놈, 하급 무관은 저런 놈도 별처럼 바라보고 동경한다던데, 똥별이 따로 없구만, 시부럴 놈."

"쉬잇!쉿! 조용! 누가 듣겠습니다!"

"들으라고 해! 어차피 거적떼기 하나 빼곤 가진 거 하나 없는 놈이야! 내가 튀면 제놈이 어쩔 거야?"

구걸개는 무서울 게 없었다.

본디 잃을 게 없는 자가 가장 무서운 자라고 하지 않던가

잃을 것 없는 놈들 중에서도 경지에 다다른 구걸개는 그야말로 안하무인이었다.

"후우우, 진정하십시오, 어차피 위지휘사의 말을 들을 생각따윈 없지 않습니까?"

"이미 전음으로 거지들을 보내놨네."

"저도 그리 하였습니다. 적어도 환술이나 사술에 허무하게 무너져내리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마음이 맞았구만 그래, 반응만 보면 저 얼간이의 명령에 그대로 따를 것 같더니."

"저희는 무인이지 않습니까? 협의에 움직이지 명령에 움직이는 존재가 아니지요."

"클클클, 말 한 번 잘하는구만."

그 말을 들은 구걸개는 웃음을 터트렸다.

그녀의 꽤나 재밌게 느껴진 까닭이었다.

그렇게 한창 유쾌하게 웃던 그때였다.

움찔

곧이어 구걸개가 웃음을 그친 채 몸을 움찔거렸다.

예상조차 못한 거대한 마기가 기민한 감각에 그대로 감지된 까닭이었다.

"불허, 느꼈는가?"

"......아무래도 놈들이 온듯합니다."

"눈치도 없는 놈들이군, 마음껏 웃을 기회도 안주는 걸 보면 말이야."

구걸개는 허리춤에 매달려있는 청죽봉을 움켜쥐었다.

"마물이 어디 눈치가 있겠습니까? 멍청함만 있겠지."

불허 사태 또한 창을 움켜쥐었다.

두 사람 모두 명백히 전투 태세에 돌입한 것이다.

"클클클, 그 또한 틀리지 않은 말이구만."

구걸개는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그녀의 말이 꽤나 재밌게 느껴진 까닭이었다.

"그럼 먼저 가보겠습니다."

그때 불허사태가 먼저 몸을 쏘아내기 시작하였다.

거대한 마기가 일렁이는 근원을 향해.

"뒤따르도록 하지."

구걸개는 그런 그녀의 뒤를 빠르게 뒤따랐다.

곧이어 두 사람은 완전히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처음부터 존재치 않았던 것처럼

***********

"궁병들은 활을 일제히 시위를 당겨라! 쏘아라! 단 한 마리도! 성벽을 넘지 못하게 하라!"

성벽 위에 서있던 정천호 가량은 큰소리로 고함을 내지르기 시작하였다.

굳은 의지를 담은 채로

"예엡!"

그러자 우렁찬 고함과 함께 수많은 화살들이 성밖으로 쏟아져내리기 시작하였다.

크아아아아악!

꿰에에에에엑!

끼이이이익!

꺄아아아악!

그러자 화살에 노출된 수많은 마물들이 기괴한 비명성을 내지르기 시작하였다.

날아드는 화살에 상당한 피해를 입은듯한 모습이었다.

"쏴라! 쏴라! 또 쏴라! 모두 섬멸하라!"

그 모습에 정천호 가량은 반색을 하였다.

기괴한 생김새에 기죽었지만 막상 공격을 퍼부으니 생각보다 연약하였다.

충분히 승산이 있는 것이다.

그렇게 수많은 화살들이 끊임없이 쏟아지고 또 쏟아졌다.

케에에에에엑

꺄아아아악!

쿵 쿵 쿵 쿵 쿵 쿵

곧이어 수많은 마물들이 바닥에 나자빠지기 시작하였다.

수십 발씩 꽂히는 화살촉을 견뎌내지 못하고 그대로 죽음을 맞기 시작한 것이다.

'됐어! 통한다! 통해!'

가량은 쾌재를 불렀다.

이대로 간다면 사상자없는 완벽한 승리를 이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유례가 없는 대승을 이루게 되는 것이다.

"더 쏴라! 한 발도 남김없이! 아끼지말고! 쏘고 쏘고 또 쏴라!"

그렇게 명령이 하달되었고 궁병들은 쉼없이 화살을 쏘아보내기 시작하였다.

정천호의 명대로 단 한 발도 남기지 않겠다는듯이 말이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쿠우우우웅

마지막 남은 마물 하나가 땅을 진동시키며 완전히 쓰러져버렸다.

성벽보다 커다란 덩치도

수천에 다다르는 화살을 도저히 견뎌내지 못한 것이다.

"와아아아아아!"

"와아아아아아! 괴물이 쓰러졌다!"

"우리의 승리다!"

곧이어 사방에 환호성이 울려퍼지기 시작하였다.

모두가 승리의 함성을 내지르기 시작한 것이다.

"하하하하하하! 우리의 승리다!'

정천호 또한 유쾌한 웃음을 터트렸다.

승리의 기쁨에 취하기 시작한 것이다.

"갈喝!"

그때 어마어마한 기운이 사방에 요동치기 시작하였다.

그러자 함성을 내지르던 이들이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일제히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곧이어 경악스러운 표정을 지은 채 정면을 바라보았다.

도저히 믿을 수 없는 광경이 눈앞에 펼쳐진 까닭이었다.

산처럼 쌓여있던 마물들의 시체가 일제히 사라져있었다.

그저 수천 수만 발의 화살만이 땅에 그대로 꽂혀있을 뿐인 것이다.

"대..대체...이게..어찌.."

정천호 가량은 당혹스러움을 느꼈다.

별안간 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이란 말인가

어찌 처절하게 비명을 지르며 죽어나갔던 마물들이 흔적조차 없이 사라졌다는 말인가

어찌 수천 수만 발의 화살만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는 말인가.

그렇게 한창 당혹스러움을 느끼고 있을 때였다.

"환술幻術입니다."

그때 어느새 지척까지 다가온 불허사태가 입을 떼었다

"환술幻術!?말입니까!?"

"예에, 정천호와 병사들이 동시에 환술에 걸렸습니다. 그리고 존재치 않는 가상의 적을 상대로 화살을 쏘아보낸 것이죠."

불허사태는 차분한 어투로 말을 내뱉었다.

"말...말도 안됩니다...어찌 삼천에 다다르는 병력이 일제히 최면에 걸린다는 말입니까!"

가량은 고개를 맹렬히 내저으며 부정하였다.

아무리 환술이라고 해도 그 범위는 한정적일터니

서넛도 아니고 삼천에 다다르는 병력이 어찌 일제히 환술에 걸릴 수 있다는 말인가

"그걸 가능케하는 존재가 존재한다는 의미겠지요."

불허사태는 침중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수천에 다다르는 병사들을 일제히 농락할 수 있는 대규모 환술이라니

그녀 또한 긴장을 할 수밖에 없었다.

"어찌...어찌...어찌.."

가량은 여전히 믿기지 않은 표정을 지은 채 되뇌였다.

눈앞에 펼쳐진 광경이 꿈처럼 느껴진 까닭이었다.

그렇게 한창 당혹스러움을 느끼고 있을 때였다.

쿵 쿵 쿵 쿵 쿵

거대한 발소리가 평원을 울리기 시작하였다.

그 진동에 정천호 가량은 재빨리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볼 수 있었다.

환상 속에서 봤던 수많은 마물들의 무리를

".......설마 아직도 환술이 풀리지 않은 것입니까?"

가량은 멍한 표정을 지은 채 물었다.

"아니요, 저들은 진짜입니다. 아무래도 이제서야 제대로된 본대가 도착한듯 하군요."

"크으윽...요망한 놈들...나를 속이다니! 여봐라! 당장 마물들을 향해 화살 쏴라!"

곧이어 가량은 분한듯한 표정을 지은 채 고함을 내질렀다.

당장에라도 요망한 놈들을 죽여버릴 요량이었다.

하지만 그 누구도 화살을 쏘는 이는 없었다.

"뭣들 하는 것이더냐!"

가량은 병사들을 둘러보며 언성을 높였다.

어찌 자신의 명을 불복한다는 말인가.

"정천호! 화살이 부족합니다!"

"모든 화살을 소진하였습니다!"

곧이어 병사들은 이구동성으로 답하였다.

그들 또한 정천호의 명대로 화살을 쏘고 싶은 생각은 굴뚝같았지만 도저히 그리 할 수 없었다.

이미 모든 화살을 소모해버린 까닭이었다.

"....크으으윽....요망한 마물놈들.."

정천호는 분한듯한 표정을 지었다.

깨달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대규모 환술의 저의를

환술사는 오직 화살을 소모시키기 위해 요망스러운 농간을 부렸던 것이다.

"백병전 외엔 방법이 없습니다. 정천호."

불허사태는 담담한 어조로 입을 떼었다.

모든 화살이 떨어진 이상

백병전 외엔 방법이 없었다.

"....알겠습니다. 사태."

정천호는 동의하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 또한 이 방법이 최선임을 인지한 까닭이었다.

"성문을 열어라! 병사들은 검과 창을 들고 괴악스러운 마물들을 토벌하라!!"

""알겠습니다!""

정천호의 명에 병사들은 일제히 답하였다.

끼이이이이익

그리고 곧이어 성문이 서서히 열리기 시작하였다.

"마물들을 토벌하라!"

"마물들을 토벌하라!"

그리고 뒤편에서 대기하고 있던 수많은 병사들이 일제히 쏟아지기 시작하였다.

길다란 창을 치켜든 채로 말이다.

콰아아악!!!

케에에에엑!

꿰에에에에엑

곧이어 병사들과 마물들이 충돌하였고

두 집단간의 목숨을 건 처절한 사투가 시작되기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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